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고대에 대한 열정 : 슐리만 자서전
하인리히 슐리만 / 일빛 / 1997.10.11
– 트로이의 신화를 역사로 바꾼 고고학자의 이야기
“나는 진정으로 돈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내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였다.” 트로이에 대한 열정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15개국 언어를 익히고, 마침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신화를 역사로 바꾼 슐리만의 이야기다.
슐리만은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여러 힘겨운 노동을 전전했다. 그러나 슐리만은 이러한 자신의 현실에 굴하지 않고 트로이 발굴을 위한 삶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많은 고고학자들에게 발굴에 대한 많은 영감과 교훈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19세기 말 세계 각지의 고고학자들은 고대 도시의 문화유적 발굴에 나서 많은 문화재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발굴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발굴은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유적일 것이다. 슐리만은 트로이 유적에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보물을 발견했다. 본 책에서 트로이, 미케네, 티린스를 향해 떠났던 그의 발굴이라는 기나긴 여정은 마침내 그 꿈에 다다랐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목차
1. 어린시절 부터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
2. 이타카, 펠로폰네소스, 트로이로의 첫 답사여행
3. 불타 버린 도시 트로이 제1차 발굴
4. 황금의 도시 미케네
5. 불타 버린 도시 트로이 제2차, 제3차 발굴
6. 티린스 발굴과 미케네 문명
7. 만년의 연구 활동
○ 책 속으로
슐리만의 관 위쪽에는 그를 감동시켜 학문적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호메로스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또 관은 그의 남다른 일생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 손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그들은 프리드리히 황후, 그리스 왕실, 베를린 시, 그리고 아테네의 학술 단체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친구와 친지들이었다. 또 그리스의 대신과 친지들은 물론이고 뜻밖에도 게오르그 국왕과 황태자 콘스탄틴까지도 감사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몸소 장례식에 참석했다. 예컨대 슐리만의 일생은 그리스 민족의 영예를 빛내기 위해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사실 그들의 가장 오랜 과거가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그들 앞에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이 고인의 거룩한 업적에 대해서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이다. — p.221

○ 저자소개 : 하인리히 슐리만 (Heinrich Schliemann, 1822 ~ 1890)
하인리히 슐리만 (Heinrich Schliemann, 1822년 1월 6일 ~ 1890년 12월 26일)은 독일 출신의 사업가 및 고고학자로 트로이아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 노이부코프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만 마치고 상점의 점원과 사환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탁월한 어학 능력과 노력으로 1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상인으로 대성공을 거둔 뒤 트로이 유적 발굴에 평생을 바쳤다. 발굴의 성공으로 많은 명성을 얻었으며 만년에는 아테네에 정착해 꾸준히 연구를 계속했다. 나폴리 여행 도중 갑자기 숨진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 묻혔다.
슐리만이 정통 고고학자 출신이 아니어서 학계에서는 그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트로이에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유적층을 파괴하기도 했고, 지나치게 자기 상상에 의존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야외 고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가 발굴한 유적지는 기원전의 지중해 일대의 역사를 밝히는,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언론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탁월했으며, 이를 통해 고고학을 대중적인 관심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저서로는 『트로이와 유물』(1875), 『미케네』 (1978), 『일리오스』(1881), 『티린스』(1885)가 있다.
