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왜 피는 물보다 진한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속담 한 마디에 인간의 삶의 지혜가 올 차게 담겨 있기는 하지만 속담중에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비합리적이고 퇴색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은 인간의 순환계의 혈액-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혈연관계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남과 돈독한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혈통관계인 부모와 형제 자매 만큼은 못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속담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드러내 놓고 떠들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순수동물중에는 혈통만 고집부리지 않는 종류도 꽤 있다. 타조는 서열이 높은 암컷이 다른 암컷들에게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게 한 다음 혼자 품고 보호한다고 하며, 북미 민물고기 중에도 다른 알까지 위탁 받아서 부화한 후에 보호한다고 한다[최재천-“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혈연관계
한국은 다 문화, 다 인종 사회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한국에 체재하는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9쌍 중 한 쌍이 외국인과 결혼한다. 2020년이면 초등학생 4명 중 한 명은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된다는 예측도 있다. 조상과 자손간의 관계를 “혈통”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적인 표현이며 현대에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피가 아니라 DNA분석이다. 씨족관계를 혈연관계라고 하는 표현을 재고할 때가 된 것이다. 혈액은 소화기관에서 흡수한 양분과 호흡기관에서 받아들인 산소를 운반하여 대략 60-100조가 되는 인체의 세포들에게 공급하고 세포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 등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 많은 세포들에게 끊임없이 생활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하고 쉴새없이 쌓이는 쓰레기를 치워야 하지 않는가!
혈액의 기능
혈관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도로며,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은 각종 자동차며, 경찰차·도로순찰차 등의 기능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혈액은 생체의 모든 기관을 관류[灌流]하면서 그 기능을 담당한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운반, 영양소(nutrient)와 대사물[代謝物](metabolite)의 운반, 각종 이온, 비타민, 효소, 호르몬 및 물 등이 혈액을 통해 운반되는 것이다. 혈액은 기관과 기관 상호간에 물질과 열의 이동을 도와주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 이물질과 세균을 처리하는 면역에 관여하는 인체 방어기능, 혈관 손상으로 인한 혈액 손실을 방지하는 기능으로써 혈소판에 의한 지혈기전과 여러 가지 혈장단백질에 의한 혈액 응고기전, 알부민과 같은 단백질과 적혈구 내의 혈색소에 의한 수소이온 농도[pH] 등을 조절하는 것이다.
혈액의 농도
“피가 진하다”는 것은 물의 농도 0.0%와 비교해서 농도가 높다는 것이다. 생명과학에서는 생명체가 바닷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바닷물은 소금물 아닌가? 사람은 소금물에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아기가 자라는 엄마 뱃속의 양수는 바닷물과 같다. 소금물이 아니라면 아기는 안전하게 자랄 수 없다. 사람 몸 안에도 소금이 들어 있다. 인체의 혈액의 염분농도는 0.9%이고, 세포의 염분 농도 역시 0.9%이다. 혈액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량[性分量]에 따라서 Ph농도라든가 糖도, 단백질 등 농도를 분리해서 말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혈액의 농도는 소금량이 기준이다. 혈액에 섞여서 유통되는 물질을 70여가지 이상으로 보고 있고 혈액검사를 정밀하게 한다면 이 만큼 많은 종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 된다.
최초의 생명체
태초에 지구가 생성되고 약 10억년 후, 지금으로부터 약 35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판명된 화석이 호주에 발견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서 35억년 전에 형성된 와라우나(Warrawoona)라고 하는 지층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미생물 군락의 성장 패턴이 드러나 있는 표준화석]에서 미생물 흔적을 찾아냈다. 이들은 소형의 구형 체와 섬유상 화석으로서 현생 남조류와 유사하며,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암석은 35억년의 절대 연령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바버턴(Barberton) 근처의 피그트리층(Fig Tree Series)은 32억년의 나이를 가지는데, 이 속에서 박테리아와 남조류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짜디짠 바닷물에서 생명체가 시작된 증거다.
