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墨子, BC 470? ~ BC 391?)와 묵가(墨家), 묵자서
묵자 (墨子, BC 470? ~ BC 391?)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송 허난 성에서 탄생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초기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 중 묵가를 대표하는 위인이다.
핵심 사상은 겸애라 ‘묵자’에 전한다. 유교와 도교와 대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제국에서 채택됐으나 진이 집권하자 선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농성의 달인이어서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방어하였었다. “굳게 지킨다”는 뜻인 묵수가 여기서 유래했다.
○ 사상
묵자는 참사랑이 부족하여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판단하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남에게 이롭게 하면 하늘의 뜻과 일치하여 평화롭게 된다는 겸애를 주장했다.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빈부 격차가 없는 경제상 평등(문리)을 강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예악을 가볍게 생각하라고 주장하고 정치설로서는 비전론이 있다. 겸애 사상은 유가의 인, 불가의 자비와 유사하고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종교상 색채는 민간 신앙을 계승한 듯하며, 신분이나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 관계에 의거한 서열을 존중하여 전통과 예악을 숭상하는 유가와 상대하였으나 겸애의 개념은 기득권층의 정치상 이유 탓에 역사상·철학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묵가는 진 이후에 쇠퇴하여 소멸하였다. 그 사람이 한 주장과 제자들의 설을 모은 책 ‘묵자’에 그 사람의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묵적이 사회적인 계급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일에 따라 나뉜 사회의 계급을 인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왕 밑에는 신하들이 있듯이 만인을 대표하여 그들의 일을 다루는 자 밑에는 그를 보필하여 국정을 보살피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사회의 구성에 필요한 계급은 인정하였다.
○ 철학
공자와 묵자의 사상과 이론은 존비친소에 토대한 규범에 관한 부분은 차이가 있으나 전체 맥락에서는 꼭 반대되지는 않는다. 정치가 백성을 이로운 방식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점은 공자의 철학과 통하는 부분도 있다.
묵자는 유가의 존비친소에 기초한 사랑을 비판하면서, 다른 사람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 하라고 주장하는 겸애를 주장하였다. 이 겸애는 유가에서 ‘아비도 몰라보는 집단’이라고 비난받는다. 묵자는 유교의 허례허식이 백성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유교의 예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유가의 삼년상의 비판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예이다). 공자를 포함한 사상가 대부분은 통치자가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묵자는 그런 사람들과 달리 통치자도 백성처럼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습화한 예를 소모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보면, 상현은 유가의 주장을 반박하여 관리의 임용에는 신분이나 직업에 구애하지 않고 문호를 넓게 개방하여 등용하라고 말하였다. 묵자의 겸애는 자국과 타국, 자가와 타가의 차별을 없애고 사람은 널리 서로 사랑하라는 설로서 묵자 사상의 결정체인데 공자가 통치자 처지에서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 일정부 통하므로, 반드시 배치된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비공은 전쟁이 불의이고 백성을 해친다고 주장하여, 현대 평화주의 이론과 공통점이 있다. 절용과 절장은 군주의 의례적인 사치에 반대한 것이다. 비악에서는 궁정음악이 백성의 이익에 배반됨을 말하였다. 천지에서는 하늘이 뜻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정의가 되며, 모든 사람이 본받고 따라야 할 규범이 된다고 하였다. 상동은 나라의 상하가 일치해야 하고 천자가 행하는 것이 하늘의 뜻과 부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 출신 및 생애
묵자의 묵은 검다는 뜻이다. 여기서 묵은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첫 번째는 묵자의 살이 검었다는 것, 두 번째는 묵자가 이마에 먹을 새기는 형벌인 묵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살이 검다는 것은 해석하면 햇볕에 살갗이 탔다는 것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묵자는 직접 노동하는 위치, 즉 농민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묵형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당시 묵형 받은 범죄자들은 하층민이거나 하층민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묵자는 하층민의 신분으로서 살아갔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묵자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묵자는 직접 노동하는 하층민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묵자가 통치자도 백성처럼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 맞아떨어진다.
