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동물의 방향감각 및 회귀본능(2)
남녀간의 방향감각의 차이
편견일 수 있지만 필자는 여자들은 방향감각이 남자들보다 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들은 주차장에 후진으로 밀어 넣는 일을 싫어하기도 하고 능숙하지도 않으며 가보지 않은 길을 꺼려해서 웬만하면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와같은 생각이 일반적인 현상이라서 인지 남녀간의 방향감각의 차이에 관한 과학적인 분석도 있다. 어떤 곳을 찾아갈 때 남성과 여성은 길 찾기 전략이 다르다. 남성은 방향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두 블록 갔으니까 이번에는 왼쪽으로 한 블록 가면 거기에 은행이 있겠지 하는 식으로 찾아간다. 반면 여성은 거리의 표지물을 잘 기억한다. 그래서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파출소에서 왼쪽으로 가면 거기에 은행이 있겠지 하는 식으로 찾아간다고 한다. 집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대체로 어머니가 물건을 찾는 것은 아버지보다 장소를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필자도 뭘 찾아오라는 명령에 찾지 못하고 재차 질문하다가 타박받는 경우가 있으며 이와같은 일반적인 경향때문인지 “남자들은 멍충이”라는 극언을 들은 일도 있다. 남녀의 이런 공간 감각 차이는 수십만 년 동안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사는 곳 근처에서 채취 생활을 해오면서 뇌 구조가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남녀 간의 성적 분업이 확대되면서 뇌 구조에도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를 “남자 사냥꾼, 여자 채취자 이론”이라고 한다. 여러 명이 협동해 동물을 뒤쫓는 사냥은 마을 주위의 숲을 다니며 채취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하학적 공간적 인지 능력을 필요로 한다. 반면 여성은 부락 주변에서 열매나 채소를 모아 식사를 준비했다. 따라서 어디에 가면 아직도 채취할 열매가 많이 남아 있는지 알아내는 표지물 기억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만 여성이 방향 감각이 둔한 게 아니다. 미로 속에 쥐를 가두고 출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재면 수컷보다 암컷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또한 암컷 쥐에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등 안드로겐을 주사한 결과 암컷 쥐는 미로 찾기 능력이 향상됐다. 그래서 남녀의 이런 방향 감각 차이를 호르몬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1997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 대학 연구팀은 남녀의 공간 인지 방식의 차이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심리 검사를 통해 공간 능력의 차이는 사춘기 이후에 생기며, 특히 여자는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월경 때 공간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남자는 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면 멀리 짝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공간 능력이 생긴다. 반면 여자는 임신 때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공간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는게 이 이론의 설명이다. 진화의 원천은 먹이 경쟁이 아니라 생식 경쟁이라는 것이다.
제왕나비의 회귀본능
동물의 회기성은 본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특성이다. 연어, 물고기 등은 그렇다쳐도 인간의 눈에 하찮게 보이는 곤충들이 연어 등 척추동물의 회기성과 손색이 없게 그의 출생지를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본능이다. 미국의 제왕나비[Danaus plexippus-moparch butterfly]의 대이동과 회귀하는 장면은 극적이다. 제왕나비는 캐나다 등 미국 동부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곤충이다. 나비의 이름을 “제왕[帝王-monarch]”이라고 한 연유를 찾지 못하였지만 거의 5000km의 멀고도 넓은 지역을 오고 가며 살아가니 세상을 호령하던 제왕쯤으로 생각한 것을 아닐까? 한국의 호랑나비와 비슷하게 생겼다. 제왕나비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10-11월에 그들이 활동하던 지역을 떠나 멕시코 등 남쪽의 산악지역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멕시코의 산악지역이 북아메리카의 동부보다 따듯해서가 아니라 제왕나비의 생리적 특성에 맞는 지역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제왕나비는 외온성[外溫性] 동물이다. 인간은 내온성 동물이지만 온도변화에 대해 체온조절이 잘 안되므로 난방장치 없이는 겨울을 나기가 매우 힘들다. 반면에 외온성 동물의 장점은 외계온도의 변화에 맞게 체온이 조절된다는 것이다. 대사에 드는 에너지 비용이 적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물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이들은 사람처럼 난방이나 냉방장치가 필요없다. 그러나 외부의 열에 의지하므로 밤이나 겨울에는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외온성 동물 중 꿀벌은 추운 날 떼를 이루어 열을 모으고 더운 날에는 물을 날라다 날개로 부채질을 해서 벌통의 온도를 낮춘다. 도마뱀은 태양열로 체온을 조절해야 하므로 햇빛에 따라 이리 저리 적절한 곳을 찾아 움직이며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제왕나비가 따듯한 지역에서 외부기온에 맞게 체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며 그렇기 때문에 쉴새없이 먹이를 섭취하게 된다. 제왕나비의 먹이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 박주가리잎이다. 박주가리는 줄기를 자르면 우유같은 액체가 나오는데 이런 특성때문에 영어로 milkweeds라고 한다. 박주가리의 이 우유는 많이 축적되면 독성이 되며 박주가리로 성장한 제왕나비나 유충을 개구리나 두꺼비같은 천적이 먹었다가는 구토하며 큰 코를 다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는 초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남쪽을 향해 날아가는 수없이 많은 제왕나비들의 행렬이다. 제왕나비들의 행선지는 멕시코 서부 미초아칸 주에 있는 전나무 숲이다. 그곳에 모여든 제왕나비들은 전나무 수관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 봄이 될 때까지 수개월간 겨울잠을 잔다. 수백만마리의 제왕나비들이 체온 유지를 위해 서로 몸을 맞대고 촘촘히 붙어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때문에 제왕나비들이 도착할 시기 즈음에 멕시코의 미초아칸 마을에서는 ‘죽은 자들의 밤’이라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조상의 영혼이 나비가 되어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는 주민들은 나비 앞에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한다. 