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 책세상 / 2018.3.15
– 일본 학계와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베스트셀러, 2017년 도쿄대·교토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어떻게 해야 남들과 차별되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 공부의 원리를 알고 즐기는 사람이 앞서간다! 일본 사상계의 신성 (新星) 지바 마사야가 이 시대 독학자들에게 헌정한 최고의 공부론!
일본의 사상계를 주도하는 젊은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프랑스 현대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독자의 인생을 바꿀 만한 ‘공부의 철학’을 제시한다. 공부란 지식 쌓기가 아니라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며 살아온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환경 속에서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러니적 발상, 하나의 주제에서 폭넓게 가지를 뻗어 나가는 유머적 발상을 중심으로 진짜 공부, 깊은 공부를 누구나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7년 출간 당시 일본의 학계와 언론, 출판계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해 도쿄대 및 교토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꼽힌다.
○ 목차

머리말
1장 공부와 언어 : : 언어 편중적 인간으로 변신하기
공부란 자기 파괴다
자유로워지기, 가능성의 여지를 열기
목적, 환경의 코드, 그리고 동조
우리는 환경의 동조에 이미 점령당했다
나는 타자에 의해 구축된다
언어의 타자성, 언어적 가상현실
동조와 동조 사이에서 언어의 세계가 번쩍인다
언어의 불투명성
도구적 언어와 완구적 언어
나 자신을 언어적으로 해체하기
깊게 공부하기란 곧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
2장 공부와 사고 : : 아이러니, 유머, 난센스
겉도는 이야기에 자유가 깃든다
사고의 기술,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
코드의 불확정성
자기 츳코미와 자기 보케
코드의 전복
난센스라는 제3의 극
대화에 깊이를 더하는 아이러니
아이러니의 과잉, 초코드화에 의한 탈코드화
새로운 시각을 부르는 유머
유머의 과잉, 코드 변환을 통한 탈코드화
또 하나의 유머, 불필요하게 세세한 이야기
언어의 비의미를 향락하기
아이러니에서 유머로
향락의 동조가 궁극의 동조다
이름 짓기의 원장면, 언어와 새롭게 다시 만나기
3장 공부와 욕망 : : 결단이 아닌 중단으로
현상 파악에서 문제화로, 나아가 키워드 도출로
키워드를 전문 분야에 끼워 맞추기
발상법으로서의 아이러니와 유머, 추구형과 연상형
공부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생각해서 비교하기
아이러니에서 결단주의로
비교를 중단하기
집착의 변화
욕망 연표 만들기
지바 마사야의 메인 욕망 연표
서브 욕망 연표
메인 연표와 서브 연표 연결하기
다가올 바보를 향하여
4장 공부의 기술 : :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힘
전문 분야에 입문하기
완벽한 독서란 불가능하다
입문서 읽기
교사는 공부를 유한화하는 존재
전문서와 일반서를 구별하는 기준
학문의 세계는 신뢰성의 세계
독서의 기술 1 : 텍스트 내재적으로 읽기
독서의 기술 2 : 이항대립 관계 파악하기
공부의 두 바퀴 : 언어의 아마추어 모드와 프로 모드
노트의 기술 : 공부의 타임라인
글쓰기의 기술 : 횡적으로 발상하기
아웃라이너와 유한성
결론
이 책의 학문적 배경
참고 문헌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지바 마사야 (Masaya Chiba, ちば まさや, 千葉 雅也)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로 21세기 일본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철학과 표상문화론을 가르치고 있다. 도쿄대학교 교양학부를 졸업하고, 파리 제10대학과 고등사범학교를 거쳐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전공에서 표상문화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카트린 말라부, 캉탱 메이야수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을 바탕으로 집필한 《너무 움직이지 마라 : 動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공부’라는 실용적 주제를 들뢰즈와 라캉,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철학 개념을 통해 메타적으로 탐색한 《공부의 철학》으로 일본 언론과 출판계, 대학생들에게 크나큰 찬사를 받았다. 예술과 팝문화를 철학적으로 고찰하면서 미술, 문학, 패션에 관한 비평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다른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트위터 철학?》이 있고, 역서로 캉탱 메이야수의 《유한성 이후 : 有限性の後で》(공역) 등이 있다.
