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대한민국의 소원, 노벨상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
지난 4월 27일에 (2021.04.27) 74살의 한국 여배우 (女俳優) 윤여정 (尹女貞)씨가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 역으로 영화부문의 최고상인 아카데미 조연상 (助演賞)을 수상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고, 더구나 시상식에서 수상소감 (受賞所感)은 금메달감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연기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에요. 저는 오랜 경력이 있고, 한걸음 한걸음 제 경력을 쌓아오려고 노력했거든요. 세상에 펑!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외에 대한민국에 노벨수상자가 없다. 노벨상은 매년 10월 초에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한국인에게도 수상자가 나오지 않나 헤서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는데 지남해 (2020년)에서울대의 현택환 (玄澤煥) 교수가 수상 (受賞)하지 않을까? 해서 그의 주변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 노벨 화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혔었으나 안타깝게 수상하지 못했다.
현택환 (56) 서울대 석좌 교수
현택환 (56) 서울대 석좌 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 (IBS)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은 서울대에서 취재진과 만나 “올해는 수상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오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 (BTS)의 ‘Not Today’를 틀어줬다”며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현 교수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것 자체가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급 반열에 들어갔다는 좋은 지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그만큼 수준이 올라갔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정보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국내 과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현 교수를 노벨 화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점찍었다. 하지만 노벨 화학상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미국의 제니퍼 A. 다우드나에게 돌아갔다.

현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저를 포함해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겼다. 해외 주요 연구 기관들이 설립된 지 100년이 더 넘은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기초 과학 연구 지원 역사 30년 만에 위상이 올라간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그는 정부에 감사하다는 뜻도 전했다. 현 교수는 “23년간 서울대 교수, 8년간 IBS (기초과학연구원) 단장으로 일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다. 여러 지원 덕에 나노입자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학자의 창의성은 자유로운 연구 기회에서 나온다”며 젊은 과학자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수상하지는 못 했지만 미래의 노벨 화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는 현 교수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올해로 연구 23년 째인데 이번에 노벨상 후보로 선정된 2개 논문은 나노입자 디자인 · 합성 등을 다룬 초창기 논문”이라며 “향후 10년 동안은 나노기술을 활용해 난치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는게 제가 가진 큰 꿈”이라고 했다. 석좌교수는 무언가?
석좌교수 (碩座敎授) 규정은 교육기관마다 다르고 대우도 일정하지 않으니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으나 명성 (名聲)이나 경력 (經歷)이 탁월 (卓越)한 사람에게 그의 경험을 교육현장에서 발휘시켜보려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현택환 교수의 연구업적은 노벨상수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한국의 학문 수준은 아직은 노벨상이 이르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24명으로 세계 5위다. 그동안 한국이 일본에게 짓눌려서 기를 못 피다가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과학 분야도 일본을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분가들의 견해다. 여배우 윤여정 수상소감 처럼 아카데미상을 생각하고 연기한 것도 아니고 맡겨진 역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구도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해서도 않되고 학문자체에 몰두하며 시종일관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결과도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빛내리 교수
현택환교수와 거의 동급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교수가 있다. 김빛내리 교수다. 김빛내리 교수는 마이크로RNA (microRNA)의 생성 원리와 작용 기전 및 생물학적 기능을 밝혔다. 또한 rna 연구를 통해 줄기 세포와 암 세포의 유전자 조절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최근에는 rna 꼬리 변형 연구 분야를 개척하였고,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 지도를 작성하는 등 분자 생물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1969년 6월 18일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난 김빛나리 교수는 microRNA의 생성 경로를 밝힌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002년에 microRNA의 생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고, 이어 microRNA의 생성 인자인 드로셔 (Drosha), DGCR8, RNA 전사효소 II, PACT 등을 동정 (同定; 생물의 분류학상 [分類學上]의 소속 ·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 하였다.