– 역자 : 김병모

○ 독자의 평 1
어렸을 때 읽은 ‘트로이’와 관련된 <일리아드 : Iliad>를 읽고 꿈을 키워오다가 미케네와 트로이 문명을 발굴한 슐리만의 자서전.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을 붙들고 이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슐리만의 모습은 위인전으로 접했던 어린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록, 유럽 어족 (語族)이 동일 계통이라 상대적으로 익히기 쉬웠던 이유도 있겠지만, 수십 개에 달하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어린 시절 느꼈던 감동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가 호메로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활약이나 트로이 전쟁 때의 사건들을 감동적으로 들려줄 때 나는 언제나 트로이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트로이가 완전히 파괴되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몹시 서글픈 생각에 사로잡혔다.(p20) <고대에 대한 열정> 中
이 곳에서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의 최하층 사람들이었다. 나는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정신 없이 일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부할 여유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p30)… 나는 호메로스의 시구 가운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율적인 그리스 어 리듬에 더없이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나의 불행한 처지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p31) <고대에 대한 열정> 中
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열의를 불태우며 영어 학습에 몰두했다. 그리고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모든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요령을 터득했다. 그 방법을 소개하면 일단 어학 공부는 해석에만 매달리지 말고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1시간씩 꾸준히 공부하고 언제나 흥미로운 대상에 대해 작문을 해 본다. 그리고 그것을 교사의 지도를 받아 내용을 암기한 뒤 다음 수업 시간에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외우는 것이다.(p37) <고대에 대한 열정> 中
나는 언제나 지나친 흥분으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었기 때문에 밤중에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이용해서 저녁에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원래 낮 시간보다 밤에 훨씬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반복 연습에는 효과적이었다. 나는 이 방법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이런 방법으로 반년만에 영어의 기초지식을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프랑스 어도 약 반 년만에 끝낼 수 있었다. …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나의 기억력은 1년만에 눈에 띄게 향상되어 네델란드 어, 스페인 어, 이탈리아 어, 포르투갈 어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외국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쓰는 데 6주 이상 걸리지 않았다.(p38) <고대에 대한 열정> 中
나는 이 저술을 끝내면서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발굴을 통한 역사 연구가 앞으로 더 발달해 하루라도 빨리 위대한 그리스 민족의 어둠에 싸인 선사 시대가 남김 없이 밝은 태양 아래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발굴을 통한 연구로 숭고한 호메로스의 시가 결코 허구가 아니라 실제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이 명백해지기를 바란다. (p157) <고대에 대한 열정> 中

○ 독자의 평 2
까마득한 신화같은 트로이전쟁을 실제로 있었다고 믿었던 꿈꾸는 사람 슐리만 그 슐리만이 1890년대에 쓴 일리아스-트로이 발굴에 관련된 책-에 있던 자기 평전적 부분을 간추려 그의 부인이 펴낸 책이다. 초판이 나온지 100년이 넘은 책이다. 그러나 책내용은 결코 현재의 우리 삶과 멀지 않다. 그만큼 그의 생이 진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배울 기회를 잃었다. 그렇지만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일이 작은 월급차이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한다. 힘든 회사생활속에서도 틈만 나면 어학을 독학으로 해낸다. 주로 책을 외우고 단어를 외우는 형태로 독일어, 프랑스,영어,러시아어를 정복하고 이렇게 준비된 사람 ‘슐리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러시아어를 무기로 하여 무역업에 뛰어들어 어느정도 성공을 이룬다. 그러나 진정한 꿈이었던 트로이를 위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 익힌후 40대에 한창 커가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트로이의 발굴에 뛰어든다. 우리가 항상 후회하듯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라는 식의 핑계가 슐리만의 생에서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변명에 불과한지를 보여준다. 발굴과정의 어려움이나 발굴성과등은 익히 알려진 것이고 초기 발굴이 파괴적이고 비학문적인 방법을 채택했다는 기존 학계의 비난도 이곳에서 문제삼을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러한 비난을 수용하여 2,3차로 가면서 많은 전문가와 함께 작업을 했고 미케네, 트로이등 구준한 발굴과 성과의 발표로 그는 그 나름의 꿈을 이룬다. “적극성과 긍정적 사고, 꿈”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의 생은 오늘날 우리에게, 한창 커가는 우리 청소년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에 의해 고무되었던가? 게으름의, 자포자기의 반대편에서서 살다간 사람의 일생을 그저 아는 것으로 읽는 독서가 아니라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으로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참 읽을만한 책이었다.

