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미생물과의 공존과 전쟁
7-80년대에 한국에서 초중등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1년에 2회 실시하던 대변 검사를 기억 할 것이다. 선생님들이 냄새나는 채변 봉투를 회수하고 확인하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한국의 기생충 박멸운동이 펼쳐진 데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 하나는 1963년 전주예수병원 의료진이 복통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온 9살의 여자 아이의 배를 열었더니 1063마리의 회충이 소장을 꽉 막고 있었던 것이며, 의료진은 일일이 회충을 제거 하였지만 소장이 썩어가던 이 여자 아이는 소생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이 놀라운 일은 세계의 토픽으로 보도 되면서 한국인의 뱃속에는 기생충이 득실댄다는 오명을 떠 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충 질환 예방법이 제정되고 각급 학교의 학생들의 변검사로 감염자를 가려내서 구충제를 복용시키기에 이르렀었다. 낙동강이나 한강유역의 주민들은 50%정도가 간디스토마 보균자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고, 1971년 정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기생충감염률이 84.3%로 발표된 기록도 있다. 현재의 기생충 감염률은 기록을 찾지 못했으나 1997년에 2.4%로 떨어졌다는 자료가 있다. 그러나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면 의외로 기생충 감염률이 증가 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기생충이야기가 쑥 들어가니 무분별하게 생선회 등을 먹는 때문이라고 한다.
호주에 와서 기생충 이야기는 까맣게 잊어버고 있었는데 수년전 부터 인체의 기생충 보다는 인체에서 기생 내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에 관한 뉴스와 연구 결과가 이슈[issue]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도 미생물에 포함하여 다루기도 하지만 기생충학은 미생물학과는 다른 영역의 학문이다. 미생물[微生物-microorganism]은 가시한계[可視限界]를 넘는 0.1mm이하 크기인 미세한 생물로 주로 단일 세포 또는균사[菌絲]로써 생체를 이루고 있는 생물이다. 바이러스[virus], 효모[yeast], 곰팡이류[fungi], 세균류[bacteria], 조류[algae] 등이 이에 속한다. 인체내의 미생물 문제가 급 부상한 것을 주목하여 왔지만 2012년 6월 14일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인간미생물군집프로젝트[HMP-Human Microbiome Project]라는 사업명으로 5년간 1억7천만$가 투입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부터다. 이 파장은 크며, 세계경제포럼[WEF]은 금년 [2014. 4. 25.]에 글로벌 기술의 흐름을 분석하여 “10대 유망기술”에 인체미생물의 연구는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기술의 잠재력과 의학적 파급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발표하였다. 자연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그 종류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이며 대략 10%정도가 파악된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HMP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몸속에 1만개가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미생물의 무게가 2Kg가량 된다고 하니 이를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프로젝트[project]명을 미생물 군집이라고 한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군집[群集]이란 생태학용어로 어떤 지역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개체군의 집단을 말하는 것인데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체는 하나의 대륙과 같은 서식공간인 것이다. 연구팀은 건강한 미국인 242명 자원자[自願者]에 기생하고 있는 미생물을 채집하여 분석하였는데 대장(大腸) 같은 소화기와 입안에 사는 미생물이 가장 종류가 많았으며, 피부나 코에 사는 미생물은 중간쯤이고 미생물이 가장 적은 곳은 생식기였다. 장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약 400종, 피부에 150여종, 음식물을 씹는 이에 1300종, 코 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피부에 800종, 여성의 질에서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입속에만 적어도 5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인체속에 박테리아 숫자가 100조 이상이라고 하였으며 인체의 세포수 약 60조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일부 과학계에서는 인체가 주인이 아니라 인체의 주인은 ‘미생물’일 수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태아는 모체 내에서 10개월 동안은 단하나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이 기생하지 않지만 태어나서 호흡을 시작하면서 공기에 있는 미생물이 흡입되기 시작하는데 신기한 사실은 빈집이나 다름없는 각 기관에 거주할 미생물이 이미 내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박테리아들이 영토권을 행사하듯 제자리를 찾아 간다는 것이다. 허파에 사는 박테리아는 내장으로 가지 않고 허파로 가서 공기속에 스며 들어오는 유해 박테리아를 박멸하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정착이 완료되기까지는 약 3년이 소요된다고 보고 있다. 인체에는 병원균과 싸우는 면역기관도 있지만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숙주 역할을 하는 사람 등의 행동, 성격 등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미생물’의 조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생물이 철저하게 자기생존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미생물 활동여하에 따라 인간의 정신작용까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되니 미생물 조정설을 내 놓을 만한 것이다.