(고대의 중국 은허 유적에서 태평양계 흑인종의 유골이 나온 점을 생각하면, 짙은 피부색을 가져 묵자라고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기록에 묵씨는 여성 강씨로 되어 있는데 묵자와의 관련성은 알 수 없다. (묵자가 여성일 가능성도 있다) 일부 묵으로 발음하는 복성을 줄여서 묵씨가 되었다고 예상하는 때도 있으나 기원전에는 거의 단성화가 진행하지 않았다. 공자, 노자, 순자, 장자는 당대에 성이 없었고 발음과 성씨을 연결해서 연원이 만들어진 것은 후대에 일이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묵자가 그가 겨우 관직에 오른 하급 장인 계급의 일원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사랑을 거의 주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묵자는 비록 그가 송 지방에서 잠시 관직을 하였지만 루 지역(오늘날의 산둥 지방의 텅저우)의 사람이었다. 공자와 같이, 묵자는 전국시대에 서로 다른 통치국에서 관리가 되고 싶어한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자는 목수였고, 기계를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기계적 새부터 성곽을 에워싸기 위해 사용된 바퀴달리고 이동식의 “구름 사다리”까지 모든 것을 설계하였다. 비록 그는 높은 관직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묵자는 방어 시설에 대한 전문가로써 다양한 통치자들에 의해 찾아졌다. 그는 그의 초년기 때 유교를 배웠지만 그는 유교가 너무 운명론적이고 축하와 장례식에 너무 많은 공을 들여 서민들의 생계와 생산성에 해를 끼친다고 보았다. 그는 그의 일생 동안 공자와 견줄 만한 큰 추종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그의 추종자들(대부분 기술자들과 장인들)은 철학적, 기술적인 저술을 모두 공부한 숙련된 질서 속에서 조직되었다. 그 당시에 묵자의 대중적인 이해의 몇몇 설명들에 따르면, 그는 많은 사람들이 허난으로부터 온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개인적인 이득이나 심지어 그 자신의 삶이나 죽음에 관계없이 그의 열정은 사람들의 선을 위해 있다고 하였다. 사회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공헌은 공자의 제자인 맹자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았다. 맹자는 진신에서 묵자는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은 믿었다고 저술하였다.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묵자는 비록 그것이 거의 머리나 그의 발을 다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장태안은 도덕적 선함의 관점에서 공자와 노자 조차도 묵자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는 전국시대의 폐허에서 한 위기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다니며 통치자들의 정복 계획을 만류하였다. 묵자의 “Gongshu” 장에 따르면 그는 송 지역에 대한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 지방으로 십 일동안 걸었다. 주 정부에서 묵자는 추의 전술가인 Gongshu Ban과 9개의 모의 전쟁 게임에 참여하였고 Gongshu Ban의 모든 책략이 뒤집혔다. Gongshu Ban이 그에게 죽음으로 위협하자, 묵자는 왕에게 그의 제자들이 이미 송 군의 군대를 훈련시켰으므로 자신을 죽이는 것은 쓸모없을 것이라고 알렸다. 주왕은 전쟁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묵자는 돌아오는 길에 그를 알아치리지 못한 송의 병사가 묵자가 그들의 도시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몹시 차가운 비를 맞으며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이 이야기 후에 그는 Qi 지방이 루 지방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는 도시에 대한 방어가 단지 축성, 무기, 식량 공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가까이 두고 그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 ‘묵가’에 대하여
묵가(墨家)는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였던 제자백가의 한 학파로, 묵자(墨子, 기원전 470~391?)를 시조로 하며, 전국시대에 활약하다가, 진시황의 통일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묵가는 유가 · 도가와 동시대에 출현하여 발전되었고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주요 네 철학 학파 (유가 묵가 도가 법가) 중의 하나였다. 이 시기에 묵가는 유가의 주요 경쟁 상대였다.
