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에서
나는 고발한다.
대보름이다. 브리즈번에 6년 째 살면서 같은 풍경을 보고 매번 감탄하는 일이 있다. 우리 집 지붕 위에 보름달이 걸릴 때이다. 이상하게도 브리즈번의 달은 더 크고 가깝게 느껴진다.
작은 서재의 창문을 열면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희스무레한 한 줄기 빛이 고즈넉해서 좋다.
안방에서 자다가 문득 일어나 거실을 지나 서재로 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가 있다.
보조등이 없어서 칠흑 같은 어둠을 기다시피 해서 서재로 오다보면 암흑 속에서 손을 내젓다가 물건들을 넘어뜨리곤 한다. 실낱 같은 달 빛 한줄기가 아쉬운 순간이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던 강기훈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23년만이다. 23년, 그는 그 세월 동안 단 하루도 편히 누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91년, 나는 선배가 운영하는 어느 지역신문사에서 기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해 오월은 잔인했다.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 아래 연일 젊은 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기 때문
이다. 어느 날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당시 25세였던 김기설씨의 분신이 있었고, 유서를 대신 작성해 주고 자살을 도운 배후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연일 신문과 TV를 장식하더니, 그 당사자로 강기훈 씨가 지목되어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92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3년을 복역했다. 본인은 한결같이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국과수의 필적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인 재판부와 들끓는 여론을 감당할 수 없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처절한 20대를 보낸 동시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푸른색 수의를 입고, 그러나 당당하게 호송차에 오르던 그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나에게 준 망각이란 선물은 그를 잊고 지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리즈번에 온 지 4년 째이던가, 갑자기 자다 일어나서 어둠 속을 기어서 책 두권을 빼 들고 서재로 왔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와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이었다. “끝났습니다. 프랑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생겼고, 역사는 당신이 대통령일 때 그런 사회적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기록할 것입니다.”
1898년 1월 13일,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신문 ‘로로르’에 대통령 페릭스 포레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가 발표되었다. 제목은 “나는 고발한다”. 대문호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 에밀 졸라의 글이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들이 감히 그렇게 했기에 저는 감히 이렇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진실이 행진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자라나 더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입니다. 그 때문에 법정에 끌려간다 해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를 심문하여 주십시오.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1894년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악마의 섬’에 유배 된 사건 때문이었다. 드레퓌스가 체포된 것은 독일군에게 넘겼다는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의 필적이 그의 것과 동일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간첩 혐의로 몰린 이유는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군사법원의 재판장은 반박할 기회도 주지않고 비밀재판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반유태주의에 물은 신문과 언론들은 그를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고 까지 여론을 몰아갔다. 사회는 이미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식인은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과 암흑을 뚫고 나온 목소리가 에밀 졸라였다. 기득권과 보수언론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발’은 전 유럽을 들끓게 했고, 마침내 드레퓌스는 무죄가 되어 6년만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책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나오니 온통 까맣다. 동이 틀 때가 가장 어둡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문틈 새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두 시간 여 전에 방을 나올 때 불을 끄지 않은 탓이다. 어둠을 헤치고 내방까지 걸어오는데 작은 불빛이 큰 힘이 되었다.
그 날 새벽의 독서는 잊혀졌던 강기훈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인터넷을 뒤져 본 결과 안타깝게도 그는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강기훈의 무죄판결 소식을 들은 오늘, 브리즈번에는 보름달이 떴다.
김웅재 목사(브리즈번 서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