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목사의 나침반 논단
건강한 교회를 향한 출발
4. 회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
* 난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어요. 날 용서해 줄 수 있겠어요?
오래전 많은 사람들이 보았던 “밀양” 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 당사자는 용서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피해를 입는 사람은 아픔 속에 있다면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써 바른 회심이해가 되지 않을 때, 자기만족 또는 자기 설득에 의해서 복음을 이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염려로 “회심의 성경적 이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 회심은 꼭 필요한 것인가?
많은 이가 이 질문에 대해 즉각 “아니요” 라고 대답할 줄 모른다. 자기의 삶속에 큰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직면할 때 많은 이는 그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변해야 합니까? 자기 생각을 남들에게 까지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거 잘 알지 않습니까? 설마 당신의 생활방식이나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죠? 그런 주장을 한다면 당신은 일종의 자기 의에 빠진 위선자가 분명합니다! 당신 자신의 노이로제나 잘 신경 쓰시고 나는 그냥 내벼려 두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며 우리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가르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이 바로 우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회심하기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엡2장 1절) 그리고 이런 영적인 죽음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가르친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인간 본성의 상태에 대해서 사용하시는 이미지들을 살펴보라. 빚을 지거나 노예상태에 있거나 파산하거나 심지어 죽어 있는 등 이미지들이 매우 극단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상태, 우리의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곳에서 구원해줄 유일한 밧줄,,,“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다.
* 성경적 회심의 본질을 붙들어라.
1) 정신적 납득이 아니라,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회심이란 단지 정신적인 납득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우리는 그저 결정을 내리고 교회 복도사이로 걸어가 카드 한 장을 작성하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회심을 매우 가벼운 변화정도로 생각하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변화에서 더욱 근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회심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회개와 그리스도의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앙과 신뢰인 믿음을 함께 포함한다. 이 같은 회심의 차원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첫째, 실제로 회심한 사람이면서도 자신은 회심하지 않았다고 생각는 사람들이다. 정말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넘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지을때마다 마귀의 참소를 느끼면ㅅ 자신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마귀의 생각에 동조하기가 쉽다, 우리는 재판장들에게 교화하게 기만적인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기도했던 잔 다르크를 본받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잔 다르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은혜 안에 있지 않다면 나를 그 은혜 안에 있게 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나이다. 은혜 안에 있다면 그 안에 계속 머물게 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나이다.”
존 뉴턴은 이렇게 고백한다. “ 지금 내 모습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도 아닙니다. 내가 소망하는 모습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나의 나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실제로는 회심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은 회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19세기 런던의 위대한 목사인 스펄전의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스펄전이 어느 날 길을 걷고 있을 때 술에 취해 가로등에 기대였던 한 남자가 스펄전에게 고함을 쳤다. “안녕하시오, 스펄전씨, 나 기억하시오?” 스펄전이 대답했다. “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왜 내가 당신을 기억해야 하지요?” 남자가 말했다. “난 당신이 회심시킨 사람이란 말이요.” 그러자 스펄전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내가 보기에 회심자 였던 것 같은데 주님이 보시기엔 아닌 모양입니다”
2) 도덕적 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한 의지이다.
어떤 이들은 회심이란 전부 선량한 삶을 사는 것과 관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심은 좀 더 도덕적이 되기 위한 노력, 즉 자신의 도덕적인 결심들을 모아서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회심은 나 자신의 도덕성, 나 자신의 선 나 자신의 의를 정성들여 구축하는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즉 회심은 나 자신의 도덕적인 딜레마를 해결하고 행동거지를 깨끗이 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 자신의 모습을 더 받아들여질 만하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절대 순종, 전적 의존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아무 희망이 없는 처지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외적인 상황이 아무리 그럴 듯하게 보여도 우리는 실로 하나님 앞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셨고, 완벽한 삶을 사시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을 믿을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 죽으셨으며, 우리의 죄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데서 나온다. 이런 믿음,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런 마음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 회심 때 일어난 커다란 변화의 본질이다.
박성훈 목사
시드니 한인장로교회 청년부 담당 교역자
총신신학대학원(M.Div)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