묵자는 겸애설(兼愛說)을 가르쳤다. 겸애는 조건없이 사람들 전체를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 바로 겸애이고, 하느님은 겸애의 화신이다. 또한 묵자는 서로를 이롭게 한다(交相利)는 시각에서 근면한 노동으로 물자를 생산할 것과 절용(節用, 쓰임의 절약, 儉約 · 검약) 등을 주장했다. 또한 유명한 사상으로는 인재 등용론인 상현(尙賢)과 공격 전쟁 반대인 비공(非攻) 등의 사상이 있다. 또한, 묵자는 체험을 근본으로 하여 사물의 본질을 추론하는 논리적 사고를 중국에서 최초로 창시한 인물로 최근에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대에서, 묵가는 철학파로서는 사라졌지만 소수의 아시아 비밀 단체들은 스스로를 묵가 사상의 추종자로 생각한다.
– 개요
전국시대에 묵가(墨家)는 유가와 나란히 선 유력한 학파(顯學)였다. 예를 들어, 맹자는 당시에 묵자(墨子)와 양주(楊朱: 도가 학파의 선구자)의 사상이 천하에 가득 찼다고 탄식했다. (맹자 [등문공] 하) 한비자(韓非子)도 “세상의 현학(顯學)은 유儒)와 묵(墨)이다”라고 하였다. 한나라 시대까지 “유묵”이라 통칭했다. ‘현학(顯學)’이란 ‘드러난 학파’라는 뜻으로, 전국시대까지 학파로 자칭하면서 집단 활동했던 것은 유가와 묵가 뿐이었다. 도가나 법가 명가 등은 한나라 때, 제자백가의 학술을 정리하면서, 유사한 사상가들을 묶어서 부른 이름이었다.
진시황이 통일을 한 이후 묵가 학파는 급격히 소멸했다. 묵가에 대한 특별한 탄압도 없었는데 소리없이 사라진 이유는 통일 국가가 묵가의 존립에 극히 불리했기 때문이다. 분열된 국가가 싸워야 성 방어로 먹고 사는 묵가가 존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체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 절대자인 인격신에 대한 믿음, 군주 추대론 등은 통일 국가에 걸맞지 않았다. 묵가는 한나라 때 이미 잊혀졌다. 다만 위진 시대에 도교가 생기고, 불교의 대장경에 맞서서 도교가 ‘도장경’을 만들면서 거기에 ‘묵자'(墨子)를 넣었다. 청나라 때 와서 고증학이 발흥하면서, 어려운 문헌의 고증 경쟁이 붙었다. 이에 손이양이 묵자 주석을 집대성한 묵자한고를 씀으로써 묵자와 묵가 학파는 다시 화려하게 조명을 받게 된다.
묵자는 처음에 유가의 학자인 사각(史角)에게 배웠다고 한다. 또한 묵자 책에는 유가의 경전인 시경 서경이 널리 인용된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유가사상에 정반대로 나간다. 공자가 지배층의 입장에서 사상을 전개했다면, 묵자는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전개한다. 중국 역사상 피지배층에 근거한, 피지배층을 옹호하는 유일한 사상이 묵자이다.
묵자 책은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⑴ 입문서, ⑵ 10론(論) – 열 가지 주제. ⑶ 묵경(墨經) – 논리적 과학적 명제들. ⑷ 묵자의 어록, ⑸ 성 방어 기술. – 이 가운데 묵자 사상을 대표하는 것은 ⑵와 ⑶이다. 일반적으로 묵자의 사상은 ⑵에서 다루는 10가지 주제라고 한다. 겸애(兼愛) · 천지(天志; 하느님의 뜻) ·상동(尙同; 위와 같아짐) · 상현(尙賢; 현자를 높임) ·비공(非攻; 공격을 부정함) · 비악(非樂; 음악을 부정함) · 비명(非命; 운명을 부정함) · 절용(節用; 쓰임을 절약함) · 절장(節葬; 장례식을 절약함) · 명귀(明鬼; 귀신을 밝힘) · 비유(非儒; 유가를 비판함) 등이 있다.
