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보리농사(3)
최근에 보리싹을 길러서 샐러드나 월남쌈 형태로 먹고 있다. 보리싹이 까칠한 촉감이나 비릿한 것이 맛으로 먹기에는 낙제점이다. 검증된 유효성분이 상당량 함유되어 있다는 정보를 신뢰하며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家難]한 사람들의 양식이었다. 보리가 식량작물로는 가장 오래된 작물 중의 하나로 기원전 7000년 전에 야생종이 재배된 기록이 있으며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보리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보리의 발생지는 중동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성경의 보리떡 다섯개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 전의 중동지역의 주요[主要]한 식량은 보리였다. 보리밥이 한민족만의 가난한 사람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가난한 삶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보리가 여물기도 전에 식량이 바닥이 나니 어쩌나? 파릇파릇 돋는 보리싹을 한 소쿠리 뜯어다 죽에 넣어 함께 끓이고 나물을 만들어 배를 채웠다. 이 시기를 넘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얼굴에 부황기가 들 정도였다. 굶기를 부잣집 밥 먹듯 하던 이 때를 보릿고개라 했다. 최근에 보리싹이 좋다고 해서 보약으로 생각하고 먹지만 보릿고개 시절의 보리밥은 근자에 보리싹 먹기보다도 고역이었다. 김보현 시인의 “꽁보리밥의 추억”이라는 시[詩]는 보리밥 지어 먹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묘사되고 있다. <청솔가지 그을음이, 찐득찐득 묻어있는 정지엔(정지: 경상도 사투리로 부엌을 말함), 구석구석 꾀죄죄한 때 국물이 베어 있다. 식구들의 시름을 달래 주려고, 서까래 한 귀퉁이에 매달려, 그네 타는 시렁 안에는, 거무죽죽한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긴 해 움켜쥐는 꽁보리 밥풀이 시커먼 一, 자로 배를 째고, 까칠까칠한 혀를 내민다.>
보리싹의 효능
보리밭길을 찾기가 힘들어 진지가 오래되었으나 옛 명성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보리밭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보리를 곡식으로 재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리싹에서 보물[寶物]을 빼내겠다는 계획이며 이미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國策事業]이라 주목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새싹보리’에서 고지혈증, 당뇨병 등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기능성 물질을 규명하고 고려대, 이화여대와 함께 그 효능을 입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새싹보리가 함유한 기능성물질인 폴리코사놀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콜레스테롤 경감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폴리코사놀 함량은 분말 100g당 최대 342mg으로 기존 식약청에 등록된 폴리코사놀 추출재료인 사탕수수(27mg)와 쌀겨(2.1mg)에 비해 약 12~16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적인 면에서 보리순은 다른 채소보다 월등한 영양성분을 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 고구마의 20배, 양배추의 26배에 이르는 식물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변비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우유의 14.7배, 사과의 20배에 해당되는 칼륨도 들어있어 생리통 및 활력 증강에 좋고, 철은 소간의 12.2배, 시금치의 24.5배가 들어있어 적혈구 생성 및 빈혈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최근에는 새싹보리에는 우리 신체에서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근원물질이라고 알려진 활성산소를 분해하는 SOD(수퍼옥사이드 디스뮤테이즈)효소가 다량 함유돼 있어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질환인 당뇨, 고지혈증을 비롯한 성인병 예방과 피부건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때문에 기능성 건강식품으로서의 기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보리싹의 기능성 연구
현재 농촌진흥청 기능성작물부를 중심으로 새싹보리의 품종별, 시기별 기능성물질 함량 및 항산화 효소 분리 연구가 계속되고 있어 더 많은 영양가치 및 효능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국내 보리 종자를 이용한 고부가가치의 신소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보리순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농진청은 새싹보리 전용품종, 재배방법, 지표성분(폴리코사놀, 사포나린) 추출법 등 관련 기술력을 이미 확보해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을 통해 기술이전을 실시하고 있다. 이미 청보리식품 등 7개 식품회사에 기술이전 돼 분말, 환, 청즙, 한과 등 다양한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새싹보리를 건조하거나 녹즙을 짜서 분말이나 정재로 개발한 제품이 건강식품으로 보편화돼 있는 반면 국내는 여전히 새싹보리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대다수인 실정이다. 보리는 2012년 수매 중단과 1인당 소비량 감소로 생산량과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는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재배 농가를 위해 2011년부터 보리의 어린잎인 새싹보리를 새로운 기능성 식품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에서 얻은 재배기술특허를 국내외 출원·등록했으며 기술을 이전 받은 산업체들은 새싹보리로 환, 즙, 분말 등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공 제품을 생산해서 매년 매출을 증대시키고 있다. 제품 제조 과정에서 사용하는 보리 종자와 새싹보리는 산업체와 농가 간에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2014년에 김제, 영광군 등에서 60ha정도 계약재배하였으며 지난해에는 130ha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새싹보리 재배농가는 안정적인 판로로 수익을 확보하면서 기존 보리 종자를 판매할 때보다 농가 소득도 약 23% 높아졌다는 것이다. 5월 전·후에 누렇게 익은 보리밭은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3, 4월 봄에, 그림처럼 펼쳐진 새싹보리 밭을 밟을 수 있을것 같다.
