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땅속의 터줏대감, 지렁이(3)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고, 힘이 약해 보여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담과 함께 1950년대의 영화 “길-La Strada”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안소니 퀸[Anthony Quinn]과 줄리에타 마시나[Giulietta Masina]가 출연 하는 흑백 영화다. 영화속의 남자 주인공 참파노[안소니 퀸 분]는 쇠사슬을 끊는 차력연기로 돈을 버는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 주인공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분]를 아내겸 조수로 데리고 다닌다. 참파노는 젤소미나를 폭력과 학대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정신지체의 그녀가 조금씩 삶의 가치와 행복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젤소미나를 노예정도로 취급하는 참파노가 범법행위로 유치장에 끌려간 날 그녀를 측은하게 여기며 따듯하게 대해주는 어릿광대 역 일마도에게 울면서 말한다. “나는 바보같고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한테도 쓸모가 없어요. 난 뭣하러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어릿광대역 일마도는 절망하고 있는 젤소미나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말을 한다. 땅바닥에서 작은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고 “하찮은 조약돌 하나도 쓸모가 있는 것이며 조물주가 부여한 각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다 라고… 이 말에 눈물 흘리던 젤소미나는 함박 웃으며 심기일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였던것 같다.
지렁이의 역할이 있다
누구나 체험하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비가 오고 나면 길위에 지렁이 한 두마리가 나뒹구는 것을 보게 된다. 지렁이가 축축한 것은 좋아 하지만 물로 꽉찬 땅속에서는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야 한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지렁이 속사정을 알리없지만 측은 한 맘으로 밟을 생각은 못할 것이다. 땅위에 굴러다니는 조액돌 하나도 의미가 있는데 지렁이야 더 말할 나위 없이 분명히 그가 하는 몫이 있는데… 사실 사람들 눈에 확 들어오는 지렁이가 땅속에 사는 생물체로서는 중대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땅속에는 천문학적인 갯수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땅속은 미생물체의 작은 우주다. 일리노이주립대학 곤충학과 교수인 제임스 B. 나르디(James B. Nardi)는 그의 책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에서 흙 1제곱미터의 소우주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다음에 나열하는 생물들이 지렁이처럼 거의 땅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나 지렁이와 함께 토양 생태계를 구성하고 각기 역할을 맞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르디가 조사한 토양은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지만 인공적인 토양이 아니고 자연상태의 토양에 이렇게 많은 생물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척추동물 한 마리, 달팽이와 민달팽이 100마리, 애지렁이와 지렁이 3000마리, 곤충과 다지류, 거미, 좀붙이 5000마리, 윤형동물과 완보동물 1만 마리, 톡토기 5만 마리, 진드기 10만 마리, 선형동물 500만 마리, 원생동물 100억 마리, 세균과 방선균 10조 마리가 흙 1제곱미터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이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유독성 폐기물 모니터
그러나 지렁이들은 수억년 전 부터 그들의 존재를 알고 서로간의 긴밀한 관계를 조성하며 지하생태계의 균형을 유지 시켜 오고 있는 것이다. 지렁이는 땅속의 사는 미생물에 비교 하면 엄청나게 큰 생물이며 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지렁이가 흙을 퍼먹는다고 하지만 흙이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고 흙속에 포함돼 있는 유기질을 끌어 들이기 위한 이용전략이다. 인간들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렁이의 역할은 어느 생물 못지않게 클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그러나 지구의 물이며, 산이나 들이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땅속도 마찬가지다. 지렁이도 이미 이 끔찍한 사실을 눈치 챈지 오래 됐겠지만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지렁이 몸속에 오염물질이 농축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DDT를 비롯한 각종 농약들이 땅속에 농축되었고 지렁이 몸속에 DDT가 심각할 정도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개똥지빠귀라는 새는 주로 지렁이를 잡아먹고 사는데 지렁이의 몸에 농축된 DDT량은 10-12마리만 잡아먹으면 치사할 수 있는 량이 지렁이 몸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렁이는 오염된 흙을 퍼 먹고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개똥지빠귀는 지렁이 하루동안 먹은 DDT함량이면 살아남을 수 없다. 겨우 살아남은 것들은 생식능력을 상실하고 알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확인하였다.이 연구결과로 미국은 70년대 초에 DDT사용을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힘이나 대가 센 사람을 비유적으로 “통뼈”라고 하는데, 지렁이가 물컹물컹 하니 연약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데 지렁이는 통뼈 이상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그래서 지렁이를 오염도 측정의 생물모니터로 쓰고 있다. 중금속중에 납[Pb]은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금속 중의 하나이며, 체내에 적은 양이 유입되어도 독성이 강한 것이다. 기준치 이상으로 납이 흡수 되었을 때, 인체내에서 주로 혈액, 신경계, 신장 등에 영향을 끼치며, 무기질의 흡수를 방해하고 생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과 같은 물질과 결합하여 그 기능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렁이는 납을 먹고도 오래 버티기 때문에 납같은 중금속 오염지역에 지렁이를 풀어서 납의 오염도를 측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를 구원[救援]한 지렁이
챨스 다윈을 필두로 해서 지렁이에 매달리는 학자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지렁이를 이용한 기업도 수없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지렁이 전문가 많아졌고 지렁이 사업과 지렁이를 이용한 유기농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한 국가가 지렁이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빈곤에서 탈출하고 경제적 자립까지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적대관계가 되면서 수십년간 경제적 곤경에 처하였지만 지렁이 유기농법으로 식량자급률을 95%로 이상으로 끌어 올리면서 이를 극복 하였다는 것을 국제사회는 인정하고 있다. 1991년 구 소련의 해체와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로 화학비료와 사료작물, 농약, 농기계부품 등 공급이 끊기자 공산주의 국가의 최대 약점인 국영형태의 집단농장이 견뎌낼 재간이 없었지만 국영농장을 소규모 가족농 중심의 유기농업체제로 바꾸었고 농사짓는 방식을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유기농업인과 환경단체들 사이에서는 쿠바를 “유기농의 메카”로 부르고 있다. 지난 7월 1일 미국과 쿠바는 54년간 단절되었던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며 8월 15일에는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이 재개설되고 성조기 계양식이 톱뉴스로 등장하였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