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히스툰 비문 / 비시툰 또는 비수툰 (The Rock Of Behistun)
베히스툰 비문 (비시툰 또는 비수툰, The Rock Of Behistun, 페: 바가스타나 “신의 땅”)은 이란의 케르만샤 주의 베히스툰 산에 위치한 다국어 비문이다.
비문은 같은 글의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의 세가지 설형 문자로 기록된 세가지 버전을 포함한다. 영국의 군장교 헨리 롤린슨은 1835년과 1843년 두 부분으로 전사시켰다. 롤린슨은 1838년 고대 페르시아 설형문자를 번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람어와 바빌로니아어 글은 롤린슨과 다른 이들에 의해 1843년 이후에 번역되었다. 바빌로니아어는아카드어의 후기 형태로, 둘 다 셈어이다. 그 후 이 비문은 실질적으로 로제타석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베히스툰 비문은 고대의 글 해독에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되었다.
비문은 거의 높이가 15미터에 폭이 100m의 석회암절벽에 있다. 해당 절벽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수도 바빌론과 엑바타나를 잇는 고대 도로에 있다. 여기는 접근하기 어렵게 아래의 산측이 제거되었는데 완성 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페르시아어 글은 5칼럼에 414줄로 되어있다. 엘람어 글은 8칼럼에 593줄 분량이며, 바빌로니아어 글은 112줄이다.
○ 비문 내용
– Column one / 제1단
Introduction: Darius’ titles and the extent of his empire
서문 : 다리우스의 칭호와 제국의 확장
(1) I am Darius, the great king, king of kings, the king of Persia, the king of countries, the son of Hystaspes, the grandson of Arsames, the Achaemenid.
나 다리우스,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페르시아의 왕, 모든 나라의 왕,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이며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르사메스의 손자이다.
주)히스타스페스는 古페르시아어로 Vistaspa. 페르시아와 박트리아의 귀족의 이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헌에는 여러 명의 히스타스페스의 이름이 언급된다. 다리우스 1세의 아버지는 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된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하나. 창설자 아케메네스Hakhamanis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아르사메스는 古페르시아어로는 Arsama. 다리우스 1세 대왕의 할아버지. 그는 기원전 6세기 중반기의 지배자였다.
왕중의 왕은 페르시아 어로 샤한샤Shahanshah라고 한다.

(2) King Darius says: My father is Hystaspes; the father of Hystaspes was Arsames; the father of Arsames was Ariaramnes; the father of Ariaramnes was Teispes; the father of Teispes was Achaemene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히스타스페스, 히스타스페스의 아버지는 아르사메스, 아르사메스의 아버지는 아리아람네스, 아리아람네스의 아버지는 테이스페스, 테이스페스의 아버지는 아케메네스이다.
주) 아리아람네스는 古페르시아어로는 Aryaramna. 다리우스 대왕의 할아버지. 아케메네스 왕가에 속해 있으며 안산의Ansan의 키루스 왕과는 형제간이다.
(3) King Darius says: That is why we are called Achaemenides; from antiquity we have been noble; from antiquity has our dynasty been royal.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우리를 아케메네스 왕조라 부른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귀족이었고 왕족이었다.
(4) King Darius says: Eight of my dynasty were kings before me; I am the ninth. Nine in succession we have been king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의 왕조에는 내 이전에 여덟 명의 왕이 있었다, 나는 아홉 번째이다. 아홉 번째로 계승한 왕이다.
(5) King Darius says: By the grace of Ahuramazda am I king; Ahuramazda has granted me the kingdo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는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을 입은 자이며, 아후라마즈다는 왕국을 나에게 주었다.
주) 아후라마즈다는 페르시아 최고의 신이며, 지혜의 신이다.
(6) King Darius sats: These are the counties which are subject unto me, and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became king of them: Persia, Elam, Babylonia, Assyria, Arabia, Egypt, the countries by the Sea, Lydia, the Greeks, Media, Armenia, Cappadocia, Parthia, Drangiana, Aria, Chirasmia, Bactria, Sogdia, Gangara, Scythia, Sattagidia, Arachosia and Maka; twenty-three lands in all.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내게 굴복하였고,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그들의 왕이되었다. 페르시아, 엘람, 바빌로니아,아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바다 너머의 나라들, 리디아, 그리스, 메디아,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파르티아, 드랑기아나, 아리아, 호라즘, 박트리아, 소그디아, 간다라, 스키티아, 사타기디아, 아라코시아 그리고 마카. 모두 스물 세 곳의 나라이다.
주) 리디아는 서 터키 지역에 세워졌던 고대 왕국. 이 왕국의 왕들 가운데 Croesus가 유명하다.
그리스는 고페르시아어로 Yauna. 이 단어는 소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 후손들이 사용하던 요네스Iones에서 유래되었다.
메디아는 古페르시아어로 Mada. 현재 이란의 서부지역에 있었던 왕국. 수도는 엑바타나Ecbatana로 지금의 하마단.
아르메니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아라크세스Araxes 강-현재의 아라스 강-에 위치한 고대 왕국.
드랑기아나는 古페르시아어로 Zranka. 이 단어는 waterland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지금 이란의 Siatan지역이다.
아리아는 古페르시아어로 Haraiva. 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살던 고대 종족으로 아리아란 ‘고귀한 신분’이란 의미이다.
호라즘은 古페르시아어로 Uvarazmiya.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을 말한다.
간다라는 古페르시아어로 Gandara. 고대 아케메네스 왕국의 Cophen 강-지금의 카불 강-지역의 총독 관구의 명칭.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의 서쪽을 Parapamisos라고 불렀는데 이는 힌두쿠시 산맥의 오래된 古페르시아Upairisaena
로부터 왔다.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인디아에 속해 있다.
사타기디아는 古페르시아어로 Thatagus. 이 단어의 뜻은 hundred cows이다.
아라코시아는古페르시아어로 Harauvatis. 이 단어는 well watered라는 뜻이다. 지금의 칸다하르 지역이다.
마카는 현재의 오만Oman에 설치된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총독 관구이다.
(7) King Darius says: These are the countries which are subject to me; by the grace of Ahuramazda they became subject to me; they brought tribute unto me. Whatsoever commands have been laid on them by me, by night or by day, have been performed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들 나라들은 내게 굴복하였고,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그들을 굴복시켰다. 그들은 나에게 공물을 가져왔다. 장군들은 내 이름으로 그들을 굴복시켰고, 밤낮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였다.
(8) King Darius says: Within these lands, whosoever was a friend, him have I surely protected; whosoever was hostile, him have I utterly destroyed. By the grace of Ahuramazda these lands have conformed to my decrees; as it was commanded unto them by me, so was it done.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이 땅에 속한 모든 사람은 친구이다. 나는 그를 확실하게 보호할 것이다. 반대자는 누구라도 철저하게 부셔버릴 것이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이들 나라들은 나의 법령을 준수하기를 나를 따르는 것처럼 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9) King Darius says: Ahuramazda has granted unto me this empire. Ahuramazda brought me help, until I gained this empire; by the grace of Ahuramazda do I hold this empire.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아후라마즈다는 이 제국을 내게 주었다. 아후라마즈다는 내가 이 제국을 얻을 때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의해 나는 이 제국을 손에 넣었다.
Murder of Smerdis and coup of Gaumâta the Magian / 스메르디스의 살해와 가우마타의 쿠데타
(10) King Darius says: The following is what was done by me after I became king. A son of Cyrus, named Cambyses, one of our dynasty, was king here before me. That Cambyses had a brother, Smerdis by name, of the same mother and the same father as Cambyses. Afterwards, Cambyses slew this Smerdis. When Cambyses slew Smerdis, it was not known unto the people that Smerdis was slain. Thereupon Cambyses went to Egypt. When Cambyses had departed into Egypt, the people became hostile, and the lie multiplied in the land, even in Persia and Media, and in the other provinces.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다음은 내가 왕이 된 후 내가 이룬 것들이다.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는 우리 왕조의 일원, 내 이전의 왕이었다. 캄비세스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스메르디스란 이름의 형제가 있었다. 후일, 캄비세스는 스메르디스를 살해하였다. 캄비세스가 스메르디스를 살해했을 때, 백성들은 스메르디스가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후 캄비세스는 이집트로 (원정을) 갔다. 캄비세스가 이집트에서 출발할 때, 백성들은 적대적이었고, 그 땅에는 거짓 소문이 돌았으며, 페르시아와 메디아 이외에 다른 지방에서도 그러했다.
