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 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잠볼로냐 (Giambologna) / 높이 410cm / 1579~1583년, 이탈리아 Florence
조각상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The Rape of the Sabine Women)를 제작한 잠볼로냐 (Giambologna, 1529년 ~ 1608년 8월 13일; 또는 Giovanni da Bologna, Jean Boulogne라고도 함)는 16세기말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뛰어난 양식 조각가다.
김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사’에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는 사방을 돌며 감상해야 하는 세 인물을 화려한 기교로 스펙터클하게 묘사한 조각상이다.
젊은 로마인 남자는 여자를 공중으로 힘차게 들어 올리고 있고, 여인은 왼쪽 팔을 위로 뻗치며 자신을 거칠게 움켜쥔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들 아래에는 여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폭행을 당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절망과 공포에 떨고 있다. 신의 손을 가진 듯한 잠볼로냐는 남성의 몸을 머슬 대회의 챔피언 같은 근육질 짐승남으로 빚어냈고, 여성의 몸은 육감적이고 관능적으로 창조했다.
뱀 같이 꿈틀거리는 나선형으로 움직이는 세 인물의 뒤틀리고 얽힌 몸은 폭발적인 활력과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인물들의 과장된 몸짓과 강렬한 감정의 표현은 르네상스 고전주의 조각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의 고요함과 대조적인 매너리즘 (Mannerism) 양식을 보여 준다.
전에는 이같이 복잡한 구성의 조각품들은 별도의 조각 부분들을 제작한 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잠볼로냐는 이 작품에서 하나의 대리석 덩어리를 사용해 복잡하게 얽힌 역동적인 구성을 시도했고, 어려운 기술적 균형의 문제를 해결하여 16세기 말 유럽 최고의 조각가로 명성을 날렸다.”
잠볼로냐 (Giambologna, 1529 ~ 1608)는 처음에는 이탈리아 양식을 추구한 플랑드르 조각가인 자크 두브뢰크 밑에서 공부한 뒤, 1555년경 로마로 가서, 헬레니즘 조각과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557년 피렌체에 정착한 이후 프란체스코 데이 메디치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잠볼로냐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프란체스코를 위해 조각한 것이다. 피렌체에 정착한 후 초기의 작품으로는 나중에 보르고 산자코포의 분수대에 놓인 바코스 청동상과, 빌라 디 카스텔로를 위해 만든 비너스 청동상 (지금은 피렌체 근처 빌라 메디체아 델라 페트라이아에 있음)이 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승리 : Victory〉를 본뜬 〈넵투누스 분수대 : Fountain of Neptune〉(1563∼66)를 볼로냐에 세우면서 명성을 얻었다.
처음에 팔라초 베키오에 〈승리〉와 함께 세워놓았던 〈넵투누스 분수대〉의 실물 크기 석고 모형 (피렌체의 아카데미)은 1570년에 대리석 조각으로 대체되었고 이 대리석상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손과 필리스티아인 : Samson and a Philistine〉(1567,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라오콘 Laocoon〉과 같이 복잡한 헬레니즘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대가다운 구성의 작품으로 폭력과 고뇌를 드러내 보인다.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Rape of the Sabines〉(1579~83, 피렌체의 로자데이 란치)은 위풍당당하고 잘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훨씬 더 복잡하며 미묘하게 구성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서 보더라도 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메르쿠리우스 분수대 : Mercury〉(1580경, 피렌체의 바르젤로)에서는 인물상의 매끄러운 표면에 아른거리는 빛을 통해 순간적인 효과를 높였다. 메디치가(家) 코시모 1세의 청동기마상 (1587~94,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도 뛰어난 작품이다.

잠볼로냐는 정원 조각가로 널리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 정원 조각 작품으로는 피렌체의 보볼리 정원에 있는 〈오케아노스 분수대 : Fountain of Oceanus〉 (1571~76) · 〈그로티첼라의 비너스 : Venus of the Grotticella〉 (1573), 프라톨리노에 있는 거대한 조각 〈아펜니네 : Apennine〉 (1581) 외에도 페트라이아·카스텔로의 메디치가 별장에 있는 조각들을 들 수 있다. 작은 청동상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 빈의 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잠볼로냐는 세속적인 조각 작품들뿐만 아니라 루카 대성당의 정교한 대리석 조각 〈자유의 제단 : Altar of Liberty〉 (1577~79)과 청동 부조들을 포함한 종교적인 조각들도 많이 제작했다. 스페인령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의 조각가’로 알려져 있는 잠볼로냐는 16세기 중반의 피렌체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유럽의 주요양식으로 만들었다.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능력이나 쾌활함과 관능적 기쁨을 느끼게 하는 그의 원숙한 양식은 베르니니의 바로크 조각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후 3세기 동안 미켈란젤로를 이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이야기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로물루스 (Romulus, 기원전 771 년 – 기원전 717 년 7 월 5 일) 와 그가 이끄는 남자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로물루스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보호소’라는 시설을 마련했다. 이 보호소는 사는 곳에서 쫓겨난 범죄자 와 악성 채무자, 도망친 노예 등의 보호를 하는 곳이다. 로마는 이 사람들도 모두 시민으로 받아 들였다. 이렇게해서 로마의 인구는 증가했지만 여성이 부족하여 인구가 늘어나지 않았다.