대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는 ‘제3의 장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일들을 한다. 몇 가지 비타민을 만들고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도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얻는 에너지의 10~15%는 장 속 박테리아가 소화시켜 준 것이라고 한다. 세균은 이들 영양소를 섭취해 증식하고 세균이 내놓는 배설물은 다시 장 속으로 배출된다. 이런 세균이 생성한 유기산은 장에서 흡수되어 우리 몸의 여러 조직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개를 포함한 일부 동물들은 자기의 변을 다시 먹음으로써 비타민을 보충한다. 토끼도 똥 속에는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용한 세균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에 어미 토끼는 이것을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소화기능을 전달한다. 박테리아로 병을 치료한 연구 결과도 있다. 뉴욕 몬테피오레병원에서 있었던 사례[事例]로, 담당의사는 만성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여성 환자가 항생제 과다 복용으로 장 속의 박테리아의 균형이 무너진 것으로 판단하고, 치료 방법으로 환자의 장에 남편의 똥을 넣어서 설사병을 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똥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박테리아 덩어리로 생각하고 환자의 장속에 이식 시킨 것이다.
약효나 독성이 나타나는 것도 우리 몸 안의 미생물과 관련성을 확인하고 있다. 식물이 갖고 있는 약효 성분의 상당수는 배당체[配糖體]로 저장돼 있다. 배당체란 약효 성분이 물에 잘 녹는 포도당 같은 당분자와 알콜이나 페닐과 같은 수산기[OH]를 가진 화합물과 결합된 형태로, 타닌(tannin), 사포닌(saponin), 디기탈리스(digitalis) 등이 배당체 유기 화합물이다. 그런데 이런 약효 성분을 복용해도 배당체 상태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 배당체는 덩치가 커 세포막을 제대로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하는 해결사가 배변활동을 돕고 있는 비피더스균 (bifidobacterium)같은 장내 세균들이다. 이들은 약효 성분에서 당분자를 떼어내는 효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강심제로 쓰이는 디기탈리스나 인삼의 사로닌도 장안에 미생물이 배당체를 잘게 쪼개는 분해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비피더스균은 모유를 먹는 유아의 장에서 발견되는 유산균의 일종으로 이 균이 없으면 설사를 하는 등 장 활동의 균형이 깨지며 비피더스균이 부족한 사람은 배당체상태인 인삼의 사포닌이 분해되지 않아서 약효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인체에 상주하고 있는 세균들은 외부의 병원균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여성의 질 속에는 다양한 균들이 살고 있는데, 건강한 질의 환경유지에는 락토바실러스 같은 유산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균들의 분포가 파괴되면 질내 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피부에도 포도상구균 등 다양한 세균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평상시 병원성 균이 피부에 서식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몸을 깨끗이 한다고 매일 지나치게 샤워하며 피부를 문질러서 이들 세균을 없애버리면 위생은 커녕 유해한 병원균의 침입을 받아 각종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생물이 공존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과 유익한 미생물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깨져 병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우산균을 장내에 키우는 것을 마치 유기농업과 비슷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체내외 미생물을 합쳐 하나의 초유기체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DNA분석을 통해 밝혀진 인간의 유전자중에는 세균으로부터 온 유전자가 2백개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던 미생물들의 유전자가 세포 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즉, 미생물과 사람 간에 서로 유전자까지도 교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의 모든 동식물 유전자의 조상도 미생물 유전자로부터 진화해온 것으로, 미생물과 인체가 어울려서 좀 더 큰 생명 체계로 운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생물에 의해 인류는 수많은 질병에 걸려 왔고 그 질환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세포와 조직도 미생물의 위협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계속 개발해 왔다. 그런데, 그 공격과 방어의 현상에서 절묘한 타협이 이뤄지는 듯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닷물에 사는 세균으로 인간에게 콜레라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비브리오균을 보자. 이들은 사람의 장내로 들어오면 설사를 유발하는 독소를 생산해 사람으로 하여금 설사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면 이 설사를 타고 비브리오균은 다시 자신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으로 흘러갈 수 있게 되는데 이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상호 간의 적절한 타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보다는 미생물의 돌연변이와 변신이 한결 빨리 이뤄진다. 사람들이 그동안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 거의 모든 항생제에 죽지 않는 새로운 병원성 균인 ‘슈퍼 박테리아’가 등장하기도 했다. 인간과 미생물 사이의 공격과 방어, 타협은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그 균형이 급격히 무너져 미생물과 인간의 필승 또는 필사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생물이 승리할 것이다.
물론 미생물은 인간에게 크게 승리해 봤자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 별로 없다. 무서운 병원성 균이 유행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한다면 침입한 미생물들도 자신이 살 수 있는 터전이 그만큼 사라져 결국은 그들도 같이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생물은 인간을 물리치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나서는 것은 아닐까?
박광하(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