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땅속의 터줏대감, 지렁이(2)
지렁이 알이 고생대[古生代]의 화석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면 지렁이는 적어도 4억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 인류의 조상의 년대를 유인원[類人猿]과의 공동조상으로 까지 치면 약400-800만년이고 현생인류와 가장 가깝다고 간주하고 있는 크로마뇽인으로 보면 인간의 조상이 3만 5천년에서 1만년전 사이에 지구상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으니 지렁이의 역사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양지차의 장구[長久]한 세월을 지구에서 버텨온 터줏대감 생물이다.
더구나 다른 생물들이 물속이나 지상에다 삶의 터전을 잡은 반면에 지렁이는 특이 하게도 땅속을 택하였다. 땅을 파는 생물은 꽤 있다. 여우나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등 많은 생물들이 땅을 파는 도사들이긴 하지만 지렁이 처럼 흙을 먹어 가며 땅에 구멍을 뚫어 가는 생물은 없는 것이다.
지렁이의 소화기관은 곧은 창자[直腸]처럼 입에서 항문까지 직선으로 뚫려 있다. 지렁이가 흙을 먹어 소화 하는 것이 아니고 흙속에 유기물을 소화시켜 에너지를 얻으려 하는 것이지만 하루 세끼 밥 먹듯 허구한 날 흙을 퍼 먹어 대니 땅속이 지렁이 천지가 된 것이며, 터줏대감으로서의 확고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렁이가 흙을 파먹고 그들의 소화기관을 통과 시키며 배설하는 똥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떤 생물의 똥이나 불쾌한 냄새가 나게 마련이나 지렁이 똥은 흙냄새가 난다. 이것을 분변토[糞便土]라고 해서 소중하게 다루게 되었다.
대지[大地]의 장[腸]
라틴어로는 지렁이가 지상에 있는 모든 흙을 그들의 창자를 통과 시키는 “대지의 장[腸]”이라는 의미로 “Lumbricus”라고 한다. “지렁이”라는 어원(語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한자[漢字]를 아는 선인[先人]들이 ‘땅(地)’과 ‘용(龍)’ 자를 써서 ‘지룡’으로 불렀다는 문헌이 있는 것을 보면 지룡에서 지렁이로 불리워진 것이라는 추리를 하게 된다. 예전에 어른들이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는 사자성어를 “문둥답세기”라고 투박하게 표현하는 소리를 종종 들은 일이 있는데 한자 모르는 서민들이 지룡이라고 유식한 체 하기가 쑥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선인들은 지렁이가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에 땅속의 용[龍]으로 떠받든 것 같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지렁이를 주로 의약용으로의 연구 분석하였으나 서양은 토질과의 관계 생태적인 역할의 연구가 이루어졌었다. ‘마디’[環節-환절]로 되어 있는 지렁이는 머리 부분인 첫 마디는 입과 입주머니로 구성되어있고 입주머니는 입을 보호하고 흙 속의 갈라진 틈을 헤집는데 쓴다. 각 체절마다 짧은 머리카락 모양의 센털[剛毛-강모]이 나 있는데 센털은 주로 이동하는 데 쓰이며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몸통에 돌기 부위가 거의 없어 굴을 파기에 유리하고 피부에서 분비하는 미끈미끈한 점액은 땅 위를 기거나 굴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렁이류는 유기물이 섞인 흙이나 찌꺼기, 또는 땅 위의 식물성 찌꺼기를 삼키며 일단 먹이를 삼키면 강인한 근육의 힘을 이용하여 여러 물질을 뒤섞은 뒤 소화기관으로 보내게 된다. 이 때 소화기관은 효소를 함유한 소화액을 내어 먹이와 함께 섞는데, 소화액은 먹이로부터 아미노산과 당분, 그밖에 다른 유기물 분자를 뽑아내는데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른 것은 흙과 함께 영양분을 섭취하다 보니까 똥의 양이 많다는 것이다. 지렁이가 하루에 자기 몸 무게 만큼의 흙을 먹고 70%이상을 분변토라는 똥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지렁이는 소화되지 않은 분변토라는 몽실몽실한 똥을 지표면 밖으로 밀어내 놓는다.
