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유인원을 중심으로 한 원숭이 이야기(1)
통곡하는 어미원숭이
위의 글과 함께 게시[揭示]된 사진은 인도의 잘프루에 사는 사진작가 아비나시 로드히[Avinash Rodhi]가 촬영하였다는 죽은 새끼를 안고 통곡하는 원숭이의 사진이다. 원숭이 새끼가 실신 했었지만 얼마 후에 깨어다고는 하나 새끼가 죽은 줄 알고 처절한 통곡을 하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원숭이의 모성애[母性愛]는 유명한 고사에 나와 있다. 바로 단장(斷腸), 즉 단원장(斷猿腸)의 고사이다. 단장의 고사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한 가지 버전은 동진의 환온(312~373)이 346년 촉(蜀)을 정벌하려 양자강 중류 협곡(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만들어졌다. 부하 한사람이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배에 실었다. 자기 새끼가 붙잡혀가는 꼴을 본 어미원숭이가 강가에서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원숭이는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좇아왔다. 배가 100여리를 간 뒤 이윽고 강기슭에 닿자 어미원숭이가 필사적으로 배에 올랐다. 그러나 힘이 빠진 어미원숭이는 그냥 죽고 말았다. 그 어미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斷腸) 있었다.(<세설신어> ‘출면·黜免’) 또 하나의 버전은 같은 동진 시대의 설화모음집인 <수신기>에 나와 있다. “어떤 이가 산에서 원숭이 새끼를 잡아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어미원숭이가 그 사람의 뒤를 따라왔다. 그 사람이 새끼원숭이를 뜰 안의 나무에다 묶어놓자 어미원숭이가 그 사람을 향해 자기 뺨을 치며 애걸했다. 그 애처로운 광경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사람이 새끼원숭이를 놓아주지 않고 결국 때려죽이니, 어미원숭이가 구슬피 울며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다. 어미원숭이의 창자를 꺼내 보니,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모성애[母性愛]
어느 날, 솔로몬 왕 앞에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임금님, 제가 이 아기의 진짜 어머니입니다.” “아닙니다. 이 아기는 제가 낳은 진짜 제 자식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왕께서 누가 이 아기의 진짜 어머니인지를 재판해 주세요.” 그러자 솔로몬은 고민 끝에 두 여자에게 판결을 내렸다. “나도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모르겠으니, 이 아기를 둘로 갈라 두 여인에게 나누어 주는게 낫겠소.” 이때, 한 여자가 울면서 애원하기를 “제발 그 아기를 살려 주세요. 차라리 그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솔로몬은 이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외쳤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솔로몬 왕에 얽힌 이 지혜로운 일화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성애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한결같은 본능이다. 이렇듯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과학적인 탐색이 있다. 모성애에 관련된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관련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1909년 발견된 옥시토신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포옹하고, 젖을 먹이는 일련의 행동과 직결된 호르몬이다. 아기를 낳을 때는 산모의 몸 안에서 농도가 급속히 올라가면서 진통을 자극하여 분만을 용이하도록 만든다. 또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어머니의 몸에서 젖 분비를 촉진하는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젖꼭지가 꼿꼿해지는 등 몸이 당장 젖을 먹일 준비를 한다. 동물들의 경우 옥시토신이 없는 동물들은 새끼 출산이 느리고 새끼를 덜 핥아 주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최근 <생물정신과학지>에 발표된 노리우치 마도카 박사팀의 논문은 모성애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신체 건강한 어머니들에게 16개월 가량 된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들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능성 자기영상공명장치(fMRI)를 통해 영상을 보는 어머니들의 뇌 활동 패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의 영상을 볼 때 다른 아이들의 영상을 볼 때보다 대뇌피질과 변연계의 특정 부분이 활발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웃는 영상보다 우는 영상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모성애란 어머니들이 가진 특화된 신체적 기능이라는 사실이 실험 결과에서 확인된 것이다.
