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간디자서전
마하트마 간디 / 동서문화사 / 2017.1.20
온 세계를 감동시킨 강력한 비폭력의 삶
진리를 실험하는 길에서 간디 영혼의 힘을 만나다
당신 인생의 스승이 여기 있다
– 위대한 영혼 간디
“오늘 일에 온 힘을 쏟고, 내일 일은 신께 맡기자.”
온 세계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마하트마 (위대한 영혼)의 이름으로 친숙한 간디. 동서양을 넘나들며 펼친 그의 활동은, 주권을 잃고 고통과 실의에 빠진 인도 국민들을 위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참으로 경건한 희생이었다.
아플 때도 머리에 흙을 얹었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도의 흙에서 태어나 인도의 땅을 밟고 살았던 간디, 그에게는 농민적 풍모와 농민적 사고가 있다. 인도의 역대 정치가 중에 간디만큼 인도를 돌아보고 대중과 접촉한 사람은 없다. 인도 국민의 간디에 대한 존경과 인기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신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고독을 지키거나, 세상 모든 것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간디는 후자를 택했다. 간디라고 하면 먼저 비폭력, 그리고 힌두교?이슬람교 융화와 불가촉천민 해방이 떠오른다. 비폭력은 간디 평생의 사상과 행동을 관철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생애 마지막 날까지 간디가 언제나 생각하고 하루 빨리 이루고자 했던 것은, 힌두교?이슬람교 융화를 통한 하나의 인도, 불가촉천민의 차별 폐지에 따른 평등한 인도의 실현이었다.
○ 목차

[컬러화보]
머리말
제1부
1 탄생‥17
2 소년시절‥19
3 유아결혼‥21
4 남편이라는 것‥24
5 고등학교에서‥26
6 비극―1‥30
7 비극―2‥33
8 도둑질과 속죄‥36
9 아버지의 사망과 나의 수치(羞恥)‥39
10 종교를 엿보다‥41
11 영국으로 떠날 준비‥45
12 카스트로부터의 추방‥49
13 마침내 영국으로‥52
14 나의 선택‥55
15 ‘신사’의 복장‥58
16 변화‥61
17 식사의 실험‥63
18 수줍음―나의 방패‥67?19 비진리라는 독‥70
20 여러 종교에 대한 이해‥74
21 ‘힘없는 자의 힘은 신 라마’‥77
22 나라얀 헴찬드라‥79
23 만국박람회‥82
24 법정변호사가 되었다―그러나 앞날은?‥84
25 나의 고뇌‥86
제2부
1 레이찬드바이‥94
2 실세계로 접어들다‥97
3 첫 소송‥100
4 첫 충격‥102
5 남아프리카를 향한 준비‥105
6 나탈에 도착하다‥108
7 몇 가지 체험‥111
8 프리토리아로 가는 도중에‥114
9 거듭되는 고난‥118
10 프리토리아에서의 첫날‥122
11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접촉‥126
12 인도인들과의 교분‥129
13 쿨리신세 체험‥131
14 재판 준비‥134
15 종교적 갈등‥137
16 어느 누가 알까, 내일의 일을?‥140
17 나탈에 머물다‥143
18 인종차별‥146
19 나탈 인도인회의‥149
20 발라순다람‥152
