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영광마을 이야기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향내음이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에 마당에서 일하는데, 아내가 창문너머 아이를 살포시 안고는 한마디 한다. “제가 좀 거들까요?” 참! 사람마다 제 모양 제 생김새 만큼이나 마음새도 제 각각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선 제 향기가 있답니다.
요 몇일 그 향기가 교회 마당에 그득합니다. 전도사의 게으름 탓인지, 예술적인 감각이나, 일하는 솜씨가 서툴러서 인지 아직도 마당 꾸미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대낮 햇살을 피해 아침, 저녁나절로 마당에 나가 일하고 있을 때면, 오가며 사람들이 교회 마당에 들릅니다. 그때마다 제 각기 마당이 되어 가는 폼을 지켜보며 한마디씩 던지곤 합니다. 여기가 높다느니, 이렇게 하면, 걸려 넘어지겠다느니, 여기는 이렇게 하면 폼이 안난다든지, 이건 여기다 왜 했냐느니…. 이어지는 말꼬리가 길면 10-20분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그 말들 앞에 서면 제가 보입니다. 뭐가 부족한지? 아님 뭘 고쳐야 할지? 어떻게 제 부족함을 그렇게 잘 꼬집어 내는지? 그 말들 앞에 서면…
그런데, 그 말들 속에 한줄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부족함을 감싸주는 향기로운 말 바람…. “전도사님! 참 이쁘게 가꾸셨네요. 이걸 혼자 하셨어요? 힘드셨겠네요. 참 수고가 많으시네요.” 작은 바람이지만,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바람들입니다. 저도 압니다. 제 스스로 얼마나 엉성하고 부족한지? 얼마나 솜씨가 없고, 투박한지, 하지만, 그 부족함을 슬쩍 모른채 하고 덮어주는 말, 전 거기서 향내음을 맡습니다. 그 말 앞에서 제 속내를 바라 보게 됩니다. 혹여 나는 다른 이에게 어떤 향내음 전하고 있을까? 제 각기 제 모양이라면, 이왕 그렇다면, 좀 더 향기롭고, 좀더 맑고 다사로울 순 없을까? 누군가 또 교회마당에 들어섭니다. 무슨 향기일까? 가만히 귀기울이고 다가서 봅니다.
“잡초와 꽃”
‘성령님’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많은 지식과 언변을 동원해가며 풀어 보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이란, ‘예수님의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겠느냐?” 며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를 이룬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분의 글을 만났습니다.(이태형, <배부르리라>, 좋은생각, 229 중에서)
충남 보령에서 목회하는 김영진 목사님은 술만 마시면 찾아오는 마을 주민을 반갑게 맞이하시며 “술 마시고 다른 데 가지 않고 교회로 와서 다행이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그 주민은 술 취할 때마다 조용필의“일편단심 민들레야”를 취기가 흥건한 목소리로 불러 재꼈는데, 그때마다 김 목사님은 그 술타령에 흡사한 곡조에 맞추어 기타 반주를 해주었다지요? 오랜 세월이 흘러, 그 분은 그 교회의 안수집사가 되었고요…
이야기를 전하며 김 목사님께서 말끝에 흐리듯 전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베어 버리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잡초 아닌 것이 없지요. 하지만, 품으려고 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지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나와 무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법이지요. 그렇기에 세상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고, 세상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바로 영적인 감수성을 오롯이 간직한 사람, 타인을 향해 활짝 열린 사랑으로 맞아들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두고‘성령 충만한 사람’이라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목마른 사순절 여정에서 만나는 흡사 찬 샘 길어 올린 생수 같은 고백을 만났습니다. 흡족 합니다.
고르고 맑은 가난으로 삶을 일구어 가는 매화 영광 마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