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영광마을 이야기
분명! 그런 것 만은 아닐테죠..
누군가 그랬다지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또 어떤 이는 그랬다지요.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있다고. 그런데, 그 말은 어린 아이들의 세계와는 그래도 조금 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참 먼길을 달려서 어제 조카들이 이모와 이모부댁으로 놀러왔습니다. 이제 교육계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인지, 요즈음에는 초등학교의 도, 농간의 교환 체험학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2주 남짓 생활을 이곳 매화 초등학교에서 갖게 된 것입니다. 걱정과 우려와 함께 기대 반으로 엄마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된 아이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첫날 아이들의 눈에서 그런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오는데 방금 전 상기된 표정과 미리 준비되지도 않은 자신의 책상과 자리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던 두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저 아이들이 사람들의 섬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아님 그 수많은 벽들을 어떻게 허물고, 혹은 넘나들 수 있을지?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이런 저런 생각에 형님 내외분과 나눈 이야기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한창이었습니다. 학교가 마칠 시간 즈음 이제는 어른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학교 교정에 들어섰습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제잘거리는 아이들의 음성이 교정 한구석에서부터 몰려옵니다. 그리고는 크고 작은 얼굴들 틈에서 환한 조카 두 녀석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그 뒤로 몇몇 몇 친구 녀석들을 달고 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온 교정을 환하게 밝힙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섬만 있지 않고요, 벽만 있진 않은게죠.
“◌◌로 제사 드리는 자”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라는 성서의 구절을 대할 때면, 어떤 생각이 자리하시는지요? 실상, 성서가 전하는 제사와 제사를 이루는 풍경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만큼 단정하고 차분한 경건의 풍경으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동물 제사, 번제물을 드리는 제사는 죽음의 공포 앞에 울부짖는 소리며, 수없는 죽음이 난무하는 끔찍한 현장을 지켜보는 이들의 탄식과 비명소리며, 여기저기 술렁이는 소리, 수많은 이들이 한참에 몰려 제사를 드릴 때면 여기저기서 차례며 질서를 권고하는 이들의 고성이며, 이를 막무가내로 무시하며 자신의 제사 순서를 앞세우던 이들의 실랑이며 다툼이 난무하던 흡사 저잣거리 장터 모리배들의 싸움터를 자아내기도 했을 터…,
게다가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의 피로 범벅이 된 피바다를 이룬 성전 뜰의 바닥이며, 살과 내장이 뒤엉켜 여기저기 뒹구는 현장, 적나라하게 벗겨진 가죽에…, 계절을 막론하고 고온에 습한 기온에 이리저리 사방에서 달려드는 파리며 온갖 해충들이 들끓는 아수라장. 코를 찌르는 살벌한 피비린내가 코끝에 절어들던 현장이었던 것이지요.“그렇다면, 그 런 현장 가운데에서 과연,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그래서 성서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제사의 제물이나 현장에 눈이 팔려 한 없이 치닫는 저희를 마음 걸음을 잠시 멈추고,“과연 우리가 온전히 드리고 바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 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고 누누이 명징하고 분명한 음성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번제물, 제물로’제사하는 자”라고 하지 않고, “‘감사로’제사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 아닐까요? 과연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제사드리고 있는지요?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