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말씀묵상
행복이라는 것(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리처드 라이더와 데이비드 샤피로라는 사람이 쓴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을 썼습니다. 딕이라는 친구가 아프리카로 여행하던 중 마사이족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하는 도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가방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각종 식기용품 가위, 칼, 삽, 방향탐지기, 천체망원경, 지도, 수첩과 필기도구등’ 이런 것들을 한 참 뜯어보고 나서 한 마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딕은 이 질문에 갑자기 쇠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방 안에 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보다는 나를 버겁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착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착각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얼마 전 일간지에서 우리나라 행복감 설문조사를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경제순위 15위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이고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 설문에서도 한국은 97위에 그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원래 화두는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인 줄 아십니까? 물론 지금도 그것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화두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을 겪어가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성공이라는 것을 했는데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돈을 조금 벌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큰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공이라는 화두에서 행복이라는 화두로 전환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생 허리띠 졸라매고 노력하여 큰집, 좋은 차, 많은 재산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한 연구에 의하면 그런 것들은 소유한지 정확하게 7개월도 아니고, 7일도 아니고 7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만족감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7시간의 희열을 누리기 위해서 수년간 많게는 평생 불만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학교 합격자 발표를 하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그런데 그 감격이 7시간 후 부터는 감격이 서서히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김난도씨가 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에서 삶의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도파민적 삶(Dopamine-driven-life)입니다. 이것은 도파민은 무엇인가를 성취되었을 때에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즐거움과 쾌감을 결정합니다. 즉 성취에 기반을 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하여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도파민의 문제는 한 번 반응한 자극에는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 산 물건이 주는 기쁨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고 금세 사라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도파민으로 행복하려면 계속해서 새것으로, 더 큰 것으로,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중독이 됩니다.
그러나 세로토닌적 삶(Serotonin-driven-life)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할 때, 묵상할 때, 숲속을 걸을 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느끼는 행복감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바로 세로토닌입니다. 결국 세로토닌적 삶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행복하기 위하여 열심히 삽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예수를 믿는 이유 중의 하나도 궁극적으로는 행복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담스러워하는 용어중의 하나가 “행복”이고 가장 편한 단어가 “고난”이라는 단어입니다. 행복하다라고 말하면 왠지 신앙생활을 대충 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난을 말하고, 고행을 말하면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다니면서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소유하고 싶은 것을 소유하면 큰 죄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늘 내천자를 그리고, 늘 고난의 모습을 얼굴에 쓰고 다녀야 그것이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못 배웠습니다. 무엇부터 배웠느냐면 가톨릭영성부터 배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금욕과 고난과 수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금욕을 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는 가톨릭영성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금욕도 제대로 못하고 고난에 동참하지도 않으면서 머릿속에 그것부터 알고 있으니 모든 일이 다 부담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편하면 은혜가 없는 것 같고, 고생을 하고 나면 한 편으로 마음이 뿌듯하고 무엇인가 한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 학대를 합니다. 그래서 막상 기쁘고 좋은 일이 있어도 그 행복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인은 행복하고 기뻐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