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열전
평원군우경열전 (平原君虞卿列傳)
사마천 사기 16번째 열전.
爭馮亭以權(쟁풍정이권), 조나라의 평원군은 풍정(馮亭)과 권력을 다투다가
如楚以救邯鄲之圍(여초이구한단지위), 초나라로 가서 구원군을 얻어 한단의 포위를 풀고,
使其君復稱于諸侯(가기군복칭우제후). 그 군주로 하여금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드높이게 했다.
作<平原君虞卿列傳>第十六(작<평원군우경열전>제십육). 그래서 <평원군우경열전> 십육을 지었다.
평원군(平原君, ?~기원전 251년)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의 공자(公子) · 정치가이다. 씨(氏)는 조(趙), 휘(諱)는 승(勝)이다. 무령왕(武靈王)의 아들로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이다. 휘하의 식객(食客)을 모아 형인 혜문왕과 조카 효성왕(孝成王)을 보좌하였다. 전국 시대의 사군자(戰國四君)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인사(人士)을 좋아해서 식객을 수천 인이나 모아 거느렸다. 그 중에는 공손룡(公孫竜)이나 추연(鄒衍) 등도 있었다.
‘사기’에 기록된 평원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평원군의 첩이, 평원군의 식객 한 사람이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식객은 몹시 노하고 부끄럽게 여겨서 평원군에게 「저것을 죽여 목을 내어주십시오」라고 청했는데, 평원군은 웃으면서 건성으로만 허락하였다. 그뒤 평원군 아래에 있던 식객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해 그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그 이유를 식객에게 묻자 「다리 저는 식객이 원하던 목을 받지 못해서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평원군은 그제야 첩을 죽여서 그 목을 식객에게 주며 사과하였고, 이후 평원군에게 다시 식객이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266년, 위(魏)의 재상 위재(魏齊)가 진(秦)의 재상 범수(范雎)와 적대하다 위에서 도망쳐 평원군에게 왔고, 평원군은 이를 받아들여 진으로부터 위재를 보호하였다. 진의 소양왕(昭襄王)은 범수가 위재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게끔 평원군을 진으로 초청해 「위재를 죽여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진에서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평원군을 조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평원군은 이를 거절했지만, 효성왕은 위재를 잡기 위해 병사를 보냈고, 위재는 밤을 틈타 도망치다 조의 재상 우경(虞卿)과 함께 신릉군(信陵君)을 의지해 위로 돌아왔지만, 신릉군이 만나기를 주저한다는 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평원군은 귀국할 수 있었다.
기원전 263년, 한(韓)은 진의 공격으로 영토를 잃고 한의 북쪽 영토였던 상당군(上黨郡)이 고립되었다. 때문에 상당은 조에 귀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효성왕은 어찌하면 좋을지를 신하들에게 물었고 평양군(平陽君)은 귀부를 받아들였다가는 진과 전쟁이 일어난다며 반대했지만, 평원군은 「아주 큰 이득이 될 것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마침내 효성왕은 상당을 조의 영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로 진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기원전 260년 진의 장군 백기(白起)가 이끄는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장평 전투) 이 전투에서 조는 45만이라는 병사를 잃었고 한순간에 약체화된다.
기원전 259년, 진군은 조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했고, 평원군은 구원 요청을 위해 초(楚)로 향했다. 이때 식객 가운데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함께 가기를 청했고, 평원군은 「현명한 사람이라 함은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어둔 것과 같으니, 반드시 끝이 주머니를 찢고 삐져나올 것이다. 선생이 내 집에 온지도 3년이 되어가지만 이렇다할 평판을 듣지 못했다.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라며 거절했지만, 모수는 「바로 오늘이 내가 주머니 속에 들어가고 싶은 날이다. 나를 얼른 주머니 속에 넣으시면 끝은 고사하고 자루까지 빠져나올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평원군은 모수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것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평원군은 초에 들어가 초의 고열왕(考烈王)에게 합종(동맹)을 제의했지만, 초는 예전 진에 침공당한 적도 있었기에 위협으로 여겨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모수는 칼을 쥐고 고열왕 앞에 서서 「백기는 초의 수도를 불사르고 초의 조선(祖先)들을 욕보였습니다. 합종은 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초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득하여 고열왕은 마침내 합종 제의를 받아들였다. 기뻐한 평원군은 귀국한 뒤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
기원전 258년, 위는 조에 대해 원병을 보냈지만 도중에 머무르게 하면서 정세를 관찰했다. 평원군은 위의 신릉군의 누나를 아내로 삼고 있었기에 신릉군에게 「누나를 버리시려는가?」라는 편지를 보냈고, 신릉군은 이에 대답해 위의 장군을 죽이고 군을 빼앗아, 조에 원병을 냈다. 초에서도 맹약에 따라 원병이 보내졌다. 그러나 한단은 오랜 포위 기간 동안 무기도 나무를 깎아 만든 창밖에 없었고, 성안의 백성들도 굶주려 죽기 직전으로 자식을 서로 바꾸어 죽여서 먹는 등의 위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안의 평원군 등 귀족들은 변함없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고, 이동(李同)이라는 병사가 평원군에게 「성이 무너지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재를 모두 내놓으셔야 합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이에 평원군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고 마음대로 가져가도 좋다고 선언했고, 시종을 시켜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노동을 하게 했다. 이에 성안의 사기는 크게 올라 생기가 돌게 되었고, 이동은 원병이 올 때까지 버틸 특공대를 모아 자신이 이끌겠다고 평원군에게 제안, 평원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동은 모집한 3천 병사를 거느리고 성밖의 진군에 공격을 가했다. 죽음을 각오한 공격 앞에 진군은 후퇴했고, 마침 원병이 도착하여 진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다. 특공대를 지휘했던 이동은 전사했지만, 전공이 인정되어 그 아버지가 이후(李侯)로 봉해진다.