다윈의 지렁이 연구
지렁이 연구는 찰스 다윈의 것이 효시[嚆矢]인 것 같다. 다윈은 1837년부터 1882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지렁이를 연구했다. 지렁이는 땅속에 무수한 굴을 파 땅을 갈아엎고, 흙을 먹고 배설해 분변토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해 준다. 땅은 그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지렁이에 의해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찰스 다윈과 지렁이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가 27세인 1837년의 일이라고 한다. 다윈이 박물학자 자격으로 학술 조사선 비글호를 타고 5년간 전 세계를 조사하고 막 돌아왔을 때라고 한다. 다윈은 5년간의 항해를 하면서 수집한 표본들을 열심히 연구를 하던 중 건강을 해쳐 시골에 있는 외삼촌의 집에 요양을 하기 위해 내려갔으며, 외삼촌은 그를 목초지로 데려가 자신이 몇 년 전에 뿌렸던 잿가루와 벽돌 조각이 땅 밑 몇 인치 아래에 묻혀 있는 현장을 보여 주며 이것은 틀림없이 지렁이가 끊임없이 지표면에 다량의 고운 흙인 분변토를 계속해 배출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지렁이의 이 심상치 않은 땅을 뒤집어 놓는 습성을 주목한 것이다. 다윈은 외삼촌 집에 다녀온 후부터는 당시에 ‘비옥토’[vegetable mould]란 이름으로 부르던 토양의 가장 비옥한 표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렁이의 활동이라고 굳게 믿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지렁이는 기껏해야 흙에 구멍을 뚫어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해 주는 단순한 일을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으므로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다윈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윈은 동료들의 비판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인정받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지만, 약 4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지렁이 연구를 한 기록을 남겼으며 100여년이 훨씬 지난 오늘 날에서야 그의 관찰기가 여러 종류의 책으로 번역되어 인기리에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다윈은 붉은큰지렁이가 수직으로 땅을 파며 식물의 뿌리가 밑으로 뻗어 갈 수 있도록 통로가 되고 굴벽의 부식토는 뿌리의 영양분을 제공하게 되는 것으로 주장하였으며 몇 십년이 지난 후 지렁이 학자들은 지렁이 굴의 내벽에 박테리아나 균류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이는 지렁이가 굴속을 드나들며 배설하는 점액질 때문에 형성된 결과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지구의 쟁기
그래서 지렁이를 “지구위 쟁기” 또는 “땅속의 농부” 등으로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가재의 비단띠 둘러보고 싶은 충동적인 허영심의 원죄[原罪](?) 때문인가? 지렁이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니 지상에서 웬만큼 빠릿빠릿한 동물들은 지렁이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아는 것 같다. 모두가 지렁이의 천적[天敵]이다. 두더지야 지렁이 잡아먹을려고 작정한 동물이고 새 종류를 비롯해서 지네, 개미 등의 눈에 띄였다고 하면 지렁이의 삶은 마감하는 날이다. 그러니 지렁이가 땅을 파지 않을 수 없다. 지렁이 중에 붉은큰지렁이는 2m 깊이까지 굴을 팔 수 있다고 하며, 밤이면 먹이를 찾아 지면으로 올라 와야 한다. 지렁이가 발톱이며 날카로운 이빨 하나도 없지만 깊숙하게 땅을 팔 수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지렁이의 입[Mouth]은 첫째 마디 등쪽 부분에서 앞쪽으로 덮개모양으로 나와 있으며 그 밑쪽으로 먹이가 들어가는 개구부[peristomium] 있는데 이 부위가 민감하게 발달되어 있어서 흙의 입자를 감별해서 먹거나 불필요한 입자[粒子]는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분비되는 점액질은 지렁이가 굴을 파 들어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어마어마한 굴삭기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것이지만 지렁이들은 신통치 않은 입으로 쟁기질을 해서 지구의 지표면을 갈아 놓았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지렁이들이 이런 작업으로 인간이 만든 어마어마한 건물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다윈은 그의 저서 “부식토 형성”의 첫 장에서 “고대 건물의 매립에 지렁이가 맡았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지렁이가 지상에 놓여 있는 것들을 땅속에 묻는 일을 기술하고 있다. “동전이든 금으로 만든 장식물이든 돌로 만든 기구든 일단 땅바닥에 떨어지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틀림없이 지렁이 똥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땅이 미래 언젠가 들추어질 때까지는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지렁이에게 유적[遺跡]보존의 용역을 주었을 리 없는데 지렁이는 이 일을 해 왔다. 다윈은 로마시대의 유적, 수세기전에 파괴했던 수도원, 저택유적 등의 발굴 현장을 관찰하며 지렁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지렁이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적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은 지렁이와 함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십억의 작은 미생물들과의 공동작업일 것이다. 분변토를 쏟아 내서 농사에 도움을 주는 일은 인간들이 피땀을 흘려 이룩하였던 유적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에 비교 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