– 역자 : 박제이
출판 기획·번역자.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일전공 번역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4월 일곱 살이 되었지만 ‘내 눈에는 영원한 아깽이’인 고양이 ‘구름이’와 살고 있다. 옮긴 책으로 소설 『너의 이름은』을 비롯하여 『책이나 읽을걸』, 『싫지만 싫지만은 않은』, 『고양이를 찍다』, 『공부의 철학』, 『목소리와 몸의 교양』, 이와나미 인문서 시리즈 『다윈의 생애』, 『악이란 무엇인가』, 『포스트 자본주의』 등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온갖 공부에 공통되는 ‘일반 공부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언어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 p.56
우리가 깊게 공부하는 이유는 환경의 동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근본적으로 깊은 공부, 즉 래디컬 러닝이란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행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언어를 그 자체로서 조작하려는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언어의 ‘도구적 사용’에서 ‘완구적 사용’으로 향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려면 할 수 있지’ 하는 감각으로.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언어를 조작하며 환경의 요구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니게 될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 p.65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공부다. 문제에서 시선을 돌린다면 공부란 불가능하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란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때로 그것은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문제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뭔가 석연치 않고 불쾌한 이 상태를 일부러 즐겨야 한다. 바로 이것이 향락하려는 태도다. — p.135
이 책은 언어론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향락론에 도달했다. 약삭빠르게 가능성을 계속 비교만 하는 상태에서 행위로 넘어가도록 우리의 등을 떠미는 것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집착이다. 그것은 먼 옛날 자신이, 어떤 것과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만나고 난 후 환경 안에서 형성한 바보스러움이다. 향락적 집착이란 자신의 바보스러움이다. 바보란 영어로는 ‘idiot’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어의 ‘idios’에서 왔다. ‘개인의’ ‘특이한’을 뜻한다. 향락적 집착(=바보스러움)은 아마도 변화 가능하다. 공부의 시야를 넓혀 자신의 향락을 분석하면서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한 바보스러움이 다른 바보스러움으로 변화한다. 래디컬 러닝은 자신의 뿌리에 있는 바보스러움을 변화시킨다. 바보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다른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다가올 바보’다. — p.186~187
공부를 진행할 때만큼은 학문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더욱 현대적이고 현장적인 지식을 둔다는 이중 구조를 취해야 한다. 좋든 싫든 학자는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 끝없이 논의한다. 그러므로 학문 세계에는 속도가 생명인 직업 현장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복잡하고 섬세한 지식이 많다. 학문 세계 그 자체는 느리게 흘러간다. 이해관계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실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직 본 적 없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데 걸맞은 곳이기도 하다. — p.212~213
어디까지가 타인이 생각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자신이 생각한 것인지를 확실히 구별하여 의식해야 한다. 이것은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키울 때 매우 중요하다. 어떤 개념이나 사고방식이 ‘누구의 어떤 문헌에서 나온’ 것인지를 의식하고 곧바로 말할 수 있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독서 노트를 써야 한다. 어떤 문헌에 문자 그대로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 몇 쪽인지를 명확히 적은 후 그것과 구별하여 자신이 이해한 바를 메모해둔다.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이처럼 ‘출전(문헌 제목과 쪽수, 나아가 출판 연도 등)’을 명기한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출전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 p.222~223
공부란 기존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기존의 생활 속에 마련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또 다른 ‘타임라인’이 생긴다. 기존의 생활에서 ‘겉돌며’ 존재하는 공부의 타임라인이다. — p.223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공부에 관한 다른 안내서에서는 살펴보지 않는 지극히 기초적인 내용에 집중해서 설명해보았다. 책의 종류, 신뢰성 확인, 독서할 때 언어 다루는 법,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활용, 자유 연상적으로 쓰면서 사고하기. 이 모든 것은 공부를 유한화하기 위한 비결이다. (…) 정보 과잉 시대인 현대에는 유한화가 절실한 과제다. 날마다 ‘우선은 여기까지 해냈다’는 경험을 쌓아가자. 하나의 임시 고정에서 새로운 임시 고정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부는 어떤 단계에서 그만두더라도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중단에 의한 임시 고정이다. — p.237~238
○ 출판사 서평
– 일본 학계와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베스트셀러, 2017년 도쿄대·교토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어떻게 해야 남들과 차별되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 공부의 원리를 알고 즐기는 사람이 앞서간다! 일본 사상계의 신성 (新星) 지바 마사야가 이 시대 독학자들에게 헌정한 최고의 공부론!