신릉군은 그 뒤 위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에 머무르고 있었다. 신릉군이 한 번은 노름꾼과 간장 빚는 사람을 불러 환담하는데, 평원군이 「신릉군은 어찌 저런 사람들과 상대하시는가?」라고 말했고, 이를 들은 신릉군은 화를 내며 「나는 그들이 현명하다고 들어왔는데, 이런 교제를 수치스럽다 하는 당신은 겉만 번지르르한 분인 것 같구료」라며 나가려 했다. 평원군은 이를 다급히 만류하고 나섰지만, 이 이야기가 전해진 뒤 평원군을 떠나 신릉군에게로 가는 식객이 늘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251년에 평원군은 사망한다. 자손이 평원군을 이었지만, 진이 조를 멸망시킨 뒤에는 그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우경(虞卿, ?~?)은 중국 전국시대 후기 조(趙)나라의 인물. 짚신을 신고 우산을 든 채 조나라로 가서 효성왕에게 유세를 하고 황금 100일(鎰, 1일은 20 또는 24냥)과 백옥 한 쌍을 얻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효성왕은 그를 상경에 임명했는데, 여기서 우경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편 응후가 재상이 된 후 진나라는 위나라에서 그를 고문했던 재상 위제를 찾아 죽이려고 하였다.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할 채비를 갖춘 뒤에, 위나라에서 화친 사절이 오자 공격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위제의 머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위제가 그제야 전말을 파악하고 두려워 조나라로 도망쳤다. 위제와 친구였던 공자 평원군이 그를 숨겨주었다. 몇 년 뒤 위제의 소재를 파악한 진나라 소왕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조나라 평원군을 친선을 구실로 초청했다. 평원군이 방문하자 소왕은 며칠간 융숭한 대접을 한 뒤에 본심을 드러냈다. “옛날 주 문왕이 여상을 얻어 태공으로 삼고 제나라 환공이 관중을 중부로 삼았듯이, 나는 지금 응후 범 선생을 숙부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 선생의 원수가 당신 집에 숨어있다 하니 지금 사람을 보내 그의 목을 베어오도록 해주시오.” 예상했을 일이지만 평원군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잡아떼며 말을 듣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왕의 사신이 조나라로 달려갔다.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 “지금 대왕의 동생 평원군은 진나라에 있으며, 범 선생의 원수인 위제는 평원군의 집에 숨어있습니다. 신속히 위제를 잡아 목 베어 보내주지 않는다면 대왕의 동생은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진나라는 곧 군사를 일으켜 침공하겠소.”
조 효성왕이 즉시 군사를 보내 평원군의 집을 포위했다. 그러나 먼저 정보를 받은 위제는 이미 집을 빠져나가 조나라 재상 우경에게 피신해 있었다. 우경은 조나라의 권력자며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나, 요직에 등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려지신으로서 이미 왕명이 내려진 죄인을 보호할 수는 없었다. 우경은 고민 끝에 재상직을 내놓고 위제와 함께 나라 밖으로 피신하였다. 진나라와 조나라 왕의 눈치를 보지 않을 나라는 초나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나라까지 가기 전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들은 위나라로 들어가 신릉군을 만나려 하였으나 신릉군 역시 진나라의 눈치가 보였다. “우경이 어떤 사람이냐”하면서 망설인다는 말을 듣고 위제는 치욕과 절망감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나라 왕이 그 목을 잘라 진나라에 보낸 뒤에 평원군은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한편 우경은 그 길로 정치에서 물러나 책을 쓰기 시작했다. <춘추(春秋)>를 근간으로 국가의 득실을 논한 여덟 권의 책을 남겼는데, 이 책이 바로 <우씨춘추(虞氏春秋)>다. 우경은 위제와의 의리를 지키느라 만호후(萬戶侯)의 부귀와 공경의 신분, 재상이란 직위를 하루아침에 내던지고 함께 망명을 시도했다. 일개 영웅의 행적을 넘어선다. 춘추나 우씨춘추 같은 역사서들이 후대에도 변함없이 나침반 구실을 하는 것은, 이 같은 비범한 정신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평원군은 진나라에 있으며, 범 선생의 원수인 위제는 평원군의 집에 숨어있습니다. 신속히 위제를 목 베어 보내주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곧 군사를 일으켜 침공하겠소.”
○ 평원군(平原君)
1.殺笑躄者(살소벽자)
-선비의 불구를 보고 웃은 애첩을 죽이다.
