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과학적인 사고[思考]의 기반[基盤]사회(1)
토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수반 될 수밖에 없는 현상일 수 있지만 주장과 논쟁이나 언쟁이 난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에서 선거 때면 입후보자들이 연설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날에는 TV토론 등으로 당락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토론에 관심이 높아지고 TV토론은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천[日淺]한 탓일까? 바람직한 토론문화는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에서 주장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논리성이나 상대방에게 상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에티켓 등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온 국민이 지켜보게 되는 TV선거 토론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도자급에 속한다고 하는 분들의 수준이 낮은 토론은 대중들을 실망 시키며, 건전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주장과 논쟁은 근거나 논리가 없는 언쟁들이다. 주장과 논쟁의 주제는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지만 이념 문제, 시국문제, 사건 사고의 원인과 해결문제, 통설[通說], 통념[通念] 등 보는 각도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 질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이념문제나, 종교문제, 시국문제는 논쟁을 통해 심각한 갈등을 겪은 탓일까? 회피하는 경향은 있으나 일상 속에서 주장과 논쟁꺼리는 끊임없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
주장
‘주장’[Claim]은 대중이나 상대에게 의도하는 바를 설득 시켜 동의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주장은 크게 ‘사실적 주장’(factual claims), ‘가치적 주장’(value claims), 그리고 ‘정책적 주장’(policy claims)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적 주장은 사실여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것으로, 어떤 것이 “사실이다” 또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장관 후보자가 “내가 장관 되면 대학총장도 시켜 줄 수 있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고 하였다면 이것이 사실적 주장이고 “보안법은 비민주적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보안법의 바람직함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정책적 주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가”하는 행위와 실천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이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은 녹색 성장의 표본이다”, “4대강 사업은 백해무익한 환경파괴일 뿐이다”라는 행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주장이 뒷받침이 잘 되어야 설득력이 높아지는데 일반인들이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고 논리성이 없는 것들이 많다.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 주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로써 하나의 완벽한 논증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론은 입증되지 않은 지식이나 언어와 통설을 유포하여 대중들의 인식을 현혹 내지 마비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들의 화제는 언론에서 교묘하게 각색된 몇 마디의 언어에 매달리기가 일수이며, 무책임한 언론 프레이에 세뇌[洗腦]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확실한 근거와 검증을 거치지 않은 언어를 놓고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여 논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이론이나 통설[通說]도 검증을 통해 오류가 밝혀지면 인정하지 않거나 폐기되기가 일수인데,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주장들이 검증을 통과할 만한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설과 유사한 개념의 통념[通念]이 있다. 통념은 국어사전에 “일반에 통하는 개념”, “일반적인 생각”으로 되여 있다. 통설이 된 것도 수정되고 폐기되기가 일수인데 통념을 불변의 사실로 주장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아무리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 과학지식이라도 어느 것이나 수정의 가능성은 열어 놓고 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필자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진화설로 라마르크 [1744. 8. 1 ~ 1829. 12. 18]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을 공부하였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에서 “기린의 목은 말과 비슷한 정도의 길이였다. 기린은 나뭇잎을 뜯어 먹으며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키가 낮은 나뭇잎 만으로는 먹이가 부족하게 되였다. 좀 더 키가 큰 나무의 잎을 뜯기 위해 목을 길게 빼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목이 길어지며 목이긴 새끼까지 낳게 되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매우 긴 목을 가진 현대의 기린이 나타난 것이다.” “뉴질랜드의 키위는 앞을 보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한다. 키위가 사는 지역은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하다 보니 날라 다닐 필요도 없으며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찾을 필요도, 날라 다닐 필요가 없어져서 눈과 날개가 퇴화 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의학, 체육 등 많은 분야에서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는 통설이다. 이 설명을 듣고 이 진화설의 이론적인 오류를 지적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을 통해 획득형질은 후손에게 유전되지도 않고 진화의 mechanism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없다고 결론 난 후에 현대 생물학에서 용불용설을 진화설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책임있는 주장과 논쟁을 하려면 과학지식의 생성과정에 숙달하고 수학문제풀이의 논리성이 몸에 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으로 치부해버리는 과학과 수학을 어느 나라나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
백과사전에서 과학의 정의를 “과학(科學, Science)은 사물의 구조, 성질, 법칙 등을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얻어진 체계적, 이론적인 지식의 체계를 말한다. 더 좁은 의미에서 과학이란 인류가 경험주의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근거하여 실험을 통해 얻어낸 자연계에 대한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되여 있다. 요약해서 다시 정의한다면 “실험을 통해 얻어낸 이론과 지식의 체계”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엄격한 과정을 통해 생성된 과학 지식도 반논[反論]의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면 기존의 주장을 접어야 한다. 이 원칙은 사회과학도 같을 것이다. 과학지식은 특정분야에만 적용하며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유통되며 영향을 주게 된다. 대중들의 대화나 주장들이 대부분은 확실한 근거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나 불명확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의 TV토론에서 한 토론자가 국가지도자가 자주 말이나 주장을 바꾸는 것도 문제지만 바꾸어야 할 것을 안 바꾸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며 공감을 가진 일이 있다. 정치지도자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지속적인 검증이 이루어 져야 하고 잘못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 지체없이 바꿔야 한다는 논리였다. 토론과 논쟁하는 것을 보면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독백이나 무모한 밀어 붙이기로 끝나기가 일수다. 의견이 다른 상대자라는 인식 속에서 논쟁과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마치 적[敵]과 사생결단할 태세로 임하기 때문에 토론이나 논쟁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만 만들게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든 교과가 목표가 있고 새로운 문화창조와 사회의 공통적 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자질이 길러져야 한다. 과학과 수학은 객관적 방법으로 형성된 지식을 배우고 지식생성의 방법을 연마하는 교과이기도 하다.<과학적인 사고[思考]의 기반[基盤]사회 2 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1963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여주 대신고등학교 교감과 수원 계명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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