21 3파운드의 세금‥154
22 종교연구‥157
23 집을 장만하다‥160
24 인도로 향해‥163
25 인도에서‥166
26 충성심과 간병‥169
27 뭄바이에서의 집회‥172
28 푸나에서‥175
29 ‘바로 돌아오라’‥177
제3부
1 태풍이 오다‥181
2 태풍‥183
3 시련‥186
4 평온‥190
5 아이들의 교육‥193
6 봉사 정신‥195
7 브라마차리아―1‥198
8 브라마차리아―2‥200
9 검소한 생활‥204
10 보어전쟁‥206
11 청소운동과 기아의연금‥208
12 인도로‥210
13 인도에서‥213
14 사무원과 베아라‥215
15 연차대회에서‥217
16 커즌 경의 다르바르‥219
17 고칼레와 함께한 한 달―1‥221
18 고칼레와 함께한 한 달―2‥223
19 고칼레와 함께한 한 달―3‥226
20 카시에서‥228
21 뭄바이에 정착?‥232
22 신앙의 시련‥234
23 또 남아프리카로‥237
제4부
1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었는가?‥242
2 아시아 국(局)의 독단‥244
3 쓴잔을 삼키다‥246
4 더욱 커지는 약한 마음‥248
5 자기반성의 결과‥249
6 채식주의를 위한 희생‥252
7 흙과 물의 실험‥254
8 하나의 경고‥256
9 강자와의 어려운 싸움‥258
10 어느 정결한 추억과 속죄‥260
11 영국인들과의 친밀한 접촉―1‥262
12 영국인들과의 친밀한 접촉―2‥265
13 인디언 오피니언 ‥267
14 ‘쿨리 거주지’는 데드바도인가?‥270
15 페스트―1‥272
16 페스트―2‥274
17 인도인 거주지의 홀리‥277
18 책의 마술적 영향‥278
19 피닉스의 설립‥281
20 첫날밤‥283
21 폴락 씨가 뛰어들다‥285
22 ‘그 사람을 라마가 지키신다’‥287
23 집에서의 변화와 아이들의 교육‥290
24 줄루의 ‘반란’‥293
25 마음의 혼란‥295
26 사티아그라하의 발생‥297
27 식사에 관한 새로운 실험‥299
28 아내의 결심‥300
29 가정에서의 사티아그라하‥304
30 금욕을 향해서‥306
31 단식‥308
32 학교 교사‥310
33 문자에 의한 교육‥312
34 정신교육‥314
35 선악의 혼재‥316
36 속죄로서의 단식‥318
37 고칼레를 만나러‥320
38 대전에 참전‥321
39 의무의 난제‥323
40 사티아그라하의 작은 폭풍‥325
41 고칼레의 관용‥329
42 병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331
43 귀국‥332
44 변호사 일에 대한 추억‥334
45 악랄한 수법?‥336
46 의뢰인들이 친구가 되다‥338
47 의뢰인이 어떻게 투옥을 면했나?‥339
제5부
1 최초의 체험‥345
2 고칼레와 함께 푸나에서‥346
3 그것은 협박인가?‥348
4 샨티니케탄‥351
5 3등석의 고난‥354
6 나의 노력‥356
7 쿰부 멜라‥357
8 라크슈만의 줄다리(弔橋)‥361
9 아슈라마 설립‥364
10 시금석이 되다‥366
11 계약노동제‥368
12 쪽(藍)의 얼룩‥372
13 비하르 사람들의 순진함‥374
14 비폭력 여신과의 대면?‥377
15 불기소 처분을 받다‥380
16 활동 방법‥383
17 동료들‥385
18 마을에 들어가다‥387
19 빛나는 측면‥389
20 노동자들과의 관계‥390
21 아슈라마를 잠시 들여다보다‥393
22 단식‥395
23 케다 사티아그라하‥398
24 양파 도둑‥399?