평원군 조승(趙勝)은 조나라 여러 공자 중의 한 사람이다.그 공자들 중 가장 현명하여 빈객들을 좋아해서 나중에는 찾아온 빈객들의 수효가 수천 명에 달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과 효성왕(孝成王) 양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가다가 세 번 물러났다가 다시 세 번 복위하고 동무성(東武城)을 봉지로 받았다.
평원군의 집에는 민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누각이 있었다. 그 민가에는 한쪽 발을 저는 사람이 살면서 절뚝거리며 물을 길었다.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위에 있다가 그 절름발이가 절뚝이며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다음날 그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대문 앞에 와서 청하며 말했다.
「제가 듣기에 군께서는 선비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선비들이 천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군을 찾아온 이유는 군께서 능히 선비들을 귀하게 여기고 첩들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불행하게도 파륭병(罷癃病)에 걸려 자리를 절뚝이는 모습을 군의 후궁이 누각에서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소인은 원컨대, 저를 비웃은 후궁의 목을 얻기를 바랍니다.」
평원군이 웃으면서 그 사람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소!」
그 사람이 발을 절뚝거리며 물러가자 평원군이 웃으면서 주위의 빈객들을 보고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자기를 보고 한 번 웃었다고 내가 사랑하는 후궁을 죽이라고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평원군은 결국 그의 애첩을 죽이지 않았다. 이어서 1년여가 지나자 문하의 빈객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그 수효가 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평원군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좌우에게 물었다.
「이 승이 여러 선비들을 접대하는데 아직까지 예를 잃은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많은 빈객들이 나의 문하를 떠났는가?」
남은 문객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것은 군께서는 애첩을 죽이지 않고 그 절름발이 선비를 비웃음으로 해서 선비들은 천하게 여기고 애첩은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이 군의 문하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평원군은 절름발이를 보고 웃은 애첩의 목을 베어 자신이 직접 들고 그의 집 대문 앞으로 가서 주고 사과의 말을 했다. 그러자 천하의 선비들이 다시 평원군의 집으로 서서히 몰려들었다. 당시 제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 위나라에는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에는 춘신군(春信君)이 있어 선비들을 초빙하여 모시기를 서로 경쟁했다.
2.毛遂自薦(모수자천)
-모수가 스스로 자신은 천거하다.
진나라가 한단성(邯鄲城)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사자로 보내 초나라와 합종을 맺고 구원을 요청하려고 했다. 평원군은 문하의 식객 중 용력과 문무를 겸비한 사람 20명을 뽑아 같이 가기로 하며 말했다.
「문으로 능히 일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고, 문으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면 무력이라도 행사하여 맹회가 열리는 호화로운 궁전 아래에서 삽혈을 행하여 반드시 합종을 이루어낸 다음 돌아와야 될 것이오. 같이 갈 선비들은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고 우리 식객 중에서 뽑아도 충분할 것이오.」
평원군은 식객 중 19명을 얻었으나 나머지 한 명은 해당하는 사람이 없어 20명을 다 채우지 못했다. 평원군의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평원군 앞으로 나오더니 스스로 자기를 천거하며 말했다.
「이 수(遂)가 듣기에 군께서 식객 중 20명을 뽑아 초나라에 같이 가서 합종을 맺으려고 하는데 밖에서 찾지 않고 문하에서 구했으나 지금 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원컨대 이 수를 부족한 한 사람으로 해서 20명에 채워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이 사람의 문하에 계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지금까지 3년이 되었습니다.」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자루 속의 송곳과 같아 당장에 그 끝이 드러나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3년이나 이 사람의 집에서 기거했음에도 내 좌우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선생에 대한 칭찬 한 마디 하지 않고 나 또한 들은 적이 없으니 이는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오. 선생은 나와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으니 이곳에 남아있으시오.」
「이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군의 자루에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이 수가 군의 자루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었더라면 몸통 전체가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어찌 송곳만 들어나겠습니까?」
평원군은 결국은 모수도 같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19명의 선비는 서로 눈짓을 하며 모수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모수가 초나라에 가는 도중에 길을 가다가 나머지 19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모두가 모수의 식견에 탄복했다.
3.口若懸河(구약현하)
-현하와 같은 구변으로 초왕을 설득하여 합종을 성사시키는 모수.
평원군이 이윽고 초왕을 만나 합종의 이해에 관해 설파하는데 아침에 해 뜰 때에 시작해서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 19명의 선비들이 모수에게 말했다.
「선생께서 전당에 올라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모수가 허리에 칼을 차고 한 걸음에 한 계단씩 밟고 전당에 올라 평원군을 향해 말했다.」
「합종의 이해는 단 두마의 말이면 족한데, 오늘 아침 해 뜰 때부터 지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말해도 결론이 안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초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승의 문객입니다.」
초왕이 듣고 모수를 향해 큰 소리로 질책했다.
