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상식 (常識)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
상식 (常識)이란? 사전적 의미로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판단력 및 사리 분별 능력을 통칭하는 뜻일 것이다. 요즘에는 ‘개념 (槪念)’이란 단어와 유사한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그냥 알아야 하는 것들 또는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의미한다. 이런 상식이 무너지면 함께 살아가며 삶을 나누는 Ape Society가 아니라 지배하고 독점하는 Animal Society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범유행 (Pandemic)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회 없는 예배, 예배 없는 교회’의 위기 시대에 상식 (常識)이 통하는 교회, 상식 (常識)이 통하는 사회, 이런 담론 앞에 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상식과 거리가 먼 사고나 행동 때문에 이해나 판단 부족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한다.
상식으로 문제를 판단하는 방법 중에 비평 (批評)과 비판 (批判)인지 아니면 비난 (非難)과 비방 (誹謗)인지의 문제 아니겠는가?. 여기서 비평과 비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비난과 비방은 개인적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악 (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여기서 비평은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아름답고 추함 등을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이고,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판단하는 것이라면, 비난이나 비방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다르게 헐뜯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방법들 그리고 평가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은 나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관이나 가치관 그리고 이데올로기 (Ideology)를 가지고 표현이 가능하다. 문제는 일반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쪽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반대할 수도 있고 찬성할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어느 하나를 비판이나 반대를 하면 그 사람의 인격까지 비판이나 반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는 더 예민해서 죽기 살기로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 여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21 C를 살아가는 호주하고도 시드니에서 한국에서 전해지는 편중된 시국관이나 팩트 없는 가짜뉴스 또는 카톡으로 퍼 나르는 인신공격이 도를 넘었다는 자성의 소리가 여기저기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편 들 수 있고, 지지할 수도 있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적이다!! 쌍욕이 난무하고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왜곡된 소식으로 진실을 덮기나 붉은 사상으로 물든 수괴 빨갱이로 뒤집어씌운다. 정치인들은 정권을 얻기 위해 국민들을 호도할 수 있다 그래야 자기 쪽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에서 이해한다. 유튜버들이 자기 슈퍼 책이나 방문객을 늘려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편향된 소식과 사건을 임의대로 구성하여 만든 동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면서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먹히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입증되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정권을 뒤 찾아 올 수 있던 기회도 놓쳤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특별히 직업이 끝에 “사”가 붙은 사람들은 공정성과 공평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나름의 인생관, 신앙관, 정치관이 있더라도 하나의 공인으로서 공창에서는 쌍욕을 퍼대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막가파 행동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요즘 덩달아 시드니에서도 애국 독점주의와 선교 독점주의 신앙 독점주의가 판치는 형국이다. 매우 위험하고 매우 위태롭다. 분탕질로 차별화하며 다시 헤쳐모이라고 사람들을 꼬드긴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 알아달라는 식이다. ‘분열로 사는 사람들은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만고 (萬古)의 진리다.
사도바울은 분열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분명하기 전하지 않았던가! (고전 9:18-23)
더 나아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분명하게 차별을 경고하고 있다.
1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1:16)
2 악인에 대한 처벌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다(롬 2:9-10)
3 선에 대한 보상에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다(롬 2:10)
4 율법준수에 대한 효과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다(롬 2:26)
5 모두가 죄인이라는 점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다(롬 3:9)
6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도 하나님에 대해 차별이 없다 (롬3;29)
7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3:30)
8 후사가 되는 것에서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4:16)
9 믿는 자의 영광에 대해서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10:12)
10 버림받는 것에서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11:32)
예수님은 잃어버린 3가지 비유 (누가복음 15장)를 통해서 통렬하게 가슴 아파하셨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복음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차별하며 편 가르지 않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북한을 선교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이웃 주변을 품지 못한다면 당신은 분명 뼛속까지 거짓이다.
대면과 비대면이 공존하는 시대에 불특정 다수의 저 너머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까지 마음 한구석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드니교회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기대한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