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칼럼
“엄마, 너무 시끄러워”
경기도
광주 인근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마을이 있다. 산북면 하품리는 작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여주군 땅이요 건너편은 양평군으로 이름을 달리한다. 바로 이 여주 땅에 산북중앙교회는 김한회 목사님이 한쪽 폐를 병으로 잃고 남은 폐도 10% 남짓한 기능으로 살면서 평생을 목회하는 곳이다. 아직도 북향한 산자락에 눈발이 성성하리만큼 산새가 제법인 동네이다. 지난 5일 수요기도회에서 설교와 선교보고를 겸하기 위해 이 교회를 찾았다. 집회를 마친 후 김목사님은 교회 차로 골짜기 마다 숨어있는 동네로 성도들을 바래다 주는 길에, 말동무를 하자며 나를 앞 좌석에 앉힌다. 추운 겨울 밤 길에 성도들의 옷은 두껍고 차가 흔들릴 때마다 좁은 공간인지라 소음도 제법 났다. 정담을 나누며 돌아가는 차 안은 시골 장터처럼 구수함이 흐르는 순간이다. 비좁은 좌석 사이로, 아이의 일침이 내 귀를 울린다, “엄마, 너무 시끄러워!” 그러자 아이의 엄마가 친절하게 그 말을 받아서 다르게 일러 준다, “엄마,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짧은 순간이나마 젊은 엄마가 아이의 말을 고쳐서 바르게 하도록 가르치는 모습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서리가 끼는 차 안에 한 순간 깨달음으로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의 한 마디가 자식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요세프 텔루슈킨’ 랍비는 ‘The Book of Jewish Values, 죽기 전에 한번은 유대인을 만나라’는 책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닐 쿠르샨’ 랍비가 손님을 청한 자리에서 아이들이 식탁보에 포도주를 엎지르자 반사적으로 그들을 야단치기 보다 다음과 같이 대처해야 했을걸 하는 회고의 글을 소개한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란다. 아빠랑 같이 포도주 얼룩을 지워보자!” 이렇게 제안하는 이유를, 텔루슈킨 랍비는 “죽음 이후의 세상은 유대인에게 영원한 안식의 날이므로, 어떤 손님이나 아이도 작은 실수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그런 날”이라는 데서 찾는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자 유대교 신앙을 집중적으로 본보이고 실천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랍비들은 자녀들이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도록 가르쳐야 하는지 그 고민을 ‘선조들의 어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 머리 위에 너를 지켜 보는 눈 하나가, 네 말을 듣는 귀 하나가 또한 네 모든 행위가 기록되는 책 한 권이 있다는 걸 알아라.” 이것이 자식들을 표범처럼 담대하고 사슴처럼 재빠르며 사자처럼 강하게 키우는 길이라고 ‘예후다 벤 테마’ 랍비는 추천한다. 특히, 탈무드는 유대인이 자녀들을 이렇게 세우기 위해서, “성전을 짓는 것을 위해 계속해서 일해야 할지라도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을 결코 중단해선 안 된다”고 경계한다. 그 중에서도 “자식에게 직업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탈무드의 글귀는 ‘어리버리한(?)’ 2세로 키우는 우리 세대에게 경종을 울린다.
우리는 다양한 모임과 조직에서 ‘다른 길을 갈래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나는 호주 사람이라니까요’ 등 다양한 외침을 듣는다, 자식에게서, 교회에서, 또한 주위에서…차 안에서 만난 젊은 엄마처럼 이를 불평으로 무시하기 보다 ‘좀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비평으로 번역해서 들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찰스 스윈돌’ 목사의 말이다, “I am convinced that life is 10% what happens to me and 90 % how I react to it, 인생이란 내게 일어나는 일이 10%라면 나머지 90%는 내가 이것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현실은 가정, 이웃과 신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결과라는 사실은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되도다!
박계천 목사(CWI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