「당장 전당 밑으로 내려가지 못할까? 내가 너의 주인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건대 전당에 올라 무례하게 구는가?」
모수가 칼을 어루만지며 초왕 앞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대왕께서 이 모수를 보고 호통치는 것은 곁에 있는 대왕의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이 계시는 곳에서 열 걸음 내에는 믿을 수 있는 신하나 호위병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대왕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주인의 앞에 있는데 대왕은 어째서 다른 사람의 신하된 사람을 꾸짖는 것입니까? 제가 들으니 은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은 사방 70리 되는 조그만 곳에서도 천하를 다스리는 왕 노릇을 하였고, 주나라의 문왕은 사방 100리 되는 땅에서 일어나 제후들을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어찌 두 왕이 천하를 다스린 것이 모두 많은 군사들 때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진실로 그 세력에 의지해서 떨쳤던 위엄에 힘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에 군사는 백만을 헤아리고 있어 패왕이 될 수 있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강성한 초나라에 대적할 수 없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백기라는 어린아이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 번 싸움에 언(鄢)과 영(郢)을 함락시키고 두 번 싸움에 이릉(伊陵)을 불태웠고, 세 번 싸움에 초나라 조상들을 욕보였습니다. 이것은 초나라로서 백세에 걸치는 원한인 것이며 우리 조나라조차도 수치로 여기고 있는 일입니다. 합종을 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초나라를 위해서이지 우리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제 주인 앞에 서 있는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책망하는 것입니까?」
마음이 움직인 초왕이 모수를 향해 말했다.
「아! 과연 그렇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삼가 사직을 받들어 합종을 행하겠습니다.」
「정말로 합종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정했습니다.」
모수가 초왕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에게 외쳐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이윽고 모수가 무릎을 꿇고 희생의 피가 담긴 동으로 만든 쟁반을 들어 초왕에게 바치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삽혈을 행하여 합종이 맺어 졌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대왕을 따라 우리 주인께서 하시고 그 다음은 이 수가 할 것입니다.」
이윽고 합종의 맹약이 전당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서 모수가 왼손으로 희생의 피가 든 쟁반을 들고 단하에 있던 19명의 수행원들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은 이 피로 당하에서 삽혈을 행하도록 하시오. 그대들은 별다른 재주도 없으면서 소위 일을 성사시킨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을 성사시키고 조나라에 돌아와서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이 승(勝)은 앞으로 도저히 선비들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사실을을 알았소. 이 승이 지금까지 수천 명에 적게는 수백 명의 선비들을 골라 지금까지 뛰어난 선비라면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늘 모수 선생을 잃을 뻔했소. 모수 선생이 한 번 초나라에 가니 조나라는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 더 무겁게 되었소. 모수 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대군보다 더 강했소. 나는 앞으로 감히 다시는 선비에 대해 논하지 않겠소.」
그리고 평원군은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4.邯鄲解圍(한단해위)
-가산을 털어 한단의 포위를 풀은 평원군.
평원군이 조나라에 돌아가자 초나라는 즉시 춘신군(春信君) 황헐(黃歇)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위나라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도 역시 장군 진비(晉鄙)의 군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두 나라 군사들이 미처 이르기 전에 진나라가 재빨리 한단을 포위하자, 한단이 위급하게 되어 항복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평원군이 이를 근심했다. 한단의 전사(傳舍)를 관리하던 사람의 아들이었던 이동(李同)이 평원군을 찾아와 말했다.
「군께서는 조나라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까?
「조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이 승은 진나라의 포로가 될 것인데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한단의 백성들은 진나라 군사들에 대항해 싸우느라 사람의 해골을 주어다 불을 떼고 그 자식들을 바꾸어서 먹고 있어 가히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군께서는 수백 명에 달하는 후궁을 거느리고 그 비첩들은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쌀밥과 고기를 먹다 남깁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갈포로 만든 옷이나마 다 갖추지 못하고 술지게미와 쌀겨조차도 없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곤궁하고 군사들은 기진맥진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병기조차 갖추지 못해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기물(器物)에 집착하고 종경(鐘磬)7)을 즐기시고 계십니다. 만일 진나라가 한단성을 함락시킨다면 군께서는 어찌 이런 것들을 보유하고 또한 즐길 수 있겠습니까? 또한 조나라가 안전하게 보전된다면 군께서는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군께서는 진실 된 마음으로 희첩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명하여 한단성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속하게 하여 일을 나누어 맡게 하시고, 집안에 있는 기물들을 모두 내어 군사들에게 베풀어주신다면 위태롭고 어려움을 당한 군사들은 쉽게 군의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평원군이 이동의 말을 따르니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 3천 명을 얻었다. 이동이 그 3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하자 진군은 한단성에 포위망을 풀고 30리를 뒤로 후퇴했다. 이윽고 초와 위 두 나라의 구원군이 당도하여 진나라 군사들은 물러가 한단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동은 싸움 중에 전사했다. 조왕은 이동의 부를 이후(李侯)로 봉했다.
-공손룡이 봉지를 받지 말라고 평원군에게 간하다.
