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니일의 서머힐자유학교[Summerhillschool]]
새삼, 서머힐 학교[Summerhillschool]가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이념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하여야 할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에 관한 기사를 또 한번 접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교육감이 된 이래 학생무상금식, 학생인권조례 등 혁신적인 교육정책이 그의 반대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되고 뉴스의 초점이 되었었으며, 지난달 말에, 그에게 내려진 대법원판결 뉴스가 있었다[2014.2.27]. 대법원 판결 내용은 학생이 학교에서 징계받은 내용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라는 갓이다. 이 다툼이 대법원까지 갈 때는 양쪽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을 것이나 징계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징계로 경각심을 촉구하고 일벌 백계의 의법조치로 끝난 사항을 거의 영구문서에 해당하는 학생부에 기재하여야 하는 이유를 이해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자유 속에서 학교생활을 한 학생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학교를 세워 실험을 통해 보여주다 간 니일[(Alexander Sutherland Neill)이 이 재판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말 하였을까? 1883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니일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기를 피지 못하고 자라며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아버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 오는 인물이었으며 성년이 되어서도 아버지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학교 교사였지만 아동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가 칭찬하는 아이는 공부 잘 하는 아이였을 뿐 이였다고 한다.
니일이 수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는 없었다. 학력이 곧 삶의 지위상승을 의미한다고 믿는 부모 밑에서, 공부 못하는 니일은 열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니일은 우여곡절 끝에 학교의 견습교사로 어린이들에게 읽기 등을 가르치게 된다. 니일은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자기가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것은 니일의 인생역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도서실에서 많은 책을 빌려 보며 열심히 공부를 해서 4년만에 정규교사자격증을 얻게 되고 보수가 좋은 학교의 교사로 채용되지만 교장의 권위주의 적인 태도나, 엄벌주의로 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학교분위기는 그에게 큰 실망감을 준다.
자신도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는 자각으로 교직을 사퇴한 후, 공부를 더 하여야겠다고 대학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대학졸업 후에 “새시대[The New Era]”라는 급진적인 잡지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교육문제에 관하여 신랄[辛辣]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하며, 교육철학을 깊이 있게 파고 들게 되고, 그의 교육사상의 기초를 다지게 되된다. 결혼 하였던 두 부인들의 도움으로 서머힐 학교를 맡게 되며 이 학교에서 그의 이상[理想]인 자유주의 교육을 펼치게 된 것 이다. 니일 사상은 억압에서 올바른 인간은 결코 길러질 수 없는 것이며 자유를 누리면서 스스로의 배움을 추구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부모로부터 공부 못하는 못난 자식으로 낙인 찍혔었지만 늦게 서야 스스로 공부의 방법과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깨우쳐 지는 것이야 말로 소중한 것이며 이것은 누구나 가능한 것 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니일은 주장한다. “남에 의해 부여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남에 의해 강요된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어린이는 모두 선[善]하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병신으로도. 겁쟁이로도, 영혼이 없는 로보트로도 태어난 것이 아니며 모두가 삶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흥미를 느낄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교육의 목표[생의 목표]는 즐겁게 일하며 행복하게 되는데 있다”. “자유란 방종이 아니다”. “학습을 강요 하는 것은 벌을 주는 것과 꼭 같은 불안을 낳게 하며 적개심을 불러 일으킨다.” “엄벌주의는 어린이의 건전한 정신적 발전을 저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다 대수의 사람들이 어린이들의 일탈[逸脫] 행동은 엄벌 해야 죄악감을 갖게 되고, 탈선 하지 않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벌을 받은 어린이는 오히려 반항아가 되고 불행에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을 간과[看過]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일은 서머힐학교의 실험적인 교육활동을 통해서 그의 주장, 그의 이론이 타당 하는 것을 보여 주며 50여년간 이 학교를 운영하다가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니일이 서머힐에서 손을 떼면 학교가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내다 봤었지만 그가 간지 4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머힐 학교가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영국보다 히틀러의 독재 체제하에서, 독재이념을 강요당하고 있던 독일인 들에게 환영 받았으며 한국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목 하여야 한다. 문제아는 문제부모, 문제사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니일은 자신을 증거로 내 세웠으며 서머힐을 통해서 그 해결방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과오를 기록으로 남겨 죄악감을 평생 동안 간직하게 해서 탈선 하지 않게 하고, 타[他]에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는 교육최고 책임자의 주장을 대법원장이 들어 줄 줄 알았단 말인가?
행복한 아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복은 어서 오는가? 자유로운 발상, 자유로운 행동으로 스스로 보람을 찾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하게 하여야 한다는 니일의 주장에 교육부장관은 귀를 기울이고 학생들을 행복하게 공부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박광하 칼럼 – A.S.니일의 서머힐자유학교[Summerhillschool]]](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박광하-칼럼-로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