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JS 2세 보고서(9)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
2세로서의 성장 경험과 2세 목회 경험을 토대로 벤은 거의 모든 2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 문화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혼돈과 모호함을 겪는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2세들 안에는 두 문화를 잇는 하이픈(-)이 존재합니다. 저를 예로 들면 저는 한국인 부모가 있고 한국인으로서 호주에서 자라났지요. 그래서 제 안에는 한국과 호주를 잇는 하이픈이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2세들 안에는 두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가 존재해요. 이 다리 위에서 한국계 호주인들은 제 3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하이픈은 매우 짧은 선이지만 이 중간에는 아주 큰 간격이 존재합니다. 한 편에는 한국 문화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호주 문화가 있어요. 두 문화를 잇는 하이픈이 있고 그 하이픈 내에 Korean – Australian이라는 제 3의 문화가 있죠. 따라서 2세들의 정체성이란 “이 하이픈 안에서 어떻게 나를 찾을 것인가? 제 3의 문화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저는 하이픈이 단순한 혼합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혼합이 아니라 한국 문화와 호주 문화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죠.”
벤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면서 2세 정체성과 관련된 그의 생각을 담고 있는 용어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현재 많은 영역에서 각광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hybrid) 개념을 발견하였다. “하이브리드의 기본적인 의미는 서로 다른 2개의 기술이나 시스템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 때의 결합은 단순한 혼합이 아닌 2개 기술의 장점을 통합하여 기술의 진보를 이뤄낸 것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 (hybrid identity) 이란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은 2세들로 하여금 두 문화와 가치들을 적절하게 수용할 뿐만 아니라, 두 문화의 단순한 혼합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문화창조를 이끌어내는 동력이라 정의할 수 있다.
닉은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을 2세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건강한 정체성이라는데 동의하였다.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2세들에게 두 문화를 충분히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닉은 주장하였다.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을 성취한다면 두 문화 사이에서의 갈등이나 혼란의 문제는 거의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2세들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가장 좋은 것은 그들에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은 그들이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들을 제공해야 하죠. 예를 들어 어렸을 때는 호주 아이들이 많은 학교로 보내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호주 아이들을 불편해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 친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요. 이 능력이 참 중요해요. 영어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호주 TV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하고 호주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야 해요. 또한 아이들을 한인교회에 데리고 가서 한국 문화와 가치들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이렇게 양 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면 특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에 아이는 호주인 친구도, 한국인 친구도 다양하게 사귀고 있을 거예요. 양 그룹의 사람들과 모두 친밀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요. 이 때 어느 쪽에 편견도 갖지 않는 하이브리드 정체성을 갖게 되죠. 저는 이것이 가장 건강한 모습인 것 같아요.”
두 문화와 가치들 사이에서의 자유로운 전환은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의 주요 특징이다. 윌리엄 크로스, 린다 스트라우스, 그리고 페오니 파겐-스미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그들의 연구에서 이러한 문화 간의 전환을 코드스위칭(Codeswitching) 이란 용어로 설명하였다: “코드스위칭은 한 개인이 자신이 관계하는 그룹, 조직, 학교, 또는 직장의 규범과 질서에 일시적으로 순응할 수 있도록 한다. 코드스위칭 혹은 프론팅(fronting, 대면) 의 기능은 개인이 관계하는 조직이나 그룹이 그 사람이 가지는 다른 멤버들과의 명백한 차이로 인해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때 일어난다.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코드스위칭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신이 교류하는 사람, 그룹, 조직과의 편안함의 정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표출하게 된다.”
즉 자신을 상대방에 맞게 조직에 맞게 순응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코드스위칭은 “자신의 고유한 생활방식에서 상황이 요구하거나 제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크로스, 스트라우스, 그리고 파겐-스미스는 균형 잡힌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들만이 코드스위칭을 상황에 맞게 그리고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코드스위칭은 유동적인 정체성(a fluid identity) 을 초래할 수 있다. 유동적인 정체성의 상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모라토리움 없이 두 문화 사이의 스위치 만 능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문화 사이를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지라도 자신의 뿌리가 없기에 방향 없이 표류할 수 있다. 모라토리움 과정을 거칠 때는 두 문화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가 어렵다. 이 때의 초점은 스위치가 아닌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모라토리움의 과정을 거친 후 한 정체성이 성취되면, 건강한 전환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통합정체성으로 발전될 수 있다.
제니스 임은 유실된(foreclosed) 정체성을 가진 한인2세들의 경우 유동적인 정체성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고 진단하였다.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두 문화 사이에서 혼란도 느끼지 않지만, 동시에 두 그룹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박종수 목사
(호주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