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참나무와 도토리 이야기

도토리의 어원은 ‘저의율(猪矣栗)’ 猪-돼지 栗-밤, “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예전에는 ‘돼지”를 “돝”이라고 하였었으며 이 말이 명사형 접미사에 “이”가 붙으면서 도토리가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홍윤표 연세대 교수]
도토리는 다람쥐의 식량으로 만 알고 있지만 야생 산돼지들의 식량이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멧돼지 종류인 이베리코 흑돼지를 도토리로 사육을 해서 특이한 맛과 영양으로 유명해지며 전 세계의 미식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도토리는 우리나라에서 식품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5000년 전 후로 추정되는 강동구의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탄화[炭火]된 도토리가 발견되었고, 창원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도토리 저장고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봐도 도토리는 오래 전부터 야생동물은 물론 인간들의 식량이었다. 역사서에 도토리에 관한 기록은 신라시대에도 있고 고려시대에도 있으며 이조시대에 와서는 도토리를 거둬들여 저장하였다가 흉년이 들면 이를 풀어 기근을 해결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토리는 참나무의 열매다. 참나무는 참나무속[屬]에 딸린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물참나무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모두 도토리가 달린다. 도토리가 구황[救荒]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은 한반도의 곳곳에 서식하는 탓도 있지만 생태적인 특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나무는 5월에 개화해서 9월경에 결실이 완성 되는데 개화기인 5월의 기상이 도토리 작황[作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개화기인 5월에 비가 많이 와서 장마라도 지면 참나무는 제대로 수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5월에 장마지는 해에는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 않는 것이며 5월에 비가 오지 않고 가물면 모를 제때에 심지 못해 벼농사를 낭패하게 되고 흉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흉년에 도토리는 소중한 식량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은 지방마다 참나무 종류가 조금씩 다른데, 필자의 고향엔 상수리나무가 많았다, 어렸을 때 상수리나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후에서야 도토리와 상수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수리는 경기도 지방의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說]이 있다. 어떤 왕이 전쟁 중에 피란을 하다가 굶어서 배가 고픈 중에 신하가 마을에서 도토리묵을 얻어다가 바쳤다고 한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궁궐에서 도토리묵을 찾게 되었으며 도토리묵은 항상 수라상의 상석[上席]에 자리 잡게 되면서, 이 음식을 수라상의 상석의 음식이라는 뜻의 상수리라고 이름 하였다고 한다. 상수리나무는 도토리가 달리는 다른 나무와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열매를 굳이 상수리라고 하지 않아도 무리는 없는 것이다. 상수리나무의 잎은 길쭉한 것이 밤나무 잎과 비슷하다. 굴참나무가 상수리나무와 밤나무의 이파리와 비슷하나 굴참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있다.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다른 참나무들과 특이하게 다른 것은 5월에 핀 꽃이 이듬해 10월경에야 결실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참나무들은 5월에 개화 하였다가 9월에서 10월 사이에 결실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곳곳에 도토리묵 음식점이 있다. 그런데 도토리가 거의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먹이를 빼앗는 것이라고 해서 도토리 줍기를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에 한국산 도토리묵은 어렵게 되었다.
최근에 한국산림과학연구원에서 참나무를 농가의 소득원으로 권장하기 위해 도토리가 많이 달리는 신품종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인데 기존의 나무보다 도토리가 2-3배가 많이 달린다고 하며 희망농가에 보급해서 도토리 수확으로 소득을 높여 주겠다는 것이다.
참나무가 한국의 대표 수종이 될 수 있는 것은 기후도 적합하고 도토리가 발아도 잘되고 열매에 영양이 많아서 처음부터 곧은 뿌리로 튼튼하게 자리 잡으며 빠른 성장을 한다. 땅속으로 깊게 뻗은 뿌리는 수분 흡수력이 우수하고, 껍질이 두꺼워서 산불에 강하며 추위에도 강해서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 종류는 400여종이 된다고 하고 한국에는 11종이 알려졌다. 나무껍질이 굵다는 굴참나무, 나무는 웅장하지만 잎이 졸장부모양 작다는 뜻으로 졸참나무, 떡을 쪄먹는다는 떡갈나무. 집신 밑바닥에 잎사귀를 깔 창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신갈나무 등이 참나무속 이며 도토리가 달리는 것들이다.
시드니 일대에도, parks에 참나무들이 꽤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나무모양이 한국의 떡갈나무와 비슷하며 도토리 모양도 길고 길쭉한 게 거의 같은 모양이다. 도토리묵이 되나 하고 전분을 내어 묵을 쑤어 봤더니 뜰분맛이 덜할 뿐이지 양질의 도토리묵이 되었다. 그 후 수소문해서 참나무 있는 곳을 꽤 여러 군데 알게 되었고, 여러 해에 걸쳐 도토리를 주어 모아 특식으로 묵을 쒀 먹기도 하고 선물도 하며, 고향에서 즐겨 먹던 도토리묵의 향수를 달래고 있다.
호주의 참나무는 토종이 아니고 외래 종이다. 시드니 지역에서 2가지 종류의 참나무를 보았다. 시드니 공항 가는 방향에 있는 Central Park에 아람들이 참나무가 그라운드 가장자리에, 빽빽하게 서있으며 도토리는 많이 달리지만 나무종류도 다르고 묵이 일반 도토리묵과는 판이하게 별 맛이 없었다.
영어로 참나무를 “oak tree”, 도토리를 “acorn’이라고 하는데 공원의 도토리 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줍다 보면 종종 행인[行人]들의 질문을 받게 된다. 짧은 영어로 묵 쑤는 요리법을 설명 하느라고 진땀을 빼곤 하는데, 인쇄물을 준비해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였었다. 타스마니아에도 참나무가 꽤 많다. 2년전 타스마니아의 한 park에,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은 도토리가 떨어져 있어 주어 온 일이 있다.
호주의 대표수종인 유칼립투스도 산불이 나면 껍질 안에 휴면하고 있던 어린잎이 성장하면서 화상 입은 나무를 회복시켜 재생하게 하듯 참나무도 못지않게 재생력을 갖추고 있는 나무다.
기원전, 유럽의 켈트족이 만들었던 달력에 월[月]의 상징을 나무로 하였었다고 한다. 1월은 자작나무, 2월은 마가목, 3월은 물푸레나무, 4월은 오리나무, 5월은 버드나무, 6월 산사나무, 7월 참나무, 8월 호랑가시나무, 9월 포도나무, 10월 담쟁이, 11월 부들, 12월 딱총나무이었다 고 한다. 7월을 참나무로 한 것은 식물의 성장력이 왕성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참나무가 적합 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참나무는 정조관념이 좀 희박하다고 하여야 할가? 다른 종류와 교잡이 비교적 잘 이루어져 잡종이 많이 생기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물참나무도, 참나무와 신갈나무의 변종으로 보고 있다. 나무가 어느 것이나 거짓말 할 이가 없겠지만 유독 “참” 자를 붙인 것은 도토리를 인간들에게 음식으로 제공하고 겨울 에는 장작으로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해주니 참말로 고마운 나무라는 의미로 불려 진 것 같다.
서양인들은 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도토리 자체가 거의 완벽한 자연의 산물이고 최근에 도토리묵이 인기를 끌면서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분석한 결과가 많이 나왔다. 어떤 식품이건 부정적 이미지는 들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도토리묵의 큰 결점은 들어나지 않고 있다. 요리 전문가들이 도토리전분으로 세계인들의 입맛에 맞는 웰빙 식품으로 개발하였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한국에서 개발한 다수확품종을 들여다가 땅 넓은 호주에, 참나무단지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