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번째 잡기장 (87) 중에서 _ 11월 13일자
동물농장. 인간세상. 사람고시

‘동물농장’ (Animal Farm)은 원래 유명한 소설이어서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이 1945년에 출판한 풍자소설 입니다.
소설의 스토리는 주로 스탈린 시대를 배경하여 그와 그 시대를 풍자적으로 비판함으로 마치 반공소설이 아니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오늘날은 그런 오해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추려봅니다. 한 시골농장에서 가축들이 인간주인의 관리가 너무 가혹하다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촟불혁명은 아니지만 가축들이 단합하고 의기투합하여, 인간주인인 농장주와 관리인들을 축출하고 자기들 끼리 ‘평등한 동물농장’을 만들기로 결의합니다. 그들은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 – Animal Farm이라 고치고 자기들의 지도자로 돼지를 선출합니다. 돼지가 소, 말, 양, 개, 고양이, 닭, 거위 등 자기들 세계에서는 그래도 머리가 제일 좋고, 지능지수가 가장 높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돼지의 이름은 나폴레옹입니다. 처음에는 규칙도 새로 만들고 서로 하나가 되어 그런대로 재미있게 동물농장이 운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풍차를 만드는 사업을 계기로 하여 그들 사이에는 권력투쟁이 노골화 됩니다. 동물들은 서로 이간질하고 거짓말을 하며 싸우게 되면서 지도자 나폴레옹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어 드디어 독재자가 되고 맙니다. 동물농장의 권력자가 된 나폴레옹과 그의 추종자들은 사람들이 자는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술을 마시며 온갖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마침내 지배계급과 다른 동물들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더니 엄청난 전쟁으로 번져 모두가 함께 망하는 것으로 끝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 읽었던 ‘동물농장’을 상기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도 동물 중에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우리는 그것들과는 ‘다른 동물’ 이어야 할텐데, 정말 그런가하는 의구심이 밀려옵니다. 우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인간세상의 지도자로 뽑지, 돼지를 우리의 지도자로는 뽑지는 않습니다. 우린 인간이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어디까지나, 인간을, 사람을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법관이나 교수나 회장이나 사장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로 모십니다. 우리는 ‘동물농장’에서 사는 가축들이 아니라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인간의 기본은 ‘인간됨’ 입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부터 되어야하고, 사업가나 교육자나 종교인이나 부모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부터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전에 신학교에서 입학 시험 때, 면접을 하면서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오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잠간 머뭇거리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좀 되어 보려구요!’
대부분 획일적으로 ‘주의 종이 되려고요’ ‘목회자가 도려고요’ ‘선교사가 되려고요’ 라는 식으로 대답하는데, 그는 참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좀 되어 보려구요!’ 그런데 그때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님 사실 신학교란 일단 사람이 된 사람 중에서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곳 입니다. 우린 일단 사람이 되었다고 판단된 사람을 선발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분의 대답이나 저의 코멘트가 모두 일리있는 말로써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람됨이 먼저요, 사람됨이 근본이요, 기초입니다. 사람되는 시험부터 먼저 치고 나서 합격이 되면, 그 다음에 대통령이 되든지, 장관이 되든지, 국회의원이 되든지, 목사가 되든지, 스님이 되든지, 교육자가 되든지, 애비가 되든지, 어미가 되는 것이 옳바른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문과이든 무과이든, 과거를 치룰 때엔 논어나 맹자를 포함하여 사서삼경을 시험과목으로 출제하고, 시경이나 서경이나 역경을 읽고,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게 했습니다. 인문학이 행정이나 국방, 정치나 과학, 사회나 인간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요, 근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각종 국가고시나 자격시험이나 대학입시를 비롯하여 교수임용, 목사고시 등에서 인간됨의 바탕이랄 수 있는 이런 인문학적 소양시험을 꼭 치루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등고시,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변호사시험, 의사고시, 목사고시, 교수임용 등등 각종 자격시험에서는 필수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방법론 서설’ ‘순수이성비판’ ‘논어’ ‘맹자’ ‘대학’ ‘시경’ ‘서경’ 등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시험을 제도화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도 나이만 규제하지 말고 먼저 입후보를 하려면 입후보자 자격시험으로, ‘목민심서’나 ‘맹자’ 로크나 루소, 벤담이나 밀의 책들을 시험과제로 제시하여 여기에 합격한 사람들로 입후보자의 자격을 한 단계 높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하면 오늘날 진짜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는 줄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사고시도 성경시험, 교회행정, 설교학 같은 것들만 보지말고, 고전이나 상식, 타종교의 경전이나 인문학책들 중에서도 시험을 치루게 하여 폭넓은 교양과 인간됨의 바탕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 세상’이 점점 ‘동물농장’과 ‘동물의 세계’로 급속하게 변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이런 저런 잡다한 고뇌를 함께해 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추천도서: 동물농장, 조지 오웰, 도정일 옮김, 민음사, 2001)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이 작은 책갈피는 오늘의 삶을 보다 더 근본으로 가깝게 가도록 도와주는데 도움을 드립니다. 작은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매일 천천히 소리내셔서 읽어 보세요. 제가 해 보니까 참 좋네요.