묵가 학파는 개조(開祖)인 묵자 때부터 거자(鉅子; 우두머리)가 이끄는 집단을 이루었다. 묵가 집단은 ⑴ 무사이며 군인이고, ⑵ 기술자였다. ⑴ 묵가는 성 방어 전문가였다. 그들은 성 방어를 수주하여 먹고 살았다. ⑵ 묵가는 기술자(工人)의 집단이었다. 성 방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무기를 제작해야 한다. 무기는 어떤 시대에도 그 시대의 최고의 기술이 적용된다. 따라서 묵가 무리는 당시에 최고의 기술자 집단이었다. ⑶ 묵가의 무리는 또한 절대자 인격신을 믿은 종교적 집단이었다. 묵자는 겸애가 하느님의 뜻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를 때 하느님이 상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고 한다. 이는 유가가 ‘의례(儀禮) 전문가(儒)로서 의례를 집행하면서 먹고 살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라면, 묵가는 기본적으로 무사이다. 문(文)과 무(武)의 차이이다.
– 박이현
.겸애
“보편적인 사랑” – 겸애(兼愛)는 ‘전체를 사랑함’을 뜻한다. ‘兼’은 전체라는 뜻이다. 세상 전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분만 사랑하는 것과 반대이다. 부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차별한다는 말이다. 겸애의 반대는 별애(別愛; 구분하여 사랑함)이다. 유가가 부모형제의 가족적 혈연에 근거한 사랑을윤리의 기본으로 삼는다. 반면 묵가는 그러한 가족적 사랑은 별애라 보고, 어떤 구별도 하지 말고 세상 전체의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겸애(兼愛)을 주장한다. 겸애는 ‘무차별적 사랑’이라기 보다는 ‘조건없는 사랑’이다. 묵자는 신분적 차별을 인정한다. 겸애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 사랑이다. 나의 가족인가, 나의 임금인가, 나의 친척인가, 이런 조건을 붙이지 말고,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능력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 세상 전체를 사랑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묵자는 겸애가 하느님의 사랑이라 한다. 하느님은 만물을 공평하게 사랑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겸애는 아가페적 사랑이다. 반면 유가의 사랑은 조건이 달린 사랑, 인간적 사랑, 에로스(eros)적 사랑이다.
.천지(天志)
“하느님의 뜻” – 묵자는 저 하늘에 있는 유일신 절대자인 하느님을 믿는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비슷하다. 중국의 대다수의 학파들은 유일신을 믿지 않았다. 유일하게 묵자 학파가 유일신을 믿는다. 묵자는 하느님이 겸애를 하시며, 또한 인간이 겸애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겸애를 하면 상을 주고, 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 하느님은 상과 벌을 주는 절대자이다. 묵자가 보건대, 아래 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백성은 관리에게, 관리는 군주에게 복종한다. 군주는? 바로 하느님에게 복종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인 겸애를 군주가 실천하고, 관리가 수행해야 한다.
.상동(尙同)
“위와 같아짐” – 尙은 上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尙同은 ‘위와 같아짐’을 의미한다. 아랫사람은 반드시 윗사람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위에 절대 복종하는 대신, 윗사람은 아래 사람들에게 겸애를 해야 한다. 아랫사람의 복종과 윗사람의 겸애, 이것을 서로 맞교환하는 관계, 묵자는 이것을 국가라고 본다. 이 맞교환은 일종의 계약 관계이다. 아랫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계약 위반이므로 처벌할 수 있다. 반대로 윗사람이 겸애(자기 아랫사람 전체를 사랑함)하지 않으면, 이 역시 계약 위반이므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상동은 상현과 함께 가는 이론이다. 전체를 사랑하는 겸애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겸애를 잘 하는 것은 현명한 자의 기본 조건이다. 현자를 높임(尙賢)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자를 윗사람으로 추대하는
.상현(尙賢)
상현(尙賢)은 ‘현명한 이를 높임’을 뜻한다. 묵자에게서 현자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겸애를 하는 것이다. 겸애는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묵자는 실제적인 사람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다. 예컨대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피곤한 자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자란 바로 이런 물질적 이익을 준다. 유가에서 현자는 인격과 덕을 갖춘 자이다. 인재의 등용에 있어 인격적 덕의 유무를 기준으로 한다. 인격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엄격히 한다. 반면 묵가에서 현자는 현실적 이익을 이루는 사람이다. 동시에 현실적 이익을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게 주는 사람이다.