왜 우리는 공부에 목을 맬까?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남들과 차별되는 공부를 해나갈 수 있을까? 입시와 취업 공부에 국한되지 않고 일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원천으로서 공부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이 시대 독학자들을 위해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공부론을 펼친다. 질 들뢰즈의 생성변화 철학을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너무 움직이지 마라》를 통해 범람하는 지식정보 시대에 진정한 자아 발견의 길을 학문적으로 제시했던 그는, 이번 신작 《공부의 철학》에서는 자신만의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들뢰즈, 라캉, 비트겐슈타인 등 현대 주요 철학을 바탕으로 공부의 원리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공부란 지식이나 정보를 마냥 쌓아올리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며 살아온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즉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새롭게 변신하며,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일이다. 이는 곧 깊은 공부, 향락하는 공부로 이어져 내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힘을 갖추도록 한다. ‘공부와 언어’, ‘공부와 사고’, ‘공부와 욕망’, ‘공부의 기술’ 등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이제까지 간과되었던 공부의 구조와 무의식에 깊게 다가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여타의 공부법 책들과 완연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지바 마사야의 역작 《공부의 철학》은 2017년 4월 출간 당시 일본의 학계와 언론, 출판계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해 도쿄대 및 교토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도 꼽힌다.
– 지식과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 남들과 다른 나만의 진짜 공부를 시작하는 법
취업 준비로 영어를 공부하든, 비즈니스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경제를 공부하든, 정년퇴직 후 철학이나 종교를 공부하든, 누구나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공부한다. 그러나 공부란 무엇인지, 왜 우리에게 공부가 필요한지를 넓은 시야에서 메타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바 마사야가 《공부의 철학》을 쓴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는 그야말로 ‘공부의 유토피아’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수준 높은 입문서가 쏟아져 나오는 등 학습 환경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또 2000년대 말부터 확산된 SNS와 스마트폰으로 말미암아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우리가 정보의 자극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깊게 생각할 새도 없이 정보가 쏟아지고, 끝도 없이 흘러드는 정보에 즉각적 공감을 강요받는다. 수많은 정보들에서 무엇을 가려내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자신의 생각을 개진해나가기가 어렵다. 《공부의 철학》은 이런 정보의 과잉 상황을 공부의 유토피아로 적극 활용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깊게 사고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며 동조하는 삶을 중단하려면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냥 공부가 아닌 깊은 공부, 삶의 뿌리에 작용하는 근본적 공부인 ‘래디컬 러닝Radical Learning’이 필요하다. 지금 사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주변에 맞춰 살면 된다. 그러나 생활에 무언가 변화가 일기를 바라고 기존의 자신을 전복하길 원한다면 ‘변신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 내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공부, 언어와 사고를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라
저자에 의하면 공부란 변신이다. 기존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신이란 주어진 환경과 관계 속에서 보수적으로 살아온 나, 환경의 당위(코드)에 동조해온 나이다. 그런 자신을 파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고방식, 다른 화법을 사용하는 환경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 말은 물리적 공간을 바꾸라는 뜻이 아니다. 물건처럼 만질 수는 없지만 우리 삶을 이미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언어의 세계를 바꿔보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언어를 소통의 도구가 아닌 언어 그 자체로 대하면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자유자재로 사용해보는 것이다, 마치 시처럼. 사용하는 언어의 범주가 달라지면 기존 환경에 유착했던 자신을 변신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부의 본질은 언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변신을 위한 깊은 공부의 시작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기존의 환경과 관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기존의 동조를 멈추고 새로운 동조로 옮겨 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서 ‘동조에 서툰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동조에 서툰 말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사고 기술’과 대응한다. 사고법은 크게 볼 때 아이러니(츳코미)와 유머(보케)로 나뉜다. 주어진 환경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며 ‘깊이 파고드는 사고법’이 ‘아이러니’라면, 하나의 주제에서 폭넓게 가지를 뻗어나가며 ‘한눈파는 사고법’이 ‘유머’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으며 수직으로 깊어지는 아이러니적 사고와 한 가지 주제에 또 다른 주제를 덧대며 수평으로 확장되는 유머적 사고, 이를테면 종적 사고와 횡적 사고를 적절히 병행하다 보면 주어진 담론, 환경, 관계에서 엇나가는 발언을 하는 나, 그럼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탐지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자기 목적적인 공부, 자기 향락을 위한 공부, 공부를 위한 공부의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삶, 일상생활에서 공부의 타임라인을 유지하는 법
《공부의 철학》은 공부의 원리만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왜 깊은 공부가 필요한가,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를 ‘언어와 사고’를 중심으로 살핀 이후,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찾아 깊이 파고드는 공부의 기술을 제시한다. 저자에 의하면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에 참여하는 일이다. 공부의 본령은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을 읽는 일이고, 유서 깊은 학문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따라서 신중한 관찰과 실험, 자료의 독해에 뿌리를 둔 전문서, 연구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입문서를 잘 골라 읽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입문서라는 게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인 책이라 해도 새로운 학문을 접하는 일은 낯선 언어를 접하는 일이기에 자신의 체감과 맞지 않아 불편하고 이물스러울 수 있다. 잘 모르겠다며 덮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란 궁극적으로 이질적인 세계관을 얻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언어와 사고에 동조하다 보면 자신의 감각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부를 계속하는 힘이 된다.