주) 키루스는 고페르시아어로 Kurus, 히브리어로는 Kores. 아케메네스 왕조의 창건자. 기원전 600년 경 캄비세스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캄비세스가 통치하던 시기에 페르시아인들는 메디아의 지도자 아스티게아스Astyages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캄비세스는 고 페르시아로 Kambujiya. 아케메네스 왕조의 두 번째 왕. 재위기간은 기원전 530-522. 그가 통치하던 시절인 기원전 525년에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캄비세스 2세이다.
스메르디스는 고 페르시아어로 Bardiya. 페르시아의 왕으로 캄비세스의 형제.
(11) King Darius says: Afterwards, there was a certain man, a Magian, Gaumâta by name, who raised a rebellion in Paishiyauvada, in a mountain called Arakadriš.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month Viyaxana [11 March 522] did he rebel. He lied to the people, saying: ‘I am Smerdis, the son of Cyrus, the brother of Cambyses’ Then were all the people in revolt, and from Cambyses they went over unto him, both Persia and Media, and the other provinces. He seized the kingdom; on the ninth day of the month Garmapada [1 July 522] he seized the kingdom. Afterwards, Cambyses died of natural cause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 후 신뢰받던 제사장인 가우마타가 산악 지역인 아라카드리스의 파이시야우바다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비야크사나 달 14일(기원전 522년 3월 11일) 그는 반역자가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거짓으로, ‘나는 키루스의 아들이며 캄비세스의 형제인 스메르디스다’라고 말 하였다. 그러자 페르시아와 메디아 및 다른 지역의 모든 백성들이 캄비세스를 배반하고 떠나갔다. 그의 왕국은 포위되었다. 가르마파다 달 아흐레 날(기원전 522년 7월 1일) 왕국을 강탈당했다. 그 직후 캄비세스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주) 파이시야우바다는 아마도 현재의 자그로스Zagros 산맥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유대의 경우 신년은 현재의 3월이었다. 페르시아의 월은 다음과 같다. 비야크사나 달은 현제의 2월 3월에 해당된다.
Adukanaisa(3.4), Thuravahara(4.5), Thaigasis(5.6), Garmapada(6.7), trunabazis(7.8), Karbasyas(8.9), Bagayadis(9.10), Markasanas(10.11), Aciyadiya(11.12), Anamaka(12.1), Samiyamas(1.2), Viyaxana(2.3)
(12) King Darius says: The kingdom of which Gaumâta, the Magian, dispossessed Cambyses, had always belonged to our dynasty. After that Gaumâta, the Magian, had dispossessed Cambyses of Persia and Media, and of the other provinces, he did according to his will. He became king.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캄비세스에게 빼앗은 제사장 가우마타의 왕국은 언제나 우리 왕조의 소유였다. 후에 제사장 가우마타는 그의 뜻에 따라 페르시아와 메디아 및 다른 지방의 캄비세스 소유를 강탈하였다. 그는 왕이 되었다.
Darius kills Gaumâta and restores the kingdom / 다리우스가 가우마타를 죽이고 왕국을 되찾다
13) King Darius says: There was no man, either Persian or Mede or of our own dynasty, who took the kingdom from Gaumâta, the Magian. The people feared him exceedingly, for he slew many who had known the real Smerdis. For this reason did he slay them, ‘that they may not know that I am not Smerdis, the son of Cyrus.’ There was none who dared to act against Gaumâta, the Magian, until I came. Then I prayed to Ahuramazda; Ahuramazda brought me help. On the tenth day of the month Bagayadis [29 September 522] I, with a few men, slew that Gaumâta, the Magian, and the chief men who were his followers. At the stronghold called Sikayauvatiš, in the district called Nisaia in Media, I slew him; I dispossessed him of the kingdom.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became king; Ahuramazda granted me the kingdo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페르시아와 메데, 그리고 우리 왕국에는 제사장 가우마타로 부터 왕국을 되찾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 스메르디스를 아는 많은 사람들을 ‘그들은 내가 키루스의 아들인 스메르디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이유로 살해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내가 올 때까지 감히 제사장 가우마타에 대항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아후라마즈다에게 기도하였다.아후라마즈다여 나를 도와주소서. 바가야디스 달 열흘째 날 (기원전 522년 9월 29일)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제사장 가우마타와 그의 동료 족장을 살해하였다. 나는 메디아의 니사야에 있는 시카야우바티스라는 요새에서 그를 살해하였다. 나는 그로부터 왕국을 되찾았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의해 나는 다시 왕이 되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에게 왕국을 돌려주었다.
주) 니사야Nisaia는 메디아 서부지역이다.
(14) King Darius says: The kingdom that had been wrested from our line I brought back and I reestablished it on its foundation. The temples which Gaumâta, the Magian, had destroyed, I restored to the people, and the pasture lands, and the herds and the dwelling places, and the houses which Gaumâta, the Magian, had taken away. I settled the people in their place, the people of Persia, and Media, and the other provinces. I restored that which had been taken away, as is was in the days of old. This did I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labored until I had established our dynasty in its place, as in the days of old; I labored, by the grace of Ahuramazda, so that Gaumâta, the Magian, did not dispossess our hous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는 빼앗겼던 왕국을 되찾고 재건했으며 창설하였다. 제사장 가우마타의 신전은 파괴되었고, 그가 강탈한 사람들, 목초지와 가축, 거주지와 집들을 되찾았다. 나는 되찾은 거주지에 페르시아 인과 메디아 인과 그 밖의 다른 지방 사람들을 거주하게 하였다. 나는 빼앗긴 모든 것을 옛날로 되돌렸다. 이것이 내가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한 것이다. 나는 옛날처럼 그 장소에 우리 왕조를 재건할 때까지 일하였다. 나는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일하였기에, 제사장 가우마타는 우리 집안의 소유를 빼앗지 못하였다.
(15) King Darius says: This was what I did after I became king.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은 내가 왕이 된 후에 이룬 것이다.
Rebellions of ššina of Elam and Nidintu-Bêl of Babylon / 엘람의 아씨나와 바빌론의 니딘투 벨의 반란
(16) King Darius says: After I had slain Gaumâta, the Magian, a certain man named Assina, the son of Upadarma, raised a rebellion in Elam, and he spoke thus unto the people of Elam: ‘I am king in Elam.’ Thereupon the people of Elam became rebellious, and they went over unto that ššina: he became king in Elam. And a certain Babylonian named Nidintu-Bel, the son of Kîn-Zêr, raised a rebellion in Babylon: he lied to the people, saying: ‘I am Nebuchadnezzar, the son of Nabonidus.’ Then did all the province of Babylonia go over to Nidintu-Bêl, and Babylonia rose in rebellion. He seized on the kingdom of Babylonia [3 October 522].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내가 제사장 가우마타를 살해한 후, 우파다르마의 아들인 아씨나가 엘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엘람 인들에게 ‘나는 엘람의 왕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엘람 인들은 반란에 가담하였고, 그들은 아씨나에게 호응하였다. 그는 엘람의 왕이 되었다. 또 바빌론 사람 킨-제르의 아들인 니딘투-벨이 바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나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바빌로니아의 모든 지방이 니딘투-벨에게 호응하였고, 바빌론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바빌로니아 왕국을 포위하였다(기원전 522년 10월 3일).

(17) King Darius says: Then I sent [an envoy?] to Elam. That ššina was brought unto me in fetters, and I killed hi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엘람으로 (호위대를?) 보냈다. 아씨나는 사슬에 묶여 내게 보내졌고 나는 그를 죽였다.
(18) King Darius says: Then I marched against that Nidintu-Bêl, who called himself Nebuchadnezzar. The army of Nidintu-Bêl held the tigris; there it took its stand, and on account of the waters [the river] was unfordable. Thereupon I supported my army on [inflated] skins, others I made dromedary-borne, for the rest I brought horses.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we crossed the Tigris. Then did I utterly overthrow that host of Nidintu-Bêl. On the twenty-sixth day of the month Aciyadiya[13 December 522] we joined battl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때 나는 자신을 네부카드네자르라 부르는 니딘투-벨과 싸우기 위해 행군했다. 니딘투-벨의 군대는 티그리스에 있었다. 그러나 강물이 흐르고 있어 건널 수 없어 그곳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가죽 자루를 지급하였는데, 일부는 단봉낙타의 새끼 가죽으로 만든 것을 나머지는 말가죽으로 만든 것을 지급하였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우리는 티그리스를 건넜다. 그리고 나는 니딘투-벨의 군대를 철저하게 무찔렀다. 아시야디야 월 스물 엿세 날(기원전 522년 12월 13일) 우리는 싸웠다.
주)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카멜 혹은 박트리아 카멜을 말한다. 혹이 하나이고 긴 다리와 짧은 털이 특징이다. 이 지역에서 낙타는 교통과 운송수단으로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젖과 가죽과 고기를 제공한다. 이 낙타는 길이가 3m, 높이는 1.9-2.3m이고 체중은 600-700kg 정도 한다.