.절용(節用)·절장(節葬)
묵자는 백성의 세 가지 근심을 ‘배고픈 자가 먹지 못하고, 추운 자가 입지 못 하고, 피곤한 자가 쉬지 못 함’이라 한다. 이 세 가지 것의 끝은 죽음이다. 그는 국가의 의무가 바로 이런 백성의 의식주 문제의 해결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묵자는 부지런히 노동해서 생산할 것을 강조한다. 동시에 생산된 물자의 낭비를 극력 비난한다. 따라서 ‘쓰임의 절약'(節用)은 묵자의 기본적 주장에 들어간다. 나아가 그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장례와 초상, 제사도 낭비로 간주한다. 죽은 자를 위해서 호화스럽게 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반대로 산 자를 궁핍하게 만든다. 따라서 장례와 제사를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절장(節葬)이 바로 그것이다. 죽은 자를 위하기 보다는 산 자의 생명을 위하라.
.비악(非樂)
묵자가 절장(節葬)론을 통해서 유가의 예(禮)를 비판했다면, 비악(非樂; 음악 부정)을 통해서 음악을 부정한다. 유가는 늘 ‘예악(禮樂)’을 군자의 교양, 혹은 인격 수양의 기본으로 강조한다. 묵자는 하층민의 의식주의 문제라는 점에서 ‘예와 음악’ 둘 다를 비판 부정한다. 묵자가 보건대 음악은 낭비이다. 물자의 허비이다.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다. 그 당시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노래를 해야 했다. 생음악만이 있었다. 당시의 군주나 제후는 잔치를 벌이고 사냥을 하면서 음악을 즐겼다. 하층민의 입장에 선 묵자가 보건대,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낭비이고 사치에 불과했다.
중국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종교, 혹은 학술을 부정하는 전통이 뿌리깊게 이어진다. 묵자는 음악과 예술을 부정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했다. 위진 시대 이래로 5무(武)1종(宗)이라 일컬어지는 황제들이 불교를 탄압했다.(廢佛) 가깝게는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으로 처절하게 지식인을 탄압했다.
.비공(非攻)
‘非攻’은 ‘공격을 반대함’이다. 이는 겸애설의 확장이다. 전체를 사랑함과 남을 공격하지 않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비공 이론은 국가 사이의 이론이다. 땅을 뺏기 위해서, 혹은 약탈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지 말라. 내 나라 안에도 노는 땅은 많다. 그것을 개간하고 부지런히 노동하면 물자는 얼마든지 더 생산할 수 있다. 왜 스스로 내부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외부적으로 공격하려 드는가? 묵자는 당시의 대세인 ‘정복 전쟁’을 반대한다. 대신 국가 사이의 공존을 주장한다. 내가 남을 공격하지 않지만, 남이 나를 공격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가차없이 대응 응징해야 한다. 묵자는 공격 전쟁을 반대하지만, 동시에 방어 전쟁을 찬성한다. 비공론은 무장 중립과 현상 유지를 의미한다. 전국 시대 7개 국가의 공존을 주장한 것이다. 전국 시대에는 묵자처럼 현상 유지론보다는 정복 전쟁을 해서 천하 통일을 하자는 것이 대세였다. 진나라 이후 중국은 분열하지만, 늘 천하 통일을 목표로 한다. 반면 묵자는 천하 통일보다는 분열된 국가들의 평화 공존을 주장한다. ·
.비명(非命)
‘非命’은 ‘운명을 부정함’이다. 묵자는 일체의 운명론을 부정한다. 사람이 노력하면 노력한만큼 이루어진다.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운명이 지배하는 것은 없다. 왜 묵자는 운명론을 부정하는가? 그가 하느님의 뜻을 믿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인 겸애를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묵자는 늘 자신의 뒤에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었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가 어두운 운명에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공자 이래로 맹자 등 유가는 “사람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령을 기다리라”(盡人事 待天命)고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긴의 인격을 수양해서(修己) 세상을 다스리는 것(治人)이다. 그들은 묵자처럼 절대자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보증해 주는 초월자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꼭 이루어지리라 확신을 하지 못 한다. 결국 성패는 어두운 운명에 달려 있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운명 앞에 서라(安心立命)고 한다.
