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영광마을 이야기
“말의 시작을 아십니까?”
‘말’ 입에 담는 우리 자신, 우리 모두. 말은 참 하기 쉽고 드러내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요 몇일 동안, 내 뱉는 말, 드러내는 말을 다시금 되새김질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이란 자고로 이런 것이라고….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에는 항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표현이 뒤따랐고, 급기야는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으로 지어진 사람 역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처음 작업은 완전한 문장을 이루는 말이 아닌, 단어로 나열되는 생명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창 2:19) 이런 일 후에, 비로소 사람의 입에서 ‘처음 말’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라는 처음 사람의 말이었다는 것입니다.(창2:23) 그 말의 진위인 즉은, 제 (돕는)베필, 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에서 비롯했다는 것입니다.
‘말’ 그것은 필시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말의 오염은 바로 미움, 갈라놓음, 분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창 3:4, 이후) 그것은 진정한 ‘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 말에는 ‘좋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네 말 사위 그것은 바로 이것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처음 말을 회복하는 것,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을 회복하는 것, 그것은 사랑에 기초한 말일 것입니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가에게서 잔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신 것 역시, 그 사랑 맛을 잠시 보여 주려 하신 것 아니신지요?
“내가 품고 있는 것?”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집’은 내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집은 그 안에 몸담아 사는 동안 하느님께서 내게 빌려주신 물건입니다.
내가 입은 이‘옷’은 내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옷은 낡아서 해지거나 나 보다 헐벗은 이에게 벗어줄 때가지 하느님께서 내게 빌려주신 물건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몸뚱이’는 내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몸은 내가 태어나던 날 하느님께서 빌려주셨다가 내가 죽는 날 도로 가져가실 물건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을 구성하여 만들어내는 ‘머리’는 내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또한 내 생일에 하느님께서 빌려주셨다가 죽을 때 도로 가져가실 물건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가진 걸까요? 도대체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는 한 겁니까?
있지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성장하고 내 안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덕목들, 그것들은 내 것입니다.
내가 사랑 안에서 성숙한 그만큼 나는 사랑을 가진 거예요. 믿음 안에서 성숙한 그만큼 나는 믿음을 가진 겁니다. 온유함 안에서 성숙한 그만큼 나는 온유함을 가진 거지요.
이것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것들로 하늘나라가 가득 차기를 바라실 테니까요. 이 모든 덕목들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내 영혼도 물론 내 것이지요. –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단순하게 살기 중에서 –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