(19) King Darius says: After that I marched against Babylon. But before I reached Babylon, that Nidintu-Bêl, who called himself Nebuchadnezzar, came with a host and offered battle at a city called Zâzâna, on the Euphrates. Then we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I utterly overthrow the host of Nidintu-Bêl. The enemy fled into the water; the water carried them away. On the second day of the month Anamaka [18 December 522] we joined battl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어서 나는 바빌론으로 전투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그러나 바빌론에 내가 도착하기 전에 자신을 네부카드네자르라 부르는 니딘투-벨은 군대와 함께 유프라테스의 자자나란 도시 근처에서 제사를 올렸다. 이후 우리는 교전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니딘투-벨의 군대를 철저하게 무찔렸다. 적들을 강으로 달아났다. 강물은 그들을 휩쓸어 갔다.아나마카 월 두 번째 날(기원전 522년 12월 18일) 우리는 싸웠다.
– Column two / 제2단
(20) King Darius says: Then did Nidintu-Bêl flee with a few horsemen into Babylon. Thereupon I marched to Babylon.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took Babylon, and captured Nidintu-Bêl. Then I slew that Nidintu-Bêl in Babylon.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니딘투-벨은 바빌론으로 소수의 기마대와 함께 달아났다. 그래서 나는 바빌론으로 진군해 들어갔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바빌론을 점령했고, 니딘투-벨을 사로잡았다. 나는 바빌론에서 니딘투-벨을 처형하였다.
(21) King Darius says: While I was in Babylon, these provinces revolted from me: Persia, Elam, Media, Assyria, Egypt, Parthia, Margiana, Sattagydia, and Sctth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내가 바빌론에 있는 동안, 나에게 반란을 일으킨 지역은 다음과 같다. 페르시아, 엘람, 메디아, 아시리아, 이집트, 파르티아, 마르기아나, 사타기디아와 스키티아이다.
주) 파르티아는 고 페르시아어로 Parthava.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총독구의 하나. 현재 이란의 북동지역이다.
마르기아나는 고페르시아어로 Margus. 카라쿰Karakum 사막 지역. 현재 투르크메니스탄 남동쪽의 메르브Merv로 추정된다.
Revolt of Martiya of Elam/엘람 사람 마르티야의 반란
(22) King Darius says: A certain man named Martiya, the son of Zinzakriš, dwelt in a city in Persia called Kuganakâ. This man revolted in Elam, and he said to the people: ‘I am Ummaniš, king in Ela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진자크리스의 아들 마르티야는 페르시아의 쿠가나카에 거주하는 자였다. 이 자가 엘람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엘람의 왕, 움마니스’라고 말하였다.
주) 마르티야Martiya란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전사warrior를 의미한다. 마르티야는 기원전 522-521년 동안 엘람의 왕이었다.
(23) King Darius says: At that time, I was friendly with Elam. Then there were Elamites afraid of me, and that Martiya, who was their leader, they seized and slew.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 당시 나는 엘람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엘람 인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마르티야를 사로잡아 죽이자 나를 두려워하였다.
Revolt of Phraortes of Media / 메디아의 프라오르테스의 반란
(24) King Darius says: A certain Mede named Phraortes revolted in Media, and he said to the people: ‘I am Khshathrita, of the family of Cyaxares.’ Then did the Medes who were in the palace revolt from me and go over to Phraortes. He became king in Med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메데 사람인 파라오르테스가 메디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사람들에게 ‘나는 키악사세스 가문의 크샤트리타’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메데 인들은 프라오르테스에 호응하여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메디아의 왕이 되었다.
주) 파라오르테스는 고 페르시아어로 Frada. 메디아의 왕 우파다르암마의 아들.
키악사세스는 고 페르시아어로 Uvakhsatara. 아카드어로는 Umakishtar.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오직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역사’ 1권에서만 발견된다.
크샤트리타는 메데의 왕.

(25) King Darius says: The Persian and Median army, which was with me, was small. Yet I sent forth an[other] army. A Persian named Hydarnes, my servant, I made their leader, and I said unto him: ‘Go, smite that Median host which does not acknowledge me.’ Then Hydarnes marched forth with the army. When he had come to Media, at a city in Media called Maruš, he gave battle to the Medes. He who was chief among the Medes was not there at that tim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defeated that rebel host. On the twenty-seventh day of the month Anamaka [12 January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Then did my army await me in a district in Media called Kampanda, until I came into Med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와 함께 한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군대는 소규모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군대를 앞으로 보냈다. 내가 지휘자로 임명한 나의 종 히다르네스에게 말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메디아 인들을 쳐 부셔라.’ 그리하여 히다르네스의 군대는 진격하였다. 그가 메디아에 진입한 뒤, 마루스에서 메데아 인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당시 메데아 인의 족장인 그는 그곳에 없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내 군대는 반란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날은 아나마카 달 이십칠일 째 날(기원전 521년 1월 12일)이었다. 당시 나의 군대는 내가 메디아로 갈 때까지 캄판다 지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Revolt of the Armenians / 아르메니아인들의 반란
(26) King Darius says: An Armenian named Dadarsi, my servant, I sent into Armenia, and I said unto him: ‘Go, smite that host which is in revolt and does not acknowledge me.’ Then Dâdarši went forth. When he came into Armenia, the rebels assembled and advanced against Dâdarši to give him battle. At a place in Armenia called Zuzza they fought the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On the eighth day of the month Thuravahara[20 May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의 종인 아르메니아 인 다다르시를 아르메니아로 보냈다.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적들인 반란자들을 쳐 부셔라.’ 그리하여 다다르시가 진격하였다. 다다르시가 아르메니아에 도착하자 반란자들이 모여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아르메니아의 주짜에서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란자들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툴라바하라 달 여드레 날(기원전521년 5월 20일)이었다.
주) 다다르시는 다리우스 1세 휘하에서 봉사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장군.
아르메니아는 아카드어로는 Urastu, 고 페르시아어로는 Armina.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상류의 아라크세스강Araxes (현재의 Aras)유역에 있는 고대 왕국이다.
(27) King Darius says: The rebels assembled for the second time, and they advanced against Dâdarši to give him battle. At a stronghold in Armenia called Tigra they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On the eighteenth day of the month Thûravâhara [30 May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반란군들은 두 번째로 모여 다다르시와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아르메니아의 티그라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내 군대는 반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투라바하라 달 열여드레 날(기원전 521년 5월 30일)이었다.
주) 투라바하라 월은 오늘날의 4월과 5월에 걸쳐있다.
(28) King Darius says: The rebels assembled for the third time and advanced against Dâdarši to give him battle. At a stronghold in Armenia called Uyamâ they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On the ninth day of the month Thâigaciš[20 June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Then Dâdarši waited for me in Armenia, until I came into Armen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반란군은 다다르시와 싸우기 위해 세 번째로 모여 앞으로 나왔다. 아르메니아의 우야마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내 군대는 반란자를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타이가시스 달 아흐렛 날(기원전 521년 6월 20일)이었다. 이후 다다르시는 내가 아르메니아에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
주) 타이가시스 월은 오늘날의 5월과 6월에 걸쳐있다.
(29) King Darius says: A Persian named Vaumisa, my servant, I sent into Armenia, and I said unto him: ‘Go, smite that host which is in revolt, and does not acknowledge me.’ Then Vaumisa went forth. When he had come to Armenia, the rebels assembled and advanced against Vaumisa to give him battle. At a place in Assyria called Izalâ they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On the fifteenth day of the month Anâmaka[31 December 522]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bring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의 종인 페르시아 인 바우미사를 아르메니아로 보냈다.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반란자들을 쳐라.’ 그래서 바우미사는 진격하였다. 그가 아르메니아에 도착했을 때, 반란자들은 집결하여 바우미사와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아시리아의 이자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반군들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나마카 달 열 닷새 날(기원전 522년 12월 31일)이었다.
주) 바우미사Vaumisa는 페르시아의 장군이다. 기원전 521년 아르메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리우스의 명을 받아 원정을 단행하였다.
아나마카 달은 오늘날의 12월과 1월에 걸쳐있다.
(30) King Darius says: The rebels assembled a second time and advanced against Vaumisa to give him battle. At a place in Armenia called Autiyâra they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At the end of the month Thûravâhara[11 June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Then Vaumisa waited for me in Armenia, until I came into Armen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반란자들은 두 번째 모여 바우미사와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아르메니아의 아우티야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반군을 철저히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투라바하라 달 끝 날(기원전 521년 6월 11일)이었다. 마우미사는 내가 아르메니아에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서에서 나를 기다렸다.
주) 투라바하라 달은 오늘날의 4월과 5월에 걸쳐있는 달이다.
