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미얀마(3)
지난 11월 28일 양곤[Yangon]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님의 안내로 양곤시내를 돌아 보는중에 한국대사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앞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수치여사의 자택은 이미 관광 명소가 된 것 같다. 대형관광버스 1대가 머물러 있고 중국인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굳게 닫힌 수치여사의 정문 앞에서 사진들을 찍으며 수치여사를 상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문에는 버마어가 쓰여져 있는 현수막 위에 수치여사의 부친인 군복 차림의 새파라 젊은 아웅산 장군의 사진이 걸려 있고 자택 뒤로는 양곤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인야호수[Inya Lake]와 연접하여 있다. 인야호수는 양곤의 2개 큰 호수 중에 하나다. 수치여사가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면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top뉴스로 등장하기가 일수다. 미국의 미주리주에 사는 존 예타우[John Yettaw]라는 사람은 아웅산 수치 집착증에 걸려 있었던 사람이다. 2008년, 당시 53세에 월남 참전용사이기도 한 그는 수치여사를 만나기 위해 양곤으로 들어갔으나 경비가 삼엄한 수치여사 집에 접근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는 뒷쪽으로 연접해 있는 인야호수를 헤엄을 쳐서 담장을 넘어 자택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아웅산 수치와 접촉하는 것은 중벌에 처하는 불법이며 이를 신고하지 않은 목격자들도 같은 처벌을 받게 됨으로 그를 발견한 수치 여사집에 가정부들도 전전긍긍 어찌 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예타우의 수지 여사집 등장은 그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예타우는 이를 인식하고 수치여사 만나는 것을 포기한체 귀국하였으나 수치여사 집착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 이듬해 5월초에 미얀마에 입국해서 다시 인야호수를 헤엄쳐 수치여사 자택에 잠입하였다. 그는 ‘나가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였고 수치여사는 그를 주택건물 바닥에서 자도록 허락한 뒤에 이튿날 당국에 신고하였다. 그는 2009년 5월 6일 새벽 5시 30분경에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수치여사와 가정부들도 가택연금규정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예타우는 7년의 강제 노동형을, 수치와 가정부에게 3년형을 선고 하였으나 당시에 미얀마의 최고 권력자 탄슈웨는 18개월로 감형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쉐다공[Shwedagon]
인야호수는 잘 어울어진 나무숲과 함께 양곤이 자랑할 만한 경관을 갖추고 있었다. 호수 주변은 시 외각의 빈민촌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넓고 화려한 주택들이 즐비하고 한국대사관을 비롯하여 미국대사관 등 각국 대사관과 미얀마의 명문대학인 양곤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다른 하나의 큰 호수는 “깐도지” 호수로 2500년 전 석가모니 재세[在世]시에 지어 졌다고 하는데 “쉐다공”[Shwedagon]이라는 파고다를 짓기 위해 흙을 파내다 보니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파고다를 빼놓고 구경거리가 있을까? 한국사람들이 “파고다”라고 하면 서울 종로2가에 있는 “파고다 공원”을 떠 올리게 된다. 이름이 바뀌어 지금은 “탑골공원”이라고 하지만 노년층은 지금도 파고다공원으로 통할 것이다. “파고다-Pagoda”의 한국어로의 번역은 “불탑”[佛塔]이다. 탑골공원은 불교문화의 유물[遺物]이다. 탑골공원에는 대한민국의 국보2호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서울 圓覺寺址 十層石塔]이 있다. 전국의 여러 사찰에 불탑들이 많이 있지만 파고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 문화권에 있는 나라에는 가는 곳마다 불탑인 “파고다” 투성이다. 국보2호인 “십층석탑”을 미얀마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미얀마 사람들은 “파고다”를 “존경받아야 하는 것”라는 의미로 “퍼야-Phaya”라고 부르며 부처님을 부르는 존경어로도 쓰고 있다고 한다. 파고다는 원래 부처님의 사리와 유품, 불전[佛典]을 묻고 이를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다. 동남아의 불교의 나라에서 파고다를 건축하는 일은 현세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덕으로 여기기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도 예로부터 불탑 쌓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은 것 같다. “쉐다공”[Shwedagon]이라는 파고다만 해도 2500년 전에 탑을 세울 언덕을 만들기 위해 호수가 만들어 질 정도의 흙을 파냈으며, 온통 금[金]으로 장식한 어마어마한 파고다를 만들었으니 파고다에 집착하는 미얀마국민들의 불심[佛心]은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기본이라는 견해가 타당한 것 같다.