.명귀(明鬼)
‘明鬼’는 ‘귀신을 밝힘’ 혹은 ‘밝게 아는 귀신’을 뜻한다. 묵자는 하느님 뿐만 아니라 귀신의 존재도 믿는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상과 벌을 내리듯이, 귀신도 사람에게 상과 벌을 내린다. 하느님의 뜻이 겸애이듯이, 귀신의 뜻도 겸애이다. 따라서 겸애를 하라. 그러면 하늘도 상을 주고 귀신도 상을 준다. 유가는 공자 이래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귀신이 오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는 제사 역시, 귀신이 “있는 듯이” 생각하면서 하라고 한다. 반면 묵자는 귀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었다. 그의 귀신은 겸애와 연관된다. 늘 예측 가능한 초월자이다. 반면 민간 신앙에서 귀신은 무섭고 예측 불가능하다.
– 거자(鉅子)
‘鉅子’는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묵가 무리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鉅는 ‘크다’(巨)의 뜻과 동시에 ‘金’이 붙은 단어이므로 ‘연장통’을 뜻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기술자 집단에서는 연장통을 관리하는 사람이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헌상 밝혀진 거자는 다음과 같다.
.묵자(墨子) ; 묵가 학파의 창시자이며, 초대 거자이다. 묵자 책에는 그의 제자로 ‘질비(跌鼻; 넘어진 코, 코삐뚤이), 경주(耕柱; 밭가는 기둥) 등이 나온다.
.금골리(禽滑釐) ; 묵자 다음의 거자인 것 같다.
.복돈(腹䵍) – 진나라 묵가의 우두머리였다. 진나라 혜왕(惠王) 때, 그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 혜왕이 사면하려 했으나, 복돈은 묵가의 법을 내세워 아들을 사형시켰다. (여씨춘추 거사(去私)편)
.맹승(孟勝) ; 초나라 도왕(悼王) 때 거자이다. 양성군의 영지를 지키지 못 하자, 전양자에게 거자를 물려 주고, 제자 180여명과 집단 자살을 했다. (여씨춘추 상덕(上德) 편)
.전양자(田襄子) ; 송나라의 거자. 맹승에게서 물려 받았다.

○ 묵자 서 (책)
묵자(墨子)는 중국의 전국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묵가 집단에 의하여 집대성된 저작집이다. 일부는 개조(開祖)인 묵자 자신의 언론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그의 후배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저작으로 추측된다. 원래 71편이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53편이다.
– 내용
묵자(墨子)의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친사(親士)’부터 ‘삼변(三辯)’까지의 7편, 이것은 묵가의 잡론집이다.’상현(尙賢)’부터 ‘비명(非命)’까지의 23편, 이것은 묵가의 주요 사상으로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경(經)’ ‘경설(經說)’ ‘대취(大取)’ ‘소취(小取)’ 6편, 이것은 말의개념이나 표현의 논리를 분석한 것이다.’경주(耕柱)’로부터 ‘공수(公輸)’까지의 5편, 이것은 개조 묵자의 언행·사저집으로 공자를 논란한 비유(非儒)편도 이 부류에 들어 있다.’비성문(備城門)’ 이하의 11편, 이것은 묵가의 방어전술을 적은 것이다.