End of the revolt of the Medes / 메데인들의 반란의 종말
(31) King Darius says: Then I went forth from Babylon and came into Media. When I had come to Media, that Phraortes, who called himself king in Media, came against me unto a city in Media called Kunduruš/Kangavar to offer battle. Then we joined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did my army utterly overthrow that rebel host. On the twenty-fifth day of the month Adukanaiša we fought the battle [8 May 521].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는 바빌론을 떠나 메디아로 갔다. 내가 메디아에 도착했을 때 스스로 메디아의 왕이라고 참칭僭稱한 프라오르테스가 메디아의 쿤두루스에서 내게 대항하기 위해 싸움을 걸어왔다.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두카나이사 달 스무 닷새째 날(기원전 521년 5월 8일)이었다.
주) 프라오르테스는Phraortes 고 페르시아어로 프라다Frâda이다. 우파다란마Upadaranma의 아들이며 메디아의 왕으로 기원전 522년부터 521년까지 재위하였다.
쿤두루스Kunduruš 혹은 칸가바르Kangavar는 현재 이란의 하마단과 케르만샤 사이에 있다.
(32) King Darius says: Thereupon that Phraortes fled thence with a few horeseman to a district in Media called Rhagae. Rhen I sent an army in pursuit. Phraortes was taken and brought unto me. I cut off his nose, his ears, and his tongus, and I put out one eye, and he was kept in fetters at my palace entrance, and all the people behold him. Then did I crucify him in Ecbatana: and the men who were his foremost followers, those at Ecbatana within the fortress, I flayed and hung out their hides, stuffed with straw. hang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전투가 벌어지자 프라오르테스는 소수의 기병대와 함께 메디아의 라게Rhagae 지역으로 도망갔다. 나는 추격대를 보냈다. 프라오르테스는 사로잡혀 내게 끌려왔다. 나는 그의 코와 귀, 혀를 자르고 한 쪽 눈을 파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족쇄를 채워 궁전 앞에 세웠다. 그런 다음 그를 엑바타나에서 책형磔刑에 처하였다. 그리고 엑바타나의 요새에서 그의 주요한 동료들을 처형하였다. 그들의 가죽을 벗겨 그 안에 짚을 채워 매달아 놓았다.
(33) King Darius says: A man named Tritantaechmes, a Sagartian, revolted from me, saying to his people: ‘I am king inSagartia, of the family of Cyaxares.’ Then I sent forth a Persian and a Median army. A Mede named Takhmaspâda, my servant, I made their leader, and I said unto him: ‘Go, smite that host which is in revolt, and does not acknowledge me.’ Thereupon Takhmaspâda went forth with the army, and he fought a battle with Tritantaechmes.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defeated that rebel host, and they seized Tritantaechmes and brought him unto me. Afterwards I cut off both his nose and ears, and put out one eye, he was kept bound at my palace entrance, all the people saw him. Afterwards I crucified him in Arbel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사가르테 사람 트리탄테크메스가 나에게 반역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키악사레스 가문이며 사가르테의 왕이다.’ 그래서 나는 메디아 인과 페르시아 인으로 구성된 병사를 보냈다. 나의 종 메디아 사람 타크마스파다를 지휘관으로 삼았다.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반역자들을 쳐 부셔라.’ 곧바로 타크마스파다는 군대를 진격시켜 트리탄트크메스와 싸웠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란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그리고 트리탄트크메스를 사로잡아 내게 보냈다. 나는 그의 코와 귀를 자르고 눈 하나를 파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도록 궁전 앞에 세웠다. 후에 나는 그를 아르벨라에서 책형磔刑에 처하였다.
주) 트리탄태크메스Tritantaechmes는 사가르테의 왕이며 아르벨라의 지배자였다. 다리우스에게 살해되었다.
사그리티아Sagartia는 고 페르시아어로 아사그라티야Asagartiya이다. 거주지가 불확실한 이란계 부족이다.
키악사레스Cyaxares는 프라오르테스의 아들이다.
타크마스파다Takhmaspâda는 페르시아에 봉사한 메디아의 장군이다.
아르벨라Arbela는 이라크 북부에 위치해 있는 고대 메소포타마아의 중요한 도시이다.
(34)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was done by me in Med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이 내가 메디아에서 이룬 일이다.
Revolt of the Parthians / 파르티아인의 반란
(35) King Darius says: The Parthians and Hyrcanians revolted from me, and they declared themselves on the side of Phraortes. My father Hystaspes was in Parthia; and the people forsook him; they became rebellious. Then Hystaspes marched forth with the troops which had remained faithful. At a city in Parthia called Višpauzâtiš he fought a battle with the Parthians.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defeated that rebel host. On the second day of the month Viyaxana [8 March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파르티아 사람들과 히르카니아 사람들이 프라오르테스의 편을 들어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나의 부친父親 히스타스페스는 파르티아에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부친을 따르지 않고 반란자들에게 가담하였다. 이에 히스타스페스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갔다. 히스타스페스는 파르티아의 비스파우자티스Višpauzâtiš에서 파르티아 인들과 싸웠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도움으로 나의 병사들은 적들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비악사나 달 두 번째 날(기원전521년 3월 8일)이었다.
주) 프라오르테스는 메디아의 왕위 찬탈자이다.
– Column three / 제3단
(36) King Darius says: Then did I send a Persian army unto Hystaspes from Rhagae. When that army reached Hystaspes, he marched forth with the host. At a city in Parthia called Patigrabanâ he gave battle to the rebels.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Hystaspes utterly defeated that rebel host. On the first day of the month Garmapada [11 July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라게에서 히스타스페스에게 페르시아의 군대를 보냈다. 군대가 히스타페스에게 도착했을 때 그는 병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파르티아의 파티그라바나에서 헤스타스페스는 반란자들과 싸웠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많은 반란자들을 철저히 부셔버렸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가르마파다 달 첫 번째 날(기원전 521년 7월 11일)이었다.
주) 라게Rhagae는 고대 메디아의 종교중심지이다. 오늘날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교외에 위치한다.
(37) King Darius says: Then was the province mine. This is what done by me in Parth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후로 이 지역은 나의 것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파르티아에서 이룬 일이다.
Revolt of Frâda of Margiana / 마르기아나의 프라다의 반란
(38) King Darius says: The province called Margiana revolted against me. A certain Margian named Frâda they made their leader. Then sent I against him a Persian named Dâdarši, my servant, who was satrap of Bactria, and I said unto him: ‘Go, smite that host which does not acknowledge me.’ Then Dâdarši went forth with the army, and gave battle to the Margians.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overthrew that rebel host. Of the twenty-third day of the month Âçiyâdiya [28 December 521] was the battle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마르기아나 지역에서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마르기아 사람 프라다가 그들의 지도자였다. 나에게 대적한 그들에게 나의 종 페르시아 사람이며 박트리아의 총독 다다르시를 보내며 말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적들을 철저하게 쳐 부셔라.’ 다르다시Dâdarši는 군대를 진격시켜 마르기아 사람들과 전투를 벌였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란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아시야디야 달 열 사흘 날(기원전 521년 12월 28일)이었다.
주) 마르기아나 Margiana는 카라쿰Karakum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이다.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메르브Merv이다.
(39) King Darius says: Then was the province mine. This is what was done by me in Bactr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후로 이 지역은 나의 것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박트리아에서 이룬 일이다.
Revolt of Vahyazdâta of Persia / 페르시아의 바야즈다타의 반란
(40) King Darius says: A certain man named Vahyazdâta dwelt in a city called Târavâ in a district in Persia called Vautiyâ. This man rebelled for the second time in Persia, and thus he spoke unto the people: ‘I am Smerdis, the son of Cyrus.’ Then the Persian people who were in the palace fell away from allegiance. They revolted from me and went over to that Vahyazdâta. He became king in Pers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바야즈다타라는 자가 페르시아의 바우티야 지역의 타라바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 이 자는 페르시아에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나는 키루스의 아들인 스메르디스’라고 말하였다. 그곳의 페르시아 인들은 나에 대한 충성으로부터 멀어져 나를 떠나 바야즈다타에게 갔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왕이 되었다.
주) 비야즈다타Vahyazdâta는 페르시아의 귀족으로 기원전 521년 반란을 일으켰다.
스메르디스Smerdis/Old Persian Bardiya는 키루스 왕의 왕자이다.