탁발 불교수행
미얀마에는 군복무의 의무는 없지만 일생에 한번 승려생활을 하여야 떳떳한 인간으로 대접 받기 때문에 거의 누구나 이 수련기간을 거친다고 한다. 거리에는 주황색의 승려복을 걸친 10세 전후의 승려들이 떼를 지어 탁발 수행을 하고 있었다. 탁발은 불교수행법중의 하나로 걸식(乞食)수행을 말한다. 범어로는 핀다파타, 의역하면 걸식(乞食) 걸행(乞行)으로 푼다. 탁발을 하는 그릇을 발우라고 하는데 발우를 들고 맨발로 질서정연하게 걸어가는 행렬은 엄숙해 보였다. 탁발[중의 동냥]을 받을 때 승려스님들은 감사하다는 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도에게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었기에 신도가 감사한다고 하니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양곤의 순환철로 주변
서울의 지하철 2호선과 같은 순환기차를 탑승하고 도시 뒷골목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았다. 골목길 공터에 주차하고 좁디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가 기차역을 찾아가니 너무나 초라한 역사[驛舍]에서 역무원이 표를 팔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표를 사는 사람은 안내하는 목사님 한 한사람 같았다.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철로[鐵路] 위에 과연 기차가 굴러 가겠는가 할 정도로 형편없는 철길이다. 역사 벤치에는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길게 누어서 자고 있었고 철로 주변으로 참으로 목불인견의 삶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다. 비를 가릴 정도의 비닐 포장을 치고 좌판 형태의 각종 식품을 파는 구멍가게가 연이어 있었으며 가게 바로 옆쪽에는 연탄가루를 풀어 놓은 것 같은 새까만 도랑물이 고여 있었다. 좌판에 펼쳐 놓고 파는 아줌마가 수박 쪼가리에 새까맣게 달라붙는 파리떼를 연신 쫒고 있었다. 구석구석에 비닐 조각 등 쓰레기가 빈틈없이 쌓여 있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수박 쪼가리에 달라붙는 파리떼는 그렇다 치고 바로 몇 발짝 옆에는 좌판에 펴 놓은 생선에도 파리떼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동안 한번도 쓰레기를 치워 본 일이 없는 지역 같았다. 이와 같은 불결한 식품을 사가는 소비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20여분 기다리니 느린 속도로 기차가 도착하였는데 차량 구석구석에 일본어 안내문이 있어서 물어보니 일본에서 수명을 다하고 폐차되는 차량을 무료로 제공한 것이며 장차 기차와 관계되는 사업권은 일본에 맡긴다는 조건이라고 한다. 순환기차로 일주하지 못하고 몇 정거장만에 회행하였지만 철로 주변의 풍경은 하나같이 빈곤함과 불결한 모습이었다. 오후 3시쯤 되는 시각에 어둡고 침침한 음료수 파는 상점에서 삼삼오오 젊은이들이 앉아 TV화면에 넋을 잃고 있었다. 화면을 살펴보니 영국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 빈”이었으며 방영이 끝났는데도 젊은이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최빈곤 국가군에 속할 미얀마가 북한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15년전 일이지만 금강산 관광으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 마을의 주택내부를 드믄드믄 들여다 본 일이 있는데 낡기는 하였지만 북한 마을의 주택은 미얀마의 천막 주택보다는 나아 보였으나 비닐봉지 등 쓰레기 덤이는 보지 못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비닐봉지에 각종 상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온갖 생필품을 배급제로 충당하는 북한에서 비닐봉지는 불필요 하였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쓰레기 덤이 위에 살아도 자유가 있는 미얀마 빈민촌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쓰레기장 같은 빈민촌에도 황금색으로 치장한 불탑[파고다]이 곳곳에 있었고 꽃가게도 많고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실제로 미얀마 사람들은 불전[佛前]에 꽃을 바치는 행위는 성스럽고 축복으로 믿기에 불전에 바칠 꽃을 사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는다고 한다
“타나카”라는 천연화장품
승려들은 맨발로 다니고 일반인들이 양말이나 신발 신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미얀마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미얀마에 공장을 차릴려던 생각을 접었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였었다. 직접 가보니 신발다운 신발을 신지 않고 애어른 할것 없이 스리퍼를 끌고 다니니 미얀마에서 아무리 인기있는 브랜드의 신발이라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다. 미얀마에는 미인측에 들만한 젊은 아가씨들이 많았는데 예뿐 양쪽 볼에 투명하고 얄팍한 판때기를 붙이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타나카[Thanahka- 학명:Limonia acidissama]라는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가루로 천연화장품을 만들어 얼굴에 붙이고 다닌다. 역사가 2000여년이 된다고 하니 미얀마 민족과 함께하는 천연화장품이다. 타나카 껍질을 갈아서 사용하는데 강렬한 직사광선으로 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미백효과와 함께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고 한다.
미얀마는 한국에 비해서 너무나 넓은 나라[한반도의 3.5배, 남한의 6배-678,330㎢]로 천연자원이며 관광자원이 무진장한 나라로 보였다. 미얀마에서 인야호수는 꼭 봐야 한다는 지인의 권유로 양곤공항에서 인야호수 근처에 있는 헤호[Heho]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여 만에 공항에 도착하니 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활주로에 아슬아슬하게 비행기가 착륙하였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탑승객들의 짐을 리어커[손수레]로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냥쉐[Nyang Shwe]라는 도시 옆에 있는 인레[INLE]호수는 해발 880m여 높이의 고원지대에 길이가 22km, 폭이 10km나 되는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호수다. 호수주변의 7만여 명의 인구가 어업과 수상농장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호수가 아니라 호수도시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10여m가 되는 보트는 인레호수 사람들의 필수적인 교통수단인 것 같다. 호수를 가르며 통통소리를 내는 10여m쯤 되는 길쭉한 보트에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에 시속5-60km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보트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 같았으며, 곳곳에 레스토랑, 기념품가게, 한국의 베틀 같은 것으로 천을 짜는 직조공장, 대장간 등 볼거리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미얀마인들의 내세관
짧은 기간의 미얀마 방문을 통해 미얀마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소로운 일이나 필자에게는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더구나 양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인레호수[INLE LAKE]를 보고 나서 미얀마에 관한 인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인레호수 외에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선입감의 미얀마와는 너무나 다른 미얀마가 필자에게 다가 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빈민촌사람들을 초라하게 보는 것은 일방적인 견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교의 영향으로 현세의 삶이란 더 나은 내세의 세계로 가기 위한 일시적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현세에서의 물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껏 보시하고 공양하고 공덕을 쌓아 부처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미얀마는 특히 한국사람들에게 부쩍 관심이 높아져 가는 것 같다.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에는 비자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비행기 좌석이 없을 정도로 예약자가 많다고 하니 미얀마에도 태국처럼 한국인들의 러시[rush]가 일어 날 것 같다. 무엇보다 “과연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얽히고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겠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