한국문화 속에 원숭이
한반도에서 원숭이가 사라진지는 까마득하게 오래됐지만 한국인들에게 원숭이는 친근감있게 다가오는 동물이다. 원숭이와 관련된 일화며 속담 등 일상생활에서 어느 동물 못지않게 등장한다. 10간[干]. 12지[支]로 년·월, 일·시를 표시하고 환산해 온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원숭이를 연관시켜 12지의 동물중에 하나로 당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니 원숭이에 관한 온갖 수다가 생성될 수밖에 없다. 원숭이와 관련된 속담이며 우화는 부지기수다. 속담이나 구비문학[口碑文學]과 탈춤 등 한국의 민속문화 속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크게 ‘빨간 엉덩이’로 대표되는 신체적 특징을 담고 있거나 잔꾀, 재주 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두고 ‘원숭이 낯짝 같다’, ‘원숭이 볼기짝 같다’는 속담이 생긴 것이나 능숙한 사람도 자만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 그 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어두워 일을 그르치는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에서도 잔꾀를 부리지만 결국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숭이가 주인공이다. 민속학자들은 ‘한국 동물 민속론’에서 “원숭이는 흉내를 잘 내고 비교 잘하며 독단적이어서 질투심이 강한 사람, 중개자, 재주꾼, 배우, 사기꾼 등 의미로 풀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궁궐 추녀마루의 10신상[神像]
궁궐 지붕 잡상(雜像)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잡상은 궁궐 등 큰 건축물을 지으면서 재앙이나 악귀를 쫓기 위해 추녀마루에 대칭으로 장식하는 토우(土偶)들이다.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의하면, 신임관(新任官)이 선임관들에게 첫인사[色新許參] 할 때 반드시 대궐문루 위의 이 10신상 이름을 단숨에 10번 외워보여야 받아들여진다고 하면서, ①대당사부(大唐師傅), ②손행자(孫行者), ③저팔계, ④사화상(沙和尙), ⑤마화상(麻和尙), ⑥삼살보살(三煞菩薩), ⑦이구룡(二口龍), ⑧천산갑(穿山甲), ⑨이귀박(二鬼朴), ⑩나토두(羅土頭)의 상을 적고 있다. 곧, 여기에서의 대당사부는 삼장법사 현장이다. 이들이 잡상[雜像]으로서 기와지붕 위에 놓이게 됨은 《서유기》에 나오다시피, 당나라 태종의 꿈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자 잡상을 내세워 전문(殿門)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추녀는 원숭이가 받들고 있다. 옛날 경기도 강화군 전등사의 대웅전을 중수할 때의 일인데, 이 절을 맡아서 짓는 도목수는 온갖 정성과 재주를 다해 집에 다녀오지도 못하고 오로지 절을 짓던 중에 인근 주막의 예쁘장한 여자에게 반하다. 그 여자의 유혹에 빠진 목수는 품삯을 모두 맡겼다. 그런데 그 여자는 목수에게 받은 패물과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다. 여자에게 배신당한 목수는 그 여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대웅전 추녀를 받들고 있으라고 해서 원숭이 나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와 원숭이와의 관련성, 전통 건축물 지붕에 나타나는 귀신을 쫒는 동물들(그 중 원숭이도 있음)의 신앙과 연결되어 설명될 수 있겠다. 원숭이 속담은 원숭이의 생김새나 입내내기나 재주, 꾀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술을 좋아하는 성성이[성성호주–猩猩好酒]
중국 명[明]나라 사람, 유원[1544-1609]이 썼다는 필기방사집[筆記放事集]에 ‘성성호주’[猩猩好酒]라는 술 좋아하는 원숭이 이야기가 있다. 한자[漢字] 원문은 생략하고 번역문을 소개하며 원숭이와 관련된 일화를 찾아봤다. 다음은 ‘성성호주’[猩猩好酒]라는 제목의 우화[寓話]다.
