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과학적인 사고 [思考]의 기반 [基盤] 사회

토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현상일 수 있지만 주장과 논쟁이나 언쟁이 난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선거에는 TV토론 등으로 당락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토론에 관심이 높아지고 TV토론은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천[日淺]한 탓일까? 바람직한 토론문화는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에서 주장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논리성이나 상대방에게 상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에티켓 등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급에 속한다고 하는 분들의 수준이 낮은 토론은 대중들을 실망 시키며, 건전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주장과 논쟁은 근거나 논리가 없는 언쟁들이다. 주장과 논쟁의 주제는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지만 이념 문제, 시국문제, 사건 사고의 원인과 해결문제, 통설[通說], 통념[通念] 등 보는 각도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 질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이념문제나, 종교문제, 시국문제는 논쟁을 통해 심각한 갈등을 겪은 탓일까? 회피하는 경향은 있으나 일상 속에서 주장과 논쟁거리는 끊임없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
주장
‘주장’[Claim]은 대중이나 상대에게 의도하는 바를 설득 시켜 동의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주장은 크게 ‘사실적 주장’(factual claims), ‘가치적 주장’(value claims), 그리고 ‘정책적 주장’(policy claims)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적 주장은 사실여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것으로, 어떤 것이 “사실이다” 또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장관 후보자가 “내가 장관 되면 대학총장도 시켜 줄 수 있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고 하였다면 이것이 사실적 주장이고 “보안법은 비민주적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보안법의 바람직함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정책적 주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가”하는 행위와 실천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이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은 녹색 성장의 표본이다”, “4대강 사업은 백해무익한 환경파괴일 뿐이다”라는 행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주장이 뒷받침이 잘 되어야 설득력이 높아지는데 일반인들이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고 논리성이 없는 것들이 많다.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 주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로써 하나의 완벽한 논증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론은 입증되지 않은 지식이나 언어와 통설을 유포하여 대중들의 인식을 현혹 내지 마비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들의 화제는 언론에서 교묘하게 각색된 몇 마디의 언어에 매달리기가 일수이며, 무책임한 언론 프레이에 세뇌[洗腦]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확실한 근거와 검증을 거치지 않은 언어를 놓고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여 논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이론이나 통설[通說]도 검증을 통해 오류가 밝혀지면 인정하지 않거나 폐기되기가 일수인데,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주장들이 검증을 통과할 만한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설과 유사한 개념의 통념[通念]이 있다. 통념은 국어사전에 “일반에 통하는 개념”, “일반적인 생각”으로 되여 있다. 통설이 된 것도 수정되고 폐기되기가 일수인데 통념을 불변의 사실로 주장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아무리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 과학지식이라도 어느 것이나 수정의 가능성은 열어 놓고 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필자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진화설로 라마르크 [1744. 8. 1 ~ 1829. 12. 18]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을 공부하였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에서 “기린의 목은 말과 비슷한 정도의 길이였다. 기린은 나뭇잎을 뜯어 먹으며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키가 낮은 나뭇잎 만으로는 먹이가 부족하게 되였다. 좀 더 키가 큰 나무의 잎을 뜯기 위해 목을 길게 빼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목이 길어지며 목이긴 새끼까지 낳게 되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매우 긴 목을 가진 현대의 기린이 나타난 것이다.” “뉴질랜드의 키위는 앞을 보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한다. 키위가 사는 지역은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하다 보니 날라 다닐 필요도 없으며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찾을 필요도, 날라 다닐 필요가 없어져서 눈과 날개가 퇴화 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의학, 체육 등 많은 분야에서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는 통설이다. 이 설명을 듣고 이 진화설의 이론적인 오류를 지적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을 통해 획득형질은 후손에게 유전되지도 않고 진화의 mechanism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없다고 결론 난 후에 현대 생물학에서 용불용설을 진화설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책임있는 주장과 논쟁을 하려면 과학지식의 생성과정에 숙달하고 수학문제풀이의 논리성이 몸에 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으로 치부해버리는 과학과 수학을 어느 나라나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
백과사전에서 과학의 정의를 “과학(科學, Science)은 사물의 구조, 성질, 법칙 등을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얻어진 체계적, 이론적인 지식의 체계를 말한다. 더 좁은 의미에서 과학이란 인류가 경험주의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근거하여 실험을 통해 얻어낸 자연계에 대한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되여 있다. 요약해서 다시 정의한다면 “실험을 통해 얻어낸 이론과 지식의 체계”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엄격한 과정을 통해 생성된 과학 지식도 반논[反論]의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면 기존의 주장을 접어야 한다. 이 원칙은 사회과학도 같을 것이다. 과학지식은 특정분야에만 적용하며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유통되며 영향을 주게 된다. 대중들의 대화나 주장들이 대부분은 확실한 근거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나 불명확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의 TV토론에서 한 토론자가 국가지도자가 자주 말이나 주장을 바꾸는 것도 문제지만 바꾸어야 할 것을 안 바꾸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며 공감을 가진 일이 있다. 정치지도자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지속적인 검증이 이루어 져야 하고 잘못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 지체없이 바꿔야 한다는 논리였다. 토론과 논쟁하는 것을 보면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독백이나 무모한 밀어 붙이기로 끝나기가 일수다. 의견이 다른 상대자라는 인식 속에서 논쟁과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마치 적[敵]과 사생결단할 태세로 임하기 때문에 토론이나 논쟁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만 만들게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든 교과가 목표가 있고 새로운 문화창조와 사회의 공통적 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자질이 길러져야 한다. 과학과 수학은 객관적 방법으로 형성된 지식을 배우고 지식생성의 방법을 연마하는 교과이기도 하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과학정책
과거에 미국의 부시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과학을 왜곡 했다는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부시의 과학과 관련된 많은 정책 중에 신앙에 기초한 절제 운동에 예산을 대폭적으로 지원 했다. 그가 취임했을 때 9,750만 달러였던 것이 다음 해의 2억 7천만 달러로 뛰었고 돈을 받는 단체 가운데 꽤 많은 수가 복음주의 종교 단체였다. 이들 단체의 활동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의 절제운동이며 성의 절제까지도 포함되는 것이기에 성교육 활동과도 직접 관련 되여 있는 것이다. 절제운동 단체들의 주장은 콘돔 사용법을 교육시키는 것 자체도 성의 무절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기존의 건전하고 안전한 성을 위해 콘돔 사용법을 교육시켜 오던 단체에는 예산이 삭감 되였으며 젊은이들의 성풍속도 는 물론 인구 증감에도 영향을 주었다. 어떤 정책이 합리적이었느냐?의 여부는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입증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다.
