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Pragmatism을 중심한 미국철학 이야기’ 중에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로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확립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 ~ 1910)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 1839년 9월 10일 ~ 1914년 4월 19일)의 친구였던 윌리암 제임스 (William James, 1842년 1월 11일 ~ 1910년 8월 26일)는 뉴욕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872년 하바드 의대를 졸업한 후 처음엔 그 대학의 생리학 및 심리학 교수로 출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하버드에 심리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심리학 과목을 개설한 심리학계의 권위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후에는 퍼스의 뒤를 이어 실용주의 철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철학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우리는 그의 프라그마티즘에 대한 연구 부분만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요 저술로는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8>, <믿으려는 의지, The Will to Believe, 1896>,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 김재영 옮김, 한길사, 2000>, <실용주의, Pragmatism, 1907, 정해창 옮김, 아카넷, 2008>가 있습니다.

제임스도 퍼스와 마찬가지로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진리도 계속해서 변한다>는 안목에서 출발하여 <실용주의란 변화와 흐름의 과정철학>이라는 입장에서 미국적 실용주의를 정착시킨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라그마티즘에 대한 제임스의 이론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행동을 보면 그의 생각과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2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현재의 행동이 그의 미래를 결정해 준다는 사실이다. 3 이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그는 예를 듭니다. <1.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혼란한 정치, 경제, 종교,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방황합니다) 2. 이때 하나의 길이 보입니다. (혼란 속에서도 어떤 해결책이 보입니다) 3. 그 경우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첫째는 여기로 가면 마침내는 안식과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거야! 하는 기대와 둘째는 여기로 가다가는 오히려 더 깊은 숲속으로 빠져들어서 완전히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죽을지도 몰라! (지금의 선택과 결정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될지, 아니면 더 큰 불행과 비극으로 인도하게 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4.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첫째와 둘째 선택의 미래를 전혀 예측 할 수가 없습니다. 5. 이 경우 우리는 첫째 결정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고 실제적이고 실용성을 높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6. 실용주의란 자신의 생각과 믿음과 이에 따른 일체의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믿는 사상입니다. 7. 그런 의미에서 실용주의는 인간의 인식과 행위에 대하여 ‘낙관적, Optimistic’입니다.>
제임스의 낙관주의적 실용주의를 설명 할 때 흔히 신의 존재 문제를 예로 들곤 합니다. 제임스는 <하느님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관념적, 이론적 논쟁에서 떠나 <하느님은 있다>고 믿는 것이 <하느님은 없다>고 보는 것 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낙관적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유럽식의 관념적 신의 존재론을 가지고 갑론을박하기보다 꿈의 나라 미국에서는 <하느님은 있다>고 믿고 출발하는 것이 바르고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미국인들, 혹은 미국철학에서는 유신론이나 무신론 같은 논쟁은 떠나 <하느님은 계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을 pragmatic하다고 봅니다. <프라그마티즘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철학입니다>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비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이냐, 맘몬이냐>하면서 이 둘을 대립적으로 보면서 선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물질>을 다같이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하느님과 돈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공존 (共存)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국적 기독교 신앙과 자본주의는 피차 절묘하게 접목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목사와 교인들이 하나님과 물질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이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합니다만 프라그마티즘 위에 서 있는 미국교회나 미국 사회는 <이것도 저것도> 함께 포용하고 상황에 따라 절충하거나 융화시켜 나갑니다. 미국적 프라그마티즘에서는 절대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황금을 보기를 하나님 처럼하고, 하나님도 돈 처럼 소중히 여기는> 프라그마티즘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를 통해서 다듬어진 프라그마티즘은 모든 지식이나 진리는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쓰임새나 유용성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진리란 현금적 가치, cash-value>가 있을 때 비로소 선한 것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실과 진리를 구별하였습니다. <진리는 처음 부터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생각이다. 생각은 변한다.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면 진리도 달라진다. 사건이 진리가 된다. 새로운 사건이 생겨나면 새로운 진리가 등장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진리를 만들게 된다>, <믿음은 사실과 다르다. 믿음은 믿는 것일 뿐이지 반드시 사실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사실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라기 보다는 우리의 생각을 풍성하게 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지식도, 지식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임스는 한 사람의 개인적 <믿음의 권리>는 인정합니다. 믿음에 따라서 행동한 것이 그로 하여금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고 죽음의 공포를 없이해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매우 실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프라그마티즘은 <신앙과 종교의 실용성>을 이야기합니다. <신앙도 실용적이다. 아니 실용적이어야만 한다. 종교도 실용성이 있을 때 비로소 종교로써의 가치가 인정된다> – 이것이 프라그마티즘에서 보는 종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임스의 프라그마티즘은 철저하게 결과주의입니다. <실용주의는 원칙주의가 아니라 결과주의다>라는 그의 주장은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논리적 원칙이 아니라 결과적 실용성을 중시했던 사람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