국가는 미래의 위기에 처했다. 로마인들은 결혼을 위해 인근 국가의 사비니 사람 과 협상했지만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사비니(Sabine)인들은 로마인의 행동을 폄하하였고 또한 근처에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져 라이벌이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로마의 사자는 “결혼하는 여성들을 적극 보호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쫓겨나게 되었다. 로물루스는 사비니 사람들 사이에 첩자를 끼워 미혼 여성을 납치하여 납치 결혼 (Bride kidnapping)을 시키기로 하고 세심한 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 로물루스는 넵툰우스 (Neptune Equester) 축제를 개최 할 것을 계획하고 인근 부족들에게 축제에 참여를 호소했다. 리위우스 (Titus Livius, 기원전 59년경 ~ 17년)에 따르면 카에니나 (Caenina), 크루즈투메리움(Crustumerium), 안테무나에 (Antemnae) 같은 도시를 포함한 많은 사비니 사람들이 미혼 여성을 데리고 참석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집집마다 초대되었다. 축제시간이 되어 사비니 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 습격이 이루어졌다. 로물루스가 신호를 보내면 로마인의 젊은이들이 사비니인의 미혼 여성을 납치하기로 되어 있었다. 방심한 여성들은 비명을 지르고 반항을 했지만, 힘이 강한 남자들에게 붙잡혀 억지로 납치되었다. 미모가 아름다운 여자들은 파트리키 (라: Patricii, 귀족)의 유력자들의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붙잡혀온 나이많은 여인들은 포로가 되어 귀인에 헌상했다. 다른 여성들도 자유를 빼앗겼다. 로마인의 계략은 성공했지만, 악랄한 방법으로 많은 여성을 강탈당한 사비니 사람들은 ” 신으로부터 배신당 했다 “고 호소했다. 로마에 약탈 된 여성의 수를 발레리우스 안티아스 (Valerius antias)는 527명이라고 하였고, 유바 (yuba)는 685명으로 하고 있다.
굴욕적인 납치를 당한 사비니인의 미혼 여성들은 분노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이들은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로물루스는 포로가 된 사비니 여성에게 이 모든 사건은 인근 민족이 로마인과 결혼을 거부 한 것이 원인이며, 그녀들의 부모 자존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불법 행위의 책임은 그녀들의 부모라고 했다. 그리고 “결혼하면 이후의 생활은 시민권 및 재산권을 남편과 함께 갖게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갖고 자유로운 어머니가 될 것 “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로물루스는 사비니 족에게 로마에 강탈당한 여성들의 해제 요청은 거부했다. 귀국할수 없는 사비니 여성들은 로마인의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 들여 사비니 여성들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로마인의 아이를 낳았다. 로마는 국가가 대가 끊어지는 위기를 모면했다. 로물루스가 로마의 미래를 생각하여 생각한꾀는 적중하였고 사비니 여성들은 이후에도 로마에 시민이 되어 갔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The Rape of the Sabine Women)는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삽화의 하나다. 또한, 이 경우의 “rape”은 라틴어의 “Raptio”에 해당 “강간’보다 ‘납치’등에 가까운 의미이다. 사비니 여성의 약탈, 사비니 딸들의 약탈, 사비니 족 여자들의 납치, 사비니 처녀 납치 등이라고도 한다.

로마가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첫 번째 세대는 여성이 적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미혼 여성이 필요했다. 로마인들은 주변국에서 용감한 부족이 었다. 로마인들은 사비니에게 간계를 걸어 대량의 미혼 여성을 약탈했다.
불법으로 로마에 납치 된 사비니 여성들은 로마인의 아내가 될 것을 강요당하였고 이렇게 사비니 여성을 납치 결혼 (Bride kidnapping)하여 로마는 인구를 늘려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계획에 성공했다. 후 사비니 여성들을 찾아오기 위해 로마와 전쟁을 일으키지만 이미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사비니 여성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귀향을 거부하고 전쟁 중지를 호소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기원전 59년경 – 17년)의 “로마 건국의 역사” (Ab Urbe Condita Libri)와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라: Vitae Parallelae, 그: Βίοι Παράλληλοι; II, 15 및 19)에서 말하고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예술 작품의 주제로 즐겨 사용되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인의 대담함과 용기를 보여주는 예이자 여성의 수난 장면이나, 반라의 군상이 격정을 발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예술적인 도전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고전 고대의 주제로는 라삐테스와 켄타우로스의 싸움 (Lapith, 고그: Λαπίθης, Lapithēs), 테세우스 (고그: Θησεύς)의 아마존과의 싸움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