(41) King Darius says: Then did I send out the Persian and the Median army which was with me. A Persian named Artavardiya, my servant, I made their leader. The rest of the Persian army came unto me in Media. Then went Artavardiya with the army unto Persia. When he came to Persia, at a city in Persia called Rakhâ, that Vahyazdâta, who called himself Smerdis, advanced with the army against Artavardiya to give him battle. They then fought the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host utterly overthrew the army of Vahyazdâta. On the twelfth day of the month Thûravâhara [24 May 521] was the battle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페르시아 인과 메디아 인의 군대를 보냈다. 나의 종 페르시아 사람 아르타바르디야를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페르시아 인으로 구성된 군대들이 메디아에서부터 나에게 왔다. 아르타바르디야도 페르시아에서 나에게 왔다. 그가 페르시아의 락카Rakhâ에서 왔을 때 자칭自稱스메르디스인 바야즈다타도 아르타바르디야와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격렬하게 싸웠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바야즈다타의 군대를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투라바하라 달 열두 번째 날(기원전 521년 5월 24일)이었다.
주) 아르타바르디야Artavardiya는 다리우스 1세 아래서 봉사하였던 페르시아의 장군이다.
(42) King Darius says: Then that Vahyazdâta fled thence with a few horsemen unto Pishiyâuvâda. From that place he went forth with an army a second time against Artavardiya to give him battle. At a mountain called Parga they fought the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host utterly overthrew the army of Vahyazdâta. On the fifth day of the month Garmapada [15 July 521] was the battle fought by them. And they seized that Vahyazdâta, and the men who were his chief followers were also seized.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바야즈다타는 피시야우바다로 소수의 병사와 함께 도주했다. 그곳으로 병사들이 진격하여 두 번 아르타바르디야와 전투를 벌였다. 파르가 산에서 그들은 격돌하였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바야즈다타의 군대를 철저하게 격파하였다. 전투가 일어난 날은 가르마파다 달 다섯 번째 날(기원전 521년 7월 15일)이었다. 우리 병사들은 바야즈다타와 그의 동료 족장들을 사로잡았다.
(43) King Darius says: Then did I crucify that Vahyazdâta and the men who were his chief followers in a city in Persia called Uvâdaicay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는 바야즈다타와 그의 동료 족장들을 페르시아의 우바다이사야에서 책형磔刑에 처하였다.
(44)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was done by me in Pers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이 내가 페르시아에서 이룬 일이다.
Fighting in Arachosia / 아라코시아에서 전투
(45) King Darius says: That Vahyazdâta, who called himself Smerdis, sent men to Arachosia against a Persian named Vivâna, my servant, the satrap of Arachosia. He appointed a certain man to be their leader, and thus he spoke to him, saying: ‘Go smite Vivâna and the host which acknowledges king Darius!’ Then that army that Vahyazdâta had sent marched against Vivâna to give him battle. At a fortress called Kapiša-kaniš they fought the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overthrew that rebel host. On the thirteenth day of the month Anâmaka [29 December 522] was the battle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자칭自稱 스메르디스인 바야즈다타는 나의 종이며 아라코시아의 총독satrap인 페르시아 인 비바나Vivana를 거슬러 아라코시아로 사람을 보냈다. 바야즈다타는 그들의 지도자였다. 바야즈다타는 말하기를, ‘가라, 왕 다리우스를 인정하는 적들과 비바나를 쳐부셔라.’ 바야즈다타는 군대를 보내 비바나를 공격하였다. 카피사-카니스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란군을 철저히 부수었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아나마카 달 열 세 번째 날(기원전 522년 12월 29일)이었다.
주) 아라코시아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와 파키스탄 중북부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힌두쿠시 산맥을 경계로 박트리아와 접해있다. 아라코시아의 중앙으로 헬만드 강이 흐른다. 아라코시아는 헬만드 강의 페르시아 이름인 하라후바티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46) King Darius says: The rebels assembled a second time and went out against Vivâna to give him battle. At a place called Gandutava they fought a battle.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army utterly overthrew that rebel host. On the seventh day of the month Viyaxana [21 February 521] the battle was fought by them.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반란군은 두 번째로 집결하여 비바나에 대항하였다. 그들은 간두타바에서 싸웠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의 군대는 반란군을 철저하게 쳐 부셨다. 전투가 있었던 날은 비약사나 달 일곱 번째 날(기원전 521년 2월21일)이었다.
(47) King Darius says: The man who was commander of that army that Vahyazdâta had sent forth against Vivâna fled thence with a few horsemen. They went to a fortress in Arachosia called Aršâdâ. Then Vivâna with the army marched after them on foot. There he seized him, and he slew the men who were his chief follower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반란자의 사령관 바야즈타다가 비바나에 대항하여 앞으로 나오자 소수의 병사와 함께 그곳으로부터 도피하였다. 그들은 아라코시아의 아르사다 요새로 도망쳤다. 이에 비바나는 병사들을 앞으로 나가게 하여 그들을 발밑에 굴복시켰다. 거기서 비바나는 바야즈다타를 사로잡아 동료 족장들과 함께 죽였다.
(48) King Darius says: Then was the province mine. This is what was done by me in Arachosia.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후로 그 지역은 나의 것이 되었다. 이것이 아라코시아에서 내가 이룬 일이다.
Second Babylonian revolt / 바빌로니아인들의 두 번째 반란
(49) King Darius says: While I was in Persia and in Media, the Babylonians revolted from me a second time. A certain man named Arakha, an Armenian, son of Haldita, rebelled in Babylon. At a place called Dubâla, he lied unto the people, saying: ‘I am Nebuchadnezzar, the son of Nabonidus.’ Then did the Babylonian people revolt from me and they went over to that Arakha. He seized Babylon, he became king in Babylon.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내가 페르시아와 메디아에 있는 동안 바빌론 사람들이 두 번째로 반란을 일으켰다. 아르메니아 인 할디타의 아들 아라카라가 바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두발라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말하기를, ‘나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이다.’ 이에 바빌론 사람들은 나를 거역하고 아라카에게 복종하였다. 그는 바빌론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
주) 여기의 바빌로니아는 신新 바빌로니아이다.
(50) King Darius says: Then did I send an army unto Babylon. A Persian named Intaphrenes, my servant, I appointed as their leader, and thus I spoke unto them: ‘Go, smite that Babylonian host which does not acknowledge me.’ Then Intaphrenes marched with the army unto Babylon. Ahuramazda brought me help; by the grace of Ahuramazda Intaphrenes overthrew the Babylonians and brought over the people unto me. On the twenty-second day of the month Markâsanaš [27 November] they seized that Arakha who called himself Nebuchadnezzar, and the men who were his chief followers. Then I made a decree, saying: ‘Let that Arakha and the men who were his chief followers be crucified in Babylon!’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바빌론으로 군대를 보냈다. 나의 종 페르시아 사람 인타프레네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나는 그에게 명하였다. ‘가라, 나를 인정하지 않는 바빌론의 적들을 쳐 부셔라.’ 인타프레네스는 군대를 이끌고 바빌론으로 진격하였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이끌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인타프레네스는 바빌론 사람들을 쳐부수고 그들을 다시 나에게 복종하게 하였다. 마라카스나스 달 이십 칠 일 째 날(기원전 520년 11월 27일)에 네부카드네자르라 자칭한 아라카와 그의 동료 족장들이 사로잡혔다. 나는 판결하였다. ‘아라카와 그의 동료 족장들을 바빌론에서 책형에 처하라!’
주) 아라카는 네브카드네자르 4세로 알려져 있다.
– Column four / 제4단
(51)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was done by me in Babylon.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이 바빌론에서 내가 이룬 일이다.
Summary and conclusion / 요약과 종결
(52)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I have done. By the grace of Ahuramazda have I always acted. After I became king, I fought nineteen battles in a single year and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overthrew nine kings and I made them captive.
One was named Gaumâta, the Magian; he lied, saying ‘I am Smerdis, the son of Cyrus.’ He made Persia to revolt.
Another was named ššina, the Elamite; he lied, saying: ‘I am king the king of Elam.’ He made Elam to revolt.
Another was named Nidintu-Bêl, the Babylonian; he lied, saying: ‘I am Nebuchadnezzar, the son of Nabonidus.’ He made Babylon to revolt.
Another was named Martiya, the Persian; he lied, saying: ‘I am Ummanniš, the king of Elam.’ He made Elam to revolt.
Another was Phraortes, the Mede; he lied, saying: ‘I am Khshathrita, of the dynasty of Cyaxares.’ He made Media to revolt.
Another was Tritantaechmes, the Sagartian; he lied, saying: ‘I am king in Sagartia, of the dynasty of Cyaxares.’ He made Sagartia to revolt.
Another was named Frâda, of Margiana; he lied, saying: ‘I am king of Margiana.’ He made Margiana to revolt.
Another was Vahyazdâta, a Persian; he lied, saying: ‘I am Smerdis, the son of Cyrus.’ He made Persia to revolt.
