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감상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다 단조’ (Op. 67) 운명 교향곡
‘교향곡 5번 다 단조’ (Op. 67)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독: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 ~ 1827년 3월 26일)이 1804년에 착상하여 1808년에 완성한 교향곡이다. 1808년 12월 22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동양에서는 보통 ‘운명 교향곡’으로 알려져 쓰이고 있다. 단 서양에서는 다단조 교향곡으로만 통하고 있으나 ‘운명’ 부제가 자주 쓰이기 시작하는 추세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독: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은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투병하다가 57세로 생을 마친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작곡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음악의 성인(聖人)” 또는 “악성”(樂聖)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9번’,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이 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출생: 1770년 12월 17일, 신성 로마 제국의 기 신성 로마 제국 본
.사망: 1827년 3월 26일 (56세), 오스트리아 제국의 기 오스트리아 제국 빈
.직업: 피아노 연주자, 오르간 연주자, 작곡가
.장르: 서양 고전 음악
.악기: 피아노, 오르간
.활동 시기: 1778년 ~ 1827년
–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다 단조’ (Op. 67) 초연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 (Wien) 시내의 빈 강 곁에 있는 테아터 안 데어 빈 (Theater an der Wien) 극장에서의 1808년 12월 22일 저녁 ‘아카데미 (Akademie. 당시에는 연주회를 Akademie라 했음)에서 베토벤이 자신의 세계 음악사상 불후의 작곡인 몇 가지 새 작품들을 모두 자신의 지휘로 선 보일 때에 이 작품도 함께 초연됐다.
음악 연주회 역사상으로도 손꼽을 유명한 이 “아카데미”는,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길다란 기록적인 연주시간 (4시간 이상)이다.
.교향곡 6번 바 장조 “전원” Op. 68
.콘서트 아리아: 아, 페르피도(Ah, perfido), Op. 65
.미사곡 다장조, Op. 86 중 Gloria 악장 Sanctus 악장과 Benedictus 악장
.피아노 협주곡 4번 사장조 Op. 58 (베토벤이 피아노 연주 겸 지휘)
.휴식 (Intermission)
.교향곡 5번 다단조 Op. 67
.독주 피아노 즉흥곡 (베토벤이 직접 연주한다.)
.합창환상곡 다단조 Op. 80 (베토벤이 피아노 연주 겸 지휘)
– 악기편성
피콜로, 플루트2, 오보에3, 클라리넷3, 바순2, 콘트라바순, 호른4, 트럼펫3, 트롬본3, 팀파니, 현5부
베토벤은 운명교향곡에서 사상 처음으로 교향곡에 피콜로, 콘트라바순, 트롬본을 도입했다. 당시 관현악에서 ‘희귀한 악기’였던 이 악기들이 마침내 관현악에서 정석을 차지하게 된 것에 비추어 볼 때 훗날 관현악법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고, 이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자필보의 첫 페이지에는 BASSI라고 쓰여진 파트가 BASSO로 정정되어 있다.이는 비올로네가 아니라 콘트라베이스(contrabus)를 지정했음을 나타낸다.당시 조현은 C-G-D의 삼현이었으며, 초연에 참여한 도메니코 드라고네티의 명인 기예 없이는 이 작품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 구성
악장구성은 다음과 같다.
.알레그로 콘 브리오
.안단테 콘 모토
.알레그로
.알레그로-프레스토
독일 음악사학자 Paul Bekker는 각 악장마다 ‘몸부림 (Struggle)’, ‘희망 (Hope)’, ‘의심 (Doubt)’, ‘승리 (Victory)’라는 별칭을 달았다.
– ‘운명‘이라는 별칭
‘운명 교향곡’이라는 별칭은 일본에서 붙여진 것으로, 동양에서도 널리 쓰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곡 자체가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는 일은 적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다음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베토벤이 죽고 나서 몇 년 뒤 그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 (Anton Schindler)가 다음과 같이 쓴 것이다.
Den Schlüssel zu diesen Tiefen gab dessen Schöpfer selber, als er eines Tages mit dem Verfasser über die demselben zu Grunde liegende Idee sprach, mit den Worten: So pocht das Schicksal an die Pforte, indem er auf den Anfang des ersten Satzes hinwies.
그는 [작품의] 깊이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는데, 하루는 그가 필자가 바라보는 가운데 1악장의 첫머리를 가리키며 그의 작품의 악상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
쉰들러가 쓴 베토벤의 삶에 대한 모든 기록은 전문가들에게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여지지 않으며, 대부분 쉰들러가 낭만적으로 비화시킨 관점으로 작곡가를 바라보았다는 의견이 많다 (예를 들면 그가 쓴 베토벤의 대화록은 전부 날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위 기록이 쉰들러가 꾸며낸 얘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은 크다.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 작은 음형은 [베토벤이] 빈의 프라터 공원을 지날 때 들은 노랑촉새의 노랫소리에서 나왔다.— 베토벤의 제자인 카를 체르니
대중은 노랑촉새와 문을 두드리는 운명 가운데 좀 더 극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지만, 체르니의 주장은 꾸며냈을 가능성이 너무 적다.— 홉킨스 (Hopkins)
엘리자베스 슈웜 글레스너 (Elizabeth Schwarm Glesner)는 베토벤이 “성가시게 묻는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될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는 점으로 위 이야기에 대해 논박했다.
–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다 단조’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