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이민자부모를 위한 “쉬운” 기독교교육이야기 (10): 건강한 교회교육
Q: 건강한 신앙교육을 위해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요?
A: 주일학교중심 교육에서 탈피하고 전 회중을 교육의 장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1780년 로버트 레이크스에 의해 시작된 영국의 주일학교 운동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식 주일학교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 초까지 주일학교는 공립학교들이 설립되지 않은 곳에서 가난한 아동들에게 읽기와 산수를 가르쳤다. 그러나 점차 주일학교는 교회 내에서 아동들에게 신앙교육을 관장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러한 주일학교 중심의 기독교교육은 고스란히 한국으로 전수되어 한국의 교회는 선교 초창기부터 교회교육을 주일학교 중심체제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주일학교 중심의 교회의 기독교교육은 세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첫째, 신앙을 지적 신념으로 대치해 버렸다. 주일학교는 학교식 시스템을 도입하여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신앙은 주입식 교육으로 전달 가능한 지적 신념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전인적인 하나님 앎이다. 즉 신앙은 인격적이고 영적인 하나님 앎이요, 참여적이고 공동체적인 하나님 앎이다. 이러한 전인적인 신앙을 지적 신념으로 대치하게 되면 지식은 쌓여도 그 지식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변화된 삶으로 연결되지 못할 수 있다.
둘째, 주일학교 중심의 기독교교육은 교육의 대상을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국한시켜 버렸다. 대부분의 주일학교는 유치부, 아동부, 학생부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시스템에서 청년, 장년, 노년은 교육받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과도 배치된다. 영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계속해서 교육받고 훈련 받아야 할 대상이다. 교육공동체와 신앙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에서의 온 회중은 피교육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이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혀야 할 피교육자임을 인식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지체를 돕고 섬기는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피교육자임을 인식하는 교육자는 자신의 교육행위를 통해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피교육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임을 인식하는 회중들로 구성된 교육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교회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주일학교 중심의 교회교육은 또한 교회의 전 영역을 교육과 분리시켜 버렸다.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예배(레이투르기아), 설교(케리그마), 가르침(디다케), 교제(코이노니아), 봉사(디아코니아), 이렇게 다섯 가지 핵심 영역들로 이루어진다. 이 다양한 영역들은 서로 연관되어 건강한 신앙인을 양육하는 공통된 사명을 감당한다. 그러나 주일학교 중심의 교회는 교육을 주일학교에 일임해버렸다. 그 결과 교육과 다른 영역들이 분리되었고 이는 교회교육의 파편화로 이어졌다. 가르침, 즉 디다케로서의 교육만으로는 건강한 기독교교육은 불가능하다.
마리아 해리스는 이러한 주일학교 중심의 교회교육이 초래한 기독교교육의 파편화를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예로 들면서 비판하였다. 초대교회의 교육과 훈련은 가르침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초대교회의 교육과 훈련은 가르침과 함께 예배, 설교, 교제, 봉사로 구성된 교회 전 영역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해리스는 교회교육의 커리큘럼은 가르침, 예배, 설교, 교제, 봉사라는 교회의 전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전 영역이 기독교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째, 공동체 안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는 기독교교육의 중요한 자리이다. 공동체는 교회교육의 출발점이다. 교회 공동체는 회중과 가정으로 이루어지고 회중과 가정 모두 교육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 먼저 회중은 환대, 리더쉽, 섬김 이라는 교육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1) 환대란 모든 멤버들이 환영 받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오래된 멤버뿐만 아니라 새롭게 정착하기 시작한 멤버들에게도 해당된다. 환대를 통해 온 회중이 하나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될 때 회중은 교육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다. (2) 리더쉽 또한 중요한 교육적 사명이다.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회 리더들은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인식하고 교회 공동체를 교육공동체/신앙공동체로 디자인하고 가꾸는데 그 리더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에 대한 인식 없는 리더쉽은 교회 교육을 주일학교 교육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3) 섬김은 회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라 할 때 섬김은 그 자체가 배움이며 교육의 열매이다. (# 가정의 교육적 책임은 지난 칼럼 참조)
둘째, 예배 또한 기독교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예배가 기독교교육의 장인 이유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영향 받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예배 중에서 특히 기도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인 기도와 공동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노력한다. 해리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기도의 차원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데 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창조적인 시도들이 요구된다.
셋째, 교제와 예배에 이어 해리스는 건강한 가르침을 강조한다. 가르침이 기독교교육의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주일학교 중심의 주입식 교육과 차별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독교교육을 위한 가르침은 성육신적 가르침이어야 한다. 성육신적 가르침이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지식을 교사가 먼저 온 몸으로 살아내는 그런 가르침을 의미한다. 즉 교사의 말을 통해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몸과 삶을 통해서 가르쳐지는 것이 성육신적 가르침이다. 또한 기독교교육을 위한 가르침은 소명을 일깨우는 가르침이어야 한다. 기독교교육을 위한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계시와 소명을 깨닫게 하고 그 계시와 소명을 온 몸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각 자의 주체성과 독특성이 무시된 채, 교리와 지식만을 전수하는 자리는 기독교교육을 위한 장이 되기 힘들다.
넷째, 교제·예배·가르침에 이어 케리그마, 즉 말씀의 선포 또한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케리그마란 설교뿐만 아니라 성경과 신학을 포함하는 형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대변되는 계시의 선포라 할 수 있다. 케리그마는 복음의 정수이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말씀의 선포는 기독교교육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해리스는 세 가지 교육적 과제를 제시하였다. (1) 케리그마가 교육적인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장적인 경청이 선행돼야 한다. 설교자, 교사, 신학자가 선포하기 전에 회중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들으며, 그들의 삶과 이슈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선포는 보다 교육적인 선포가 될 수 있다. (2) 케리그마가 교육적인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예언자적인 발언이 수반돼야 한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입이다. 예언자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들이다. 말씀의 선포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케리그마가 교육적인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왕의 소명을 가져야 한다. 왕의 소명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힘과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다. 제사장적인 경청과 예언자적인 선포가 일어나도 왕 적인 소명과 구현이 없다면 케리그마의 선포는 완성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교제·예배·가르침·선포에 이어 해리스가 강조하는 교회교육의 자리는 봉사이다. 봉사, 곧 디아코니아의 핵심은 서비스이며 서비스의 정신은 긍휼이다. 긍휼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게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가르침, 예배, 케리그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은혜를 받았다면 그 지식과 은혜는 반드시 교제와 봉사를 통해서 가슴과 손과 발에 각인되어야 한다. 교제와 봉사를 통해 각인되지 않은 은혜와 통찰은 쉽게 잊혀진다. 이처럼, 교제, 예배, 가르침, 선포, 봉사와 같은 교회의 전 영역이 교육의 자리가 될 때, 교회 교육은 주일학교 교육으로 파편화되지 않게 되고 통전적인 교육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때에 개 교회는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건강하게 완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종수 목사 (호주 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
이교연 홈페이지: www.secondgenedu.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