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계몽의 변증법 : 철학적 단상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W. 아도르노 / 문학과지성사 / 2001.7.31
-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두 지성이 함께 쓴 우리 시대의 고전
나치즘을 통해 그 타락한 몰골을 드러낸 서구 중심적인 이성과 문명을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아도르노 연구자인 역자가 문예출판사에서 이 책을 공동 번역, 출간한 바 있으나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 저작권 계약을 하여 기왕에 작업을 했던 역자가 기존의 번역본을 수정, 보완하여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은 집단 수용소의 대량 학살과 전쟁을 통한 살육이 한창이던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 두 망명 지식인이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를 밝히기 위해 총체적이고 역사적인 해석을 시도한 저서로서, 적어도 사회적 차원에서는 – 심미적 차원이 아닌 – 그러한 야만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기술 진보가 절정에 달한 시대에 가공할 야만 상태를 빚어낸 현대는 어떤 시대이며 인류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해명하고 있는 이 책에 대해 하버마스는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 책에서 현대의 학문과 사상이 기술적, 실증주의적 정신의 지배를 받아 역사의 의미를 망각하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에 저항하고 있다.
○ 목차
개정판 서문
서문
계몽의 개념
부연 설명 1 :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
부연 설명 2 : 줄리엣 또는 계몽과 도덕
문화산업 :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반유대주의적 요소들 : 계몽의 한계
스케치와 구상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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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W. 아도르노

- 저자 :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유태계 독일 철학자로, 데카르트와 칸트로 대표되는 부르조아 철학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사상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자이며, 학문적으로는 헤겔 철학의 소양과 정신분석학의 지식을 결합시킨, 현대의 특색 있는 사회철학자이다.
1930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조사 연구소 창설에 참가해 1958년까지 사회조사연구소를 이끌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탄생시켰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16세까지 학교를 다녔고 이후에는 부모의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뮌헨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1922년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목적론적 판단력의 이율배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25년 한스 코넬리우스의 지도 아래 이마누엘 칸트에 관한 논문, 「이론 철학과 실천 철학의 중개자로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관하여」를 써 이듬해 대학강사에 임용되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1933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돌아가 연구소장으로 복귀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미국 체류 중 아도르노와 함께 한 인종적 편견의 연구는 사회심리학 사상 하나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연구의 성과는 5권의『편견 연구』에 나타나 있다.
1956년 동료 교수들의 반 유태인 발언에 항의하여 교수직을 은퇴했지만 1973년 삶을 마감할 때까지 왕성한 학문 활동을 전개했다.
저서로는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 1947,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공저)』, 『이성의 상실』(Eclipse of Reason, 1947), 『도구적 이성 비판』(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 1967, 『이성의 상실』의 독일어 판), 『철학적 단상들』 등이 있다.
논문으로 「권위와 가족」, 「전통 이론과 비판 이론」 등을 남긴 바 있다.

– 저자 : 테오도르 W. 아도르노 (Theodor Wiesengrund Adorno, 테오도어 W. 아도르노, Th.W.아도르노)
소위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에 속하는 대표적 비판이론가로서, 전후 독일 사상계를 주도했던 주요 인물로 손꼽힌다.
철학자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판가로도 유명하며, 또한 작곡가 및 예술철학자로서의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철학자로서 아도르노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의 영향을 특히 크게 받았으나, 어느 특정한 철학적 전통으로 편입될 수 없는 고유성과 독자성을 갖고 있다.
또 그는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블로흐, 베냐민 등 당대의 반나치, 반전체주의 사상가들과 밀접한 교류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주요 저작으로는 『계몽의 변증법』(공저), 『미니마 모랄리아』, 『미학 이론』 등이 있으며, 특히 『부정변증법』에 그의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이며 비판적인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 역자 : 김유동
서울대 독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베를린 자유대학과 미국의 듀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주요 논문으로 「인문학의 위기와 세계화의 재앙」,「포스트모더니즘, 아도르노, 제임슨」,「벤야민의 새로운 천사」,「아도르노와 하버마스: 이론의 심미화 대 실천의 구제」,「니체와 아도르노: 총체적 니체상 정립을 위한 시론」,「루카치냐 아도르노냐」 등이 있다.
저서로는 『아도르노 사상』이 있다.
현재 경상대학교 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독자의 평
고전의 가치는 시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과 항구성에 있다.
그 여일함에 사람들은 매혹된다.
게다가 함부로 곁을 내주지 않는 고고함도 고전의 매력이다.
그러나 자리는 높을지언정 대다수의 사람이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다.
다 알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책.
고전의 초라한 현주소다.
