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논쟁하는 두 노인’ (two old men disputing)
Oil on wood pan, 1628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호주 멜버른)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네덜란드어: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 7월 15일~1669년 10월 4일)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예술 분야에서 그의 기여는 역사가들이 소위 네덜란드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불러오게 하였다.

1606년 7월 15일 암스테르담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레이던에서 방아간 주인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고 렘브란트는 개신교 신자였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되었을 때에 모친이 성서를 읽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신심이 진지한 모친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14세에 레이던 대학교에 입학, 학교공부보다 그림에 열중해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Jacob van Swanenburgh) 밑에서 3년간 미술 수업을 받게 하였다.
1625년 개인 화실을 연 직후,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도를 받으면서 미술에 관한 시야를 넓혔으며, 이를 계기로 1632년 거처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으로 ‘튈프 박사의 해부’를 제작하여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주요 작품으로 ‘논쟁중인 두 노인’(1628),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1632), ‘갈릴리 호수의 폭풍과 그리스도’(1633), ‘돌다리가 있는 풍경’(1637), ‘야경: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1642), ‘세 개의 십자가’(1653), ‘밧세바’(1654), ‘돌아온 탕자’(1668) 등이 있다.
그는 600점의 painting, 400점의 etching (동판화)와 약 2,000점의 drawing을 남겼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의 특징은 시대의 관행을 뛰어넘어 개성을 발휘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야경의 경우 얼굴이 모두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는데, 이는 모두 얼굴이 나오게 하는 단체 인물화가들의 관행을 뛰어넘은 것이다.
성서를 주제로 한 성화들도 성화(이콘)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거룩한 느낌 대신, 인물들의 심리를 담아내는 심리묘사가 특징이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족장설화 중 하나인 아브라함이 첩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버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아브라함의 고뇌와 정실부인인 사라의 뿌듯함을 아브라함은 고뇌하는 표정을 짓고, 사라는 숨어서 웃는 모습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 논쟁하는 두 노인 (two old men disputing)
한편 렘브란트는 성서의 뜻이 경쟁, 다시 말해 토론과 논증을 통해 밝혀진다고 생각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적인 그림이 바로 이 ‘논쟁하는 두 노인(베드로와 바울)’이다. 이 그림의 첫 번째 소유자 (Jacques de Gheyn)는 그림의 두 주인공을 베드로와 바울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두 노인이라고 하였다.
베드로나 바울의 도상인 열쇠 혹은 검이 없기에 두 노인이 베드로와 바울이라고 완전히 단정할 수는 없으나 몇 가지 특징은 두 노인이 대표적인 두 사도임을 알려준다. 등을 보이고 있는 노인, 곧 다소 작고 단단해 보이는 몸, 머리 중앙에 적은 숱의 주인공은 베드로이다. 반면 그림에서 바울은 긴 수염, 넓고 빛나는 이마, 빛나고 동그랗지만 다소 파인 눈을 가지고 베드로를 바라본다. 위에서 설명한 특징은 비슷한 시기 렘브란트가 그린 베드로와 바울에서도 공통된다.
그런데 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두 사람의 만남을 다룬 이 그림의 배경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는 갈라디아서 1:18과 2:11-14이다. 바울은 예수의 추종자들을 박해하다가 급작스럽게 변화하여 예수를 위한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엄격한 바리새파 출신인 그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지식과 사고방식을 근본에서부터 재점검해야 했다. 바울은 자신의 이전 유대인 동료들과 상의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왔다. 바울이 삶의 전환 후 아라비아로 간 것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은 그가 그곳에서 사색과 묵상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간 ‘아라비아’는 다마스쿠스 동남쪽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키고, 그곳에서 바울은 선교를 행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변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에 임했다고 말하는 바울의 의도는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드디어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게바, 곧 베드로를 만난다. 그 기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15일 정도였다. 그때 무슨 말을 하였을까?
이에 대해 한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둘이 만나서 날씨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는 분명하다. 갈라디아서 1:18에서 바울은 자신이 게바를 ‘만나려고'(historesai, 히스토레사이) 하였다는데, 바울이 사용한 그 단어는 ‘자세히 질문하다’, ‘질문을 통해 조사하다’, ‘질문이나 조사를 통해 알아내다 혹은 배우다’, ‘방문해서 지식을 얻다’ 등을 뜻한다.
이 만남에서 바울은 주로 묻고, 베드로는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피는 ‘논쟁하는 두 노인’의 배경 본문으로는 다소 어긋나는 면이 있다. 그림에서 무엇인가를 말하는 사람, 그리고 보다 주목을 끄는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2:11-14를 이 그림의 배경으로 놓고 이해를 시도해볼 수 있다. 바울과 베드로의 만남을 다룬 이 본문은 이방 교회의 대표자격인 안디옥 교회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안디옥 사건’이라고 불렀는데, 바울은 그곳에서 베드로를 심하게 비판하였다. 이방 신자들과 거리낌없이 식탁교재를 나누던 베드로는 야고보로부터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방인들과의 교재를 그만두게 된다. 바울은 베드로의 이런 행동이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못한 두려움과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응답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베드로의 응답이 없었을 리도 없고, 이 사건에서 바울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추정하기도 어렵다.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 벌어진 일을 두고 안디옥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를 따라 행동했고, 안디옥 교회의 대표적 인물인 바나바 역시 베드로의 행동에 동참하였다(갈 1:13). 지지자들의 확보를 기준으로 갈등의 승패가 갈린다고 가정하면 이 사건의 승자는 베드로였다. 바울이 예수의 대표적 제자인 베드로를 향해 격한 말을 쏟아내는 이 이야기가 우리가 보는 그림의 배경으로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바울은 눈을 크게 뜨고 베드로의 얼굴을 본다. 그의 입은 말하고 있고, 표정은 베드로가 잘못을 시인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자신의 권위나 체험으로 말하기보다는 한 책, 곧 성서를 권위의 근거로 채택하는 데에 있다. 바울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성서에 있음을 베드로에게 알리려 한다.
렘브란트가 그린 베드로는 이 장면에서 바울보다 수세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예수의 사도로 부름을 받지 않았더라면 감히 어부 베드로가 바리새파 중에서도 뛰어났다는 바울에게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날카로운 힐난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숙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베드로의 오른손가락이 이를 나타낸다. 베드로는 바울이 가리키는 성서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넣고 자신의 행동 역시 성서에 근거해 있다고 반박할 태세이다. 베드로는 왼손으로 성서의 왼쪽 면 위쪽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데, 이는 베드로 자신도 ‘성서를 꼭 쥐고’ 있음을 강조하는 자세이다. 물론 베드로와 바울 당시 이런 코덱스 형태의 책이 있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통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울이나 베드로 모두 성서에 근거해 있으며, 그들은 성서의 뜻을 두고 논쟁하였다. 이 논쟁을 통해 그들은 어느 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를 분별하고 변증하려고 한다. 성서에 실린 13편 편지의 저자인 바울과 2편 편지의 저자인 베드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도가 된 바울과 하늘 아버지를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고 이를 고백하여 교회의 반석이 된 베드로, 특별한 계시와 영감과 체험을 한 대표적 두 사도라도 성서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토론하고 논증하고 변증해야 한다! 성서의 뜻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_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중에서(김학철 저, 대한기독교서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