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적자생존[適者生存]
200년 전인 1809년을 인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이 태어난 해라고 말한다. 너무나 우연하게도 두 사람은 1809년 2월 12일 같은 날 태어났다. 그중에 한 사람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2.12-1865.4.15)이고 또 한사람은 진화론의 대명사,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2.12-1882.4.19]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으로 갈려서 전쟁까지 치르던 미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된 하나의 미국을 이룩함으로써 건국의 대통령으로 불리어지며 역대 미국 대통령 인기조사에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대통령 이었으나 세계인에게도 추앙받는 이유는 인권혁명이라고 하여야 할 노예해방을 단행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밑바탕인 민주주의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과학자이지만 그의 진화론은 인류사에 획을 그을 정도의 획기적인 업적을 아무도 부인 못하고 있으며 인간사회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59년 11월 22일 영국에서 504페이지 의 두꺼운 학술서적 “종의 기원”이 초판 1,250부가 출판 하루 만에 다 팔려 나갔다고 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올 즈음에는 영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신을 뒷전으로 내몰고 종교에 희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혼란기이긴 하였지만 이 책은 당시 유롭의 지식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신문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글로 기록된 이래 인간을 이처럼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킨 예가 없다”고 맹렬히 비난했다고 하며, 그가 다녔던 케임브릿지 대학은 이 책을 도서관에 소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종교계의 강력한 비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진보쪽의 과학자들은 그를 지지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식물학자 헨리 왓슨은 “선생은 19세기 자연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선생의 선구적인 생각은 과학의 확고한 진리로 인식될 것입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다윈은 이 책에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선택과정에 따라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선택이란 자연계의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임을 일컫는다.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적[知]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에는 흰색의 후추나방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산업혁명이후에는 대기 오염으로 인해 숲의 나무들이 검게 변하자 검은색 후추나방이 많이 발견 되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 분석하면 공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나무껍질에 붙어사는 지의류[地衣類] 때문에 나무의 색갈이 밝게 보여서 검은색 나방은 천적[天敵]에게 쉽게 잡아 먹혔지만, 공업이 발달하며 대기가 오염된 후에는 지의류가 죽고 나무의 색갈이 흑갈색으로 변하면서 이번에는 흰색나방이 숨을 곳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흰색나방의 개체 수는 줄게 되고 검은색 나방의 개체 수는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생존에 유리해진 검은색 나방이 자연 선택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지만 부정 할 수 있는 명백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생물의 종[種]을 간단명료[簡單明瞭]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무리하다. 동물의 종은 식물의 종 보다 비교적 이해하기가 용이 하다고 할 수 있다. 생물의 종[種]은 “자연상태에서 서로 교배[交配]하여 생식능력이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생물 집단”이라고 정의[定義]할 수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이 이와 같은 동종[同種]의 집단을 유지 존속시키기 위해서 살아 왔다. 암말과 수당나귀 사이에서 난 잡종인, 노새는 미국에서 노역[勞役]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던 잡종인데 염색체의 차이로 새끼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생물의 종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당시는 염색체의 DNA가 유전이나 진화에 결부 시킬 수 없었지만 현재는 생물집단 내의 모든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총합’[gene pool]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가 유전과 진화의 시발점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화를 밝히기 위해서 다윈이 하였던 관찰을 통한 방식은 고전적인 방법이 되었으며, 생명과학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동원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전학, 계통분류학, 고생물학, 내분비학, 면역학, 신경생물학, 생화학, 생물물리학, 생태학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생물정보학까지도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이야기하게 되었으며, 이를 묶어서 ‘진화발생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이라고 하고 줄여서 ‘이보디보’[Evo Devo]라고 한다. 이보디보가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발생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염색체, DNA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참으로 해괴[?]한 작란[作亂]질[?]을 하고 있다. 단순한 세포 하나에 불과한 수정란[受精卵]이 복잡한 성체로 발생하는 것이며, 단순한 생명체가 세대를 거듭하여 점차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현상은 분명히 놀라운 두개의 기적이 아닌가? 외형적으로 달라 보이는 동물들의 유전자[DNA]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거의 똑같은 유전자가 인간이든, 침팬지든, 생쥐든, 모기든, 파리든 간에 하는 일이 똑같다는 것이다. licence가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파리의 눈을 만드는 licence가 있는 아이리스(Eyeless)라는 유전자를 생쥐의 배아에 삽입하면 놀랍게도 정상적인 생쥐의 눈이 만들어 지더라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얻어짐은 물론이다. 파리의 눈과 생쥐 같은 포유류의 눈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심지어 인간의 눈 발생 유전자를 파리에 삽입해도 정상적인 파리 눈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비단 눈 발생 유전자만이 아니라 사지를 만드는 유전자, 심장을 만드는 유전자, 신체의 배열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예상과는 전연 다르게 동물들의 유전자는 매우 닮았으며, 아주 오래전서부터 반복되며 자손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보디보에서는 진화는 유전자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사용방식, 즉 ‘유전자 스위치’의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의 스윗치로 불리어 지는 유전자를 “호메오박스”(homeo box)라고 한다. 줄여서 ‘혹스’[hox]라고도 한다. 