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오동나무 이야기
베리마 (Berrima) 성지 (聖地)의 오동나무
오동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는 나무다. 필자의 고향(여주)에서는 오동나무를 볼 수 없었는데 호주에서는 주택가나 공원에서 종종 눈에 뜨인다. 캔버라가는 길에 베리마라는 아름다운 지역이 있다. 성지 (聖地)라고 하며 성당이 있고 경치가 뛰어난 지역이다. 이 동네가 왜 성지가 되었는지? 출처를 찾지 못하다가 지인을 통해 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성당이 생기고 교황이 방문한 일이 있는데 이때 교황은 금관을 성당에 선물 하였다고 하며 대관식도 있었는데 대관식이 끝난 후에 기이(奇異)한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 대관식이 끝난 후 기록적으로 눈이 내려 모두 놀라워 하였다고 한다. 이때 이곳에 있던 수사 (修士) 한 분이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고 성스러운 징조로 생각하고 성지 (聖地, Shrine)라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퍼드려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천주교 성당 경내에 고목에 가까운 오동나무가 몇 그루가 있어서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곁드렸다. 이 성당 (聖堂)에 야외 미사 겸, 여러 번 다녀온 일이 있는데 고목에 가까운 오동나무가 있는 것이다. 필자의 집 근처에도 오동나무 몇 그루가 있다. 필자의 집이 41 번지인데 21번지 집 앞에 아람드리 오동나무가 있어서 마음속으로 아껴 왔는데 무슨 연유 인지 하루 아침에 싹둑 베어 버렸다. 오동나무는 동양 문화권에서 거의 신성시 (神聖視) 하는 나무다. 식물들이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문화적인 이야기 거리가 있지만 오동나무와 관련된 문화적인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 (不許)할 만치 많다.
비파만취 (枇杷晩翠) 오동조위 (梧桐凋萎)
천자문에 비파만취 (枇杷晩翠) 오동조위 (梧桐凋萎)라는 구절이 있다. “비파 나무는 늦도록 푸르고, 오동 잎은 일찍 시든다”는 뜻이다. 비파 나무는 열매와 잎의 생김새가 악기 비파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비파 나무는 과일 나무로서는 드물게 가을에 곷이 피며 늦겨울이나 초봄까지 열매가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라 천자문에 등장할 만하고 오동나무는 기온에 민감한 나무라 가을에 찬바람이 일면 이파리 색갈이 변하면서 낙엽이 지기 시작하니 계절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동나무 중에서도 벽오동 (碧梧桐)을 으뜸으로 생각했다. 벽오동 나무 [학명: Firmiana simplex W. F. WIGHT]는 벽오동과의 낙엽이 지는 넓은 잎, 키 큰 나무다. 줄기의 나무 껍질이 푸른색으로 나타나고 잎이 오동나무의 잎과 같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벽오 (碧梧)은 ‘Chinese-parasol-tree’라고도 한다. 한방 명은 오동자 (梧桐子), 벽오동 (碧梧桐), 오동 (梧桐)이란 약재 명으로 쓴다. 내한성 (耐寒性)이 약하여 서울 이북 지역에서는 월동이 불가하며, 서울에서도 어려서는 특별히 보호를 해주어야 피해가 없다. 종자를 볶아서 커피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나무 껍질에서 섬유를 채취하지만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다. 꽃말은 ‘사모, 그리움, 옛님’이다.
봉황 (鳳凰)과 벽오동 (碧梧桐)

19세기 무렵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는 여러 비판에도 오늘날 우리들의 국민 오락 거리가 되었다. 고스톱을 치다가 화투패에 광 (光)이 들어오면 눈빛에 광 (光)이 난다. 화투 (花鬪) 놀이에서 광 (光) 중의 광 (光), 11월의 오동 광 (光)은 봉황이 벽오동 (碧梧桐) 열매를 따 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봉황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상서로운 새다. 기린, 거북, 용과 함께 봉황은 영물 (靈物)이며, 덕망 (德望) 있는 군자 (君子)가 천자 (天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 (出現)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직도 봉황 (鳳凰)을 본 사람이 없으니 실제 모양은 그림마다 제멋대로다. 그래도 가장 널리 알려진 대강의 모습은 긴 꼬리를 가진 닭 모양이다. 봉황은 우리나라 대통령 문장 (紋章)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벽오동은 두보 (杜甫)나 백낙천 (白樂天)의 시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등 동양 삼국에서는 봉황과 관련된 상서 (祥瑞)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장자 (莊子)》의 〈추수 (秋水)〉 편에 보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예천 (醴泉: 감미로운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았다”라고 했다. 봉황은 이렇게 벽오동 나무라는 고급 빌라가 아니면 머물지도 않고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최고급만 찾았다. 함부로 외출도 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 모습을 감상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봉황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고귀한 신분의 표상이었다. 벼슬 한자리에 목매달던 옛 선비들은 흔히 벽오동 나무를 심고 봉황이 찾아와 주기를 정말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송강 (松江) 정철 (鄭澈, 1536 ∼ 1593)은 귀양지에서 “다락 밖에 벽오동 나무 있건만 / 봉황새는 어찌 아니 오는가 / 무심한 한 조각 달만이 / 한밤에 홀로 서성이누나”라고 시를 읊었다. 벼슬에서 밀려난 그가 임금이 다시 자신을 부르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그 심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딸을 낳으면 오동 나무를 심으라
