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 목사의 영화 속 말씀읽기
엘리시움 Elysium
2013년, 109분, 청소년 관람불가(R)
어렸을 적에 ‘SF(공상과학)만화’를 접할 때 가졌던 생각이나 느낌을 지금 와서 다시 곰곰이 되새겨보면, 현재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변하고 발전할 것인지를 추론해보는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여겼던 것 같다. 남아공 태생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닐 블롬캠프도 확실히 그렇게 이해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SF장르로 두 번째 세상에 내어놓은 자신의 영화, <엘리시움>이 바로 그 증거다. “2154년의 로스앤젤레스”라는 영화 속 시공간적 배경이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인구과밀, 교통체증, 대기오염으로 신음하는 오늘날의 제3세계 국가의 수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과도 같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전체 부(富)의 32퍼센트를 좌지우지할 만큼 더욱더 부유해지고 있는 1퍼센트가 자신들의 지속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 중산층과 소외계층을 그 비용으로 지급한 결과이다. 21세기말, 심각한 오염과 질병, 그리고 과다한 인구로 인해 지구는 병들어있다. 그래서 부유한 자들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엘리시온 평야에서 이름을 따온 엘리시움(고대 그리스 종교와 철학의 특정 분파 또는 학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 온 사후 세계의 개념. 하데스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엘리시움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영웅들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신에 의해 선택된 자들, 바르게 산 자들, 영웅적인 행위를 한 자들로 범위가 넓혀졌는데, 이들은 사후에 엘리시움에서 축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며 삶 속에서 즐겼던 일 또는 직업을 계속 마음껏 즐기며 산다고 생각되었음.)이라는 거대한 도넛모양의 위성을 건설하고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곳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모든 것이 공평하고 눈부시게 밝은 곳이다. 한편 남겨진 땅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저항은 프로그램화된 로봇경찰(드로이드)들에 의하여 강력하게 통제되며 외관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주님, 주님께서는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시 10:17-18]
맥스(맷 데이먼)는 가톨릭 고아원에서 자라났다. 그곳에는 틈만 나면 맥스에게 “너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된 특별한 아이”라고 되뇌어주시는 수녀님이 한 분 계셨다. 이러한 격려는 맥스로 하여금 엘리시움을 올려다보게 해주었고 언젠가는 그곳에 꼭 가고야말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아득한 옛날 일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맥스는 방위산업체인 ‘알마다인’의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엘리시움을 설계하고 만든 곳으로 지금은 엘리시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로봇경찰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땀깨나 흘리면서 일해야 하는 이 직장에서, 맥스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작업반장으로부터 일자리를 담보로 늘 협박당하기 일쑤다. 한때 잘나가던 자동차도둑이었던 맥스는 자신의 전과를 없애기 위해 가능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다. 적어도 사고로 인해 방사능 피폭을 당했던 그 날까지는 말이다.
이제 맥스에게 남은 생명은 단 5일뿐. 그는 과거에 함께 자동차를 훔치고 다녔던 옛 동료 스파이더를 찾아간다. 그는 엘리시움의 모든 집에 설치되어있는 힐링 베이에서 저마다의 불치병을 고치고 싶어하는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비행선에 태워 불법적으로 엘리시움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마치 오늘날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브로커와도 같은 사람이다. 자기공명촬영장치(MRI)와도 같은 스캐너가 장착된 힐링 베이는 인류에게 알려진 어떠한 질병이라도 수술이나 시술 없이 신속하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오직 엘리시움의 거주하는 것으로 등록되어있는 사람들만 이 기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지구의 위치한 병원들 어느 곳에도 이 기계는 설치되어있지 않다. 가슴 아픈 장면 속에서, 우리는 방위장관인 델라코트(조디 포스터)가 불법적으로 접근하는 비행선(이곳에 탄 승객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털어 표를 산 이들이 대부분이다)을 피도 눈물도 없이 “격추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참혹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고자했던 이들의 운명은 우주공간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맥스와 스파이더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맥스가 자신의 힘을 극대화시켜줄 사이보그 프레임을 입고 아마다인의 최고경영자인 존 칼라일을 납치하는 것이다. 칼라일은 자신의 뇌 안에 칩 하나를 심어 넣었는데, 이 칩 안에는 엘리시움의 모든 정보들과 로봇경찰을 조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겨있다. 