초파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모든 세포내에서 형질발현을 위한 전사[傳寫] 스위치를 정교하게 작동시키며 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스터 스위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똑같은 유전자가 초파리, 쥐, 사람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유전자가 생명체에서 맡겨진 임무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수행해 오고 있지만 유전자 활동에서 완벽할 수만은 없다. 내재적 요인도 있고 환경적 요인으로도 예기치 않은 변화를 완벽하게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혹스라는 유전자의 실수로 유전병이라는 것이 발생하지 않는가? 유전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었다든가 유전자1개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11명이 뛰어야할 축구팀이 10명으로 경기를 치뤄야 하는 것처럼 염색체 숫자가 부족한 상태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운증후군이 있다. 이 병은 21번 염색체가 정상보다 1개가 더 많아서 일으키는 유전병이다. 이 유전병이 있는 사람은 머리모양이 특이하며, 봉사정신과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명 “천사병”으로도 불리어 지고 있다. 이 병은 완벽한 염색체 사고로 유발되는 유전병이다. 이를 발견한 “존 랭던 다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별명이다. 염색체상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 있으며, 생명체에 치명적인 불리한 변이도 있지만 환경적응에 유리한 변이도 발생하게 된다. 다윈은 변이가 농업 등의 인위적인 상태에서도 흔하게 관찰되며 자연에서 나타나는 변이와 똑같은 원리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궁극적으로 종[種]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이가 유전으로 누적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분명이 한 것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두꺼운 책은 “매우 간단한 주장에 관한 긴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종은 어느 것이나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변종처럼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라는 문장으로 압축하여 표현할 수 있다. 다윈의 이 같은 생각은 신이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는, 당시 서구 사회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든 놀랍고도 위대한 것이었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모든 학문의 과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 시작이 되었다. 다윈은 변이가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유전에 의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생물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새끼를 낳게 되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부족한 자원을 두고 끊임없이 경쟁을 하게 되어 있다. 경쟁이 거듭되다 보면 생존에 유리한 변이로 가진 개체는 번성하며 유전법칙에 따라서 그 변이가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이들이 축적되고 결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종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바로 다윈이 말하는 “생존경쟁”[生存競爭, a struggle for existence]이다. “생존경쟁”의 좀 더 깊은 의미는 단순이 살아남는 것에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경쟁이다. 경쟁에서 도태[淘汰]되지 않고 자연에 잘 적응하며 왕성한 번식을 하여가는 것을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고 보았으며, 스스로의 힘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선택의 결과로 판단한 것이다. 생존경쟁,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은 자연에서의 생물들의 생존과 종족번식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4.27-1903.12.8]가 처음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사회도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적자생존”을 주장하였다. 그의 진화론에 대한 오해된 부분이 많았고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하였지만 당시의 서구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였었다. 생물의 진화는 각 생물들이 각자의 환경적 특성에 맞춰 적응한다는 개념인데 그런 걸 무시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타문명 침략 정당화를 위해 왜곡했다. 사회진화론에서 서구 문명은 우월하고, 다른 모든 나머지 문명들은 열등하다고 본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당연히 스스로가 정복한 문명은 적자로서 생존한 것이고, 우월한 그들이 지배해야 정당하다는 이데올로기였다. 생존경쟁 내지 전략은 동종간에서도 일어나고 이종사이에도 관찰할 수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먹여 살리는 제비가 새끼 한 마리를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다시 둥지에 넣어 주었지만 같은 둥지의 다른 새끼들이 의도적으로 밀어내는 냉혹한 태도를 보고 당혹해 한일이 있다. 장마가 계속되는 등 제비들이 먹잇감이 부족할 때 벌어지는 현상으로 같은 종 내부 또는 개체군에 속하는 개체끼리 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사자와 하이애나가 비슷한 먹잇감을 놓고 경쟁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는 종간[種間]경쟁이며, 먹잇감 때문에 서로 생사의 경쟁을 한다. 경쟁이 반드시 먹잇감 때문에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종간에 배우자를 차지하려는 경쟁을 연례행사로 벌리게 되며, 영역싸움도 거의 모든 야생동물들이 겪어야 하는 경쟁이다. 개체수가 증가하면 먹잇감이 부족하게 되고 생존위협을 받게 되니 온갖 전략을 구사 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생물들이 경쟁으로 살아남으려는 전략보다는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켜서 생존하며 버텨오고 있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사자가 아무리 강해도 아프리카에서나 동물의 왕이지 북극의 빙판에서 맥을 출수가 없는 것이며 북극에는 지방질로 굳게 무장한 북극곰이 왕이다. 다윈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진화의 증거로 남미의 갈라파고스[Galapagos]군도[群島]의 여러 개의 섬에 사는 핀치새의 부리의 예[例]를 들고 있다. 이 새는 같은 종[種]이지만 섬마다 부리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열매를 먹는 새, 선인장을 먹는 새, 나무속에 곤충의 유충을 파먹고 사는 새 등 외모는 비슷하지만 부리모양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환경에 적합한 부리로 변이를 일으킨 핀치새가 환경에 잘 적응하며 생존하여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적자생존”에 대해 잘못 알고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크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식이다. 자연은 그렇지 않다. 크든 작든, 강하든 약하든, 자연에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 개미가 강해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고 그들만의 사회활동을 통한 생존 방법을 진화시키며 이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게 된 결과이다. 자연세계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 “적자생존”에는 자비[慈悲]라는 단어는 없다.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인 유전자만 있을 뿐이며, 이유전자가 생물의 종[種]을 진화시켜 왔다는 주장이다. 인간사회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박광하(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박광하 칼럼 – 적자생존[適者生存]](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적자생존-보호색.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