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
60-70년대의 한국의 교육은 산업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인력양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독재형태의 국가 체제는 학생들에게 지배자를 두려워하고 복종하도록 하며 부국강병을 최선의 가치로 맏아들이기를 강요하였다. 6.25 전쟁의 페허를 최단시일에 복구하고 가난을 탈피하며 한강[韓江]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것은 대량생산형 교육제도가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북한과의 대치상황은 교육에서 어떤 교육프로그램도 국가 안보의 그늘에서 기를 펼 수가 없었고 군사교육으로 예비전력양성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오랜 기간을 거쳐 왔다.
학교이름만 다를 뿐이지 표준화된 방식에 따라 표준화된 상품을 생산하듯 표준 공통 교육과정으로 똑같은 교육방법, 평가 방식을 적용하여 국가 통치이념에 맞는 표준화된 평균적인 인간을 기르는데 주력하여 왔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 정세속에서 한국의 특수성만을 내세우며 경직된 이념주입에만 몰두하는 교육을 고집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인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사회현상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교육도 이에 걸맞게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사회가 경직된 교육체제의 불합리성을 통감하고 탈피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마치 종교가 개개인의 선택과 양심에 맡겨졌듯이 교육 역시 공장식 모델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반사작용으로 “대안학교”, “자율학교”, “혁신학교” 등의 혁신적인 교육프로 그램으로 교육소비자들을 불러 모으려고 하고 있다. 점수획득위주의 획일화된 공교육속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고 한계점에 부딛친 것이다.
교육정책 추진자들이나 교육소비자들이 백년지대계는 몰라도 최소한 10년 내지 20년을 예측하는 교육의 시차성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한국이 최단시일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 발전하였고, 정보화 사회가 되는 것은 더욱 빨라져서 혼란에 빠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보화 사회는 산업화 사회, 다른 표현으로 공업화가 완성된 후에 오는 것이며,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숙련된 기술자들이나 근면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능력과 품성만으로는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지식암기의 달인을 뽑는 TV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많은 상식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기로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를 영-0과 일-1의 이진법 논리로 조합을 만들어 조작과 처리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생산, 유통, 전달하게 된 시대를 디지털화라고 하며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효용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로 부터도 부러워 할 만큼, 정보통신망이 고도화되었으며 이런 기반위에서 지적재산이 축적되고 상품화되어 산업은 물론 사회의 모든 분야를 이끌어야 하는데 암기훈련위주의 인력들로는 지식과 정보를 생성하고 활용하는 데는 역부족[力不足]이라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의 학교는 한줄 세우기를 통해 장차 사회에 나가, 머리 역할을 할 사람, 손발 역할을 할 사람을 길러내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였지만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모두가 머리가 되고 손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아제[Piaget, 1896-1980]의 구성주의학습이론이 있다. 진정한 학습은 단순히 전달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능동적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습은 개인이 그 전에 형성한 경험과 지식에 새로 배워야 할 것을 연결짓고자 할 때 일어나게 되는 것이며, 또한 개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새로운 경험에 비추어 끊임없이 수정·보완해 나가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구성주의자들에 따르면, 어떤 경험을 두 사람이 공유한다고 해도 각자는 자신의 과거 경험에 새 경험을 연계시키기 때문에 새 경험에 대한 해석[학습]은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학습자는 교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 수 없고,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학습자에게 직접 전수할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과 학습하는 것은 결코 일치할 수 없다. 구성주의자들은 가르치는 일이란 단순한 지식 분배가 아니라, 학습자에게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학습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과정과 절차라고 정의한다(Jonassen, Peck, & Wilson, 1999, 김윤경, 김영서 역, 2001).
분필과 칠판, 교과서, 그리고 교사의 강의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수업 장면에서는 교사가 개개 학생과의 접촉을 통해 장·단점을 발견하여, 장점은 격려하고 단점은 보완해 주는 개별화 수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또한 학교 교육의 주목적이 지식 전수에 있었기 때문에 강의 위주의 수업이 정당화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탐구나 학생 스스로의 의미 구성은 소홀히 되었다. 하지만 이제 멀티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공학적 기자재의 등장으로 교사들은 지금까지 해 오던 지루하고 반복적인 강의로부터 벗어나, 개개 학생들의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허운나, 1997).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인 1997년부터 한국정부가 1조 4천여 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교단[敎壇]선진화’라는 사업명으로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를 활용하여 수업할 수 있게 교실마다 고속인터넷 통신망, 컴퓨터, 대형모니터 등을 설치하였다. 학습 상황에서 ICT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존의 ‘강의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읽기, 쓰기, 셈하기, 외국어 학습과 같이 반복적 연습이 필요한 학습을 멀티미디어에 맡기게 되면, 교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찾아 개별 지도를 해 주는 등 좀 더 교육적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ICT는 멀티미디어 기자재를 통합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다감각적인 다양한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 기법(시뮬레이션, 상호작용 기법 등)을 사용하여 학생들의 탐구와 발견을 독려하며, 학생들이 새로운 이해를 구성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 미래 학교 교육은 이상에서 언급한 ICT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 하여야 한다.
문제는 ‘고가[高價]의 첨단교육용기[機器]를 활용한 수업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인데 문제풀이에 그친다면 나무나 엄청난 예산낭비가 되는 것이며, 또 그런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종래의 수업형태에서 개인차를 고려한 수업이 어려웠으나 ICT기법을 통해 다양한 학습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개인차까지도 해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두뇌연구결과에 의하면 두뇌는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용기”가 아니라 외부의 도전적인 자극에 대해 스스로 재형성해 나가는 유기체와 같다고 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 걸맞게 교실혁명[敎室革命]이 일어나야 하고 사회가 혼연일체로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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