맥스는 납치한 칼라일의 뇌로부터 이미 준비해놓은 자신의 뇌로 모든 정보를 옮긴 후, 엘리시움으로 올라가 칼라일의 뇌에 있던 정보를 통해 엘리시움을 통제하고 있는 시스템을 리부팅하는 것이 그 계획의 전모이다. 이 계획을 실행하는 길에 맥스는 우연히 프레이를 만난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함께 자라나서 지금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맥스가 아직도 여전히 못 잊고 있는 첫 사랑이다. 그녀에게는 혈액암(백혈병) 말기로 죽어가는 딸이 있다. 사실 백혈병은 치명적인 병이기는 하지만 엘리시움에만 있는 힐링 베이에 몇 분만 누워있으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는 이 계획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세 가지 이유가 분명해졌다. 우선 맥스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는 프레이와 그녀의 딸을 위해서, 그리고 지구상에 억압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가 그 이유들이다.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시니 그가 나를 택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나를 보내셔서, 갇힌 사람에게 놓임을, 눈먼 사람에게 다시 보게 됨을 선포하고, 눌리고 지친 사람을 자유케 하여, “지금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해!”라고 선포하게 하셨다. [눅 4:18]
모든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맥스의 가장 큰 장애물은 포악한 비밀용병 크루거인데, 그는 방위장관 델라코트에 의해 고용되어 지구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가운데 그녀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곤 한다. 하나의 승리 이전에 등장하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싸움이나 전쟁의 장면들이 심약한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결말은 매우 단순하다. 권선징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영화를 되새겨보는 동안,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탁월한 전작 <디스트릭트 9(District 9)>이 머릿 속에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이 영화 역시 디스토피아에 관한 영화로 감독자신의 나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다시피 남아공은 여전히 인종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영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개빈 후드가 2005년도에 감독한 영화 <갱스터 초치(Tsotsi)>도 생각났다. 역시 남아공 태생인 후드 감독은 아파르트헤이트가 법적으로는 그 종말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여파가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를 심각하게 양분시키고 있는 사회에 일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초치’라는 이름의 갱두목이 겪는 엿새를 시간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초치는 부유한 백인부부의 캠핑카를 탈취하는 중에 뜻하지 않게 한 아이를 납치하게 된다. 초치와 그 일당은 백인들이 사는 높은 담과 대문을 가진 저택의 배수관 같은 곳에서 종종 잠을 잔다. 초치는 자신을 부유함으로부터 분리시켜놓은 담벼락을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지만, 맥스는 우주비행선을 타면 19분 만에 도달할 수 있으며 항상 그 입구가 닫혀있는 위성을 그저 올려다보아야만 한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사 1:17]
이와 같이 <엘리시움>은 현재진행형인 이슈들, 즉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문제, 미국과 같은 국가에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들어오려고 하는 이들의 필사적인 욕망이 커질수록 동시에 그러한 이들을 막으려는 조치들이 더 강경해지고 있는 문제,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의료혜택 접근부족의 문제 등을 상기키시고 있다. 이 영화는 볼만하고 토론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토론진행자가 어떤 참여자의 뜨거운 열정을 다소나마 조절해줘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름에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현란한 CG나 귀를 찢을 듯이 맹렬한 사운드만이 아니라 뭔가 생각할만한 이슈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무척 신선했다. 그리고 그 이슈가 교회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의 최소한 삶을 위해 뭔가를 기여해야하지 않겠는가라는 인식을 갖게 해줘서 감사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교회나 교회지도자들이 등장했다면 이 영화를 보다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장한 맥스와도 여전히 교감하는 수녀님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없어서 조금은 아쉽다(수녀님 이름이라도 좀 알려주지 말이다).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9/11 이후의 삶의 모습을 담은 영화 <랜드 오브 플렌티(Land of Plenty)>에서 젊은 여주인공이 다운타운의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교회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교회가 여전히 이 사회 속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그런 교회들은 지금으로부터 140년 동안은 충분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성은 목사(미국 풀러신학교 목회학박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