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필
절망을 딛고서 (간증문)
2년 전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이지 못하여 석달 동안 온갖 검사를 다 거친 결과 심각한 골다공증이라고 했다. 뼈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니 부서지지 않도록 절대 조심하고 통증은 진통제로 해결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전문의의 말에 내 마음은 와르르 무너지고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영원히 못 걸어도 통증만 멎었으면….. 왼쪽 다리를 절단해 버리면 어떨까? 나의 지병인 신장문제로 밤새도록 돌아가는 저 투석기계의 스위치를 꺼버리면 안락사가 되겠지? 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해방되고 나 때문에 오랫동안 밤낮으로 희생하는 남편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실현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완악했던 결심은 나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묵상과 말씀, 기도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사관님의 정성에 붙들려 녹아지기 시작했다. 온 교인의 정성스런 기도와 안부를 묻는 메시지, 지인들의 사랑의 손길 또한 나를 그냥 절망 속에 주저 앉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려고 애쓸 때, 친구가 열 세권의 책을 보내왔다. 그 가운데 Steven Galloway가 쓴,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제목이 멋지게 느껴져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다.
가슴을 에이는 선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마음을 졸이다가 심호흡을 해본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저격수들로 포위된 거리에 낡은 연미복을 입은 첼리스트가 등장한다. 죽은 이들을 위하여 바치는 진혼의 선율 아다지오, 피로 얼룩진 아스팔트 위에 목숨을 건 관객들의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였던 젊은 여인은 살상은 혐오하지만 위대한 첼리스트를 보호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가치있게 여기며 지키려는 인간애가 눈물겹다. 재난 속에서도 인간이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가치와 존엄성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는 동안 진통제와 한방침술, 물리치료로도 다스려지지 않던 악귀 같은 통증을 잊고 있음을 발견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리 성한 사람들의 답답함이나 하소연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건강 문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계속 책만 읽었다.
어릴 적엔 줄넘기, 고무줄놀이, 철봉에 매달려 뛰노느라 바빴고 중 고등학교시절에 입시지옥에 시달리느라 차분하게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대학시절은 학점과 공모전 준비에 허덕였고 졸업 후엔 취직해서 일하고 결혼 후에는 위킹 맘으로 숨차게 뛰어 다니느라 제대로 독서삼매경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평생 시간에 쫒겨 살아 온 내가 육신적인 통증만 빼면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감지덕지한 행운이고 축복인 것이다. 은밀한 행복감에 도취되고 소원을 성취하는 마음으로 성경과 함께 많은 책에 몰두했는데 그 가운데 몇 권의 책은 무척 감동적이고 인상이 깊었다.

인류학자인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가 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원시부족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의 존재가치를 극명하고 거룩하게 묘사되었다. 불신으로 삭막한 오늘날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숙연해 지기도 했다.
624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인 ‘유언장’은 이야기 전개와 내용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었다. 신의 한 수 같은 장면에는 가슴이 뻥 뚫리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예스! 나이스~ 나이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시다는 걸 또 깜빡했네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뱉어 낼 때는 내 병은 이미 저만치 물러나 있음을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듯 설렘을 느낀다. 얼마나 황홀한지 모른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지들은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코비드 팬데믹 시대에 나는 매일 밤 투석을 해야 하는 앉은뱅이라 직접 갈 수 없어 이미 포기한 여행을 두꺼운 책과 함께 멋지게 해결하고 있다
간간히 하늘을 바라본다. 창 밖의 파란 하늘엔 마스크로 필요 없고 거리두기도 없는 뭉게구름이 떼지어 몰려 다닌다. 탐스럽고 하얀 솜덩이 같은 뭉게구름만 보면 시집가는 딸에게 햇솜 이불을 만들어 주려고 커다란 솜 보따리를 이고 다니던 친정엄마 생각에 목이 메인다. 건강이 나빠지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눈물 겹도록 엄마가 더욱 그리워진다. 남편없이 오랜 세월을 혼자 살아오면서도 우리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한번도 하지 않으시고 참고 견디셨다. 아버지 없이 커가는 자식들이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봐 엄마는 늘 “우리집에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단지 하나님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는 나의 어머니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좋았다. 너무 아파 힘들 때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엄마, 또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내가 낙심 속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통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 지냈던 1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마음을 다 잡으며 독서와 기도와 말씀 속에서 지냈다. 어느 정도 통증이 완화되어 견딜만 해지자 두발을 딛고 일어서 걸음마 연습에 돌입했다.
아직 건강이 온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근래에는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한다. 볼 때 마다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자들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성도들의 사랑과 중보기도, 두분 사관님의 기도와 관심, 끊임없이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지인들의 사랑도 독서와 함께 내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치료제이고 보약이었다. 인생의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내 연약했던 신앙도 조금씩 더 여물어 가고 성숙해 지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이끌어주고 계심에 감사를 드린다.
박조향 부교 (구세군 라이드한인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