25 케다 투쟁의 끝‥401
26 통일을 향한 열망‥403
27 모병‥405
28 죽음의 문턱에서‥410
29 로울라트 법과 나의 딜레마‥414
30 그 멋진 광경‥417
31 그 일주일―1‥419
32 그 일주일―2‥423
33 산과 같은 잘못‥426
34 나바지반 과 영 인디아 ‥428
35 펀자브에서‥430
36 칼리프 옹호운동 대신에 소 보호?‥433
37 암리차르 국민회의‥436
38 국민회의에 들어가다‥439
39 카디의 탄생‥441
40 발견하다‥443
41 어떤 대화‥445
42 비협력 운동의 흐름‥448
43 나그푸르에서‥450
44 희생의 끝‥451
간디의 생애와 사상
Ⅰ. 간디의 생애
간디의 100년‥459
유소년 시절 그 배경‥463
남아프리카 시대‥468
인도로 돌아와서‥475
농민과 함께‥481
간디와 타고르‥485
소금 행진‥490
원탁회의와 그 주변‥493
죽음에 이르는 단식‥499
정치 일선에서 은퇴‥503
간디의 견해―산아제한과 흑인 문제‥509
아슈라마의 안과 밖‥513
장개석에게 보낸 편지‥517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521
극적인 생애‥525
Ⅱ.간디의 사상
간디주의에 대하여‥532
간디가 보는 진리와 아름다움―한 학생의 네 가지 의문‥536
종교적 융화의 문제‥542
간디주의와 사회주의‥547
간디와 농민‥553
카다르 윤리‥557
불가촉천민의 문제‥562
간디에게 있어서 다수와 소수‥567
간디의 삶―부정(否定)의 길‥572
죽음‥576
비판을 위한 1장―간디 탄생 백년에‥579
간디 연보…589
○ 저자소개 : 마하트마 간디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Mahatma Gandhi /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 ~ 1948)

마하트마 간디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Mahatma Gandhi /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는 인도의 정신적 · 정치적 지도자로, 인도 민족 운동의 지도자이자 사상가로 비폭력운동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18세 때 런던에서 법률을 배우고, 1891년 귀국하여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893년의 남아프리카 여행에서 백인에게 박해받는 인도인들을 보고 1915년 귀국할 때까지 인도인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아힘사 (불살생), 무소유, 무집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바탕 위에 사티아그라하 (진리의 주장) 운동, 아슈람 공동체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영국에 대한 비협력 운동의 일환으로 납세 거부 · 취업 거부 · 상품 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도했다.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였으며 그가 보인 평화정신은 세계인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는 1947년 7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융화를 위해 활동하던 중 1948년 1월 30일, 반이슬람 극우파 청년이 쏜 흉탄에 쓰러지게 되었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R.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 (Mahatma, 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한 시를 받은 뒤로 ‘마하트마 간디’라 불려온 그는 인도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혼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정신이 기려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도의 자치 (自治)’가 있다.
– 역자 : 박석일
전남대 사학과를 거쳐 인도 델리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다. 한국외국어대학 힌디어과장을 지내다.
지은책 『인도사개설』, 『인도사정』, 옮긴책 『갈리아전기 / 내전기』, 『네루자서전』, 인디라 간디『인도의 진로』, 크리팔라니 『타고르』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수많은 진리실험 이야기 『간디자서전』
“나는 자서전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수많은 진리실험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것이다.” 간디의 이 말처럼, 그의 삶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실험하는 길이었다.
『간디자서전』에서는 성인이 아닌, 끊임없는 자기반성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간디를 만날 수 있다. 금욕과 자기절제, 진리추구의 이상 실현, 그리고 온 인도의 염원인 독립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인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간디는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겁 많은 아이였던 시절, 영국과 남아프리카에서 겪은 인종차별, 주위사람이나 가족, 특히 아내와의 갈등,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좌절과 고뇌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를 더욱 경건한 존재로 돋보이게 한다. 그 밑바탕은 이처럼 평범하고 미숙하기에 그의 희생적인 삶이 더욱 빛나는 것이리라.
– 인도의 미래를 위해 영국에 봉사하다. 그러나…
간디는 보어전쟁에서, 인도인 야전간호부대를 이끌고 영국군에 종군했다. 그 뒤 줄루족의 반란 때도 간호부대를 이끌고 참가했다. 그때 그는 준위 계급이었으며, 뒷날 비폭력주의 때와는 전혀 다른 군복 입은 간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영협력’에 대해서는 간디에게도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남을 돌보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인도인의 기본적인 인권옹호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영국숭배자의 ‘굴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디 자신은 진정으로 영국인과 대등한 입장에 설 기회를 거기서 찾아내려 했음을 『간디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같은 이유로 간디는 영국에 협력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은 이런 인도의 협력에 보답은커녕, 인도의 언론, 사상, 집회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하는 로울라트법을 시행했다. 간디의 전 인도적인 항영투쟁은 이 로울라트법 반대로 시작되었다.
