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관용에 관한 편지
원제 : Epistola de Tolerantia (1689년)
존 로크 / 책세상 / 2013.10.10
존로크, 종교의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함께 추구한 사상가
경험론 철학자 존 로크의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는 입장을 담은 ‘관용에 관한 편지’. 세속적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혼동한 절정의 시공간인 17세기 유럽의 모순을 비판한 로크의 저작으로 기게적인 중립을 비판하고 종교적 관용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관용으로 억압과 지배를 극복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치와 종교, 사회 각 영역들의 억압없는 균형을 통해 정당한 통치의 힘을 가져야 하며 다수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횡포를 부려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로크의 이런 사상은 미국 연방주의자에게 이어져 미국 헌법 조항에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표현되었으며, 종교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들려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1689년 포플의 서문
관용에 관한 편지
1.도입
2.공화국과 교회
3.관용의 의무
4.교회의 권리
5.결론-종파들과 국가의 안전
6.부록-이단과 종파 분리
해제|존 로크,종교의 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함께 추구한 사상가
1.17세기 잉글랜드와 로크의 일생
2.《관용에 관한 편지》가 주장하는 관용과 자유
3.21세기 지구화 시대의 《관용에 관한 편지》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저자소개 : 존 로크
로크는 영국의 첫 경험론 철학자로 평가를 받지만, 사회계약론도 동등하게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사상들은 인식론과 더불어 정치철학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가장 영향력있는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유주의 이론가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632년 영국의 서남쪽 서머싯 주의 링튼에서 시골 변호사이자 중상계층에 청교도였던 부모 밑에서 태어나, 청교도주의의 정결하고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로크가 10세가 되던 해 1642년에 영국에서는 내란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스러웠으며, 젊은 날의 로크는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652년 로크는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자연과학·의학 등을 배웠고, 1659년 대학에서 자유로이 연구할 수 있는 항구적 장학연구생이 되었다. 이후 학생 지도교수가 되어 그리스어와 수사학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한편 의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결국 1675년에는 의학 특별연구원이 되었는데 그 명성이 상당했다고 한다. 한때 당대 유명한 정치가이며 휘그당의 창시자인 앤서니 애슬리 쿠퍼(샤프츠베리 백작 1세)경과 친교 맺으면서 영국의 정치에도 관여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정책과 관련하여 국왕 찰스 2세와 갈등하던 샤프츠베리 백작(애슐리경)이 투옥되면서 1673년 대법관에서 파면당하자 로크도 관직에서 물러나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이후 폐결핵으로 프랑스에서 4년 동안 요양생활을 하며 주로 연구에 집중하였다. 1679년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로크는 어수선한 정세 속에 다시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났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이후의 그의 말년은 평탄했으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통치론』과 『인간오성론』을 비롯하여 『교육에 관한 서한』, 『기독교의 합리성』 등의 저작물들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그는 1704년 경건했던 그의 삶처럼 의자에 앉은 채로 조용히 72년의 생애를 마감했다고 한다.
주요 저서로 『자연법론』 『관용에 관한 서한』 『금리 인하와 화폐 가치의 인상의 결과에 관한 약간의 고찰』 『교육론』 『화폐가치 인상에 관한 재고찰』 『그리스도교 교리의 합리성』 등이 있다.
– 역자 : 공진성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9월부터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정치학회 정치사상분과 위원장과 《한국정치학회보》 편집위원, 한국정치사상학회 이사 및 《정치사상연구》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6년 첫 저서 《스피노자와 불복종의 문제(Spinoza und das Problem des Ungehorsams)》를 베를린에서 출간했으며, 《폭력》, 《테러》, 《폭력이란 무엇인가》(공저), 《루소, 정치를 논하다》(공저) 등의 책을 썼다.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를 옮겼으며, 그 밖에 옮긴 책으로 《새로운 전쟁》, 《제국》, 《존엄성》, 《정치》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의 유지를 위해서는, 노동과 근면을 통해서 모아야 하는 혹은 이미 모은 지상의 편의가 필요합니다. 잘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과 관련해 다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것보다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얻은 열매를 취하기를 기꺼이 원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약한 마음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것, 즉 부와 능력, 또는 획득한 것들, 그리고 신체의 자유와 힘을 지킬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 들어가야 합니다. 상호부조와 힘의 결합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의] 삶에 유용한 이러한 것들의 사적이고 안전한 소유가 각자에게 가능해집니다. 그러는 중에도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돌보는 것은 각자의 소관 사항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근면이 [나의] 영원한 구원의 획득을 도울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영원한 구원의] 상실이 [나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없고, [영원한 구원에 대한] 희망이 그 어떤 무력을 통해서도 [나에게서] 제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71쪽, ‘4. 교회의 권리’ 중에서)
○ 독자의 평
17세기 종교적 관용 문제의 21세기적 의의
로크가 살던 시대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한 국가 내에서의 종교적 다양성의 허용(이것을 누군가가 ‘허용’할만큼 적극적으로 쟁취되는 권리라기보다는 당연히 누리는 권리로 인식될 정도로)에 인색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분명히 본문의 내용은 지금 당시에 이 글이 야기했던 만큼의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너무 당연한 소리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해제에 옮긴이가 쓴 이야기 대부분도 로크의 생애와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20세기의 종교와 민족주의의 결합,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분리주의와 통합주의의 움직임에 대한 지적은 유효한 것 같지만 이 문제를 좀 더 파헤치기 위해서는 최근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정리라든지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열심히 읽어봤지만 <<통치론>> 만큼 큰 영감을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시대에 이런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 번 정도는 주의를 기울여 읽어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출판사 서평
로크는 기계적인 중립을 비판하고 종교적 관용을 옹호한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관용으로 억압과 지배를 극복하여 개인의 자유는 물론 공동체의 자유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은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와 종교, 나아가 사회 각 영역들의 억압 없는 균형을 이루려 했던 로크의 사상은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종교와 자유를 넘어 타인의 자유와 정체성의 자율을 되돌아보게 한다. 로크는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위장된 종교의 지배 욕망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순수성을 회복시키려 했다.
