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삼성을 삼성이게 하는가?
노동자의 죽음과 기업윤리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김재수씨가 한국의 모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삼성 이야기
“필자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수업에서 한국의 예를 많이 드는데, 미국 대학생들이 흥미롭게 듣습니다. 으레 삼성의 이름을 들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한국 기업의 이름을 말할 때면 묘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국땅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서러움을 위로받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삼성에서 일하고 있고, 너희들이 쓰고 있는 TV와 휴대폰 등을 만들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무역이론을 가르칠 때는 삼성의 발전 역사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고작 설탕과 모직을 생산하던 삼성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이야기하면 다들 놀라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 세계 TV 시장 1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 그리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때면,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할 때도 삼성을 이야기합니다. 몇 년 전 읽은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합니다(최근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사건). 삼성 반도체에 입사해 기흥공장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던 황유미씨는 21세에 백혈병 진단을 받습니다. 아버지 황상기씨가 산재를 의심하자, 회사는 퇴사를 종용하고, 산재 처리 대신 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제안합니다. 당시 4000만원 이상의 치료비 압박에 놓였던 아버지는 그 제안을 감지덕지 여겨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찾아온 삼성 직원들은 500만원을 내밀며 그것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해마다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고 자랑하고, 2013년 순이익 30조원을 돌파한 삼성이 500만원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고위 인사들에게 500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뇌물을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밥 한끼 먹으며 최소단위로 건네던 500만원이건만,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어가던 여성 노동자의 치료비로는 500만원밖에 없다고 했답니다.
삼성을 생각하면, 이국땅 변두리에 살고 있는 일개 서생의 심사도 이렇게 복잡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삼성과 동일화하면서 최고 일류가 되었다는 짜릿한 욕망의 실현을 경험하고, 동시에 500만원으로 흔들리는 초일류의 모습에 절망합니다. 성장과 효율성의 가치에 매몰된 경제학을 가르치며 밥벌이를 하고 있어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삼성을 들먹이며 자랑을 하고 돌아온 날에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라는 단체에 작은 후원금을 속죄 제물처럼 보내곤 했습니다.”
한국기업 해외 인권침해
한 해 산재사망사고만 2500건이 넘는 것이 한국사회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누군가의 남편이 누군가의 형제요 친구가 그렇게 죽어간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비단 한국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월에 발표된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보고’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세계 57개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인권침해 사례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리핀에 진출한 한 전기·전자회사는 직원들이 다루는 화학물질에 대한 성분이나 안전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았고, 안전 장비도 마련하지 않거나 부실한 장비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얀마에 진출한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월급을 공제당하는 등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고, 한 주에 3~4명이 작업장에서 과로로 쓰러졌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 의류기업은 직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방해하고 단체협상도 거부하였단다.
급기야 지난달 캄보디아에서는 정부여당의 부정선거와 관련한 노동자와 야당 정치인의 일련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한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 대사관이 무력 진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로인해 최소 5명이 사망하는 살인적인 진압이 이루어졌다고 외신들은 보도했었다. 당시 진압현장에는 무장한 공수부대가 자랑스런(?) 태극기를 버젖이 달고 시위대 앞에 나타나 승려와 시위 참가자를 곤봉과 쇠파이프로 때렸다고 한다.
한 인권단체는 공수부대의 개입에 한국기업의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번 유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 의류생산자 협회가 캄보디아 정부가 요구한 최저임금 인상 관련 협상 자체를 거절하고, 최저임금이 인상될 경우에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협박을 한 데에 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의류산업의 최저임금은 아시아지역에서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제일 낮다. 최근 몇 년간 캄보디아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7%에 달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은 평균 5%의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쳐 의류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였다. 그리고 실질임금 삭감으로 인해 의류노동자는 영양이 부족한 값싼 음식으로 연명하며 과도한 잔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지난 2년 간 4,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기절한 것으로 보고되어 최근에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까지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올려달라고 하는 최저임금은 한국 돈으로 16~17만원 정도다. 그런데 한국기업들이 파는 옷은 그들의 최저 임금을 넘는 것도 휠씬 많지 않은가. 이 정도의 노동생산성을 가지는데도 한국 봉제기업들은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정당한 최저임금 요구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공수부대를 요청하고, 그것도 모자라 손해배상청구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한국기업감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한국 봉제기업들에게 재산상의 피해는 보이지만 노동자들이 흘리는 피는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말한다. “캄보디아 노동자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죽음 앞에 감정과 책임을 느낄줄 아는 것이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한국, 한국인의 성공신화 이면에는 근면과 성실이라는 자랑스런 가치가 베어 있다. 모두가 한국을 배우려 하고 한국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남의 희생을 담보하고 인권을 외면하는 오늘의 작태는 졸부에 지나지 않는다.
‘복음이 공적인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복음이 공론의 장에서도 충분히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역, 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가 기업과 기업인, 그리고 시대정신에 깊고 넓고 높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