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2)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 성당을 바라보면서 이건 성당건물이 아니라 디즈니랜드의 건물을 옮겨 놓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디즈니랜드는 1955년 7월에 개장을 하였고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3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니 관련이 있을리 없겠지만 이미지가 비슷한 느낌으로 들어 온 것이다. 성당 문턱에 들어서며 바라본 성당건물은 기괴하게 보였다.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을 프랑스어로 파사드[Façade]라고 한다. 파사드를 언뜻 바라볼 때는 성당건물 외벽을 덕지덕지 장식하였는가 하는 의아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천천히 살펴보니 이는 되는대로 진흙을 이겨부친 토담집의 외벽같은 것이 아니었다. 성경이야기를 펼쳐 보이느라고 구석구석에 빈틈없이 배치한 조각품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가우디의 신앙을 세세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성가족 성당의 3개의 파사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 영광의 세 가지 이야기를 담은 것이고 지금은 영광의 파사드와 부분을 짓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외벽면을 포함한 전체가 자연의 법칙과 완전히 일치한 자연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성당내부로 들어가니 오색찬란하기까지 한 나무숲속에 들어간 느낌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거목에 싱싱한 나무줄기들이 천정을 뒤덮은 것 같았고 나무줄기 사이사이에서는 생명의 씨앗들이 우르를 떨어질 것 같은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천정 외벽쪽에는 나비모양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를 통해 들어온 초록빛갈이 기둥을 물들이고 있다. 경외감이 드는 것을 어쩌랴?
가우디의 평가
정신 착란의 건축가에서부터 20세기의 천재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평을 받은 가우디였고, 작품 세계도 당시 입장에선 파격과 혁신의 대표였다고 한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청년 시절 가우디를 비판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1883년 독실한 가톨릭 단체가 성당 건축을 시작하게 되고 처음 설계는 교구 건축가가 맡았는데, 그가 1년 만에 사임하는 바람에 가우디에게 맡겨지면서 찬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당시 가우디의 나이 31세였다. 이것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된 것이다. 가우디는 성당의 설계를 바꾸고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옥수수 모양의 첨탑,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만 사용한 독특한 조형 등 난해한 설계로 인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작품은 긴 시간의 결과여야 한다. 따라서 건축하는 기간이 길수록 좋다” 가우디는 성당 옆에 숙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살면서 성당 건축에 전력투구했다. 1920년대에 120m 높이의 탑이 완성되었을 때 이 탑은 바르셀로나의 마천루가 되었다. 가우디는 74세에 사망할 때까지 40여년 간 성당 건축 작업에 올인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성당 건축은 완성되지 못했고, 그의 사후(死後)에는 다른 건축가들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다가 1936년 스페인 내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952년 건축이 재개되어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희대의 건축물에 대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 건축물 중 하나” 혹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조형물” “신이 머물 지상의 유일한 공간”이라는 평을 남겼다. 가우디 이야기는 끝을 찾을 수 없이 차고 넘친다.
가우디의 작품전시장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작품전시장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하여 가우디가 1906년 설계를 시작해 1912년에 완공된 고급 연립주택인 “카사밀라”, 유령의 집이라고들 하는 “카사바트요”, “구엘공원” 등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곳곳에 손을 않댄 것이 없고 가우디가 손질 한 것은 모조리 세계분화유산으로 등재 시켰으니 현대인들이 혀를 내두르고 두 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구엘 공원은 1900년 에우세비 구엘이, 당시에는 바르셀로나 외곽 지역이었던 카르멜 산의 부지를 산 후 주거지 구성을 가우디에게 맡기면서 처음으로 구현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혼잡과 비위생적인 환경악화에 실증을 느끼면서 도시에서 멀리 살고 싶어하는 높은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을 겨냥해서, 전원적인 환경에 몇 개의 집을 짓도록 한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도시-정원[그래서 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음]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3km에 이르는 길들과, 광장, 계단, 수위실, 그리고 잠재 고객들을 설득하기 위한 모델하우스까지 지어서 광고 하였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여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친구 에우세비 구엘은 구엘 공원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상속인들은 공원을 시청에게 구매 제안하게 되고, 시청은 1922년 그것을 구매하고 1926년에 시립 공원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공원에 들어서면, 동화의 세계로 이끄는듯한 느낌을 주는 신기하게 생긴 작은 집들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수위실이며, 지금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곳에서 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시작되며, 구엘 공원과 바르셀로나의 상징물들 중의 하나인, 다양한 색상의 작은 타일 조각들로 뒤덮힌 유명한 용 조각이 있다. 