우경(虞卿)은 신릉군(信陵君)이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여 한단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평원군의 공이라고 생각하여 그 봉지를 더 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 공손룡(公孫龍)이 듣고 밤새도록 수레를 몰고 평원군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이 사람이 듣기에 신릉군이 한단을 보전한 것은 군의 공이라고 생각한 우경이 군을 위해 봉읍을 더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는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그런 일이 있소.」
「이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옛날 조왕께서 군을 발탁하여 상국에 임명한 이유는은 당시 조나라에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군 한 사람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동무성(東武城)을 떼어 군을 봉한 것은 그 당시 군께서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포상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음에도 조나라의 상국이 되고 동무성에 봉해진 것은 단지 공실의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군의 요청으로 구원군을 이끌고 온 신릉군이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한단을 보전시켰다고 해서 그 공으로 봉읍을 더 해달라고 청하는 행위는 친척의 신분으로 성을 받고 또 조나라 사람의 신분으로 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이는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우경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 일이 이루어지면 우권(右券)을 쥐고서 그 보답을 요구할 것이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군을 위해 봉읍을 청했다는 헛된 이름을 가지고 군에게 생색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군께서는 결코 더해 주는 봉읍은 받지 말기 바랍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우경의 말을 듣지 않고 봉읍을 청하지 않았다.
평원군은 효성왕(孝成王) 15년 즉 기원전 251년에 죽었다. 그 자손이 뒤를 이었다고 조나라가 망할 때 같이 그 운명을 같이 했다.
평원군은 견백지변(堅白之辯)에 뛰어난 공손룡을 후대했다. 그러나 후에 추연(鄒衍)이라는 사람이 조나라를 지나가다 ‘지도(至道)’에 대해 논하자 평원군은 결국은 공손룡을 내쳤다.
태사공이 말한다.
평원군은 혼란한 시대에 새가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뛰어났던 재주 있는 공자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도리를 보지 못했다. 항간에서는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利令智昏)’고 했다. 풍정(馮亭)의 사악한 유세를 좋아했던 평원군은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長平)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산 채로 매장되어 죽게 하였고 이어서 조나라의 서울 한단을 거의 함락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 虞卿(우경)
1.必疑合縱 媾乃可也(힐의합종 구내가야)
-우리가 합종을 행한다고 진나라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들어야만 강화조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경(虞卿)은 유세객이다. 우경이 짚으로 엮은 신발을 신고 어깨에 초롱이를 걸치고 먼 길을 걸어 조나라에 들어와 조왕을 한 번 알현하자 조왕은 그에게 백벽(白璧) 한 쌍과 황금 백 일(鎰)을 하사했고, 두 번 알현하자 그를 상경(上卿)으로 삼아 우경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진(秦)과 조(趙) 두 나라가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서전에서 패전하고 한 명의 도위(都尉)를 잃자 조왕이 루창(樓昌)과 우경을 불러 말했다.
「우리 군사들이 전투에서 패하고 또 도위(都尉)가 전사했소. 과인이 나라 안의 무장한 모든 병사들을 동원하여 진군을 막아보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루창이 먼저 말했다.
「그래봐야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대신을 진나라에 사자로 보내 강화를 청하십시오.」
우경이 듣고 말했다.
「루창이 말한대로 강화를 추진한다면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조군은 틀림없이 싸움에 질 것입니다. 강화를 하고 안 하는 것은 모두 진나라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왕께서 진나라와 의논하고자 하는 바는 조나라 군사들을 싸움에서 지도록 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입니까?」
조왕이 말했다.
「지금 진나라는 모든 전 국력을 동원하여 반드시 우리 조나라 군사를 격파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오.」
「대왕께 제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많은 보화를 사자에게 주어 초와 위 두 나라에 보내십시오. 초와 위 두 나라 왕은 많은 보화가 탐이 나 틀림없이 우리의 사자를 입국시켜 접견할 것입니다. 조나라의 사자가 초와 위 두 나라에 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진나라는 필시 세 나라가 합종을 행할 계획이라고 의심하게 되어 두려운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셔야만 대왕께서 원하는 강화를 진나라와 맺을 수 있습니다.」
조왕이 우경의 말을 듣지 않고 평양군(平陽君)과 상의하여 정주(鄭硃)를 진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진나라가 정주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조왕이 우경을 불러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과인이 평양군에게 진나라와의 강화를 추진하도록 명하자 평양군은 정주를 사자로 진나라에 보냈소. 그러자 진나라가 정주를 강화사절로 받아들였소. 경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경이 대답했다.
「왕께서는 진나라와 결코 강화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종내에는 우리 조나라 군사는 진군에게 패배할 것입니다. 조나라 사자가 진나라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천하의 제후들도 모두 진나라에 전승을 축하하는 사절을 보낼 것입니다. 정주는 조나라의 귀척 신분입니다. 진왕과 승상 응후(應侯)는 틀림없이 그를 사절로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접대하여 천하에 과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나라가 진나라와 강화를 맺는다고 생각하게 된 초와 위 두 나라는 결코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의 제후들이 조나라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진나라는 결국 우리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응후는 과연 정주를 이용하여 진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과시하고 결국은 강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평에서 벌어진 큰 싸움에서 조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이어서 한단이 포위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2.彈丸之地 猶不予也(탄환지지 유불여야)
-그 땅은 탄환처럼 작은 땅이나 주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진나라가 한단의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조왕의 입조를 원하자 조학(趙郝)을 사자로 보내 진나라와 사전에 맹약을 맺고 그 증표로 조나라의 6개 현을 할양하려고 했다. 우경이 듣고 조왕에게 말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다가 철수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 힘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진나라의 힘이 아직 능히 한단성 안으로 진격할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다. 그래서 진나라가 왕을 사랑한 나머지 공격을 중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다가 이제 그 힘이 다해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철수하려는 것이오.」
「진나라가 그들의 힘으로 조나라를 공격하다가 원하는 바를 취하지 못하고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철수하려고 하는데 왕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힘으로 취하지 못한 것을 대신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진나라를 도와 스스로를 공격받게 하는 행위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그때 왕께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다.」
조왕이 우경의 말을 조학에게 전했다. 조학이 말했다.