제왕나비의 대이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봄이 되면 다시 자신들이 여름을 보냈던 캐나다 중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가는 도중에 텍사스 즈음에서 하얀 유액을 분비하는 식물인 박주가리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면 그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성충이 되어 다시 미국의 동북부지역 및 캐나다를 향해 날아간다. 따라서 제왕나비의 이동 시기는 애벌레의 숙주식물인 박주가리의 개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제왕나비는 애벌레와 성충 기간을 포함해 세대당 2개월 정도 생존하므로 다음해 초겨울 멕시코에 도착하는 개체들은 전년에 찾아온 나비의 4대손 정도 된다. 최장 6개월 이상 생존하며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단숨에 이동한다는 것이다. 즉, 제왕나비들은 캐나다 중부에서 멕시코 해안까지 왕복 5000여㎞의 거리를 4대에 걸쳐 대를 이어가며 이동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들의 대장정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도 장엄한 자연 현상으로 손꼽힌다. 철새들이 이동할 때는 대륙횡단의 경험을 쌓은 리더가 있다고 하지만 제왕나비는 그들의 4대조[代祖]가 사용하던 비행로[飛行路]인데 이를 거의 오차가 없이 오고 간다는 것이 경이로운 것이다. 제왕나비는 그 긴 거리를 태양의 고도와 움직임까지 감지해 기류 변화와 서경 50~60도선의 일정한 경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간다. 몸체 길이 4센티미터, 몸무게 0.5그램 정도의 작은 몸체를 지닌 이 곤충의 여행 경로는 한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철새같이 비교적 큰 몸집의 동물처럼 꼬리표나 무선송신기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왕나비의 장거리 이동 경로는 지역마다 각기 다른 탄소와 수소 동위원소의 분포를 이용한 날개의 분석 연구법이 도입된 이후에야 처음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9년에는 이들의 몸에 내장된 특별한 GPS네비게이션 장치도 발견됐다. 과학자들이 제왕나비의 더듬이를 자르거나 검게 칠한 결과,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혼란스럽게 날아가며 모두 이동 방향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에 비해 더듬이에 투명한 에나멜을 칠한 개체들의 경우 이동에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연구결과로 인해제왕나비는 뇌에 태양의 위치와 시간을 인식하는 주기시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듬이에 빛을 인지하는 또 다른 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 제왕나비의 경우 다른 동물과 달리 2개의 생체 시계가 서로 연결된 형태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제왕나비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장거리 항해에 성공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제왕나비들이 지닌 신비한 생명의 또 다른 비밀은 제왕나비 유충이 먹는 유일한 식물인 박주가리와의 공생관계에 숨어 있다. 박주가리(milkweed)는 영어 이름처럼 우유 색깔의 하얀 즙액을 분비하는데, 그 즙액 속에는 ‘카데놀라이드’라는 강력한독성분이 들어 있다. 동물 세포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나트륨 펌프는 필수 효소가 세포막을 드나들며 중요한 양분인 나트륨과 칼륨을 운반할 때 작동한다. 그런데 카데놀라이드는 효소와 결합해 그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생명체에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된다. 하지만 제왕나비는 N122H라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카데놀라이드 성분을 섭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곤충들은 박주가리를 피하지만, 제왕나비 암컷은 박주가리 한 그루에 한 개씩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 제왕나비는 그들의 항로[航路]를 개척하기 위해 수십만년에 걸쳐 준비한 것이다.
귀소본능의 연구사례
귀소본능에 관한 연구결과가 생물들의 종류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지구 자기장을 활용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지빠귀 나이팅게일’이란 철새가 북유럽에서 아프리카 중남부까지 1500여㎞나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남북으로 흐르는 자기력선을 감지해 이용할 수 있는 생체 시스템을 자기 몸 안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카리브 해의 “바닷가재” 역시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한 뒤 수십㎞ 떨어진 자기 집을 찾아간다는 등의 연구논문이 과학전문지(誌)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보편적 진실은 아니다라는 반론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진행한 연구결과도 마찬가지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조사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은 2004년 “지구 자기장이나 태양의 위치로 방향을 파악하기보다는 사람이 만든 길을 기억해 뒀다가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당시 비둘기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하고 인공위성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비 등을 이용해 이동경로를 조사했는데 “비둘기들이 일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데도 교차로를 따라 도는 등 우회로를 이용하거나, 특정 건물을 보고 방향을 잡는다.”는 등의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야생동물의 놀라운 회귀능력은 국내에서도 여러 번 관찰됐었다. 지리산반달가슴곰 ‘장군’이와 ‘반돌’이는 수년 전 야생에 방사됐을 때 본능적인 귀소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리산 속에 놓인 양봉 꿀통을 수없이 털던 이들 반달곰은 직선거리로 최고 16㎞ 떨어진 장소로 네 차례나 옮겨졌었다. 하지만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래의 지점으로 번듯이 되돌아와 다시 꿀을 털곤 했다고 한다. 반달곰관리팀은 당시 “곰을 마취시켜 차에 실은 뒤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도록 한 상태에서 이동했는데 어떻게 돌아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고 한다. 본래의 서식처에서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지리산 야생 삵이 30㎞ 떨어진 곳에서 치료받은 후 보름여 만에 제 살던 곳을 정확하게 되찾아간 사실이 서울대 로드킬조사팀의 위성추적시스템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