새싹연구의 선구자, 앤 위그모어(Ann Wigmore 1909-1994년) 여사
한국에서 새싹보리는 보릿고개 시절에 연명수단으로 식용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일찍이 일본 등 외국에서는 새싹보리의 기능성을 알고 연구와 활용방안을 심도 있게 찾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곡식은 사랑을 받고 풀은 가축의 사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20세기 후반부터 풀 정도로 취급받던 새싹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새싹에 관심을 집중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앤 위그모어(Ann Wigmore 1909-1994년) 여사다. 위그모아 여사의 스토리를 요약해 본다. 1909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앤 위그모어의 생의 시작은 평탄치 않았다. 앤 위그모어는 조산아로 태어났고 너무 약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자 했던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나, 자연 치료사였던 할머니가 앤을 구하여 정상적인 건강으로 회복시켰다. 그녀는 할머니가 1차 세계대전으로 상처 입은 군인들을 약초와 풀로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16세가 되었을 때까지도 학교에 가지 않아, 심지어 그녀의 이름조차도 쓰지 못했다. 할머니의 강요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소원했던 부모와 재결합하였고, 적절한 교육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생활에 적응하며,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음식을 포함하여 생활양식에도 잘 적응했으나 결국 이것은 대장암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끔찍한 자동차 사고까지 당한 그녀는 두 다리까지 못 쓰게 되었다. 의사는 신체기능을 잃은 두 다리의 절단을 권유했고, 앤 위그모어는 거절했다. 아버지 뜻에 반대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귀향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내 곁에 가까이 오지 않았고 오직 삼촌의 도움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앤은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채소, 곡식, 열매 같은 시골밥상으로 되돌아 왔다. 할머니가 했던 것을 본 대로 했고, 그녀의 건강은 회복되었다. 그녀는 야생 초와 풀들을 채집하고, 발에 붙였다. 이것은 병에 대해 자포자기한 게 아니라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풀들의 치료력을 믿은 결과였다. 그녀는 다른 녹색의 것들에 대해서도 탐욕스런 식욕을 발달시켜 풀을 씹고 그 즙을 마셨다. 앤 위그모어는 부뜨막에서 키운 밀싹 등 새싹으로 가축들에게 먹이며 병이 치료되고 건강이 개선되는 과정을 검증하였다. 우선 절단을 요구 받았던 두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기적적인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는 보스턴근처에 히포크라테스 건강원을 차리고 새싹식이요법으로 자연치료를 해주며 노후를 보내다가 1994년 2월, 불의의 화재사고로 85세에 사망하였다.
요시히데 하기와라(萩原義秀) 박사
앤 위그모어를 따르는 유명인은 많다. 앤 위그모어를 찾은 과학자중에 요시히데 하기와라 박사를 빼 놓을 수 없다. 앤 위그모어여사가 매달렸던 밀은 서양의 주식이며 보리는 동양에서 주로 이용하는 곡류다. 보리싹의 기능성 성분은 일본의 의사이며 약사인 요시히데 하기와라(萩原義秀)박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기와라 박사는 히포크라테스와 중국의학을 집대성한 진시황으로부터 자연 치유력과 음식의 치료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계속적인 연구 끝에 생즙이야말로 최상의 영양 공급원임을 알게 되었다. 생즙을 연구하던 어느 날, 하기와라 박사는 일본 남서부의 한 축산 농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상하게 여름인데도 다른 곳과 달리 벼가 보이지 않았다. 벼가 심겨져 있어야 할 자리는 모두 호밀, 귀리가 심겨져 있었다. 당시에 1에이커의 땅에 쌀을 생산하면 1600달러의 소출을 올릴 수 있는데 호밀을 심어서 팔면 겨우 120달러밖에 소출을 내지 못하였다. 하기와라 박사는 농부에게 왜 이익이 덜 나는 호밀을 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농부는 호밀의 싹을 소에게 먹이면 우유 생산이 늘어나고 연간 소득도 건초나 수입사료를 먹일 때보다 4,900달러나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가 젖을 낼 수 있는 기간도 5~6년 늘어난다고 하였다. 이 농부의 얘기에 고무된 하기와라 박사는 즉시 온갖 채소와 풀의 성분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마침내 보리새싹이 가장 생리활성성분이 풍부하며 사업화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보리의 새싹에는 우유의 55배 이상, 시금치의 18배 이상 되는 칼륨과 우유의 11배가 넘는 칼슘이 들어 있고, 철분도 시금치의 5배 가까이 들어 있었다. 보리의 새싹은 이러한 영양학적인 이점 외에도 돋보이는 점들이 있었다. 보리는 섭씨 15도 이하에서 새싹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서식할 수 없고 새싹이 잎이 매끈하여 표면의 세척이 쉬우며, 곤충이 번식을 하기 전에 수확하기 때문에 살충제 등의 오염을 예방할 수 있었다. 보리순즙은 또한 스테미너를 강화하고 발암인자를 억제하며 소화성 궤양과 피부질환 치료에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하기하라 요시히데 박사는 150여개 새싹중 보리새싹이 최고라고 확신한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