혈액의 농도
옛날에는 심장을 염통(鹽桶)이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돼지 등 동물의 심장은 염통이라고도 하는데 “소금 통”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게[소금-salt] 먹는 것이 고혈압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어서 소금을 거의 극약[劇藥]으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소금을 너무 적게 섭취하면 오히려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기 때문에 적정소금 섭취량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함경식 목포대 천일염생명과학연구소장은 ‘현명한 소금섭취에 대한 고찰’이란 제목의 기고문(식품저널- 2014년 8월호 게재)을 통해 “소금의 과잉 섭취가 질병 발생 위험률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으나, 소금섭취를 너무 줄였을 때도 심혈관 질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미 미국의 연구 결과도 함경식 교수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소금 섭취
미국 뉴욕 시에서 8년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소금을 적게 섭취했을 경우 적절하게 섭취한 경우보다 심장 발작이 4배 증가했으며(Hypertension,25, 1144, 1995), 미국인 7,800만명을 대상으로 14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소금을 적게 먹은 그룹에서 37% 높은 심혈관 질환 사망률을 보였다”(American Journal of Medicine, 119, 275, 2006)고 한다. 사람은 음식을 안 먹고도 일정기간 동안 살 수 있지만 숨을 쉬지 않거나 소금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소금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수 억만년 전부터 이 땅에 존재해온 바닷물이 “생명의 고향”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간 생명의 고향인 “엄마의 뱃속” 역시 바닷물(양수)과 같이 진한데 피가 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의 피는 빨갛다.
적색[赤色]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척추동물의 피는 모두 빨갛다. 혈액 속에는 적색을 띤 적혈구[赤血球, Red Blood Cell- 붉은피톨]가 있기 때문이다. 적혈구는 산소 운반을 위해 특화된 도너츠 모양의 세포로, 고도의 산소 보유기능을 가진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을 개당 약 2억 8천만 개를 포함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이 철[Fe]을 함유하고 있어서 붉은색이 난다. 흙도 철이 많은 진흙은 붉은색을 띠지 않는가? 빈혈은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철분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철분 제제를 처방하게 한다.
피의 생성
피는 어디서 만들어 지느냐고 물어 보면 의외로 모르는 분이 꽤 있다. 적혈구나 백혈구가 만들어 지는 곳은 주로 갈비뼈[흉골], 가슴뼈[늑골], 척수의 골수에서 만들어 진다. 적혈구의 양은 평생 동안 500kg정도 만들고, 120정도 지나면 수명을 다하고 간이나 지라에서 분해된다. 혈구 내의 혈색소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고장액[高張液-Hypertonic농도가 높은]에 아누리 오래 넣어두더라도 혈액의 색깔은 그대로 유지된다. 건강한 사람의 혈액은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당뇨병 환자와 고혈압 환자의 색깔은 약간 다르다. 당뇨병 환자의 피는 연분홍색이며 진득거림이 없어서 물처럼 주를 흘러내리고. 고혈압 환자의 피는 익은 복 분자 색깔처럼 진 자주색이고 진득거린다. 사람의 몸에는 약 25조가 넘는 적혈구가 존재한다. 가로 세로 높이가 1mm인 직육면체(1mm3=1μl)에 적혈구는 약 500만 개가 존재한다. 남성은 약 540만 개, 여성은 약 480만 개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적혈구를 가지고 있다. 같은 부피에 포함된 백혈구가 약 8천 개, 혈소판이 약 40만 개인 것을 고려하면 혈액 내에 들어 있는 세 가지 세포 중 적혈구가 전체의 90%를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사람의 몸에 들어 있는 피가 약 5리터이므로 적혈구는 약 25조 개가 존재하고 있으며, 수명이 약 120일이므로 1초에 생성되고 파괴되는 적혈구수 약 300만 개에 육박할 정도로 많다. 적혈구의 색깔이 붉은색이라 피라고 하면 적혈구부터 생각하게 되지만 그 외에 백혈구, 혈소판, 혈장과 각종 영양소, 노폐물, 이산화탄소 등이 녹아 있는 액체가 혈액이다. 혈액은 체중의 8%정도이고, 그 중 45%가 혈구 등 고형성분이고 나머지55%가 액체성분인 혈장이다.