김빛내리 교수의 연구는 microRNA를 통한 유전자 및 세포 조절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기여 하였고, RNA간섭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배아 줄기 세포에서 만들어져 줄기세포 유지를 도와주는 microRNA를 발견하였으며, 줄기세포에서 microRNA가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밝힘으로써, 유전자 조절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암세포의 성장과 사멸을 조절하는 microRNA를 발견하여 암생물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김빛내리 교수는 1998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박사학위과정에서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치료법을 개발하였다. 이후 미국 펜실바니아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일하면서, 스플라이싱과 RNA 분해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인 Y14의 기능을 밝혔다. 2001년 서울대에 부임한 후 microRNA 연구를 시작으로 RNA를 통한 유전자 조절을 연구하고 있다. 2008년에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2010년 국가 과학자 및 서울대학교 중견 석좌 교수로 선정되었고 2012년 기초 과학 연구원 (IBS) RNA 연구 단장으로 선정되어 현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 및 서울대학교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21년 5월 6일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IBS) RNA 연구단장 (52,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이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단체인 영국 왕립학회 회원에 선임됐다. IBS는 김 단장이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정됐다고 6일 밝혔다. 왕립학회는 1660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학술 단체다. 영국의 과학 한림원으로 과학 연구 진흥과 정책 수립을 이끄는 한편 국제 자연 과학 연구의 중심으로도 꼽힌다. 왕립학회는 ‘자연 지식의 개선에 대한 심대한 기여’를 기준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매년 62명 이내 회원을 선출한다. 그중 외국인은 자연 과학 전 분야에 걸쳐 전 세계 10여 명에 불과하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 과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왕립 학회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현재까지 280여 명이다. 이러한 전통과 권위 때문에 왕립 학회 회원은 과학자 최고 영예로 여겨진다. RNA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김 단장은 서울대 미생물 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생물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 · 코로나19) 백신에 쓰인 전령RNA (mRNA)의 분해를 막는 ‘혼합 꼬리’를 2018년 발견했다. 지난 해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 전사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해 진단 기술을 개선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12년부터 IBS RNA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김 단장은 2010년 국가 과학자, 201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정됐다. 김 단장은 2014년 미국국립과학원 외국인 회원으로도 선정돼 한국인 유일 세계 가장 권위있는 두 학술원에서 모두 회원으로 선정됐다.
일본의 과학계 풍토에서 배워야 할 점
일본은 물리, 생리 의학 분야에서 2014년 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으로, 그리고 재작년과 작년에도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다. 전체 수상자 수는 아시아 1위이자 과학에 한정할 경우 세계 5위, 21세기 이후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년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았던 평화상이 유일할 뿐 과학 분야에선 전무하다. 옆 나라에선 수상자가 자꾸 나오는데 같은 아시아인 한국에선 왜 안 나오느냐는 자탄도 매년 뻔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일본은 어째서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일까?
빠른 근대화와 제국주의 시기 축적한 유산
어릴 적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수학했던 다카미네는 1917년 이화학연구소(우) 설립을 주도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에 합류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군사 기술을 중심으로 한 과학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시작으로 많은 유학생을 서양에 보냈다. 이들은 차후 일본의 기초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는데, 주로 배워온 분야가 바로 화학, 의학, 물리학이었다. 반면에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순수 학문 쪽 연구가 시작된 역사가 훨씬 짧은 데다 절대적인 인적 · 물적 투자 규모도 적다. 메이지 유신을 근대화 교육이 시작된 기점으로 본다면 일본은 근대 교육 제도를 한국보다 70 ~ 80년은 빨리 도입한 셈이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며 ‘노벨상의 산실’로도 불리는 ‘이화학 (理化學) 연구소’만 하더라도 1917년에 설립돼 100년을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일본인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최고 대학이라는 도쿄대와 함께 교토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노벨상 만큼은 교토대가 도쿄대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많다. 일본이 일군 노벨상의 성과를 생체 실험 연구 덕으로 돌리는 건 비약일지 모르나, 전쟁과 식민지 개척이 일본 과학 발전에 일으킨 상승 효과는 고토 히데키 등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패전 직후에도 일본은 기초 과학 육성을 국가 재건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일관성 있게 실험 시설에 투자하는 등 장기적 지원책을 펴왔다. 지방 국립대에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기초 과학 교육을 강화했고, 1960년대 이미 미국을 비롯한 과학 선진국에 연구자를 대거 파견해 이론 습득과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했으며, 1970년대 이후부턴 지식의 수입을 넘어 자체적인 기초 과학 교육 육성에 주력해왔다.
