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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Smyrna) – 현재의 이즈미르(Izmir) , 사데(Sardis) – 현재의 샤르트(Sart)
서머나(Smyrna) – 현재의 이즈미르(Izmir)
서머나(Smyrna)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되었다. 8-9피트 높이로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나는 몰약이라는 사기 돋친 나무는 쓴맛을 지니고 있다. 몰약의 향기는 대단히 훌륭하여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에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해 올만큼 값지고 훌륭한 향료이다. 몰약의 향기는 유명하다, 특히 두드리고 으깰수록, 짓눌리고 부서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고 한다. 이름의 특성을 생각할 때 고난과 핍박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따라 순교의 향기로 역사를 장식한 교회를 서머나 교회로 명명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서머나(Smyrna) 교회는 서기 100년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공인한 밀란의 칙령을 반포한 313년까지 혹독한 핍박을 치른 시대를 대표한다. 소아시아 서해안 헬메안만 내에 있는 성으로 에베소에서 북으로 36마일, 이스탄불에서 약 631km 떨어진 지점에 에게 바다를 향해 위치한 유명한 항구 도시로서 화재와 지진으로 여러 번 파괴되었고 외적의 침략으로 거의 피폐되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후 재건하였다.
그 후 이 성은 다시 건축되어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현대 이름은 이즈밀(Izmir, 이즈미르)이다. 주전 3,000년부터 형성된 항구 도시로서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에 주둔하였고, 산 위에 성채를 건설하였다. 서머나는 주전 2-3세기 희랍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항구 상업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게 되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주전 3,000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주전 800년 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다. 유대인들이 이곳의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고, ‘유대인들의 훼방’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머나(Smyrna)는 비잔틴 제국, 셀주크-오토만 제국 그리고 터키 등의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인 중요성 때문에 계속 번성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고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자연 재난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되었으나 오늘날 여전이 옛날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
서머나(Smyrna)는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하고 번영한 항구도시이다.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 그러나 고난과 박해중에도 기독교인들은 신앙 고수에 더욱 충성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팩망을 받지 않고, 위로와 권고를 받는다. 인간의 눈에는 환난과 궁핍으로 비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눈에는 부요한 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반대의 입장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간의 부요함을 자랑하고 있지 아니한가?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가난한 자인데… 서머나(Smyrna) 교회에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된다. 이곳에 있던 유대인 개종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들은 로마의 황제 예배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로 인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계시록에 소개되는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의 하나로서 다른 교회는 모두 책망을 받았으나 빌라델비아교회와 서머나 교회는 칭찬을 받았으며 축도록 충성하라는 권면을 받았다(계 2:8~12).
주후 160년경 교회가 핍박을 받았을 때에 10여세의 소년 챠반익을 맹수의 굴에 던졌으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곳은 수렁의 유혹이라 하여 서머나(Smyrna)의 초개 감독인 폴리갑을 잡아다가 죽이려고 체포하였을 때 나이 86세였다. 그의 덕망을 보고 예수만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 하였으나 “86년간 나를 배반하지 않은 예수를 내가 배반할 수 없다.”고 대답하고 화형을 당하였다.
사데(Sardis) – 현재의 샤르트(Sart)
사데(Sardis)는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 있던 루디아의 수도로서 서머나 동쪽 약 80km지점 트몰러스 산 북쪽 기슭 헐머스 평야 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BC 1200년경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상업도시로 번영하였으며 직물과 귀금속 생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BC 6세기와 3세기 두 차례에 걸쳐 파괴되었다. 이곳은 여신 시빌리의 신전이 있었고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다.
사데(Sardis)교회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라는 경고를 받게 되었던 것도 이같은 밀의 종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계 3:1). 지금은 서머나 빌라델비아 철도의 정거장 부근 폐허에 세워진 한 촌에 그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BC 1200년 경에 세워진 도시로 그후 수세기가 지난 후 산기슭에 제 2의 도시가 형성되어 고대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크로수스 왕은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사데는 당시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등 사금이 유명했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기도 했다. “마이다스의 황금의 손” 전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 신전이 있었으며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곤 하였는데, 사데(Sardis) 교회가 경고를 받게 된 것은 교회가 매우 번성하고 활동적인 반면 이러한 ‘밀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았으며 외관상의 일만으로는 완성된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14년 프린스터 대학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