헌혈
피가 부족한 사람을 위해 헌혈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혈액전체를 뽑는 전혈헌혈[全血獻血]과 녹십자라는 회사가 하고 있는 성분헌혈[性分獻血]로 나눌 수 있다. 녹십자 사에서는 피를 뽑은 다음에 붉은색의 적혈구는 다시 넣어 주게 되며, 매혈[賣血] 자로부터 혈액의 일부만 매수[買受]하는 사업을 한다. 주로 혈장[血漿]부분만 매수[買受]하고 붉은색의 적혈구는 다시 주입시켜 주기 때문에 매혈[賣血] 자는 알짜는 다시 돌려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가 있다.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의 중요한 역할은 두 말할 나위도 없지만 혈장의 성분은 영양소의 진액임을 간과할 수 있는 것이다. 적혈구나 백혈구는 혈액 속에서 활동하는 독립된 세포이다. 적혈구는 생성초기에는 핵이 있다가 없어지게 되지만 백혁구는 핵을 가진 하나의 세포로서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한다. 백혈구는 기능과 모양이 다양한데 아메바운동으로 이동하며, 몸 속에 들어 온 세균을 잡아먹거나 장애를 일으켜 죽이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항체[抗體]를 생산하여 몸 속에 침입한 세균을 무력화 시키는 방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백혈구
성인의 경우에는 골수에서 모든 적혈구와 혈소판, 그리고 60~70%의 백혈구가 생성된다. 백혈구의 숫자인데 기본적으로 혈액 1μL(마이크로리터) 당 4,000~10,000개 정도가 정상범위이고, 단위를 생략하여 4.0~10.0으로 간단하게 표시한다. 백혈구와 관련된 질병으로 백혈병에 관한 것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백혈병하면 난치병으로 인식하고 TV 드라마에서 거론하기가 일수였는데 최근에는 완치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갖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병은 혈액 속에 미성숙 백혈구의 이상 증식하는 질병으로 백혈구 수가 정상치보다 월등히 높아지는 병이다. 이때 비정상적인 백혈구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고 미성숙 백혈구가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상 혈구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줄어들게 되고 산소운반기능도 떨어지고 기본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이 미친 백혈구들은 몸에 병이 있다고 착각하여 정상 세포들도 잡아먹어 버리게 되니 생리작용에 대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항암제, 방사선치료 등을 넘어 골수이식, 조혈모세포 이식 등 다양하고 전문적 치료법 이 개발되어서 이 병으로 진단 되여도 낙심천만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개념적인 피
과학자들이 피, 혈액에 대해 오랜 시간 매달려서 그 정체를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동안 인문분야에서는 수 천 년을 내려온 피의 개념을 바꿀 기미가 없다. 생각하는 자유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피에 관한 막연[邈然]한 개념은 부작용이 수반 된다는 것이다. 과도한 피에 관한 공포감, 경외감[敬畏感], 생명의 근원이라는 절대적인 의존감[依存感] 등을 경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영적 진화가 계속될수록, 진정한 종교심에 이르는 길은 삶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맹목적인 신앙을 통해 나 있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통해 나 있다는게 더욱 확실해질 것 같다.” 진짜 쟁점은 앎이고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에 있다. 과학자들이 정밀한 객관적 측정과 정밀한 객관적 개념을 쓰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물론 그들도 종종 직관과 주관적 느낌을 길잡이로 삼지만 검증이라는 또 다른 단계가 있어야 함을 인식한다”
이론과 경험적 증거
과학은 관찰, 이론, 실험이 서로 고리를 이루면서 나아간다. 이론과 경험적 증거가 조화를 이룰 때까지 그 고리는 반복된다. 그러나 개념들을 정밀하게 정의하고 실험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이 방법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과학이 내놓는 답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과학을 공부하는 주된 이유는 크나큰 우주의 구도 속에 우리 삶이 어떤 식으로 들어맞는지 알고 싶어하는 충동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들은 진리일 때만 믿음을 준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지극히 쉽게 속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남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1963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여주 대신고등학교 교감과 수원 계명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