「조나라 땅 중에 진나라의 군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우경은 알고 있습니까? 진실로 진나라가가 그들의 힘으로 진격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탄환지지(彈丸之地)일지라도 할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만일 내년에 다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온다면 왕께서는 그때도 땅을 할양하지 않고 내지의 성읍에 의지해서 강화를 이루어낼 수 있겠습니까?」
조왕이 물었다.
「그대의 말을 듣고 우리가 진나라에 땅을 할양하면, 그대는 능히 진나라로 하여금 틀림없이 우리 조나라를 다시 공격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소?」
「그것은 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옛날 삼진(三晋)이 함께 진나라와 수호를 맺고 서로 우호적으로 지냈습니다. 오늘 진나라는 한과 위 두 나라와 친선을 맺고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께서는 필히 진나라 받들기를 한과 위 두 나라가 하는 정도로 지극히 해야 합니다. 지금 신은 왕께서 친선관계를 파기함으로 해서 야기된 진나라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관문을 열고 사자들을 왕래시켜 예물들을 서로 교환하여 진나라와의 관계를 한과 위 두 나라와 똑같이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내년에 이르러 유독 왕 혼자만이 진나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왕께서 한와 위 두 나라보다 진나라를 더 극진하게 받들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신은 그래서 감히 그때의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조왕이 조학에게 명하여 우경을 찾아가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도록 했다. 조학의 말을 들은 우경이 조왕을 찾아가 말했다.
「조학이 말하기를 ‘ 이번에 강화를 맺지 못하면 진나라가 내년에 다시 쳐들어오게 될 것인데 왕은 어찌하여 지금 바로 6개의 성을 떼어 바쳐 강화를 맺지 않고 다시 내년에 내지의 성에 의지하여 강화를 맺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강화를 맺더라고 진나라가 또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조학은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6개의 성을 떼어내 진나라에 바친다한들 우리나라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내년에 다시 공격을 받을 때 그 때 다시 진나라의 역량으로 취하지 못하는 바에 따라 다시 강화를 맺는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입니다. 강화를 추진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진나라가 비록 싸움에 능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우리의 6개의 현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조나라가 비록 지키지 못했지만 결국 6개의 성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로에 지친 진나라가 군사를 물리쳐 휴식을 취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6개의 성으로 천하의 제후들을 규합하여, 피로에 지친 진나라 군사들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규합하기 위해 사용한 6개의 성에 해당하는 땅을 진나라로부터 대신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익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땅만 떼어주는 행위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약화시킬 뿐입니다. 지금 조학이 말하기를 ‘진나라는 한과 위 두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그렇지 않은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왕께서는 필히 진나라를 받들기를 한(韓)과 위(魏) 두 나라처럼 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왕께서 6개의 성을 바치고 다시 진나라를 극진히 받들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내에는 우리 조나라의 성읍은 모두 바쳐져 진나라의 땅이 될 것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6개의 성을 요구한다면 왕께서는 그들에게 6개의 성을 주시겠습니까? 만일 6개의 성을 다시 바치지 않는다면 그때는 옛날에 바친 것들은 모두 무효가 되고 진나라는 또다시 우리에게 전화(戰禍)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일 진나라의 요구대로 6개의 성을 또다시 떼어 주려한다면 그때는 이미 떼어줄래야 줄 땅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담에 ‘강한 자는 공격하는 데 능하고, 약한 자는 자기 것을 지키는 데 능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진나라의 요구대로 행한다면 진나라 군사들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많은 땅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강한 진나라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땅을 떼어 낸 조나라는 더욱 약하게 만드는 그런 계책을 어찌하여 중지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왕의 영토는 유한하고 진나라의 요구는 무한하니 유한한 영토로는 무한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고 그 결과는 필시 조나라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3.言者異則 人心變矣(언자이즉 인심변의)
-같은 말이라도 사람에 따라 듣는 이의 마음도 바뀐다.
조왕이 계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나라에 사자로 갔던 루완(樓緩)이 돌아왔다. 조왕이 루완과 계책을 의논하며 말했다.