<성성이는 동물들 가운데 술을 제일 좋아한다. 큰 산자락에 사는 사람이 술상을 마련하고 크고 작은 각종 술잔도 놓아두었다. 그리고 풀잎으로 짠 짚신을 연결해서 길가에 놓아두었다. 성성이가 이런 것들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인간들이 자기를 속여서 잡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것을 설치한 사람의 이름과 그 조상의 이름을 일일이 들먹이며 욕을 해대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어떤 성성이가 친구에게 말했다. “술을 조금 맛보면 어떻겠는가? 하면서, 조심은 해야 한다. 많이 마시지 않도록!” 이렇게 말하면서 작은 잔을 들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욕찌거리를 하면서 갔다. 조금 있다가는 비교적 큰 술잔을 가지고 술을 마셨다. 이렇게 몇 차례 술 마시는 것을 참지 못하고 큰 술잔을 들고 실컷 마시다가,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취한 뒤에 눈을 껌벅거리고 즐겁게 떠들면서 짚신도 발에 신어보았다. 큰 산자락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때다 하고 소리지르며 추격을 하자 그 성성이들은 즉시 서로 밟히고 걸려 넘어지고 해서, 한 마리도 도망가지 못하고 다 잡혔다. 뒤에 온 성성이들도 모두 이와 같이 해서 끝장이 났다. 성성이가 한 말은 맞고, 또 큰 산자락의 사람이 자기들을 속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다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그들의 탐욕 때문이라 하겠다.>
이 이야기는 1500여년 전의 선인들이 꾸며낸 우화이지만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도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미로 시작한 주색잡기가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뻔히 불법으로 쇠고랑 찰것을 알면서도 돈과 권력에 탐닉[眈溺]하다가 법망에 걸려 두 손 꽁꽁 묶인 채 형무소로 향하는 유명인사들을 향해 던지는 우화가 아니겠는가!
원숭이의 꾀
예컨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인 ‘저공(狙公)’이다.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도토리를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내더니,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모두 기뻐하더라는 내용이 아닌가. 이것은 <장자> ‘제물론’에 나온다.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는 보통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곤 한다. 하지만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원숭이를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안타깝게도 원숭이가 너무 많아져서 그가 원숭이들에게 줄 수 있는 도토리의 양은 하루에 일곱 개로 고정된다. 그래서 그는 이 일곱 개를 가지고 계속 제안하면서 원숭이들과 합의점을 만들려고 한다. 노나라 임금은 자기 식으로 그냥 밀어붙였지만 원숭이 키우는 사람은 밀어붙이지 않는다. 차이는 거기에 있다. 원숭이는 저공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을 정도로 저공을 따랐다. 그런데 원숭이가 자꾸 늘어감에 따라, 원숭이의 먹이를 사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많아졌다. 마침내 저공은 가족의 식비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원숭이에게 주던 먹이도 줄여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원숭이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에게 나무 열매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반대를 했다. 그래서 저공은 꾀를 내어, 원숭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도록 하지.” 그제서야 원숭이들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야기는 ‘열자’라는 책에도 기록되어 있고, ‘장자’라는 책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두 책이 조금씩 다르다. 열자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교묘한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예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장자에서는 눈앞의 이해나 시비에 사로잡혀서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예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3+4=4+3. 이런 간단한 계산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지능지수 제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를 비웃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어른들의 경우엔, 봉급이 많이 올랐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봉급이 오른 만큼 물가가 껑충 뛰어올라 실제로는 봉급이 전혀 오르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경우가 참 많다.
원숭이 재판이야기는 동물이야기 가운데 지략[智略]적인 동물로 꾸며진 이야기가 전승된다. 옛날에 이리와 여우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길에서 고기 덩어리를 발견하자,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었다. 다툼이 좀처럼 끝나지 않아서 지혜롭다는 원숭이에게 찾아가서 결을 내리기로 한다. 재판을 부탁받은 원숭이는 공평하게 한다면서 고기를 반으로 잘랐는데, 한쪽은 크게 다른 한쪽은 작게 잘랐다. 그러고는 큰 것을 작은 것과 같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기가 베어 먹었다. 그러나 다시 차이가 생겼고, 원숭이는 이런 짓을 몇 번 되풀이 하여 고기를 혼자 다 먹어 버리고는 도망쳐 버렸다. 이 이야기는 다툼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이득을 차지한다는 내용으로 원숭이는 자신의 지혜를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뜻하지 않게 이득을 얻는다. 이리와 여우처럼 주위의 상황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의 눈앞의 이익만을 다투다가 결국 그 조그마한 이익마저도 놓치고 만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원숭이의 교활성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마땅히 징계해야 하는 수단으로 긍정적인 지혜가 된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