저자는 애초에 공부란 한도 끝도 없으니 언제든 시작할 수 있으며 언제든 중단해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작심삼일 공부는 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훌쩍 뛰어넘는다. 다만 중단했다면 반드시 재개하라고 강조한다. 중단과 재개의 반복 경험을 쌓는 것이 바로 공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부를 계속하려면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의 타임라인을 유지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저자는 에버노트 등 노트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한다. 여러 개의 노트북(폴더)을 작성하여 여러 분야의 공부를 동시 평행적으로 진행하면 그 사이에서 상승효과가 일어난다는 것. 애플리케이션을 거점으로 삼는다면 한동안 공부에서 멀어져 있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읽는 일 못지않게 쓰는 일도 중요하다. 쓰기의 기술은 ‘쓰면서 생각하는 습관’에 의해 향상된다. 따라서 한 줄의 문장,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연상되는 바들을 자유롭게 써나가면서 생각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이때 아웃라이너라는 앱이 편리하다. 아웃라이너로 목록 쓰기를 하면 사고를 짧게 끄집어내어 임시 고정하는 작업이 절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공부의 유한화’다.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가능성이 무궁해진다. 긴 문장 쓰기가 어려울 때는 아웃라이너 등을 통해 사고를 임시 고정하면서 축적해가는 글쓰기를 해본다. 목록이 어느 정도 쌓이면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가 수월해진다. 깊은 공부에 대한 탐색이 이렇듯 글쓰기로 수렴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삶이 가능해지면 자신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향락적 공부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 독자의 평
저자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먼저 집단적 동조에 주목한다. 페이스북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점점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생각 없이 그저 기사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유한화’를 제안한다.
“나는 제안한다. 한정된 것, 즉 유한한 범위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고. 무한히,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에, 동조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유한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관계에서 공감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생각 없는 공감과 동조는 위험하고 사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 내가 예전에 생각 없이 동조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라고 돌아보게 된다. 내가 좁은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깨다는 것이다. 공부는 이런 점에서 과거의 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또한 발전적 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환경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조는 다른 말로 ‘환경의 코드에 자신을 온전히 맞춘 상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동조에 서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겉돌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환경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떤 환경이든, 사람은 환경에 속하게 된다. 다만, 저자는 언어를 통하여 환경에 속하되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언어는 바로 환경에 의하여 나에게 설치된 것이다. 저자는 언어를 통해 점령당했다고 표현한다. 동시에, 언어는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어서 다른 의미 부여의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환경, 즉 언어적 가상현실이 인간을 지배하는가 하면 해방하기도 한다. 즉 언어는 인간을 조종하는 리모컨이다.”
따라서, 환경의 동조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동조로 이동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공부는 다른 동조로 이사 가는 것이다. 동조에서 다른 동조로 이동하는 도중 우리는 불편을 경험하게 되고 위화감이 발생한다.
“특정 환경에서만 쓰이는 화법을 일부러 사용해야 한다. ‘기존의 동조라면 이러한 화법(=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쓰지 않았을 텐데’하는 위화감이 들 것이다. ‘억지로 말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도구적 언어 사용과 완구적 언어 사용을 구분한다. 도구적 언어는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한다. 완구적 언어는 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말장난이나 잰말놀이 등이 그렇다. 환경 속에 있으면서 거리를 두기 위하여 도구적 언어 사용을 줄이고 완구적 언어 사용을 늘려야 한다. 이를 저자는 “언제나 언어유희적 태도로 언어에 관여하는 의식을 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일부러 동조에 서툰 말을 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부러 언어를 재수 없게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겉도는’말을 하는 것이다. 겉도는 말을 통하여 공동성에서 분리하고 동조를 끊는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이다. 아이러니에서 출발해서 유머로 나아간다.
“공부를 깊게 하다 보면 아이러니와 유머가 강해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해 나는 반대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러니와 유머를 일부러 발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방향이 보이겠구나, 하고.”
“아이러니는 ‘근거를 의심하는 것’이다. 유머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숨어 있는 코드를 발견하고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예를 들며 구직 활동에서 실패한 사람을 격려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여기에는 ‘취직은 좋은 것’이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당연시 여기는 이 코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애초에 왜 일해야만 하는 것인가?’ 같은 질문 말이다.
