독자기고
겨울 여행
쌀쌀한 탓인지 모두들 두툼한 외투에다 가방 하나씩을 끌고 애핑 출발을 기다린다.
우린 오는 순서대로 착석, 나는 이 여행이 즐겁고 유익하길 바라며 늘 마음 있어 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12 사도의 풍경을 본다는 기대감과 내륙의 들판, 호주의 겨울 숲을 보고 싶었다. 한국의 겨울 풍경과는 다를 것이다.
출발, 장로님의 안전을 바라는 기도와 김 선생님의 자리를 앞뒤로 바꿔가며 즐기자는 부탁, 위트가 특별하다. 살아온 경험, 개인의 도덕성, 질서에 대한 부탁이 객관적이다.
유머적 위트, 공간적 순발력, 설득력이 부럽다. 여행을 함께 해보면 개개인의 개성과 그 사람의 가치관 그리고 사회성이 읽혀진다. 학교 적이기 보다 다분히 사회적 개념이다.
거창한 학력을 깃발처럼 흔들어도 잘 생긴 용모와 명문가 출신임을 내 세워도 사회적 질서를 모른다면 함께하기 어렵다. 지금 것 살면서 나이 때문에, 또 학력 때문에 누굴 존경해 본적 없다. 나이와도 학력과도 상관없이 배우려는 성의와 아는 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할 용기가 있다면, 게다가 바탕적 성실성과 세상 질서를 지킬 줄 안다면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고 부럽고, 따라하고 싶고,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즐겁다. 우리들 모임은 비슷한 취향의 모임이라 모두의 양보와 배려로 즐거움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벤디고, 은행 이름만으로 익숙했는데 내륙의 지방 도시 이름이었다. 이름 때문인지 낯설지 않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호주 지방의 모든 도시들과 타운 들이 엇비슷해 거기가 거기 같다. 원래 학구적이 못되는 난 벤디고의 옛스런 건축물과 마리린 먼로의 동상을 바라보며 그 명장면을 뽑아낸 감독의 재능과 스테프들을 상상해 본다. 지하 통풍용 바람, 펄럭이는 스커트, 눈부신 다리가 노출되며 세상 남자들을 숨 막히게 했다는 영화 속 장면이 낯익다. 자서전을 읽었던 터라 그 여배우의 영광과 굴욕이 생각나 잠깐 생의 허탈에 갇힌다.
자유 시간, 케밥 점심과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등짝에 햇살을 지고 커피 향을 즐기는데 길 건너에선 벌써 일행들이 모인다. 다시 와질 거 같질 않아, 시내를 눈 안에 담느라 한 번 더 원을 그리며 천천히 둘러본다. 시야 만큼이라 제한적이다. 중국인 유적지도 인상적이긴 해도 꼭 무당집 같아 고찰 이전에 거부감이 먼저와 서둘러 떠났다.
12 사도, 사진에서, 그림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 비바람이 거칠다. 해안가의 잡목들이 머리를 풀며 흔들고 파도 소리는 바람 속을 헤매며 겨울 노래를 부른다.
비는 쏟아지고 파도는 바위를 치며 물 울음을 토해낸다. 계절 노여움에 몸을 움츠린다. 불편한 만큼 여행다워 이번 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역시 겨울은 겨울다워야 제 맛이 난다. 보고 싶던 걸 해결하니 흠뻑 젖은 겨울 코트가 무겁질 않다. 얼핏, 젊은 날의 옛 남자를 옆에 세워 본다. 그는 아마 비를 털어주며, 우산을 펴주고 포켓 안에서 손을 겹쳤을 것이다. 춥구나! 손이 차잖아? 그러면서 그대의 찬 손을 부르지 않았을까? 그 남자는 노래를 잘 불렀다. 내 청춘의 정원에 심었던 사랑 나무, 빛과 그림자, 그는 운명이라 했고 나는 사랑이라 불렀다. 화들짝, 다시 현실로 돌아오며 빗속을 뛰며 일행을 찾는다. 난 검은 새처럼 양쪽 팔을 바람개비처럼 흔들며 버스에 오른다. 해가 짧아 절경의 해안 도로를 보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기회는 만들면 다시 올 것이다.