○ 동물농장 : Animal Farm
조지 오웰 / 민음사 / 2001.2
영국 작가의 세계적인 장편소설이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세운다는 큰 줄거리 아래 독자자와 사회주의 사회의 문제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 장편소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했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20세기 영미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 조지 오웰
정치권력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빼어난 우화 문학의 사회 비판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위대한 풍자소설이다.
우화 형식으로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날카롭게 묘파한 『동물농장』은 『1984』,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조지 오웰이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하기 전 짧은 작가 생활 동안 남긴 영국 문학의 위대한 결실이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갓 끝난 1945년이었다. 소련과 사회주의에 민감하던 세계 정치적 분위기에서 이 작품은 처음엔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할 정도로 홀대받았으나, 그의 전작 『카탈로니아 찬가』를 출간했던 섹커 앤드 와버그 출판사의 결정으로 겨우 출간에 이를 수 있었다. 사실상 전시(戰時)나 다름없던 무렵 『동물농장』은 출간되자마자 초판 4500부가 매진되고 재쇄를 거듭한 끝에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이후 7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동물농장』의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 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작중 여러 등장인물 중 인간 주인인 존즈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를,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게 축출당하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또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학살’과 ‘외양간 전투’ 역시 각기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과 연합군 침공 등으로 연결된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특정한 시대에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벌어진 ‘독재’를 함축적인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그려내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조지 오웰이 지닌 사회비판적 문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 목차
동물농장 7
자유와 행복 125
나는 왜 쓰는가 133
작품 해설 145
작가 연보 159
* 저자소개 : 조지 오웰 (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점차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1933년의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과 1935년『버마 시절』이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는데,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출간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되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은 지난 1999년 영국 방송 BBC가 조사한 ‘지난 1천 년간 최고의 작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역자 : 도정일 (DOH,JUNG-IL, 都正一)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문화운동가.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 2006년 대학에서 퇴임했으나 2010년 다시 대학으로 복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으로 학부 교양교육을 쇄신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어린이 전문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 11개 도시에 건립했고 2006년 이후 80개 농산어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했으며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주도해오고 있다. 저서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공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공저) 『불량사회와 그 적들』(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순교자』 『동물농장』 등이 있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 비평상, 일맥문화대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 책속으로
풍자문학으로만 읽었을 때 <동물농장>의 화살은 소련, 더 정확히는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라는 과녁을 향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차 대전 기간 동안 소련은 서방 연합국들에게는 사실상의 동맹이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통렬한 캐리커처가 출판된다는 것은 당시의 영국 정치 사회로서는 소련과의 협력 관계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일종의 정치적 위험이자 모험일 수 있었다. —- 해설, <동물농장>의 세계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놀라고 겁먹은 동물들은 줄지어 천천히 마당을 걷고 있는 돼지들의 긴 행렬을 지켜보며 한쪽에 몰려 서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거꾸로 선 것 같았다. 첫번재 충격이 웬만큼 가시고 나자 동물들은 개들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불평하지 않고 비판도 하지 않는, 그 오랜 세월 몸에 붙은 버릇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어떻게든 항의를 좀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이 한순간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바로 그때, 무슨 신호를 받기라도 한 듯 양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여 우렁차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양들의 외침은 5분이나 계속되었다. 그들이 잠잠해졌을 때는 이미 돼지들이 본채로 돌아가버린 뒤라 항의고 뭐고 제기해 볼 기회가 없었다.
