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JS 2세 보고서 (8) 인종적 차이 인식, 정체성 형성의 시작점

에릭슨, 마르시아, 피니 등과 같은 정체성 연구학자들에 의하면, 정체성을 탐구하는 모라토리움 과정이 정체성 성취를 선행한다. 모라토리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탐색하는 과정이기에 혼란스럽거나 불편한 경우가 많다. 민족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이 모라토리움은 2세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피부색이 주류 사회 구성원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시작된다. 윌리엄 크로스는 흑인이 자신의 흑인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 (Nigrescence) 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이런 깨달음을 ‘대면’ 이라고 명명했다. 크로스는 Nigrescence, 즉 흑인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을 대면 단계를 포함한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는 말한다: “대면 단계에서 흑인은 자신과 백인의 차이를 깨닫게 되고 치열한 변혁의 단계인 ‘몰입–출현’ 으로 넘어간다. 몰입-출현 단계에서 지금까지의 정체성들과 새롭게 나타난 정체성들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한인2세 학생들과의 인터뷰 연구를 통해서도 동양인이라는 인식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닉은 자신이 초등학생일 때는 자신을 호주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피부색이 호주 친구들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자신이 엄밀히 말해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 이후로 닉은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서툴고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었지만 자신이 속할 곳은 한인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닉의 경우를 보면 주류 사회와의 인종적인 간격에 대한 처음 인식이 정체성 개종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닉의 정체성 전환은 닉으로 하여금 언어장벽과 문화충격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인교회로 돌아가게 했고, 한국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더 배우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동부교회 학생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21세 청년 자비스는 호주에서 태어난 2세이다. 닉처럼 자비스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순수한 호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말도 잘 안 통하는 한인교회를 부모와 함께 나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들과 규범들을 존중하고 지킬 것을 강요한 부모와 다른 한인 어른들이 미웠다. 그러나 자신의 한국인 외모를 깨닫게 되면서 그의 정체성에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저는 어렸을 때 항상 영어만 썼어요. 엄마와 아빠의 문화를 절대 이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늘 우리는 싸웠죠. 저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왜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를 지켜야 하죠?’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어요. . . . 저는 후배 2세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너의 껍데기 안에만 머물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경험하라구요.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는 어차피 자신의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게 돼요. 그래서 아직 젊을 때 아이처럼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깨달은 것은 육체적으로 제가 한국인임을 인식했기 때문이죠. 제가 아무리 호주인이 되고 싶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저는 온전한 호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반면, 호주에서 태어난 그레이스는 11학년이지만 여전히 자신을 호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서 한인들과의 교제가 별로 없었고 학교에서도 그레이스는 동양인 친구들보다 백인 친구들하고 주로 친하게 지낸다고 말하였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모두 백인들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피부색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호주 사회의 태도에 대해 아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동양인 외모 때문에 자신이 외국 유학생으로 취급 받을 때마다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외모와 상관없이 자신을 순수 호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외모에 근거한 호주 사회의 편견을 자신의 주요 고민으로 나누었다.
한인 2세 목회자 벤은 그레이스처럼 자신을 호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2세들이 호주 사회의 인종에 따른 분류 (racial categorisation) 에 큰 상처를 입는다고 말하였다. 자신의 동양인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고 호주 사회의 인종에 따른 판단에 불쾌해 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의 증거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계속해서 찾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두 문화 사이에서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고, 때로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분노를 동반한다고 진술하였다.
그렇다면, 두 문화 사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한인2세들이 추구해야 할 건강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필자는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의 개념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부분은 다음 지면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박종수 목사
(호주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