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의 ‘마리 드 메디치’ (Maria de’ Medici, 1573 ~ 1642) 초상화와 생애 (The life of Marie de Medi) 연작
페테르 파울 루벤스 / 24점 연작 / 1622 ~ 25년 / 프랑 루브르 박물관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가 1621년 앙리 4세의 미망인, 마리 드 메디치 (Maria de’ Medici) / 마리 드 메디시스 (프: Marie de Médicis, 1573년 4월 26일 ~ 1642년 7월 3일)로부터 뤽상부르 궁전의 갤러리 장식을 위한 그림을 의뢰받아 1622 ~ 25년 동안 24점의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3점의 초상화와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에 관한 21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에서 루벤스는 역사적 사건과 고대그리스•로마의 신들과 상징, 그리고 알레고리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어 그녀의 정치적 의도를 연작에 반영시켰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의 관계
루벤스는 17세기 유럽의 왕실과 부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화가였고, 원만한 성품으로 외교관으로도 활약하면서 유럽 여러 국가들의 왕으로부터 귀족의 칭호를 부여받은, 명예와 부를 함께 가졌던 화가로 알려져있는데, 마리 드 메디시스는 그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1621년 루벤스에게 의뢰하여 뤽상부르 궁전 갤러리에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24점의 연작을 그리도록 하는데, 각각의 그림들은 그녀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당시까지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을 주제로 담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들은 이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마리 드 메디치 연작
- 제작 배경
마리 드 메디치는 토스카나 출신으로 1600년 프랑스왕 앙리 4세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고, 왕이 사망하자 어린 아들 루이 13세의 섭정이 되어 프랑스를 통치했으나, 그와의 불화로 1617년 유배되었다. 3년 만에 파리로 돌아왔지만, 프랑스궁정에서 그녀의 정치적 입지는 약해져 있었고, 이에 마리 드 메디치는 자신의 거처로 지어진 뤽상부르 궁의 실내를 장식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과거의 정당화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자 1621년 화가 루벤스에게 이 연작을 의뢰했다.

- 해설
3점의 초상화와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에 관한 21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에서 루벤스는 역사적 사건과 고대그리스•로마의 신들과 상징, 그리고 알레고리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어 그녀의 정치적 의도를 연작에 반영시켰다. 마리 드 메디치의 의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그녀의 초상화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정의로운 전쟁과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로 묘사되어 프랑스에 평화를 가져오고 그것을 수호하는 인물이자 승리자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그녀의 정치적 신념이었던 “평화”에 대한 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생애에 관한 작품들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리 드 메디치의 운명과 자질, 앙리 4세와의 결혼을 다룬 첫 번째 범주에서는 왕비로서 그녀의 정통성이 부각된다. 앙리 4세의 정식 왕비로서의 모습과 앞으로 프랑스를 통치하게 될 잠재성을 보여주는 이 범주에서 그녀가 프랑스에 이로움을 가져다줄 존재임이 암시된다.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이 되는 과정과 그녀의 섭정기를 다룬 두 번째 범주에서는 그녀의 통치이념과 업적이 찬양되며, 섭정기의 업적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그녀가 프랑스에 가져다 준 이로움이 평화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루이 13세와의 불화와 화해과정을 다룬 세 번째 범주에서는 그녀의 유배시기가 미화되는데, 무엇보다도 그녀가 아들과 화해하기를 간절히 바랬으며, 시종일관 평화만을 추구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결론적으로 <마리 드 메디치 연작>은 그녀를 위한 일종의 프로파겐다로, 마리 드 메디치는 연작에서 프랑스에 평화를 가져온 자신의 이로움을 부각시킴으로써 과거의 정당화와 권위의 회복을 시도했다. 연작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알레고리적 요소는 평화를 기반으로 한 그녀의 신념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마리 드 메디치의 정치적 의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종교•정치적 갈등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던 당시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에서, 그녀가 <마리 드 메디치 연작>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신들의 지지를 받는 평화의 수호자로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