Another was Arakha, an Armenian; he lied, saying: ‘I am Nebuchadnezzar, the son of Nabonidus.’ He made Babylon to revolt.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이 내가 이룬 일이다. 나는 항상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의해 행동하였다. 내가 왕이 된 후, 나의 즉위 일 년 동안 열아홉 번을 싸웠고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아홉의 왕들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마술사 가우마타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키루스의 아들 스메르디스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엘람의 아시나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엘람의 왕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엘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바빌로니아의 니딘투-벨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바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페르시아의 마르티바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엘람의 왕 움마니스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엘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메데의 파라오르테스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나는 키악사레스 왕조의 크사트리타’라고 칭하였다. 그는 메디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사가르티아의 트리탄데크메스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키악사레스 왕조의 사가르티아의 왕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사가르티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마술사 프라다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마술사들의 왕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마술사들과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페르시아인 바야르다타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나는 키루스의 아들 스메르디스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페르시아인들과 반란을 일으켰다.
또 다른 사람은 아르메니아인 아라카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나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다“라고 칭하였다. 그는 바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53) King Darius says: These nine king did I capture in these wars.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나는 아홉 명의 왕들을 이들과의 전쟁에서 사로잡았다.
(54) King Darius says: As to these provinces which revolted, lies made them revolt, so that they deceived the people. Then Ahuramazda delivered them into my hand; and I did unto them according to my will.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이들의 지역에서 반란자들이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반란을 일으켰다. 아후라마즈다는 그들을 내 손아귀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나는 내 의지로 그들을 굴복시켰다.
(55) King Darius says: You who shall be king hereafter, protect yourself vigorously from lies; punish the liars well, if thus you shall think, ‘May my country be secur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후로 나는 거짓말쟁이들을 응징하여 너희들이 ‘나의 왕국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도록 이들로부터 강력하게 너희를 보호해 줄 것이다.
Affirmation of the truth of the record / 기록이 진실함을 단언함
(56)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I have done, by the grace of Ahuramazda have I always acted. Whosoever shall read this inscription hereafter, let that which I have done be believed. You must not hold it to be lie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이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내가 행한 모든 것이다. 금후今後 누구든지 이 비문을 읽은 사람은 내가 행한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이 들어 있지 않다.
(57) King Darius says: I call Ahuramazda to witness that is true and not lies; all of it have I done in a single year.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나는 아후라마즈다를 증인으로 하여 여기에는 거짓이 들어있지 않고 진실만 들어 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일 년 동안에 이루었다.
(58) King Darius says: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did much more, which is not graven in this inscription. On this account it has not been inscribed lest he who shall read this inscription hereafter should then hold that which has been done by me to be excessive and not believe it and takes it to be lies.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이 비문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일을 성취하였다.
Affirmation that it is pious to make known the record / 이 주장은 신심 깊은 사람들이 이 기록을 알게 하기위해 만든 것이다
(59) King Darius says: Those who were the former kings, as long as they lived, by them was not done thus as by the favor of Ahuramazda was done by me in one and the same year.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전의 왕들은 살아있는 동안 아후라마즈다의 후의를 입지 못 하였지만 나는 혼자서 매년 호의를 받았다.
(60) King Darius says: Now let what has been done by me convince you. For the sake of the people, do not conceal it. If you do not conceal this edict but if you publish it to the world, then may Ahuramazda be your friend, may your family be numerous, and may you live long.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제까지 내가 한 일을 너는 알아야 한다. 백성들을 위하여 그것을 숨기지 않겠다. 만약에 너희가 이 칙령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공표公表한다면 아후라마즈다는 너희들의 친구가 될 것이고, 너의 집안은 융성하고 영원할 것이다.
(61) King Darius says: If you conceal this edict and do not publish it to the world, may Ahuramazda slay you and may your house ceas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만약 너희가 이 칙령을 숨기고 세상에 공표하지 않는다면 아후라마즈다는 너희를 죽일 것이고 너희 집안을 멸할 것이다.
(62) King Darius says: This is what I have done in one single year; by the grace of Ahuramazda have I always acted. Ahuramazda brought me help, and the other gods, all that there are.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이것은 내가 혼자서 일 년 동안 이룩한 일이다. 내가 행한 것은 항상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의해서였다. 아후라마즈다와 다른 신들도 내게 도움을 주었고 모든 일이 그러하였다.
The importance of righteousness / 공정함의 중요성
(63) King Darius says: On this account Ahuramazda brought me help, and all the other gods, all that there are, because I was not wicked, nor was I a liar, nor was I a despot, neither I nor any of my family. I have ruled according to righteousness. Neither to the weak nor to the powerful did I do wrong. Whosoever helped my house, him I favored; he who was hostile, him I destroyed. whoever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나는 사악하지 않고,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독재자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아후라마즈다와 다른 모든 신들이 나와 내 가문을 도와주는 이유이다. 나는 올바름을 가지고 다스린다. 약한 자든 강한 자든 나는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집안을 돕는 사람은 누구나 나의 호의를 받을 것이다. 그가 적대적이라면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64) King Darius says: You who may be king hereafter, whosoever shall be a liar or a rebel, or shall not be friendly, punish him!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금후今後로 나는 거짓말쟁이 혹은 반역자, 비우호적인 자들은 누구든지 응징할 것이다!
Blessings and curses / 축복과 저주
(65) King Darius says: You who shall hereafter see this tablet, which I have written, or these sculptures, do not destroy them, but preserve them so long as you live!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금후今後로 내가 기록했거나 조각한 이 판을 보는 자들은 이것을 파괴하지 말고 영원토록 보전하라!
(66) King Darius says: If you shall behold this inscription or these sculptures, and shall not destroy them, but shall preserve them as long as your line endures, then may Ahuramazda be your friend, and may your family be numerous. Live long, and may Ahuramazda make fortunate whatsoever you do.
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만약 너희들이 이 비문이나 조각을 보고 파괴하지 않고 보호한다면 아후라마즈다는 너의 친구가 되어, 너의 가족들을 보호하리라. 아후라마즈다는 너희가 하는 일에 영원토록 행운을 줄 것이다.
(67) King Darius says: If you shall behold this inscription or these sculptures, and shall destroy them and shall not preserve them so long as your line endures, may Ahuramazda slay you, may your family come to nought, and may Ahuramazda destroy whatever you do!
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만약 너희들이 이 비문이나 조각을 보고 파괴하고 보존하지 않는다면 아후라마즈다는 너희가 하는 일을 부수고 너의 가족을 파멸시키고 너를 죽일 것이다!
Names of Darius’ supporters / 다리우스를 지지한 자들의 이름
(68) King Darius says: These are the men who were with me when I slew Gaumâta the Magian, who was called Smerdis; then these men helped me as my followers:
Intaphrenes, son of Vayâspâra, a Persian;
Otanes, son
– Column five / 제5단
A new rebellion on Elam (Autumn 521)
엘람에서 새로운 반란(기원전 521년 가을)
(71) King Darius says: The following is what I did in the second and third year of my rule. The province called Elam revolted from me. An Elamite named Atamaita they made their leader. Then I sent an army unto Elam. A Persian named Gobryas, my servant, I made their leader. Then Gobryas set forth with the army; he delivered battle again
○ 다리우스왕의 베히스툰 비문
베히스툰 산에 다리우스 대제(BC 522~486)는 자기가 왕으로 등극한 과정을 쐐기문자로 상세히 기록했다.
이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이 남긴 비문 중 가장 길고, 역사학과 고전문헌학적으로 가장 중요하여 ‘고대 비문의 여왕’ 이라고 불린다.
베히스툰산의 중턱에 이 비문과 부조물이 있다. 지상으로부터 69m 위의 경사면에 가로 18m, 세로 7m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이 비문과 부조물이 2천5백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이같은 난공불락의 지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BC 522년 페르시아 전체는 정치적인 혼란기였다. 고레스 대왕의 아들 캠비세스왕이 이집트 정벌에 나서자 페르시아는 내분에 휩싸였다.
캠비세스의 동생이라고 자칭한 가우마타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이 소식을 들고 페르시아로 돌아오는 도중 캠비세스가 시리아 부근에서 급서하자 10개의 속국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 정치적 혼란기에 페르시아 제국 전체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이가 바로 다리우스이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었던 파르티아 태수의 아들이었으며 캠비세스 왕과 함께 이집트 원정을 갔던 사람이다.
다리우스는 ‘거룩한 산’ 이라고 불리워진 베히스툰산에 자기의 등극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비문을 새겼다.
베히스툰 비문의 상단 중심에 부조물이 있는 데, 실물 크기(1백73㎝)인 다리우스 대왕과 두 신하인 인타파르나스와 고르바야스, 다리우스가 정복하여 처단한 10명의 왕을 새겼다. 이 부조물 위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가 있다.