영, 여긴 교통망이 좋아 한국인 젊은 치의사가 성공 했다는 김 선생님의 설명, 성공 이유가 지리적 입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의사로서의 적당한 자세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직업적 책임과 헌신, 학문적재능이 합쳐진 결과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 저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분명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그의 성공을 도왔을 것이고 앞날도 걸 맛 게 빛날 것이다. 어떤 젊은지 보고 싶다. 공원에서의 점심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고 푸짐했다. 아침이 부실해 시장기도 있었지만 여행 중의 야외 만찬은 기분도 한 몫이고 분위기도 요즘 말로 짱 이다. 모두의 협심도 한결 같아 마지막 정리도 깔끔했다. 공원은 아직 가을 단풍이 남았고 상록수도 나목들과 어울려 사계의 공존이 묘한 정서를 안겼다.
모텔, 지금까지 이렇게 불편한곳은 처음이다. 우선 난방이 안 되어 있고 침대도 엉망이다. 밤새 덜덜 떠느라 잠은커녕 감기 걱정으로 코트는 물론 모자 마스크 까지 하고 아침을 기다렸다. 그날 밤의 기온도 상당히 쌀쌀했다. 이 또한 색다른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훗날 기억을 더듬으면 웃음을 선사 하리라. 나머지 모텔 세 곳은 집 같은 안정감과 푸근함이 있어 피곤을 풀 수 있었다.
멜본, 시드니완 좀 달랐지만 시내 중심가의 마차 소리가 언제나 좋다. 원시림이 울창한 댄디 농의 산길에 들어서니 윌리엄 리켓의 유명 조각상들이 길을 타고 세워져 있다. 기념관도 리켓의 초상화와 작품들로 전시되어 뭔지 모를 그 시대의 그분 결심과 사랑이 전해진다. 한 교수님의 설명에서 원주민과의 화해와 백인으로서의 잘못을 사과하는 의미로 원주민 조각상만 고집 했다는 그가 좀 기인이란 생각이 들다 멈춘다. 그 분의 생은 그의 가치일 것이니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이다. 그럼에도 남자의 세계에서 여자 없이 산다는 게 행복 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코아라, 보고 싶던 겨울 숲이 거기 있었다. 가로수의 나목들이 동향화의 묵화처럼 펼쳐져 있어 단박에 반해 버렸다. 겨울 숲, 그리고 전사자들이 묻힌 묘지의 쓸쓸함, 문득 전 혜린의 어둡고 무거운 문체들이 생각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녀가 아려왔다.
죽음만이 선택 이였을까? 아프지 않은 청춘이 있기나 할까? 그녀의 아집과 용기에 갈채를 보낼 순 없지만 이해는 간다. 병사들의 묘지는 더없이 처연했다. 무엇을 위한 죽음인지도 몰랐을 그들, 그들 나이에 국가관이 제대로 있었을까? 전쟁의 의미를 알기나 했을까? 전쟁의 잔인함에 항거할 능력도 없이 국가의 명령에 복종만이 허락이었을 그들 죽음은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난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어둠이 깔리는 묘지위의 낮은 하늘이 슬픔을 뿌린다. 젊은 영혼들, 아들을 잃고 헤매는 엄마들 모습, 미망인들의 탄식과 억울함이 들리는 것 같다.
찍고 떠나는 여행이라 많이 보는 유익함 대신 깊이를 놓치는 아쉬움도 있다. 대신 길 위의 배움과 낭만이 넘친다. 누군가 여행은 길 위의 학교라 했다. 절대 공감, 버스 안에선 한 사람씩 자기소개가 있었다. 김 양자 씨의 직설적 표현법과 체험이 가슴을 감동으로 채웠다. 결핍의 시절을 열정으로 막아낸 그 분의 치열한 오기와 인간으로서의 책임이 묻어났다. 역경의 한 시절을 본인 식으로 밀어 붙이며 마지막 까지 버틴 인내와 씩씩함에 머리 숙인다. 인생은 역시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고 그 증인이어서 존경의 박수를 힘껏 보냈다. 한권의 소설적 재료가 될 것 같다. 밖은 양떼들과 검은 소들이 한가롭다. 초원의 넉넉함도 평화가 넘친다.
김 선생님의 마이크 학교는 명 강의여서 모두들 배우는 재미에 열중한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가 소설 배경이라는 소설 속 인물인 아들의 꿈과 어머니의 기다림이란 타인의 갈망을 들으니 내 감정이 섞여 짧게 인생이 허하다. 한편의 단편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영화 “화니”의 무대였던 도시, 마르세유가 보고 싶다.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으로 겨울 숲이 지나가고 비는 젖은 바람 소리를 내며 창문에 겨울 풍경을 그린다. 다음 여행지는 어딜까? 벌써 마음이 둥둥 뜬다.
차혜란(한상대 교수 문화교실 수강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