「진나라에 우리 땅을 떼어 바쳐야겠습니까? 아니면 바치지 말아야겠습니까? 어느 것이 우리 조나라에 좋겠습니까?」
루완이 사양하며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신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개인적인 생각이라도 한 번 말해 보시오.」
「왕께서는 옛날 공보문백(公甫文伯)의 모친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공보문백이 노나라에 벼슬살이를 하다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두 사람의 여인이 자살했습니다. 문백의 모가 아들이 죽었음에도 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백의 집안일을 돌보는 여인이 그 모에게 ‘ 어찌하여 자식이 죽었음에도 곡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모가 ‘ 공자(孔子)는 현인이었으나 노나라에서 쫓겨날 때 그는 공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들이 죽었는데 두 여인이 그를 위해 자살했다. 그래서 그는 장자에게는 박하게 대하고 부녀자들에게는 후하게 대한 것이다. 어찌 내가 그런 자식을 위해 곡을 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말을 모친이 했음으로 그 모친은 현모인 것이고 만일 그 말을 그의 처가 했다면 필시 투기를 한다는 의심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 뜻이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 진나라에서 금방 돌아온 신은 말씀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만약 신이 진언을 올린다면 왕께서는 혹시 제가 진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의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을 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으로 하여금 대왕을 위해서 계책을 드리자면 땅을 떼어 진나라에 주는 편이 좋습니다.」
4.割城慰秦 示弱天下(할성위진 시약천하)
-성을 떼어 진나라의 환심을 사는 행위는 조나라가 약하다는 사실을 천하에 선전하는 일이다.
조왕이 알았다고 말했다. 우경이 듣고 입궐하여 조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루경의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대왕께서는 절대로 땅을 떼어 진나라에 주면 안 됩니다.」
루완이 듣고 역시 왕을 만나러 왔다. 왕이 다시 우경이 한 말을 루완에게 전했다. 루완이 말했다.
「우경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우경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고 있습니다. 진조(秦趙) 두 나라는 서로 원한에 사무쳐 서로 극렬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천하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강한 나라에 붙어서 약한 나라 둥에 올라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군은 진군에 의해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나라는 진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알고 축하를 위해 모두 진나라에 당도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 조나라가 진나라와 서둘러서 화의를 맺어야만 천하의 모든 나라로 하여금 의심하여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왕의 마음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각 나라는 분노한 진왕의 마음을 이용하여 피폐한 조나라에 달려들어 서로 찢어서 나누어 갖게 되면 조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인데 무슨 방법으로 진나라가 도모하는 바를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우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원컨대 왕께서 결단을 내리시어 다른 방법은 고려하지 마십시오.」
우경이 듣고 다시 조왕을 찾아와 말했다.
「루완이 진나라를 중심으로 생각한 그와 같은 방법은 매우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천하의 각 나라로 하여금 우리 조나라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진나라의 마음을 위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던 말입니까? 그리고 루완은 우리가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는 행위는 천하의 모든 나라에게 조나라가 허약하다는 사실을 선전하는 일과 같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은 땅을 바치지 말라고만 했지 무조건 주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나라가 요구한 6개의 성을 왕께서는 차라리 제나라에 할양하십시오. 제나라는 원래 진나라와 원한관계가 매우 깊습니다. 그런 제나라가 우리 조나라부터 6개의 성을 얻는다면 같이 군사를 모아 진나라를 향해 서쪽으로 진격할 것입니다. 제왕은 왕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 전에 왕의 제안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조나라는 제나라에 할양한 6개의 성에 해당하는 땅을 진나라로부터 보충할 수 있고 동시에 제와 조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도 이것으로 해소할 수 있어 천하에 조나라가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왕께서 목소리를 높이신다면 제와 조 두 나라의 병마가 미처 진나라 변경에 당도하기도 전에 오히려 진나라가 많은 재물을 들고 조나라에 당도하여 화의를 맺자고 간청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요청에 따라 화의를 맺는 것을 본 한과 위 두 나라는 우리 조나라를 중하게 여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두 나라는 필시 많은 재물과 보물을 들고 왕께 바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왕께서 일거에 3국과 결호를 맺고 진나라와는 강화를 쉽게 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경의 말이 옳다고 말한 조왕은 그 즉시 그를 제나라에 사자로 보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에 대항하자는 제안을 하게 했다. 우경이 미처 제나라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진나라가 사자가 강화를 맺자고 조나라에 당도했다. 루완이 듣고 나라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래서 조나라는 우경에게 성 하나에 봉했다.
5.합종(合縱)의 득실
그리고 얼마 후에 위나라에서 합종을 맺자고 제안해 왔다. 조왕이 우경을 불러 의견을 듣기 전에 평원군을 방문하여 물었다. 평원군이 대답했다.
「원컨대 우경의 의견을 따르십시오.」
이윽고 입궐한 우경에게 조왕이 말했다.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해왔소!」
「위나라는 잘못했습니다.」
「과인은 아직 위나라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소.」
「왕께서 잘못하셨습니다.」
조왕이 따져 물었다.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해 왔다고 하니 경은 위나라가 잘못했다고 하더니, 다시 내가 합종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니 또 내 잘못이라고 했소. 그렇다면 합종을 해야 하오?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오?」
우경이 대답했다.
「신이 듣기에 소국이 대국과 합종을 하게 되면 대국에게는 유리하여 복이 되고, 소국에게는 손해가 되어 화가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소국인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한 일은 화를 불러들인 것이고 대국인 조나라에게는 복이 굴러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합종을 아직 허락하지 않은 왕께서 잘못하셨고 소국인 위나라 역시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 조용히 합종을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좋다고 말하며 그 즉시 위나라와 합종을 맺었다.
