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 목사, “하나님은 부러진 나무도 열매맺게 하신다”
자살한 아들 회고하면서 상처받은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 위로
지난 6월 10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된 2014년 미국 남침례교 전국목회자회의는 총회에 앞서 이틀간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소서’(Show Us Your Glory)란 주제로 집회가 있었다. 설교자로 나선 릭 워렌 목사는 지난해 자신의 막내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정원에서는 부러진 나무도 결실을 맺는다”고 전했다.
릭 워렌 목사는 지난해 4월 가족의 곁을 떠난 아들 매튜 워렌을 추모하며 “매튜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자신이 겪은 고난을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삼곤했다 … 매튜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했다 … 그가 살아 있었다면 좋은 상담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릭 워렌 목사는 “매튜가 죽은 후에 나는 3만 여통의 위로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들은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었지만 내게는 최고의 사람들이 보낸 편지들과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편지들은 매튜를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이러한 편지들을 읽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정원에서는 부러진 나무라도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하며 모든 ‘상처입은’ 목회자들 역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릭 워렌 목사는 지금 고통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쓰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워렌 목사는 이례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으로 설교를 마무리했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
위로가 필요할 만큼 어려운 시대란 어떤 것일까? 물론 살기 어려운 시대라 했을 때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사회가 건전하지 못할 때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고생스럽다. 일한 만큼 소득을 얻지도 못하고, 불의한 자가 성공하고, 평범하게 사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 그런 시대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서민들의 위로는 무엇일까? 끼니 걱정없이 먹고, 자녀들 건강하게 교육시키고 이런 정도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고 날마다를 걱정해야 하는 반복된 삶의 연속이다. 그런 시대 사람들은 로또와 같은 대박을 꿈꾸기도 하고, 편법이나 권력을 사용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는 힘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도 자신도 그런 기회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고 자기 삶에서 작고 사소한 부정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감아 주고 하는 그런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걱정없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꿀 수 있지만 그런 사회란 세상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런 세상은 없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때 필연적으로 이 세상엔 그런 부조화와 불평등, 불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찬란한 문명과 풍요속에서 느끼는 빈곤과 소외, 위기와 상실감은 더 클 것이다.
요즘 우리시대를 힐링시대라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위로가 필요하다. 문제는 누군가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떤 것이 위로가 될 것인가? 특히 깊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어떤 것이 위로가 될 것인가? 되묻게 된다.
최근 한국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말미암아 한국과 세계의 온 한국민이 ‘세월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에 환호하는 사람은 속없어 보일만큼 분위기는 숙연하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스포츠축제가 진행되면서 응원의 함성과 박수소리가 화려한듯 하지만 한국인으로서는 내면 불안이 가득한 시대이다.
이러한 마음을 아는 세월호 유가족측은 6월 11일(수) 한국월드컵응원단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전했다. 유경근 세월호 사고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난달 5월 28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튀니지 평가전 때 월드컵응원단이 16분간 침묵응원을 보여 준 것에 대해 유가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됐다며 그같은 결정을 내려준 것을 보고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을 향한 응원열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며 유가족들은 이번 월드컵과 관련해 자체표어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즐기자 월드컵, 잊지 말자 세월호’다. 월드컵을 즐기는 순간만큼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즐겼으면 좋겠으나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길 바랄뿐이라고 소박한 바람을 전한 것이다.
상처입은 이 세상, 어디서 어떻게 위로를 줄까
이번 세월호 사태는 분명 대한민국에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희생이 너무도 크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저 희생자들은 이 시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또 다른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고대할 것이다. 그 과제들이 지금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졌다.
사실 세월호 앞에 우리 모두가 희생자다. 이제 그 끔찍한 참극 속에서 극복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알지 못하고 가는 미래의 길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하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위로는 단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다. 진심을 다해 우리의 문제를 짚어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고, 방향까지 제시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위로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신앙인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으로 참 위로를 삼아야 할지 고민스럽다. 사실 답은 명쾌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위로는 돈이나 건강 혹은 지위나 가족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역사속의 자료로만 치부하지 말고 현대의 성도들에게도 적용해 진정한 위로를 맛보며 자랑하며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로를 위해 찾았던 신앙의 안식처마저도 아전인수격의 언어놀이와 제 살림 늘리기에 함몰되어 진정성을 잊고, 믿고 위로받고자 했던 곳에서 맛보는 상실감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긴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구약시대 메시아를 앙망하는, 신약시대 예수께서 긍휼히 보셨던 유랑하는 백성들의 그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의지할 곳이 없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때론 감당이 되지 않는 고통과 비극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 혹은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 죄가 더 큰가” 심지어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다루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들을 위한 위로자가 되어 주는 일이며, 기도해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자연재해와 사고로 실의에 빠진 사람, 직장 일로 힘들어 하는 사람, 병마와 싸우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아파하는 사람… 그들에게 기쁨이 되고 용기를 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은 서로 위로하며 살라는 뜻이다.
헨델이 절망적인 상황에 구약 이사야 40장의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로 시작하는 구절을 통해 힘을 얻어 24일 만에 ‘메시아’를 완성해 음악으로 위로를 전하고 있다. 고난에 직면해 고통중에 있을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제기하였다면 이제 이웃을 위로해 줄차례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자. 긍정적인 말 한마디부터 시작해 보자. “오늘 참 멋져 보이십니다”, “당신을 만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입니다”라고… 릭 워렌 목사의 “하나님의 은혜의 정원에서는 부러진 나무도 결실을 맺는다”는 고백에 동의하며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