열두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p.123
마당 쪽에서 크게 놀란 듯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물들은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클로버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울음 소리가 다시 들렸고 동물들은 마당으로 달려갔다. 클로버를 놀라게 한 그 광경을 다른 동물들도 보았다. 돼지 하나가 두 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p.116
그러나 동물들은 채 20야드도 안 가 발을 멈추었다. 본채에 서 요라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던 것이다. 동물들은 다시 창문으로 달려가 안을 드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르랴, 험악한 입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은 고함 소리 착자 치는 소리, 의심에 찬 눈길, 그게 아니라니까 라며 맹렬하게 부정하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보아하닌 나폴레옹과 필킹턴이 카드게임을 하다가 둘이 동시에 똑같은 스테이드 에이스를 내놓은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열두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마자,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 p. 123
* 출판사 서평
본서의 저자 오엘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 (Eric Blair)이다. 1903년 식민지 인도의 벵골에서 태어났으나 유년기에 영국으로 돌아와 이튼 (Eton) 학교를 다녔고,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있었지만 출신 신분에 맞는 직업을 얻기 위해 진학을 포기, 1922년부터 5년 간 버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한다. 버마에서의 경찰관 경험을 통해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패덕성에 눈뜨게 되고, 이 <개안>이 작가 조지 오엘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파리와 런던에서 접시 닦이, 빈곤 노동자, 거지 등의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활동에 참여한다. 1933년 첫 소설 『파리와 런던 안팎에서』를, 35년 『버마 시절』을 출간한다. 1936년 스페인 내전 참가를 전후해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자신의 신념이자 목표로 선택하고 <전체주의>를 적으로 규정한 뒤 많은 평문, 에세이,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1941년 2차 대전에 나가기 위해 졸병으로 지원했다가 신체 허약으로 거절당하고 대신 영국방송 인도 – 동남아 방송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1947년 『동물 농장』의 성공으로 재정적 안정을 얻고 이듬해 『1984』를 발표한 데 이어 새로운 작품 구상에 들어가지만, 젊어서부터 앓아온 폐병이 악화되어 병원을 들락거리다 1950년 병원에서 갑작스런 각혈 후 사망, 47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한다.(p.158)
그는 앞서 열거한 그의 생애가 보여주다시피, 밑에서부터 활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지식인들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말하자면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어들게 했던 것은 순전히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알마. 2008)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조지 오엘을 가리켜,
“나는 예전에 조지 오엘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영웅으로 우러러 본 사람이 있었다면 오엘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p.26)
“돼지 공포증은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현대의 가장 매력적이고 유용한 우화중 하나인 조지 오엘의 《동물 농장》이 이슬람권에서 여전히 금서로 묶여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p.64)
“세월이 흘러 신이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다는 독재자들의 주장이 현대적인 권력 이론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천국의 이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모델로 지상에 유토피아 국가를 건설한다는 사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이상을 명분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에덴동산 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처음 현실로 나타난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파라과이에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을 때였다. 이 나라는 최대한의 평등주의와 최대한의 부자유가 결합된 형태였으며, 이 나라를 유지 할 수 있는 수단은 최대한의 공포밖에 없었다. 인류를 완벽하게 다듬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사례를 경고로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사실 인류를 완벽히 다듬겠다는 목적(이것은 전체주의적 충동의 뿌리이자 원천이기도 하다)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색체를 띠고 있다.