우경이 위제(魏齊)의 일로 만호의 식읍과 경상(卿相)의 인장도 가볍게 버리고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떠났다가 대량에서 곤궁한 처지에 빠졌다. 위제가 죽은 후에는 우경은 결국 다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술에 전념하여 위로는 춘추에서 뽑고 밑으로는 근세의 역사를 살펴 절의(節義)、칭호(稱號)、췌마(揣摩)、정모(政謀),등 모두 8편을 지었다. 국가의 이해득실을 풍자한 내용으로 세상에 전해졌는데 ‘우씨춘추'(虞氏春秋)라 했다.
태사공이 말한다.
평원군은 혼란한 시대에 새가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뛰어났던 재주 있는 공자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도리를 보지 못했다. 항간에서는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利令智昏)’고 했다. 풍정(馮亭)의 사악한 유세를 좋아했던 평원군은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長平)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산 채로 매장되어 죽게 하였고 이어서 조나라의 서울 한단을 거의 함락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일의 요체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사정을 잘 살펴 조나라를 위해 꾸민 우경의 책략은 어찌 그리 주도면밀했는가? 후에 차마 위제를 버리지 못하고 마침내는 대량성(大梁城)에서 곤궁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일개 범부도 알 수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하물며 우경과 같은 현능한 사람이 몰랐겠는가? 그러나 우경의 근심은 곤궁한 처지가 아니라 책으로 저술한 자기의 생각이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경우였다.
○ 사자성어
1) 이령지혼(利令智昏)
.利:이할 리. 令:하여금 령. 智:슬기 지. 昏:어두울 혼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눈앞에 이익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완전히 초월한 도인이 아니고선 없을 것이다. 그 이익이 합당한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많다. 공자는 이익에 끌려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고 했고
맹자는 인과 의를 말씀하지 않고 어찌 이익을 찾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런 성인이 꾸짖더라도 인간은 날때부터 이기적이니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이익에 눈이 어둡게 되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탈이다.
이령지혼이 바로 이익은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성어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나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라는
고명사의(顧名思義)와 대조적이다.
전국시대, 기원전 403~221년 . 한나라가 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웃 성의 성주 풍정이 망하기 직전 조나라에 성을 넘겨줄테니 보호해 달라고 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한 사람은 명분 없는 이익을 추구하면 재앙을 초래한다며 반대했고
평원군은 대가없이 주는데 안 받으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접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이 평원군을 따라 조괄을 대장군으로 하여 출병시키자 분호한 진나라는 백기장군에 대군을 주어
잔인한 살육전을 펼쳤다.
조괄은 전사하고 40만 조나라 군사는 생매장을 당했다.
이것이 유명한 長平(장평)전투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 (사기)에서 평원군을 평하면서 이 말을 썼다.
‘그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고 했는데 잘못 판단하여 40만 군사를 잃고 도읍인 한단마저도 잃을 뻔
했다.’
2) 낭중지추, 모수자천(囊中之錐, 毛遂自薦)
“毛遂自薦과 囊中之錐”말은 司馬遷(사마천)의 史記ㆍ平原君列傳(사기. 평원군 열전)에서 나온다.
중국 전국 시대 중기에 秦 나라가 趙 나라를 쳐 수도 邯鄲(한단)을 包圍하니 조 나라의 운명이 頃刻에 처했다. 조 왕은 즉시 平原君을 楚 나라로 보내 救援을 要請하게 했다.
평원군이 門下의 食客들 중 文武가 뛰어난 20명을 뽑아 가려는데 아무리 해도 19명만 條件에 맞을 뿐이었다. 이 때 毛遂가 앞으로 나와 自身을 推薦하면서 이번 行列에 꼭 데려갈 것을 懇請했다.
이른바 毛遂自薦이다.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 했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추천하는 것을 이른다. 요즈음에 選擧에 자주 引用되는 말이다.
“당신이 언제 우리 門下에 들어왔지?” “3년이 좀 넘었습니다.” “才能과 德이 있으면 마치 보자기속에 있는 송곳처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3년이나 내 밥을 먹었다는데 어찌 내 눈에 띄지 않았을꼬?” “저는 오늘에야 보자기 속으로 들어가려고 懇請하는 것입니다. 저를 보자기 속으로 조금 일찍 들어가게 해주셨더라면 송곳뿐이 겠습니까? 송곳자루 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이 또한 고사인 囊中之錐(낭중지추) 즉,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才能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들어 난다는 比喩的인 意味의 뜻이다.
평원군은 “그래? 다들 反對하지만…. 속는 셈치고 데려가 주지!”
초 나라에 到着한 평원군과 食客들은 갖은 말로 초 왕을 說得하려 했지만 搖之不動이라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모수가 갑자기 튀어나와 왕의 面前에 바짝 다가가더니 겁 없이 唐突하게 劍을 찬 채 威脅하는 자세로 ‘서로 協力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攻駁했다.
그의 勇氣와 態度에 感服한 초 왕은 마침내 救援兵을 보내 즉시 조 나라를 구하라고 命令했다. 단 한 번의 快擧로 모수는 食客들 중 頭角을 나타낸 有名人士가 되었으며 평원군으로부터 上客으로 待接받게 됐다.
모수의 行動은 자칫 傲慢과 放恣로 보였을 테지만, 평원군은 融通性있게 모수의 自薦을 받아들였고 모수의 能力을 疑心했던 자신을 깊이 있게 反省하게 할수 있는 대목이다. _ 안종운 (한자신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