영국 브라이언 콕스[Brian Edward Cox, 1968.3.3- ]는 명성있는 영국의 물리학자다. 브라이언 콕스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세계에서 제일 큰 진공 공간[체임버chamber-방-房]을 만들어서 볼링공과 거대한 깃털을 함께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함], 피사의 “사탑 낙하 실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브라이언 콕스는 이 두 개가 정말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모습을 거대한 진공 방에서 보여 줌으로서 세계인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인터넷에 동영상 있음].
그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짓 밟히는 것을 개탄하면서 물리학자로서 한마디 하였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과학적 방법을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학 발달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적인 요소가 많이 침투해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의사결정이 과학적 근거 위에서 이루어 져야 하며. 그 중요성이 커진 만큼, 과학에 대한 조작과 왜곡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유혹도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을 경계 해야 한다”고 지적 하였다. 2009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 과학을 제자리로 복구해 놓겠다’고 선언 한 일이 있다. 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그가 미국 과학을 탈선시켰다고 비판한 셈 이다. 부시 정권은 과학정책을 과학적인 사고의 틀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념적이고 종교적인 기초에서 출발함으로써 혼란과 실패를 야기 시킨것이라고 비판 받은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왜곡정책 비판
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뉴욕타임즈[2009.1.26일자.]에는 매우 의미 있는 글이 실였었다. “과학을 향상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향상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 과학계의 어깨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 드는 연설 내용이라는 점을 전하며 과학과 민주주의는 항상 쌍둥이로 지내왔다고 지적했다.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역으로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되며 한 나라의 과학은 마냥 인간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락하고 탈선했을 때에는 그 나라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유롭게 정보와 자료를 평가하고 대안을 비교·분석하며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런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에 조작과 왜곡이 있을 때에는 민주주의 자체가 왜곡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민주주의 기능에, 과학적 방법을 강조한것은, 이런 연관성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한 나라의 과학은 마냥 인간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락하고 탈선했을 때에는 그 나라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1999년 유네스코(UNESCO)가 주체했던 세계 과학자 컨퍼런스[conference]에서 어느 학자의 발표 내용처럼 과학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하는 논리의 형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유롭게 정보와 자료를 평가하고 대안을 비교·분석하며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런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에 조작과 왜곡이 있을 때에는 민주주의 자체가 왜곡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뉴욕타임스의 주장이 어찌 미국 민에게만 전하려는 메시지인가?
수학과 과학의 교육 목적
수학문제를 선다형문제로 풀었을 경우 과정이 잘 못 되었다 해도 밝힐 수 없기 때문에 과정을 소홀히 하는 큰 약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어느 교과 보다 수학은 정답보다 논리적인 문제 풀이를 하는가를 가르치고 평가해야 한다. 수학은 수와 함수,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자연과학의 언어’이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전통적인 자연과학뿐 아니라 최근 생겨난 전산학, 정보 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자연 과학 분야의 학문은 수학을 잘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수학과목을 좋아하는 학생은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을 것이 지만 수학을 어느 나라나 필수 교과로서 배우게 하려는 목적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을 배양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의식할 겨를이 없다. 수학만큼 학습자의 변별력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교과는 없다. 그러나 문제풀이에서 정답을 가장 많이 찾아 낸 자가 논리적 사고력이 우수한 학생일수 만은 없는 것이다. 과거에 초등학교에서 99단이라는 것을 무조건 외우게 하였었는데 99단 암기는 논리적 사고 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연산의 편리성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는 한국에서도 99단을 외우게 하지는 않겠지만 호주에서는 스스로 수의 개념을 깨우치고 연산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 사칙연산[四則演算]의 과정을 스스로 탐구하고 결과를 얻어 냄으로써 논리적인 수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수학이 지향하려는 목표이다. 수학이야 말로 과정이 중요한 교과인데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던지 정답만 맞추면 최선이 다 보니 논리성이나 창의성 을 팽개칠 수밖에 없다. 수학과 비교적 관계가 적은 인문학 분야는 대학 입학과 함께 수학은 영원한 결별이며 일반인들도 그 지겨운 수학을 왜 공부하였는지를 모르게 된다. 수학에서 그 많은 문제 풀이는 수학적 개념들의 상호 관련성을 통합하여 수의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의 구조 자체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현상을 막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이 배양되기 때문이다. “과학”이라고 부르는 모든 학문의 가장 밑바탕에는 수학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과학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기초 위에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전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학문제 풀어가듯 일상문제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그 결과가 확고한 것인데 사회 현상은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고 있다. 사회의 밑바탕에 너 나 할 것 없이 어떤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검증하려는 과학적 태도와 수학적인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결과를 얻어내려는 풍토가 조성된 사회와 국가가 안정과 평화가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입증되고 증명이 분명한 주장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 과학적인 사고 [思考]의 기반 [基盤] 사회](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책소개-생명과학이야기-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