아이러니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에 ‘일부러’ 혹은 ‘자각적으로’ 반기를 든다. 즉,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아이러니는 대화를 깊게 만드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이다. 유머는 자각적일 수도 있고 무자각적일 수도 있는데 저자는 자각적 유머를 말한다고 부연 설명한다.
결혼에 대한 아이러니는 ‘결혼이 행복할까?’, ‘나만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것들이다. 즉, 결혼의 당위성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유머를 통하여 코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아가 코드의 부재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대화의 코드는 애초에 불확정적이고 흔들리는 것이다… 아이러니로 인해 무리하게 코드의 근거를 찾으려다 보면, 코드 그 자체의 불확정성은 요컨대 ‘그저 분위기’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환경은 퇴색하고 만다. 아이러니는 이처럼 ‘코드를 전복’한다.”
유머는 아이러니와 달리 코드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책에는 유머의 예로 “불륜이란 건 말이야, 음악 아닐까?”가 나온다. 이 유머를 통하여 ‘불륜은 악이다’라는 코드는 그렇다 치고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틀어 버린다.
공부를 하는 것은 문제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넓혀가야 한다. 결국, 개인의 문제도 구조적 문제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메타적 인식을 지녀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부의 유한화도 필요하다. 아이러니와 유머를 통하여 깊이 파고들어가다 한눈팔기가 자주 일어난다. 유한화라는 것이 최후의 공부라든지, 절대적 근거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니다. 깊이 파고들기와 한눈팔기 프로세스를 반복하다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공부의 유한화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결국, 어느 선에서 비교를 중단하고 임시 고정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다만, 계속 정보 수집을 하며 여전히 비판적인 상태와 듣는 귀는 유지해야 한다. 이를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한 비교를 자기 나름대로 제대로 받아들여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다만 그 결론은 절대적이지 않은 가상의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한 다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지 설명한다. 인터넷보다는 종이 책으로 먼저 공부할 것을 조언한다. 입문서는 여러 권을 읽고 비교해야 한다. 입문서, 교과서, 기본서 순으로 공부해야 한다. 출판 연도는 최근일수록 좋다. 완벽한 독서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질리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려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서, 더 한정하면 학문적인 ‘연구서’를 공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신뢰성의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근거란 그 저자, 문헌이 ‘지적인 상호 신뢰의 공간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지 여부’다.”
독서를 할 때, 자신의 체감으로 끌어당겨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텍스트의 구조 안에서 각 개념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텍스 안에서 언어가 사용되는 방법과 정의를 확인해야 한다. 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개념의 대립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중요한 텍스트는 외우거나 따로 독서 노트(문헌 제목과 쪽수, 출판 연도 등)에 정리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도 포함한다. 저자는 에버노트 유저로, 에버노트나 원노트를 독서노트로 사용하라고 추천한다. 저자는 아이디어를 손으로 적고 사진을 찍어 디지털로 옮긴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나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먼저 자유롭게 목록 쓰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 중에서 _ 5월 27일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 배우고, 익히고, 깨달으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살이란 하나의 공부입니다.
학교에 가고, 책을 읽고, 실험, 실습, 경험을하며 배웁니다.
신문이나 TV를 보고, 유투브나 컴퓨터 검색을 통해서도 공부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각종 SNS나 지금 쓰고 읽는 카톡도 다 공부라고 할수 있습니다.
인생살이 – 취업, 연애, 사업, 만남, 이별, 애기낳고 기르는 것, 돈벌고, 돈쓰고, 사람 만나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는 등, 인생의 성공과 실패 – 이 모든 것이 ‘인생공부’입니다.
공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린 왜 공부하나요?
꼭 목적이랄 것이 없다면, 그럼 공부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우린 공부를 통해서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나요?
성공과 출세? 그에 따른 부귀와 영화? 기쁨과 행복? – 모르던 것을 알고,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알고, 좁게 알았던 것을 넓게 아는 기쁨과 만족?
“야 공부해서 남 주냐?” –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자주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그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 그럼요, 공부해서 어디 내가 갖나요? 공부는 남 주려고 하는 거예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바 마사야가 쓴 “공부의 철학” 중 몇 귀절을 함께 나눕니다.
“공부의 목적은 얻기위함이 아니라 버리기 위함이다”
“공부하는 이유는 자유스러워 지기 위해서다”
“공부는 어설픈 똑똑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바보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결국 완벽한 공부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데 있다”
“우린 겸손해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그리고 공부하면 반드시 겸손해진다”
여기까지 읽고나니 “난 정말 아직도 공부가 참 먼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천도서 –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책세상, 2018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