“딸을 낳으면 오동 나무를 심으라”는 말은 오동 나무의 특성상 일리(一理)가 있는 말이다. 오동 나무는 성장 속도가 빨라서 딸이 시집갈 나이쯤 되면 가구 제작할 만큼 충분히 자라기 때문이다. 오동 나무는 내구성을 약하지만 가공성이 뛰어나 쓰임새가 다양한 편이다. 나무 결이 매우 아름답고 가벼우며 불에 강하여 가구 재료로 많이 쓰인다. 오동 나무가 다양한 쓰임새의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 잘 자라는 특성 탓에 건물 틈 바구니에 오동 나무가 자리 잡으면 제거가 쉽지 않아 골치를 앓는 경우도 종종 았다. 또 가지 뻗음이 일정하지 않아서 보기에 따라서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나무를 왕의 상징으로 삼을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옛날 선비들은 넓은 오동잎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탁 트이게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청 마루나 정자 앞에 즐겨 심었다. 오동 나무의 학명이 “Paulownia coreana”로 원산지가 울릉도로 알려 저 있다. 지명 중에 오동 나무 오 (梧) 자로 시작하는 곳이 많다. 특히 청주시에 오근장, 오동동, 오창 등. 다만 오송읍은 다섯 오 (五)를 쓴다. 예전에 이들 지역에서오동 나무가 무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원산의 참오동 나무 (Paulownia tomentosa)가 있는데, 매우 비슷한 나무이지만 오동 나무에 비해 털이 많고, 다갈색을 띠는 오동 나무의 털에 비해 털이 흰 빛을 띤다. 또한, 화투에서 똥라고 부르는 것도 오동 나무 잎이다. 나무 잎의 크기는 오동 나무잎이 단연 으뜸이다. 사람 얼굴을 덮을 만한 크기이니 이 큰 이파리 덕분에 오동 나무 빨리 자랄 수 밖에 없다. 성장 속도가 빠르면 재질의 강도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동 나무는 생각보다 적당한 강도를 갖고 있다. 재질이 부드럽고 습기와 불에 잘 견디며 가공도 쉽고 좀 벌레도 잘 생기지 않는 성질이 있다,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좋은 장점을 갖고 있어서 장롱이나 상자 문방구 장례 용품 등 주로 생활 용품을 만드는데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오동 나무로 가야금, 거문고를 만들었다. 물론 오동 나무로만 가야금과 거문고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소리라는 것은 물체의 진동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진동으로 발생된 음파가 허공을 가로질러 우리의 고막 (鼓膜)을 울리기 때문에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가벼우면서도 탄력이 있다. 그래서 진동을 일으키거나 지동을 전달하기가 용이 하기 때문에 목재는 악기 제작에 많이 쓰이게 된다. 그러나. 나무라고 다 성질이 같은 것이 아니며 나무 종류에 따라 성질이 다르고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성장 환경에 따라 재질은 달라 질수 밖에 없다.
최태규 전통 악기장 (樂器匠)
보기에 따라서 볼품이 없어 보이는 오동나무 의 외모와 달리, 쓰임새는 많았다. 아들이 태어나면 선산에 소나무를, 딸이 태어나면 밭에 오동나무를 심어서 딸이 나이가 차 결혼하게 되면 오동 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서 혼수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사람이 죽고 나면 관 (棺)을 짤 때도 쓰인다. 그래서 ‘오동 나무 코트를 입혀주지’라는 말이 나왔다. 무언가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나무를 재목이라고 한다. 사람을 빗댈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단어가 이것이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재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무와 사람이 크게 다른 것은 나무는 변함이 없지만 사람은 자신의 성질을 변화시켜 자신의 쓰임새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악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다. 그 중에 거문고를 만드는 장인 (匠人)으로 열손가락에 드는 최테규 악기장이 있다. 이 분의 거문고 제작 과정이 다큐멘타리로 방영되면서 한국의 전통 악기와 장인들의 장인 정신의 문화적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게기가 되었다. 이 다큐멘타리에 출연한 최태규 악기장은 “거문고는 그저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베어다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하면서 자란 오동 나무로 만들어야 좋은 소리가 나죠. 하지만 얻었다고 다는 아닙니다. 고른 나무는 5-6년 정도 자연 건조를 거쳐야 하고 제대로 된 울림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톱질 한번 대패질 한번에도 온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죽은 나무로 숨겨 저 있던 숨소리를 찾아주는 일은 그만큼 예민하고 정교한 일이죠….” 그러나 오동나무 재료가 거문고의 고매한 소리를 창출하는 데에는 그를 다루는 장인들의 정교한 손길에 의해 창출되지만 사람이라는 인재는 주체적인 인고의 노력을 통해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역경 (逆境)을 극복하고 동량재 (棟梁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사람의 성격을 고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본인의 의지 여하에 따라 가능하다. 타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인간의 성격은 굉장한 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개조해 보려고 시도하였던 지도자들이 있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이 그렇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도 부지기수 (不知其數)다. 오동 나무 다듬듯 매끄럽게 손질해 보려는 고집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