그 이중적 자리가 주는 자조는 우리가 넘어야 할 고지이다.
고지를 넘으면 그토록 바랐던 목표물도 나오니 말이다.
책에도 함량이 있다면 ‘계몽의 변증법’은 함량 초과로 잴 수 있는 계량기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20세기의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렸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2세대인 하버마스는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책중의 하나’라고 논평했다.
정확한 평가지만 그래서 더욱 절망적인 책이다.
아무런 출구도 알려주지 않고 어두운 전망만이 가득하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계몽의 변증법’은 질주하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절망적 선고를 통해 계몽의 자기 파괴를 선언하는 책이다
진보 앞에서조차 비판적 사유를 촉구하는 강한 도전이야말로 이 책이 갖고 있는 엄청난 힘이다.
‘계몽의 변증법’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두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공저로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되었다. 책에 대한 두 학자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20년이 지나 나온 개정판 서문에서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수정에 인색했다며 인쇄상의 오류나 교정 정도로 만족했다 밝힌다.
그들의 도도한 책임감은 ‘이 책이 일차적 자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거나 ‘자신들이 하나하나의 문자에 대해 어느 정도로 공동 책임을 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조그만치의 겸손도 없이 에두르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학문과 지식에 대한 자세는 이 책이 ’20세기의 고전’이라 불리는 직접적 근거이기도 하다.
‘계몽의 변증법’은 왜 인류가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지 못하고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로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총제적이며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나치 파시즘의 광기와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벌어진 이해 불가한 일들이 결국은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참담한 견해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접근 금지의 불온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상구도 없이 닫힌 문 속에서 생존해야할 사람들에겐 필독서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과 무한 경쟁의 공포속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 병치되지 않는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계몽의 변증법’을 일반인인 우리가 읽기에는 독해상의 어려움이 있다.
이는 난해한 문체와 저자의 깊은 사유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란 무척 힘겨울 것으로 사료된다.
이 책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이 책에 대한 안내서가 나왔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도서출판 살림에서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로 이 책에 대한 안내서를 출간했다.
서문에서 가이드 노명우 교수는 자신이 ‘계몽의 변증법’ 의 저자들과 대화를 시도한 한 사람의 독자라며 이 책은 텍스트에 대한 해석서이며 강독기록이라 규명했다.
이 책을 읽고 도전한다면 한결 편하게 저자들의 사유를 즐기며 되새김을 통한 탐닉의 나른한 맛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다이제스트의 유용성을 따진다면 책 제목을 유의미하게 보심이 큰 팁이 된다하겠다.
그런 제목을 붙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단 전제는 있다.
‘계몽의 변증법’ 전부를 취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다 버리고 하나를 얻는다 해도 가치는 충분하다.
마치 갈비 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듯 한다면 육질의 깊은 맛도 느낄 수 있다.
고기의 맛은 뼈에 붙은 살의 씹히는 그 맛에 있으니까.
그리하여 꼭꼭 씹어먹을 수만 있다면 사유가 주는 선물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곤 도전해 보시라.
여정이 길어질 걸 감안하고 정독한다면 이해가 아닌 해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서구 문명에 있어 계몽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계몽은 근대의 핵심원리이며 본질적 특성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구 휴머니즘이 보는 중세는 야만성의 시대였고 벗어나야 할 신화의 시대였다.
계몽은 신화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탈신화화의 도구였고,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움으로 인해
반봉건주의라는 혁명적 성격을 지닌 이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계몽이 20세기에 이르러 현대적 야만이 되어버렸다.
그 당혹감에 대한 의문 제기가 이 책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계몽의 변증법’은 독일 근대사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야만의 징후에 대한 유대계 지식인이었던 두 학자의 직접적 피해로부터 출현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나치즘의 정점에서 현대적 야만의 직접적 희생자였고 결국 그들은 미국으로 망명하는 디아스포라가 된다.
따라서 이 책은 그들이 학자적 명예를 걸고 작업한 야만의 시대에 대한 고뇌의 물음이여 처절한 절규다.
이 책이 왜 그렇게 암울하다는 평을 받는지 그 역사적 배경이 느껴지는가.
우리가 발을 딛는 이 세상은 역사성과 현재성이 반복되고 때로는 일치되는 곳이다.
나치즘의 광기를 우리는 떠올리기도 주저하며 홀로코스트를 악몽이라 기억한다.
그런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오히려 우리가 사는 실증주의적 시대를 더 두려워 한 듯 하다.
그들이 말하는 총체적 세계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 더 해당되는 듯 하니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당시보다 지금에 더 필요한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