– 순결한 생활, 브라마차리아
줄루족 반란 때 간호부대를 이끌고 영국군에 종군할 때였다. 한낮 40도가 넘는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60킬로미터를 행군하는 고된 나날 속에서, 간디는 깊은 사색에 빠진다.
‘이제까지 자기억제가 자기실현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인류에 봉사하려면 자기억제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만약 가정생활의 기쁨에 도취되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만 전념하면, 도저히 인류에 봉사할 수 없다. 우리―적어도 내게는 육체와 정신의 생활을 동시에 꾸려나갈 능력이 없다. 브라마차리아를 실행하지 않고서는, 가정과 국가에 동시에 봉사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자기억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브라마차리아는 육욕의 억제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끝나서도 안 된다. …’
인생은 온갖 예술을 모두 모은 것보다 위대하고, 또한 언제나 그래야만 한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란, 가장 완전한 인생을 영위하는 자다. 이 세상 온갖 아름다운 것들도, 고귀한 인생이라는 확실한 기반과 틀을 갖출 때에만 가치가 있다.
– 진리관철 싸움, 사티아그라하
자신을 억제하고 순결한 생활을 지키지 않고는 타인에게 봉사할 수 없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으로 옮기도록 지도할 수도 없다. 그것은 간디에게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다. 신념은 곧 힘이었다.
간디에게 몸을 순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정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으로만 천하의 진리를 붙잡고, 현대 세계의 악을 멸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순결한 생활 다음에 오는 것은 진리 관철의 싸움이다. 즉, 진리관철 투쟁을 위해 자신을 순화하는 정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브라마차리아로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서, 인도인을 단결시키고 조직하여 투쟁으로 이끄는 것이 간디의 사티아그라하였다. 사티아는 진리, 그라하는 굳게 고수한다는 뜻이므로 이는 비폭력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간디는 톨스토이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수동적 저항’을 떠올리고, 자신의 운동에 그런 의미의 구자라트어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간디가 말하는 비폭력은 단순히 폭력에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부정 (비진리)에 대한 진리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간디는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에서, 진리 외에 달리 신은 없다고 확신한다.”
진리는 힘이다. 그것도 순결한 생활이라는 샘에서 펑펑 솟아나는 하나의 ‘영혼의 힘’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폭력은 약자의 무기가 아니라 강자의 무기이며, 두려움 없이 진리를 똑똑히 직시하는 용기이다. 현명한 인간은 악에 악으로 보복하지 않고, 항상 선으로써 악을 파멸로 이끈다.
– 진리에 대한 충성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독립했다. 그러나 힌두교와 이슬람교 갈등은 해결되지 못한 채 파키스탄이 따로 분리되어, 간디가 바라던 ‘하나의 인도’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간디는 독립 뒤에는 힌두교?이슬람교 화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극렬이슬람교도인 나투람 고드세의 총에 쓰러지고 만다.
간디의 주위에는 모든 세대의 희생적인 삶과 죽음이 겹겹이 가득 차 있다. 가정적인 간디였지만,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간디 자신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 많은 희생들 중 하나가 되었다.
비폭력주의자 간디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비폭력주의의 패배를 보여주는 것일까.
분명 비폭력주의는 많은 모순과 시대에 뒤떨어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간디의 죽음은 그 신조를 넘어 인도의 민중에게, 그리고 온 세계 사람들에게 강력히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다.
간디는 비폭력과 단식의 서사시로 스스로 지은 생애의 마지막을, 더욱 극적인 죽음으로 장식했다. 이 극적인 마지막에 비추어 그의 극적인 생을 더듬어보라. 오직 ‘진리에 대한 충성’이었던 이 사람의 79년 생애가 무언 속에서 우리에게 숱한 교훈을 호소하리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