이들 중에서 3번 류는 일괄하여 묵변(墨辯)이라고도 호칭되는데 기하학·광학·역학 등에 관한 명제(命題)도 포함하는 특색 있는 중국 고대의 논리학의 부분이다. 또 5번 류는 성의 방어전술에 필요한 병기·기구·설비·자재의 제작이나 취급하는 법을 논한 이색적인 부분으로서 성의 방어를 청부하는 묵자 집단의 특성을 전한 것이다. 그렇지만 <묵자>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유가(儒家)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갖는 2번 류일 것이다. 즉 ‘상현(尙賢)’ 은 관리의 임용에는 신분·직업에 구애하지 않고 넓게 문호를 개방하여 인재를 구하라고 말하였다.
‘천지'(天志)는 하늘이 뜻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정의가 되며, 모든 사람이 본받고 따라야 할 규범이 된다고 하였고, ‘상동'(尙同)은 나라의 상하가 일치돼야 하며, 천자가 행하는 것이 하늘의 뜻과 부합되어야 한다고 하였고, ‘겸애(兼愛’는 자국과 타국, 자가와 타가의 차별을 없애고 사람은 널리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고, ‘비공(非攻)’은 전쟁이 불의이며 백성에게 해로움을 주장하고, ‘절용(節用)’ ‘절장(節葬)’은 군주의 의례적인 사치에 반대한 것이다. ‘천지(天志)’는 천(天)을 최고의 존재로 하여 천자(天子) 이하 이에 순종할 것을 말한 것이고, ‘명귀(明鬼)’는 사람의 사후의 영혼의 실재를 강조하여 그 상벌을 두려워하라고 말한 것이다. ‘비악(非樂)’에서는 궁정음악(宮廷音樂)이 백성의 이익에 배반됨을 말하였으며, ‘비명(非命)’에서는 숙명관을 배제하여 사람의 근면한 영위에 대하여 귀신은 반드시 보상을 준다고 말하였다.
이것들 10론(論)에는 각기 상·중·하의 3편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가 분실, 23편이 남아 있다. 상·중·하 각편은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조금씩 자구나 사상 내용에 상위(相違)함이 있어 묵가의 주장의 변천이나 분파의 자취를 더듬을 수가 있다.
‘묵자’는 맹자에 의하여 이단사상으로 배격당한 이래 추종자를 거의 갖지 못하였으나, 청조(淸朝)의 고증학의 전성 속에서 재인식되어 손이양의 ‘묵자간고’와 같은 우수한 주석서가 제작되었다.