가우디 작품의 특징적인 기법이며, 공원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기법은 “트랜카디스”라 불리며, 불규칙적인 타일 조각들 및 기타 재료들을 외장 마감으로 사용한다. 사용된 조각들은 일부러 파쇄한 조각들이거나 다른 건축물의 잔해들이다. “트랜카디스”기법을 이용여 마감 처리한 많은 작품들은 가우디의 조수이자 수제자였던 조셉 마리아 주졸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계단의 끝에서 86개의 기중으로 이루어진 돌 숲 하이포스타일[천정이 높고 기둥이 많은 방-하이포스타일 홀(hypostyle hall, 다주실(多柱室)], 포르티코(PORTICO-건물의 전면부에 자리하고 있는 기둥열 또는 그러한 기둥들에 의해 구분되는 공간)로 가게 된다. 이곳은 본래 주민들이 도시로 내려가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기능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바로 위에는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대광장이 있다. 광장의 둘레를 따라 트랜카디스기법의 파형 패턴이 있는 벤치가 있다. 벤치며 모든 것들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길목과 다리들 역시 자연을 모방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타일조각 같은 것으로 장식된 벤치에 등을 대고 앉아보니 구부정한 등이 벤치에 착 달라 붙는 것 같은 편안함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상적이면서도 정확한 구조, 기이한 듯하면서도 약간은 그로테스크[grotesque-괴상하고 기이한 것. 또는,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한 그의 특성이 이 작품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구엘 공원이라고 하는 것이며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채식주의자였으며, 연로한 아버지와 조카딸과 함께 살았던 가우디는 앞에서도 자자 언급한 바와 같이 괴짜로 통한 사람이며 작품에서 그의 성품을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는 성당을 지었고, 부자들을 위해서는 대저택을 설계했다. 그는 건축가로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독창적이다”
하얀집
가이드가 스페인여행 셋째 날에 “카사밀라” “카사바트요”를 관광한다고 한다. “카사”라는 말이 영화 “카사브랑카”를 떠올리는 것이 필자만일까? 수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험프리보가드와 세기의 연인 잉그릿버그만이 출연한 영화 “카사브랑카”는 세계의 노년층에게는 지울 수 없는 명화일 것이다. 50여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서야 카사브랑카가 아프리카 동북단의 모르코라는 나라의 도시라는 것을 알았고, 이번 스페인 여행기회에 카사브랑카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도 하고 유럽의 역사공부도 새롭게 할 수 있었으니 여행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사[CASA]라는 “하얀”이라는 백색을 뜻하는 스페인어라고 한다. “카사브랑카”라는 도시를 한때 스페인이 전쟁을 통해 쑥밭을 만들며 점령하기도 했었다니 그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도 하얀집이라는 뜻이고 스페인 여행 셋째 날에 둘러본 “카사밀라” “카사바트요”도 하얀집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머무르는 백악관도 스페인어로 표현하자면 “카사하우스-?”라 할 것 같다.
카사밀라
“카사밀라”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으로 바르셀로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1906년 설계를 시작해 1912년에 완공된 고급 연립주택이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카사밀라는 “밀라”라는 이름의 바르셀로나 사업가가 이보다 먼저 건축된 유령을 연상시키는 카사밀라의 건너편의 “카사바트요”를 보고 반해서 부탁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카사바트요의 외관이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밀라의 부인은 극구 반대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남편 밀라는 가우디에게 건축을 맡겼는데 계약당시 가우디가 옥상에 예수상을 세우겠다고 하고 밀라는 세우면 안된다고 옥신각신 충돌이 있었다고도 한다. 이에 화가 난 가우디가 더 이상 건물을 완성하는 데에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결국 다른 건축가가 맡아서 마무리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어찌됐건 가우디가 1905년에 설계하여 5년 후인 1910년에 완선된 건축물이다.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페드레하-La Pedrera”라고도 불리우기도 하는데 이 건축물이 석공[石工]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고집스럽게 자연주의를 고수하려는 의지는 건축의 문외한에게게도 단번에 느껴진다. 카사밀라의 결정판은 옥상에 있는 것 같다. 지붕을 곡선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옥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 공간을 가우디 자신의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시의 필수적일 옥상의 굴뚝과 옥탑, 난간을 보형 요소로 삼아 곡선과 군상[群像]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재료도 다양하게 깨진 타일과 깨진 병조각 등을 이용하였는데 전혀 거부감이 안들게 한다. 옥상바닥도 굳이 평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런 구릉[丘陵]을 조성하여 뒷동산에 올라온 느낌을 갖도록 하고 있으니 누가 가우디의 고집을 꺽을 수 있었겠는가? 자연에는 곡선만 존재하고 직선은 없다는 자연주의적 그의 건축관이 카사밀라의 구석구석을 수[繡]놓고 있어서 건물 전체가 곡선의 향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축물이 “카사밀라”인 것 같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