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목사의 나침반 논단
건강한 교회를 향한 출발
복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 피상 성을 추구하는 메시지 & 본질을 추구하는 메시지
뉴스는 오늘날 대규모 산업이다.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에 새로이 대두하는 권력 엘리트에게 “계급 계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보야 말로 분명 그들이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품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더 곳곳에 침투해 있다. 현재 호주에는 TV 네트워크- 공중파 방송과 24시간 유선 방송- 와 수십 여종의 정보 사 간행물, 그리고 여러 가지의 신문들이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으로 인해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은 신문을 접하기도 전에 새로운 뉴스를 먼저 접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뉴스는 뉴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들 뿐만 아니라 그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뉴스에는 정치 이야기, 사건 사고이야기, 새로운 과학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뉴스에 너무 중독되어서 뉴스 없이 살 수 있을 지 염려스럽기 까지 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을 세상의 소식에 깊이 물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점에 오스 기네스는 “ 시류를 좇아가는 것은 피상성과 근심과 탈진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소식은 교회 안에도 깊이 들어와서 주중 삶을 나눌 때 온통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소식이 아니라, “복음의 외침”이다. 복음이란 “유앙겔” 즉 좋은 소식이다. 인간의 영혼에 참된 회복과 구원을 줄 수 있는 본질 “복음”을 붙들 때 우리의 영혼에 참된 회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 복음은 단순히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상담학을 공부한 사람은 한번쯤 들어 본 말이 있다. “나도 문제없고 너도 문제없다.(I am OK, you are OK)” 라는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기본적으로 함께 둘러 않아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서로 도와주는 일종의 신앙적 치료 시간인 것처럼 생각한다. 회중석은 소파가 되고 설교자는 질문 던지며 강해할 설교 본문은 당신 자신의 내적 자아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다 들여 다 보았는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그토록 자주 공허감을 느끼는가? 불만족을 느끼는가?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 안에서 우리 모두가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불순종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롭지도 않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다. 사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죄는 너무 심각해서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필요하다, 또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기 때문에 다시 창조 되어야 한다.
거부하고 싶지만 이것이 우리가 처한 영적 상태이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우리의 세상과 삶과 본성과 마음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 현신에 안주하고 타락한 상태에 머물려 있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상태를 회복하고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하는데 있다.
* 복음은 단순히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메시지로 표현되는 복음을 듣기도 한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부인가?
여러분이 부모라면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하고 타일렀다가 이런 말대꾸를 들어 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 날 정말 사랑한다면 그냥 내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세요.” 물론 성인인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못하게 막기도 하고 때로는 벌을 주는 것도 사랑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다음 대목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신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이시다. 그의 존재와 속성에 있어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자유로우시며, 절대적이셔서, 그의 변치 않는 뜻의 계획대로, 죄를 참지 않으시고, 죄를 미워하시며…”
하나님의 속성에는 사랑만이 아닌 다양하고 깊은 속성이 함께 존재하신다. 복음의 이해에 있어 하나님의 깊음과 질서와 충만함과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편협한 복음이해에서 벗어 날수가 있다.
* 복음은 단순히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생활과 선행, 교회 출석, 십계명과 황금률 지키기, 성경 읽기와 기도 또는 공동체 세우기, 자선, 무료 급식소 봉사, 주차 공간 마련을 위해 역사적인 건물 훼손하지 않는 일등의 열심이라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놀랍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성경적 복음은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단순히 사랑하며 살거나 황금률을 따르거나 “긍정적인 사고”를 실천하거나 실제로 우리가 스스로 할수 있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우리들의 이미 좋을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첨가제”가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알고 깨달은 사람들을 위한 놀라운 좋은 소식이다. 이런 복음을 대할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은 회개와 믿음이다.
1. 회개
우리는 신약에서 회개와 믿음이 함께 언급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만났을 때, 자신이 전파한 메시지를 이와 같이 요약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20:21) 이것이 신약전체에 걸쳐 분명히 드러나는 메시지이다.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한 진리를 들었다면, 그 진리에 반응해야 한다.
2. 믿음
믿음은 회개와 함께 온다. 예수님이 명하시는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좋은 소식을 믿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아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조금 믿고 하나님도 조금 믿는 정도에 머물려서는 안 된다. 회개에 해당하는 원어는 “메타노이아”인데 문자적인 뜻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참된 기독교는 결코 단순한 첨가제가 아니며 늘 있어 왔던 어떤 것을 단순히 더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180도 방향전환이다.
박성훈 목사
시드니 한인장로교회 청년부 담당 교역자
총신신학대학원(M.Div)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