– 목록
묵자교주(墨子校注)목록/금본(今本)목록
.권1(卷之一)/권1(卷一)
친사 제1(親士第一)/친사(親士)
수신 제2(脩身第二)/수신(脩身)
소염 제3(所染第三)/소염(所染)
법의 제4(法儀第四)/법의(法儀)
칠환 제5(七患第五)/칠환(七患)
사과 제6(辭過第六)/사변(辭過)
삼변 제7(三辯第七)/삼변(三辯)
.권2(卷之二)/권2(卷二)
상현 상 제8(尙賢上第八)/상현 상(尙賢上)
상현 중 제9(尙賢中第九)/상현 중(尙賢中)
상현 하 제10(尙賢下第十)/상현 하(尙賢下)
.권3(卷之三)/권3(卷三)
상동 상 제11(尙同上第十一)/상동 상(尙同上)상동 중 제12(尙同中第十二)/상동 중(尙同中)
상동 하 제13(尙同下第十三)/상동 하(尙同下)
.권4(卷之四)/권4(卷四)
겸애 상 제14(兼愛上第十四)/겸애 상(兼愛上)
겸애 중 제15(兼愛中第十五)/겸애 중(兼愛中)
겸애 하 제16(兼愛下第十六)/겸애 하(兼愛下)
.권5(卷之五)/권5(卷五)
비공 상 제17(非攻上第十七)/비공 상(非攻上)
비공 중 제18(非攻中第十八)/비공 중(非攻中)
비공 하 제19(非攻下第十九)/비공 하(非攻下)
.권6(卷之六)/권6(卷六)
절용 상 제20(節用上第二十)/절용 상(節用上)
절용 중 제21(節用中第二十一)/절용 중(節用中)
절용 하 제22(節用下第二十二)/
절장 상 제23(節葬上第二十三)/
절장 중 제24(節葬中第二十四)/
절장 하 제25(節葬下第二十五)/절장 하(節葬下)
.권7(卷之七)/권7(卷七)
천지 상 제26(天志上第二十六)/천지 상(天志上)
천지 중 제27(天志中第二十七)/천지 중(天志中)
천지 하 제28(天志下第二十八)/천지 하(天志下)
.권8(卷之八)/권8(卷八)
명귀 상 제29(明鬼上第二十九)/
명귀 중 제30(明鬼中第三十)/
명귀 하 제31(明鬼下第三十一)/명귀 하(明鬼下)
비악 상 제32(非樂上第三十二)/비악 상(非樂上)
.권9(卷之九)/권9(卷九)
비악 중 제33(非樂中第三十三)/
비악 하 제34(非樂下第三十四)/
비명 상 제35(非命上第三十五)/비명 상(非命上)
비명 중 제36(非命中第三十六)/비명 중(非命中)
비명 하 제37(非命下第三十七)/비명 하(非命下)
비유 상 제38(非儒上第三十八)/
비유 하 제39(非儒下第三十九)/비유 하(非儒下)
.권10(卷之十)/권10(卷十)
경 상 제40(經上第四十)/경 상(經上)
경 하 제41(經下第四十一)/경 하(經下)
경설 상 제42(經說上第四十二)/경설 상(經說上)
경설 하 제43(經說下第四十三)/경설 하(經說下)
.권11(卷之十一)/권11(卷十一)
대취 제44(大取第四十四)/대취(大取)
소취 제45(小取第四十五)/소취(小取)
경주 제46(耕柱第四十六)/경주(耕柱)
.권12(卷之十二)/권12(卷十二)
귀의 제47(貴義第四十七)/귀의(貴義)
공맹 제48(公孟第四十八)/공맹(公孟)
.권13(卷之十三)/권13(卷十三)
노문 제49(魯問第四十九)/노문(魯問)
공수 제50(公輸第五十)/공수(公輸)
□□ 제51(□□第五十一)/
.권14(卷之十四)/권14(卷十四)
비성문 제51(備城門第五十二)/비성문(備城門)
비고림 제53(備高臨第五十三)/비고림(備高臨)
□□ 제54(□□第五十四)/
□□ 제55(□□第五十五)/
비제 제56(備梯第五十六)/비제(備梯)
□□ 제57(□□第五十七)/
비수 제58(備水第五十八)/비수(備水)
□□ 제59(□□第五十九)/
□□ 제60(□□第六十)/
비돌 제61(備突第六十一)/비돌(備突)
비혈 제62(備穴第六十二)/비혈(備穴)
비아부 제63(備蛾傅第六十三)/비아부(備蛾傅)
.권15(卷之十五)/권15(卷十五)
□□ 제64(□□第六十四)/
□□ 제65(□□第六十五)/
□□ 제66(□□第六十六)/
□□ 제67(□□第六十七)/
영적사 제68(迎敵祠第六十八)/영적사(迎敵祠)
기치 제69(旗幟第六十九)/기치(旗幟)
호령 제70(號令第七十)/호령(號令)
잡수 제71(襍守第七十一)/잡수(襍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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