이 부조물들의 위아래로는 반란군들의 이름과 행적을 적은 설명문이 세 가지 쐐기문자로 새겨져 있다.
이 부조물의 오른편으로는 다리우스 왕의 등극과정을 새긴 엘람어 비문이 손상된 채 있고, 왼편으로는 같은 내용이 아카드어로 적혀있다. 밑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적혀 있다.
당초 다리우스왕도 ‘왕위 찬탈자’ 에 불과했지만 현란한 업적으로 결국 고레스가 창건한 페르시아 제국을 완성하는 왕이 되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복한 23개의 속국들간의 결속을 다지는 데도 힘썼다.
○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대제(고대 페르시아어: Dārayava(h)uš, 페르시아어: داریوش, 기원전 550년경 ~ 기원전 486년경)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세 번째 샤한샤이다. 다리우스는 제국을 전성기에 올려 놓았고, 그리스의 일부와 이집트를 차지했다. 제국은 그의 죽음과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의 즉위와 함께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전임자: 바르디야
.후임자: 크세르크세스 1세
.생사: 기원전 550년-기원전 486년 10월
.매장지: 나크쉐 러스탐
.왕조: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
.부친: 히스타스페스
.모친: 로도구네
.배우자: 아토싸
.종교: 조로아스터 교
다리우스는 페르시아의 다른 여섯 귀족 가문의 도움으로 찬탈자로 알려진 가우마타를 제거함으로써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 도처에 걸쳐서 일어난 반란들에 직면하였으며, 그때마다 이를 진압하였다. 다리우스의 주요한 사건은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징벌하고 그리스를 병합하기 위해 나선 원정이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를 병합하기 위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다리우스는 메디아 왕국을 침략하여 키루스 2세(=키루스 대제)를 죽였던 이란 계의 부족들인 사카를 공격하고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하여 제국의 판도를 넓혔다.
다리우스는 제국을 여러 주로 나누어 그곳에 지방관이 다스리도록 배치하는 등 국가를 조직하였다. 그는 제국의 표준어로 아랍어를 채택함에 따라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조직하였다. 또한 다리우스는 수사, 바빌론, 그리고 이집트를 중심으로 제국 전반에 걸친 건설 계획을 세웠다. 다리우스는 이집트의 법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언덕의 벽면에 베히스툰 비문(=비시툰 비문)을 새겼는데, 이는 현대 언어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 기본 사료
– 페르시아 사료
다리우스는 자신의 즉위기간 동안 베히스툰 산(비시툰 산)에 엘람어, 고대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등의 세 가지 언어로 기념 부조를 새겨놓았다. 먼저 이 비문은 다리우스의 족보와 혈맹과 관련된 그의 간략한 일생을 다루고 있다. 또한 키루스 대제의 죽음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남겨져 있다. 다리우스는 자신이 조로아스터 교의 신인 아후라마즈다의 후광을 받은 정당한 황제라 수 차례 언급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고대 페르시아의 조각들과 로마 시대에 그리스 어로 보존된 다리우스의 편지 등을 포함하여 페르세폴리스에서도 더 많은 글들과 기념비들이 발견되었다.
– 헤로도토스
역사 또는 페르시아 전쟁사의 저자이자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과 페르시아의 여러 황제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다리우스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양의 기술을 적고 있다. 다리우스의 이야기는 3권의 절반과 4, 5, 6권 전체에 서술되어 있다. 다리우스의 이야기는 찬탈자로 알려진 가우마타를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다리우스의 통치 끝까지를 다루고 있다.
– 구약성서
구약성서에는 두명의 다리우스가 나온다.
.다리우스 1세 : 구약성서의 에즈라에는 예루살렘에 신전을 재건하는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신전은 다리우스 6년인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 이것은 기원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신전이 파괴된지 정확하게 70년 후의 일이다. 이리하여 예레미아(예레미야 29:10-14)의 70년 예언이 실현되었다.
느헤미야 12:22의 바사왕 다리우스도 다리우스 1세이다.
.메디아사람 다리우스: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에는 다리우스에 대해서 메데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그가 62세에 통치를 하기 시작했으며, 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120인의 태수를 배치했다고 적혀있다. 메디아사람 다리우스라고 표기된다.
○ 다리우스의 삶
– 탄생과 유년기
다리우스는 기원전 550년에 히스타스페스의 장자로 태어났다. 히스타스페스는 페르시아 인들의 고향인 파르사 지방의 유력자였다. 다리우스의 베히스툰 비문(비시툰 비문)은 히스타스페스가 기원전 522년 경에 박트리아의 사트라프였다고 적어놓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게 오류라고 지적받고 있지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히스타스페스는 파르사 지방의 사트랍이었다고 한다. 또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다리우스는 권력을 잡기에 앞서 캄비세스 2세의 이집트 원정에서 창병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 권력자로서의 성장
다리우스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 대해 두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하나는 다리우스가 직접 새긴 비시툰 비문 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헤로도토스와 같은 그리스 역사가들의 설명에 있다.
– 베히스툰 비문
베히스툰 비문에 적혀 있는 다리우스의 설명은 캄비세스 2세가 그의 형제인 바르디야를 죽였는데, 이 살해가 페르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찬탈자로 의심받는 가우마타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르디야라고 거짓말하였다. 이에 페르시아 인들은 캄비세스의 통치에 반발하였고, 결국 기원전 522년 3월 11일에 캄비세스가 부재한 사이에 그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7월 1일, 페르시아 인들은 “바르디야”로서의 가우마타의 지도 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아케메네스 가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우마타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서지 못하였다. 탄핵받은 캄비세스 2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창병으로 봉사했던 다리우스는 누군가의 지원을 바랐고, 그는 오타네스, 인트라프레네스, 고브리아스, 히다르네스, 메가비수스, 그리고 아스파티네스와 함께 시카야우바티의 요새에서 가우마타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다리우스가 황제임이 선포되었다.
– 그리스 역사가들
그리스 역사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캄비세스 2세는이집트에 출병할 때 파티제이테스를 왕국의 책임자로 남겨놓았다. 후에 그는 프렉사스페스를 보내어 바르디야를 살해하도록 하였다. 살해 후에 파티제이테스는 조로아스터 교의 신봉자이자 바르디야와 닮게 생겼던 자신의 형제 가우마타를 왕위에 앉혀 황제로 선포하였다. 오타네스는 가우마타가 바르디야를 사칭하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어, 다리우스를 포함한 다른 여섯 명의 페르시아 귀족들과 함께 자칭 바르디야라고 하는 세력들을 축출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파티제이테스, 조로아스터 교 신봉자들과 가우마타를 죽이고 난 다음날, 다리우스는 황제에 즉위하게 되었다.
○ 정복활동
– 바빌로니아의 반란
바르디야를 암살하고 나자,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제국 전반에 반란의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다리우스는 비록 폭력에 의해 얻은 황제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를 대외적으로 확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따라서 그는 제국 도처에 군대를 파견하여 반란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진압하였다. 느부갓네살 3세에 의한 바빌로니아의 반란은 대군을 이끌고 있었던 오타네스가 없는 틈을 타 발생하였으며, 다리우스는 이를 바빌로니아 인들이 자신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생각하였다. 분노한 다리우스는 남은 군대의 병사들을 모아 바빌론으로 향했다. 바빌론은 다리우스에 대항하기 위해 문을 굳게 잠그고 일련의 방어 시설들을 설치하였다.
다리우스는 반란군의 조롱과 도발을 겪기도 하였다. 이 전투로부터 유명한 말이 나왔는데, 바빌론의 한 사람이 ‘그래, 노새가 말을 낳을 때가 바로 당신이 우리 도시를 함락시킬 때일 것이오’라고 하였던 것이었다. 약 1년 반 동안, 다리우스는 바빌론을 공략하려는 자신의 군대가 무능하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책략과 전술을 시도하였고, 한 번은키루스 2세(=키루스 대제)가 처음으로 바빌론을 공략할 때 사용했었던 방법까지도 시도해보았다. 상황은 다리우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가 조피루스의 노새 중 한 마리가 말을 낳은 시기였다. 당시에 그것은 매우 큰 기적이었으며 신이 다리우스를 위해 하신 행위라 여겨졌다. 바빌론의 진영에 침투하여 바빌론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계급이 높은 군 장병을 탈영병인 척하게 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난 후에, 페르시아 인들은 재빨리 도시를 둘러싸 다리우스가 바빌론을 정복하는 것을 도와준 가장한 바빌론의 장군과 함께 바빌론을 전복시켰다.