○ 독자의 평 3
– Classic 79: 『고대에 대한 열정』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다. 중고서적에서 구했다. 행운이다. 하인리히 슐리만, 그가 없었다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영원히 허구적 전설과 신화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 같다. 한 장의 삽화가 어린 소년에게 큰 감동과 상상력을 안겨주었고, 일생의 도전을 부추기는 결정적 동인이 됐다.
하인리히 슐리만이 여덟 살이 될 무렵,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게오르크 풀트비히 예러스의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를 사준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그 책에서, 아이네아스가 불타는 트로이 도시 속을 등에 아버지 앙키세스를 들쳐업은 채 어린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손을 잡고 탈출하는 급박한 모습의 삽화에 강력한 인상을 받는다.
트로이 전쟁과 얽힌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이고, 튼튼한 성벽을 갖춘 트로이가 실존했던 도시라고 확신했고, 언젠가 반드시 그 트로이를 발굴해 내리라 결심했다. 그에게 이 삽화는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라, 역사적 현장에 대한 생생한 사생화 (寫生畵) 로 여긴 것이다. 이 한 장의 삽화가 한 인간의 운명을 바꿨고, 그리스 고대 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되살려냈다.
이 책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자서전이다. 그가 직접 쓴 저전과 사후 그의 여러 저서와 행적을 토대로 그의 아내 및 지인들의 정리가 보태져 한 권의 <자서전>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1822년 1월 6일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노이부코프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고대 역사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슐리만의 역사 유적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을 이해해 주고 그의 맹랑한 꿈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슐리만이 라틴어를 배울 수 있게 해준다. 슐리만은 10살이 되던 해에 트로이 전쟁의 주요 사건과 오디세우스나 아가멤논의 모험 이야기를 라틴어로 적어서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그리스 고대 역사에 푹 빠져 지냈다. 또 어린 시절, 이웃마을의 동년배 소녀 ‘민나’와 ‘소나기’같은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며 전설의 도시 트로이를 함께 발굴하자는 언약을 하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슐리만의 꿈은 그렇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갈 수 없었고, 실업학교에 진학하여 14살에 졸업한 이후 소매점 점원, 선실 급사 등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험한 일을 하는 직장들을 전전해야 했다. 게다가 가슴통증 병으로 중노동을 할 수도 없게 되어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는 고난의 소년기, 청년기를 보내면서도 독학으로 고대 그리스 어, 라틴 어, 네덜란드 어, 이탈리아 어, 포르투갈 어 등 수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어학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특히 호메로스의 서사시의 선율적인 그리스 어 리듬에 매료되었다. 그는 훗날, 아가멤논의 왕궁을 발굴할 때, 그 주변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오뒷세우스가 귀환하여 그의 아버지를 만나는 감격적인 대목을 낭송했다. 마을 사람이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발굴 작업에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슐리만은 20세에 암스테르담의 슈뢰더 상사의 경리로 일하기 시작, 성실한 근무로 지점장이 되고, 25세 독립하여 자신의 상사를 개업한다.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물감 도매업에 뛰어들어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크게 성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취득한다.
이미 큰 돈을 번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학문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 때 나이가 42세였다. 이후 만학도인 그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언어, 문학, 철학을 공부했고, 47세의 늦은 나이에 고고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스 여성과 재혼하며 아예 아테네로 이주하고 트로이 발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슐리만은 트로이(Troy)를 6차례나 발굴했고, 아가멤논의 성채가 있었던 미케네(Mycenae), 오뒷세우스의 왕궁이 있던 이타카(Ithaca) 섬, 보이오티아 지방의 오르코메노스(Orchomenos), 미케네와 함께 미케네 문명의 절정을 보여준 티린스(Tiryns),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은 트로이 발굴과 미케네 발굴이었다.