이 책에 담긴 주장은 미국 연방주의자에게 이어져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헌법의 조항으로 표현되었다. 로크의 주장은 후에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옹호한 것처럼 종교에서도 국가교회라는 독과점 시대가 끝나고 교파교회라는 자유 경쟁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정치 종교를 향한 통렬한 비판,《관용에 관한 편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시장 재임 시기에 일어난 ‘수도 서울 봉헌’ 파문은 종교적 자유와 세속적 자유를 혼동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서울에는 하나님의 자식들만 사는 것도 아니며 기독교 신자들조차 수도 봉헌에 대해 반드시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위임된 세속적 권리, 즉 시장이라는 지위가 가진 권한을 사인(私人)으로서 지닌 종교적 자유와 혼동했다. 로크에 따르면 통치를 신의 은총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종교의 지배, 더욱이 특정 종파의 지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배는 종교 자체의 파괴이고 구원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로크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세속적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혼동한 사례는 인류 역사상 비일비재했지만 17세기 유럽은 그 절정의 시공간이었다. 당시 프로테스탄트는 자유를 위한 권리를 주장했고, 이런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가톨릭의 탄압이 이어졌다. 로마 가톨릭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구세력은 종교적 자유와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프로테스탄트를 정치적.종교적으로 박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종교적 입장에 따라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관용에 관한 편지》(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068)는 이때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로크가 정치와 종교의 구분을 주장하는 입장을 드러낸 저작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라틴어 원문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서 로크는 기계적인 중립을 비판하고 종교적 관용을 옹호한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관용으로 억압과 지배를 극복하여 개인의 자유는 물론 공동체의 자유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은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와 종교, 나아가 사회 각 영역들의 억압 없는 균형을 이루려 했던 로크의 사상은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종교와 자유를 넘어 타인의 자유와 정체성의 자율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공화국은 종교적 자유를 보장한다
로크는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위장된 종교의 지배 욕망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순수성을 회복시키려 했다. 로크는 종교적 지배 현상이 정치와 종교, 공화국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두 사회의 구별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나 인민의 지지에 기초한다고 믿었던 로크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정치적인 정체성과 종교적인 정체성이 구분되지 않은 채 다수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통치할 때, 그 국가는 정치적 통치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배까지 하게 된다고 말한다. 동의에 근거한 정당한 통치가 아닌 자의적인 지배가 생겨나고, 이렇게 되면 ‘인민 전체의 재산res populi’을 의미하는 ‘공화국res publica’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로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체성인 시민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각각 공화국과 교회의 영역에 국한시킨다. 이로써 종교적 다수가 그대로 정치적 다수가 되어 소수를 억압하지 못하고 나아가 종교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크의《관용에 관한 편지》에 담긴 주장은 미국 연방주의자에게 이어져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헌법의 조항으로 표현되었다. 로크의 주장은 후에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옹호한 것처럼 종교에서도 국가교회라는 독과점 시대가 끝나고 교파교회라는 자유 경쟁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오늘날의 관용과 자유를 위하여
로크는 종교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종교나 민족, 언어가 아니라 시장 질서이다. 국가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민들의 시민적 자유는 물론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자유마저 침해받는다.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에 시민적 자유는 물론 종교적 자유도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지배적인 언어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이 언어를 사용하는 혹은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다수로서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그들의 언어적 정체성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관용이 뿌리내릴 수 없는 시장이 정치뿐 아니라 다른 영역마저도 지배하여 시장 질서의 다수 공동체만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거나 방기하는 것은 사실상 종교와 언어, 민족과 문화에 대한 시장의 전제적 지배를 허용하는 것이다. 불신자를 개종시키려면 아무리 강한 부대도 신의 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로크의 말은 관용 없는 거짓 믿음이 결국 신에 대한 모독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 것이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관용 없는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로크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관용의 눈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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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로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관용으로 억압과 지배를 극복하여 개인의 자유는 물론 공동체의 자유를 보호하자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은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종교와 자유를 넘어 타인의 자유와 정체성의 자율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_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