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영광마을 이야기
“고르고 맑은 가난으로 더불어 함께”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주님께서 세계적으로 들어 쓰신다는(??) 강사를 모셨다는 부흥회(?)를 다녀와서 –
툇마루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을 보면, 그 방에 모여 앉은 이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놓인 모습 모습을 보면, 그 신발 임자를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테죠. 그건, 모두가 그 뒷모습 때문이죠. 뒤엣 모습, 신발이 담아내는 사람!
돌아서는 뒷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사람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모습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집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앞 모습이 아닌, 뒷 모습에 주목하는 이들도 적쟎이 많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정작, 앞이 화려하면 할수록 뒷 모습이 초라해 질 때, 그 모습을 보게되는 이에게는 한없이 안스럽고, 불쌍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과연,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초라함을 알고는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모르면서, 앞 모습으로 앞 모습으로만 다가서려 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더 어디 있을까요? 더욱이, 그 앞모습에 매료된 수많은 이들이 그 초라한 뒷모습을 일러주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을 또 어디 있을테고요….
사람이 크면 클수록, 앞 모습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뒷 모습이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 뒷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거인의 뒷 모습, 그 앞에 서면, 스스로 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바로 거인이며, 큰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을 알게되었던 것처럼, 나를 보는 이 앞에 선다는 것, 그것은 정작, 그 뒷모습 앞에 서면 알게 되나봅니다.
올 가을, 참으로 뒷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운 이를 만나 보고 싶습니다.
“성자는 어디에나 있다”
평생을 흔하게 장마당에도 드나들지 않으시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산골에 살면서 일하고 살림을 돌보던 할머니가 계셨지요.
그런데, 어느 날 손을 심하게 짓찧어 피가 흘렀습니다. 이걸 본 도회지에서 막 이사 온 이웃 내외가 놀라서 시내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설치는데, 할머니께선 오히려 태연자약하게“평생을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았는데 웬 수선이냐?”고 말씀하셨지요. 그러고는 마루에 놓여 있던 걸레 한 귀퉁이를 부-욱 찢어 상처를 처매더라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뒤 늦게 읍내에 나가 사온 약을 바르고 새로 사온 붕대를 감아 드리며 손가락에서 풀어낸 피 묻은 낡은 걸레 조각을 마당에 버리려는데, 할머니께서“그 아까운 것을!”하시며 던져진 헝겊을 냉큼 도로 주워다 놓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눈만 뜨고 나면 쓰레기가 수북이 쌓이는 도시생활을 생각해 볼 때, 도통 버릴게 없다 하고 살면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시는 할머니는 평생 죄 없이 사시는 분이요, 성자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일의 종류나 신분이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애초부터 거룩한 일이 따로 있겠는지요?
어떤 노동이든지 섬김이나 자비를 행하는 기회가 되고, 기도의 때로 삼으며, 아름답고 진실하며 생명을 주는 기회로 받아들여질 때 거룩함으로 가는 길이 되지요. 아무리 성무(聖務: 거룩한 일)라는 딱지가 붙은 일을 하더라도 허영과 욕심이 담겨 있으면 그 일 자체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지는 않지요. -한상봉,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에서(편집하여 옮김)-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