다리우스가 왕위에 오를 때 발생한 반란 동안, 혼란을 틈타 이득을 취하고 있던 스키타이 유목민들은 남쪽으로 침투하여 페르시아를 침공하였다. 다리우스는 엘람과 앗시리아, 바빌론에서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이란 동부의 침략자들을 마주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다리우스는 침략자를 쫓기 위해 곧 습지에 이르렀으나, 그가 발견한 것은 이제까지 알려졌던 적들이 아니라 큰 모자 때문에 눈에 띠는 알 수 없는 스키타이 부족이었다. 스키타이 인들에 대한 다리우스의 정복 활동은 주로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곧 유럽을 향한 다소 무모한 정복 활동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
다리우스의 유럽 원정은 그의 치세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스키타이에 대한 침공을 시작으로, 다리우스는 스키타이와 트라키아, 그리고 북부 에게 해의 많은 도시들을 정복하였으며 마케도니아는 자발적으로 종속하였다. 기원전 510년까지 소아시아 지방에 있던 그리스와 그리스 섬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 복종하였다. 그들은 다리우스가 임명한 참주들에 의해 지배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아테네에서 조직화되었던 친 페르시아 계통의 그리스인들도 존재하였다. 이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관계를 개선하였는데, 다리우스는 종종 자신에게 봉사하기를 원하는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관직을 주기도 하였다. 이 그리스 사람들은 다리우스를 위한 병사나 장인, 정치가, 그리고선원 으로 종사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인들에 대한 그리스 인들의 두려움이 점차 심각해지고 이오니아와 리디아 지방의 그리스 사람들이 항상 방해를 놓는 바람에, 앞으로 일어날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분쟁의 발판이 되었다.
아리스타고라스가 이오니아의 반란을 꾀하고 있을 때, 에레트리아와 아테네는 그를 지원하기 위해 배를 보내기도 하였으며 사르디스를 불지르기도 하였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페르시아 군의 작전은 이오니아와 그리스의 섬들을 다시 확보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반 페르시아 집단들이 득세하여 아테네에 집결하였고, 친 페르시아 계의 귀족들은 아테네와스파르타로부터 추방되었다. 다리우스는 그의 사위가 이끄는 일단의 군대들을 헬레스폰트 해협 건너 파병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전투는 트라키아 인들의 농락과 격렬한 폭풍으로 인해 패배하였다.
아테네를 징벌하기로 결심하여, 다리우스는 에레트리아를 정복했던 다티스 하의 2만 명의 장정들로 구성된 두 번째 군대를 파병하였으며, 이들은 마라톤으로 이동하였다.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에서, 9천의명의 아테네 중장보병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600명의 플라타이아이 인들, 그리고 밀티아데스가 이끄는 1만 명의 경보병에 의해 페르시아 군은 패배하였다. 마라톤에서의 패배는 페르시아의 첫 번째 그리스 침공의 끝을 장식하였다.
○ 죽음
다리우스는 나크쉐 러스탐의 다른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들 옆에 묻혔다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자, 다리우스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을 정벌하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다티스 대신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려 하였다. 다리우스는 전쟁에 쓸 군함과 군대를 준비하기 위해 3년을 소비하였는데, 이 때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좋지 않았던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으며, 결국 그리스를 침략하기 위해 또 다른 군대를 파견하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기원전 486년 10월, 다리우스는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바위를 깎아 만든 묘실에 방부 처리되어 매장되었다. 다리우스와 아토싸의 장자였던 크세르크세스는 다리우스의 후계자였으며, 왕위를 이어받아 크세르크세스 1세로 즉위하였다.
○ 통치
– 조직
치세 초반에 다리우스는 키루스와 캄비세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조세 제도를 이용하여 제국을 느슨하게 조직화하려 했다. 이를 위해 다리우스는 사트라피라고 부르는 20개의 주를 설치하여 각각에 사트라프를 파견하였고, 이들은 중앙에 바쳐야 할 특정한 종류의 공물들을 일정량 할당 받았다. 이들과 관련된 목록들은 헤로도토스가 쓴 책에 적혀 있는데, 이오니아부터 시작하여 서쪽부터 동쪽까지의 사트라피들이 적혀 있다. 다만 파르사는 여기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원래 페르시아의 땅이었으며 정복되지 않은 유일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사트라프들이 은으로 바친 공물들은 바빌론의 화폐로 측정되었고, 금으로 바친 공물들은 에우보이아의 화폐로 측정되었다. 사트라프이 바친 공물 모두는 은화 15,000 이하였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트라프들은 페르시아에 연고를 두고 있었고, 왕실의 사람이거나 여섯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이 사트라프들은 개인적으로 다리우스에게 발탁되어 각 지방을 감시하였는데, 이러한 주들은 왕실이나 사트라프들에 의해 선출된 고유의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하위 지방단위로 나뉘었다. 공물에 대한 평가는 다리우스가 각 사트라프의 수입과 지출을 평가하는 일련의 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사트라프은 주의 문제들을 관리하고 다리우스와 연락할 수 있는 부하를 거느려야만 했으며, 주의 수입을 보호하는 관리와 군대를 담당하는 일종의 방위 사령관을 두기도 하였다. 더불어 다리우스의 “눈과 귀”였던 왕실 감사들이 각 사트라프들을 마저 점검하였다.
페르세폴리스와 수사, 바빌론은 제국 행정의 중심지였고, 박트리아와 엑바타나, 사르디스, 그리고 멤피스에는 행정을 위한 지부를 두고 있었다. 다리우스는 공영어로 아람어를 채택하였는데, 이는 곧 제국 도처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다리우스는 파르사와 페르시아 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차별적인 언어 체계를 만들어내도록 학자들은 모았는데, 이를 일러 아리얀이라고 했으며 공식적인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 경제
기원전 500년 이전에 다리우스는 대략 8그램 정도의 무게를 단위로 하는 은화와 5.40그램 정도의 금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소개하였다. 금화는 다리우스의 이름을 따라 다라야카(dārayaka)로 불렸다. 무역을 진흥하기 위해 다리우스는 지하에 물길을 뚫어 운하를 건설하였고, 이를 통한 강력한 해군을 가졌다. 그는 나아가 도로망을 개선하였으며 제국 도처로 통하는 길목마다 역을 건설하였는데, 이는 왕과 사트랍 또는 다른 고위 관료들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위함이었다.
– 종교
다리우스는 조로아스터 교의 신봉자였으며, 신 아후라 마즈다가 자신에게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도록 사명을 내려줬다고 믿었다. 베히스툰 비문(=비시툰 비문)에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황제로 간택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리우스는 이원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왕국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은 아샤의 적인 드루그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다리우스는 아샤가 있음으로 자신이 정의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리우스의 업적을 기리는 많은 상형 문자 조각들에서 그는 자신을 전 세계를 통치할 신성한 권리를 갖고 있는 독실한 신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이 정복한 영토에서 다리우스는 키루스가 보여주었으며 나중에 등극할 황제들이 보여줄 아케메네스 왕조의 관용 정책을 똑같이 따라하였다. 그는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이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고 평화적인 태도만 보인다면 “이방의” 종교로서 그들을 지지하였고, 때로는 그들의 목적에 따라 자신의 재산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원래 키루스 대제가 하기로 했었던 유태교의 사원의 복구 사업에 금전적으로 지원하였고, 가다타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의 문화에 호의적이었으며, 엘람의 사제들을 지원하였다. 또한 그는 왕위와 관련된 이집트의 종교 의식을 따랐으며 이집트의 신인 아문을 기리는 사원을 짓기도 하였다.
– 건설
그리스로 원정을 나가는 동안 다리우스는 수사와 이집트, 페르세폴리스에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그는 현재의 자가지그에서 수에즈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건설하여 홍해와 나일 강을 연결했다. 운하를 뚫기 위해 다리우스는 기원전 497년에 이집트로 이동하였는데, 그곳은 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축제 분위기였다. 또한 다리우스는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지었다. 이집트에서 그는 기념비를 세우고 배반의 혐의로 아리얀데스를 처형하였다. 다리우스가 파르사로 돌아갈 때 즈음에는 이집트의 법의 정비가 완료되었다.
게다가 다리우스는 수사와 바빌론, 이집트 그리고 페르세폴리스에서 계획되어 있는 대규모 공사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다리우스가 세운 기념비는 간혹 페르시아의 표준어들로 새겨져 있는데, 그것들은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론어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였다. 이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다리우스는 서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수많은 인부들과 장인들을 고용하였다. 이러한 노동자들 중 몇몇은 건설 계획을 위해 특별히 고용되었었던 추방자들이었다. 이들은 페르시아의 경제를 강화하였으며 그들이 원래 살고 있던 이웃 국가들과의 국제 관계를 개선하였다.
다리우스가 죽고 난 이후에도 건설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이 사업들을 완수하였으며 몇몇의 경우에는 자신만의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등 부친의 계획을 보다 확장하기도 하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