1871년부터 1879년까지 계속됐다. 그는 트로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투르크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와 어려운 작업 환경에도 탁월한 통솔력과 인품으로 수많은 인부들을 원만하게 이끌며 발굴에 성공했다. 그는 트로이 발굴에서 황금 왕관, 황금 술잔, 은 항아리, 필찌와 황금판 목걸이 등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불린 수많은 보물을 발굴하고 트로이 고대 성곽의 윤곽을 확인해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대부분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전쟁의 불씨였던 헬레네와 귀족들과 함께 영웅들의 전투 장면을 내려다보던 트로이의 성벽과 성문 스카이아 문을 발견했을 때, 슐리만은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는 감격과 흥분에 휩싸였다.
“이 신성하고 숭고한 기념물은 그리스 민족의 영웅적인 영예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오랫동안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왕성한 지식욕을 지닌 미래 젊은이들의 순례지가 될 것이다. 학문 전반, 특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리스 어와 그리스 문학을 향한 끝없는 감격의 원천이 되기를!”
미케네 성채의 발굴에서도 경탄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아가멤논의 성채의 정문, ‘사자의 문’ 바로 뒤의 발굴에서, 그 유명한 ‘아가멤논의 황금가면’을 비롯하여 황금 홀, 황금 상자 등 왕족들의 호화로운 장식을 확인해 주는 유물들을 대량으로 발굴했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고대 그리스 유적 발굴은 그리스 고대 문명에 대한 애정과 호메로스 서사시에 대한 확고한 믿음, 강인한 정신력이 결합되어 일구어낸 개가였다.
물론, 발굴이 본격화 되면서 슐리만의 발굴에 직접 동참하고, 발굴 결과의 연구 발표를 통해 고고학계와 소통하며 슐리만의 고고학적 부족함을 보충해 준 두 학자 프랑스의 에밀 뷔르누프와 독일의 루돌프 피르호의 헌신적 원조도 큰 역할을 했다.
책상물림의 고고학자들이 문헌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고대 서사시에 나타난 영웅들의 활동상과 지리학적 특성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직접 연결하고 이를 발굴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그가 정통으로 고고학을 전공했더라면 오히려 서사시에 의존한 그런 무모한 도전은 영영 벌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전기를 읽고나면, 일생의 모든 것을 한 가지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집념과 열정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주 호메로스의 시구를 아내와 번갈아 암송할 정도로 호메로스의 정서를 안고 살았다. 딸과 아들의 이름을 안드로마케(트로이와 헥토르의 아내의 이름)와 아가멤논(미케네의 왕 이름)으로 지었다.
아테네 자신의 저택 입구를 트로이의 상징과도 같은 올빼미와 만 자(卍字) 표시로 장식하고, 벽체에는 호메로스의 시구를 금빛 문자로 채웠다. 두 하인을 벨레포폰(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를 죽인 코린트의 왕자의 이름)과 텔라몬(펠레우스 형제의 이름)으로 불렀고, 방문객들과는 호메로스의 풍부한 시구를 인용하여 담화를 나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무언가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몰두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극심한 가난과 고학의 과정을 이겨내며 사업에 성공하고, 그리스 고대 문명과 서사시에 심취했던 낭만적 꿈을 늘 도전적 과제로 품고 자신을 독려하며 성취해 나갔던 그의 강인한 정신에 비추어 보면, 그가 이룬 고고학적 연구와 로스토크 대학의 철학 박사 학위, 트로이와 미케네 등에서 발굴한 빛나는 업적은 오히려 외형적 허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슐리만의 인생 자체가 그리스 고대 문명을 향한 지난한 ‘오뒷세이아’였다.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는 현대 터키와 그리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역사적 실제로 확인시켜 준 슐리만의 은덕에 진 빚이 작지 않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일리아스>, <오뒷세세이아> 등 호메로스의 작품에 묘사된 수많은 신과 영웅, 인간들의 희로애락과 풍물과 습속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들이었다는 점을 재확인한 일이 아닐까?
아테네를 방문하면, 화폐박물관으로 바뀌었다는 슐리만의 저택과 그가 안장된 아테네 제1국립묘지를 찾아 그리스의 문물을 사랑했던 그의 열정과 체취를 느껴보고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