일본의 도교대와 교토대

일본 정부가 투자한 `카미오칸데`와 `슈퍼 카미오칸데` 를 기반으로 도쿄대 고시바, 카지타 교수가 각각 2002년과 2015년 노벨 물리학 상을 수상했다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했다고 해서 노벨상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벨상이란 성과 이면에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출신 대학은 최고 명문인 도쿄대와 교토대가 가장 많지만 다른 대학 출신도 상당수 분포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지방 대학들이 전반적으로 연구 환경이나 구성원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일본 정부가 전후에도 편중 없이 일관성 있게 기초 과학 진흥책을 전폭적으로 추진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2016년 저명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한국이 국내총생산 (GDP) 대비 연구개발 (R&D) 투자 비율은 세계 톱이지만 응용 분야에 치중됐던 점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원인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실험 중시 풍토
2002년 학사 학위만 있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의 수상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점은 단기 성과엔 적합하지 않겠지만, 일본 과학이 노벨상 같은 큰 업적을 내는 데는 힘이 되고 있다. 대표적 예가 2002년 학사 출신으로 전례없는 수상자가 된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 제작소 연구원이다. 다나카는 연구를 위해 200번이 넘는 시행착오를 겪다 우연한 실수로 단서를 얻었고, 그 단서를 놓치지 않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얻었다. 대학원 경력도 없고, 학부 시절 유급할 정도로 평범했던 그의 성취는 단기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사원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패도 용인해준 시마즈의 연구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이 당장 성과가 없거나 신통치 않아 보이는 테마라도 연구에 진득이 매달릴 수 있게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은 변화에 매우 민감하고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연구 풍토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는 배경에는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효율과 성과 위주의 풍토는 단시간 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원천 기술 개발로 이어지지 않아 응용 기술로서의 한계에 직면하기도 한다. 당장 돈이 되는 공학 등 응용 학문에 대한 선호도가 일본에 비해 한국이 높은 점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돈이 되는 연구에만 급급
‘네이처’ 역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주목 받자 ‘2020년까지 AI 1조 투자’라는 계획을 밝히는 등 시류에 흔들리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일본의 연구와 실험 중시 풍토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자리 잡은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학부 졸업반 때부터 세미나 팀에 들어가 특정 연구 주제를 선정해 논문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입시 위주 교육에 이공계 우수 학생들의 의대쏠림 현상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이후 졸업 때까지 취업용 스펙 쌓기에 매달리게 되고 학부 논문은 요식 행위가 돼버린 한국의 상황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일선 초·중·고교에서 과학 시간에 실제 도구를 이용해 실험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여러 실험 장비를 제한 없이 다루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보다 교과서에 쓰여진 지식만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주가 되다 보니 실험 정신과 창의성이 싹틀 여지는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수상자 오스미 교수는 청소년 시절부터 기초 과학에 빠진 괴짜 였다. 아사히 신문은 오스미 교수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에 대한 헤소마가리 (외골수) 개척심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 우물 파기
한 우물 파기가 가능한 환경뿐 아니라 그런 괴짜들이 다수 존재하는 문화도 한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회는 ‘헤소마가리 (외골수)’ ‘오타쿠’ 등으로 상징되는 자기 관심 분야에 미친 듯 몰입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 눈엔 쓸데없어 보이거나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런 시선에 아랑곳 없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천착이 간혹 독창성으로 발현돼 노벨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흔히 일본의 제조업 등을 얘기할 때 언급되는 모노즈쿠리, 즉 장인정신도 과학 연구 분야에서 발견된다. 대학 연구실은 도제식 시스템으로 운영돼 마치 가업처럼 제자가 스승의 연구를 끊김 없이 계승하고 원로 교수와 젊은 교수들 사이 수직적 연계성도 강하다. 성과를 낸 교수가 연구실을 갖고 조교수, 강사,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분야를 집중 연구하는 것이다. 교수가 퇴임하게 되면 후임 교수가 승진해 연구실 전체를 물려받아 연구를 계속하죠. 인적자원이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연구의 지속성이 확보되고, 시스템적으로 후임 연구자를 육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교수와 부교수, 조교수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도제식 시스템
노벨 과학상 수상자 대부분이 순수 국내파인 일본은 특유의 도제식 시스템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물리 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이런 도제식 시스템의 강점이 잘 드러난 사례다. 그는 스승인 고시바 명예교수의 연구를 이어받아 결실을 맺었다. 그뿐 아니라 1949년 일본에 첫 물리학상을 안긴 유카와 히데키,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 2008년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까지 모두 한 분야에 대한 수직적 연계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학계와 연구 문화가 국내에 매몰되는 경향은 단점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과 인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도제식 시스템은 노벨 과학상에 있어 상당한 효과로 이어지는 듯하다. 올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서울대 현택환 교수는 설립 100년이 넘은 이화학 연구소와 10년도 안된 기초과학연구원 (IBS)을 비교하며”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일본, 독일, 미국 등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30년 가까운 침체, 좁혀진 국력과 소득 격차, 한류의 부상, 역사 문제 등의 여파로 한국에서 일본은 ‘별 볼일 없는 나라’ ‘상대할 가치도 없는 나라’ 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낮은 해외 유학 진학률이나 산업의 갈라파고스화 등 내향적이고 폐쇄적으로 흐르는 사회의 모습은 한계로 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을 과소평가 해선 안된다”고 경고 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여전히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이자 아시아 유일의 G7 참여국이라는 사실은 차치 하더라도, 그들이 축적한 과학 기술과 인프라는 막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가장 껄끄러운 이웃임에도 한국이 향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평가와 선정 과정에 있어 일부 편향성 문제가 제기 되기도 하지만 노벨 과학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발돋움 했다지만 아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분명 아쉬운 대목일 수밖에 없다. 노벨상을 향한 지름길은 수상이라는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데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
2016년 한국을 찾은 일본 이화학 연구소의 마쓰모토 히로시 이사장은 “한국이 진정 노벨상을 원한다면 오히려 그 누구도 노벨상을 노리고 연구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올림픽 금메달이 가치 있는 건 선수들의 오랜 땀과 정성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노벨상에 있어서도 수상이라는 결과 보다 중요한 건 과정을 만드는데 있다.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간다면, 한국도 머지않아 수상의 영예를 안는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