소설을 통해 전체주의 국가 국민들의 삶을 우리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킨 금욕적인 불신자 조지 오엘은 이 점에 관해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p.336) 라고 써 놓았다. 그러자 필자는 두 가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위인일까? 와 “근본적으로 종교적 색체를 띠고 있다.”는 말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신의 논리를 확고하기 위해 좀 더 확장해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오엘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소설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죽기 전에 남긴 꿈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꿈의 내용인즉, “인간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이 지상에 대한 꿈이었소.”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그는 여타의 동물들에게 「잉글랜드 짐승들」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준다. 이것은 마치 애국가처럼 그들의 노래가 된다. 메이저가 죽고 나서 동물들 중에서는 돼지가 제일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자연스레 돼지들의 몫이 되었다. 메이저의 가르침은 이들 돼지(스노볼, 나폴레옹, 스퀄러)에 의해서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로 발전된다. 메이저가 예언한 반란은 생각보다 일찍 왔고, 존슨 일가는 동물들에 의해 물러났다. 그리고 곧 그들은 일곱 계명을 발표함으로써 동물들이 준수해야 할 불가변의 법률을 만들었다. 보면, “첫째가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둘째가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셋째,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여섯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일곱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였다. 존슨 일가가 물러나고 잉여물의 착취에 해당되는 노동이 아닌, 노동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행하는 참다운 노동을 하게 된다. 일요일에는 모두 쉬었고, 일요일 아침 식사는 다른 때보다 한 시간 늦추어 먹기로 했고, 식사후에는 매주 빠짐없이 거행되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동물 공화국>의 체계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총회는 <회의>라는 명칭으로 게재되었고 결의안 제출과 토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때쯤에 그들은 지금껏 메이저 농장이라고 불렸던 이름을 철폐하고 동물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또한 이때 존슨 일가의 반격이 시행되나, 동물들은 그들을 물리친다. 이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것을 외양간 전투라 칭했다.
번번히 의견대립이 심했던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문제가 붉어진 것은 스노볼이 발표한 풍차계획으로 인해 도화선이 되었다. 스노볼은 자신이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개를 키웠는데, 그것들을 이용해 스노볼을 무리에서 퇴출시킨다. 그때부터 스노볼은 하나씩 계명의 해석을 달리하며 자식의 권자를 지켜나가는데, 그들 무리에서 스퀼러는 무리의 단점인 무식함을 이용해 나폴레옹의 정치를 합리화 시킨다. 나폴레옹의 입장은 동지에서 지도자로 바뀌고,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것에 신적인 위치까지 이룬다. 일이 실패할 때는 사라진 스노볼을 탓하고 존슨 시대의 회귀에 대한 불안감을 무리들에게 전파시키는 등 악질적인 정치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인간들과의 거래도 트게 된다. 이유는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라는 거시적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눈에 비친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 무리들은 전에 있었던 존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로 활동하다가 무리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 딱 한번 나서는 당나귀 벤자민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는 회의론자를 대표하는 캐릭터이며, 지금보다 더 나아 질것은 없고 더 나빠질 것이다는 결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한번도 행동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리속에서 일도 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하는 잉여 존재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돼지들이 권력을 상징한다면 벤자민은 무리의 지식인, 철학자로 상징되어도 좋다.
소설을 읽으면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대로 천국의 이상은 허실이며,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대중들은 오히려 독재 체제를 완벽히 동조하는 꼴이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의라는 것이 있었지만 스노볼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고, 한때 메이저의 무덤에 인사를 하던 풍습도 사라졌다. 이것은 마치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져 내림을 먼저 알고 있었던 조지 오엘의 안목과도 흡사하다. 이상을 향하던 권력이 그 실에 존폐유무가 달릴 때 쯤에 과거로서의 공포를 자극하게 되고,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보다 과거의 각인된 공포에 매료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쌓이게 되는데. 지금 어떠한가?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p.123) 어쩌면 이글은 혁명을 부정할 수 도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는 이중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작가가 우려하는 것은 전체주의이다. 어느 쪽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가면 되겠지만, 문제는 좋은 방향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있다. 얼핏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가 원했던 것은 무정부주의가 아닐까? 국가주의에 빠져 들며 어쩔 수 없이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어 들게 된다. 젖어든다는 말은 무의식적인 세뇌에 따른 고통을 수반한다.
정리하자면 동물농장은 결론이 없다. 대안 없는 현실을 우화라는 형식을 빌려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다.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